< 국뽕 박규태 선생 #163 >
마르티뇨 이글레시아스 회장은 혼란하다는 눈빛으로 카메라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의 옆에 앉아서 환하게 웃고 있는 박규태를 다시 바라보면서 눈을 감았다.
‘뭔가…… 뭔가 일어나고 있다.’
분명히 유니폼을 전해주고 박규태의 영입을 발표하는 순간까지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미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의 시청자들도 기네스북에 남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숫자를 기록했으니까.
거기다 박규태가 유니폼을 입는 순간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이 내지르는 환호성은 레알 마드리드의 구단 사무실까지 들려올 정도였다.
문제는 먹방을 준비하는 순간부터였다.
앞에 놓이기 시작하는 생소한 음식들.
불길하게 붉거나 검은 음식들이 가득했다.
‘이걸 먹지 못하겠다는 말을 할 수 없다.’
그랬다가는 좋은 분위기가 엉망이 될 수 있다. 그는 박규태가 레알 마드리드에 빠르게 적응해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했으니 말이다.
결국에는 먹어야 했다.
‘그래, 김치부터 먹자!’
다른 김치와 다르게 더 붉은 빛이 도는 게 뭔가 불안했지만, 다른 음식들보다 그래도 먹은 경험이 있는 음식이었다.
그는 조용히 포크로 김치를 찔러서 밥에 올렸다. 그리고 밥과 함께 입에 김치를 털어 넣었다.
좋았다.
‘좋아…… 별로 안 매워……?’
그때였다.
옆을 돌아본 순간.
박규태가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물을 건네는 것을 확인한 것을 말이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고 난 뒤에 드디어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안 매운 것이 아니라 그냥 잠깐 밥 때문에 매운맛이 가려진 것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부르르 몸을 떠는 마르티뇨 회장은 박규태가 전달한 물을 마시고도 매운맛의 고통에 헤어나올 수 없었다.
‘이런……. 설마 이걸 드실 줄 몰랐는데……! 이건 내가 먹고 다른 김치로 주려고 했는데 실수했네.’
박규태는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김치를 한쪽으로 치웠다. 사실 김치는 두 종류였다.
하나는 마르티뇨 감독이 먹기 좋게 적당히 매콤한 김치였고, 다른 하나는 박규태가 미션을 위해서 미리 주문한 김치인 ‘매운맛 살바김치’였다.
‘이거 새롭게 개발된 핵 지옥맛 김치인데…….’
박규태가 안쓰러운 눈으로 마르티뇨 회장을 바라봤다.
다행히 마르티뇨 회장은 매운맛을 극복하고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그의 이마에 가득한 땀을 숨길 수 없었다.
“허, 허억……. 허억……!”
고통에 몸부림을 친 마르티뇨 회장이 괴물을 보는 눈빛으로 박규태를 바라봤다.
“한국 사람들은 다 이렇게 매운 음식을 즐기나요?”
그의 물음에 박규태가 대답했다.
“매운 음식을 잘 먹어서 제가 축구를 잘합니다.”
* * *
[사이버 축구선수 박규태?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가장 특이하고 기괴한 입단식!]
[입단식이 끝나고 먹방? 레알 마드리드가 박규태를 위해서 준비한 많은 것들!]
[마르티뇨 감독, ‘한국인을 존경한다. 그들은 치열한 매운맛을 견뎌내는 진정한 전사들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리빌딩! 그 마지막 퍼즐이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입성하다!]
[김치팍 이즈 커밍! 마드리드에 나타난 위대한 김치팍!]
-규태팍 인성 봐라; 마르티뇨 회장한테 살바김치를 먹이네ㅋㅋㅋㅋㅋㅋㅋㅋ
-와……. 다음날 똥꼬가 활활 타겠는데?
-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미쳤다. 역대급 입단식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호날두보다 충격적이넼ㅋㅋㅋ
-그런데 레알 마드리드 공격진이 진짜 화려하네; 라두 웅구레아누, 박규태, 펠리페 카발, 니콜라스 브라보까지. 진짜로 판타스틱4가 완성된 것 같음.
-기존에 있던 공격진들 팔아서 더블 스쿼드 구성할 유망주들까지 꽉꽉 채웠더라.
-원래 벨로아 솔랑케 감독이 그런 더블 스쿼드를 구성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함.
-벨로아 솔랑케 감독은 과연 탈맹을 보여줄까?
-ㅋㅋㅋㅋ 요즘 탈맹도 별로 효과 없더라.
-요즘 맨유 보면 뭔가 터질 것 같은데……. 안 터지는 만년 유망주를 보는 느낌임.
-퍼거슨 경이 있던 시절이 좋았지.
-그건 ㅇㅈ이지.
입단식이 끝나고 박규태는 7월 14일에 프리시즌이 시작하는 날짜에 맞춰서 팀에 합류했다.
“새롭게 팀에 합류한 박규태다. 아마……. 몇몇 선수들은 이 친구를 챔피언스리그에서 본 적이 있겠지.”
벨로아 솔랑케 감독은 상당히 건조한 감독이었다. 터미네이터처럼 감정이 없는 로봇처럼 느껴졌다.
가볍게 박규태를 선수들에게 소개한 감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규태가 한국식으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를 바라보는 팀의 시선은 다양했다. 그를 직접 상대해 봤던 크리스티안 이오리와 페드로 파울로, 얀 이바라, 뱅자맹 파바르드는 뭔가 묘한 표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반대로 그와 비슷한 시기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몇몇 선수들은 박규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나 첼시에서 별다른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서 방출된 사이먼 셔틀워스는 벨로아 솔랑케 감독의 선택을 받고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선수였다.
몸값은 고작 한화로 200억밖에 되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대단히 반짝였다.
‘슈퍼 김치팍이 나와 같은 팀이라니……! 팍이 나에게 김치의 주문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난 남은 시즌에 아예 골을 넣지 못했을 거야.’
그는 무엇인가 두근거림을 느꼈다.
분명히 박규태는 그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사이먼 셔틀워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박규태는 달랐다.
예전에 울브스와 첼시의 경기에서 사이먼 셔틀워스에게 이상한 조언을 했던 사실을 잊어버린 박규태는 ‘왜 저 자식을 나를 보면서 느끼한 미소를 짓지?’라고 생각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훈련하면서 박규태는 울브스와 다른 레알 마드리드의 훈련 시설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레알 마드리드인가?’
아마도 빅클럽들의 훈련 시설도 레알 마드리드와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훈련하면서 박규태는 선수단을 제대로 살필 수 있었다. 뭔가 모범생이 가득했던 소쇼나 울브스와 비교하면 레알 마드리드는 공부도 잘하면서 놀 줄 아는 녀석들이 가득한 것 같았다.
“끝나고 클럽이나 갈까?”
“내일 골프 약속이 있어서 못 갈 것 같아.”
“크리스! 필리페는 못 간다는데?”
“그럼 누굴 초대해야 할까?”
크리스티안 이오리의 시선은 여유롭게 훈련을 하는 박규태에게 향했다.
“음…….”
그는 고민했다.
김치에 미쳐버린 녀석을 초대해도 될까?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왜? 팍이라도 초대하게?”
발렌틴 디아즈의 물음에 크리스티안 이오리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여자 경험이 없는 녀석을 불러서 뭐하게? 나중에 따로 저녁 식사 자리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음, 그것도 좋겠네.”
두 사람이 박규태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에 박규태는 놀기 좋아하는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을 보면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본이 없군.”
절대 레알 마드리드 선수단 내에서 홀로 여자친구가 없다는 사실에 분노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레알 마드리드 선수단의 축구와 관련된 간절한 마음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축구의 멋짐을 모르는 너희들이 너무 안타깝군.”
그래, 저 녀석들에게 축구의 멋짐을 알려줘야겠다. 덤으로 김치와 국뽕도 조금씩 퍼뜨리면 좋을 것 같았다.
절대 커플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절대로.
* * *
평소에 아시아나 북미 쪽으로 투어를 나섰던 레알 마드리드는 이번 시즌에는 투어를 가지 않았다.
정확히는 벨로아 솔랑케 감독의 부탁으로 이번 시즌의 투어는 모두 취소되었다.
그는 최대한 팀의 조직력을 올리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의 전술은 극단적인 수비 축구였다.
정확히는 4-4-2 포메이션을 활용한 ‘철퇴 축구’라고 할 수 있었다. 벨로아 솔랑케 감독은 시메오네 감독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감독으로 점유율을 크게 신경 쓰는 감독이 아니었다.
그런 그의 축구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축구에서 많이 나오지 않는 기회를 완벽하게 만들어줄 공격진이었다.
특히 역습의 중심이 될 2선과 그런 2선이 만든 기회를 완벽하게 마무리할 골잡이가 중요했다.
그리고 지금의 레알 마드리드에는 그런 완벽한 2선과 환상적인 골잡이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환상적이군.”
로봇처럼 표정에 변화가 없는 벨로아 솔랑케 감독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만족스러웠다.
선수들의 컨디션을 확인하기 위한 연습 경기에서 나온 7골 중에서 5골이 박규태가 넣은 골이었다. 그리고 그 5골 중에서 4골이 라두 웅구레아누가 찔러넣은 패스에서 나온 골이었다.
뻐어엉!
철썩!
이어서 6번째 골을 넣은 박규태는 느낄 수 있었다. 라두 웅구레아누의 재능을 말이다.
‘가스통 렌도의 상위호환이다.’
가스통 렌도의 날카로운 패스도 정말 끝내줬었는데, 라두 웅구레아누는 그 패스보다 더 정확했다. 거기다 가스통 렌도보다 많은 부분에서 뛰어났다.
‘멋진 선수야.’
박규태는 만족했다.
그가 박규태와 함께 유일한 레알 마드리드의 솔로 부대여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다른 조건을 내려놓고 봤을 때도 라두 웅구레아누는 정말로 뛰어난 2선 자원이었다.
그의 패스를 받는다면 그 어떤 선수보다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에도 날카로운 패스를 찔러준 라두 웅구레아누였다.
그는 박규태가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하고 가장 먼저 친해진 동료였는데, 박규태는 그를 보면서 소쇼 시절에 가장 친했던 동료인 엔조 마이어를 떠올렸다.
“팍! 멋진 마무리였어.”
그가 엄지를 치켜들자 박규태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따봉을 들어 올렸다.
두 사람의 사이만 가까워진 것도 아니었다.
다른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도 금방 박규태의 실력을 보고서 조금씩 그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팍! 이번에 다른 동료들이랑 모여서 저녁을 먹을 생각인데 우리 집에 올래?”
“좋은 클럽에 갈까? 이쁜 여자들이 많다고!”
“팍! 자선 골프대회가 있는데 해볼 생각 있어?”
그들의 초대에 박규태는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이 워낙 고지식하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레알 마드리드는 너무 방만한 것 같았다.
이제 프리시즌인데 클럽과 자선 골프대회?
그래, 갈 수는 있지.
하지만 일주일에 몇 번을 가는지 모르겠다.
‘이건 아니지.’
이건 조금 선을 넘은 것 같았다.
박규태는 그것을 지켜볼 수 없었다.
참지 못한 그가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을 보면서 2002년도에 대한민국을 강타한 명언을 내뱉었다.
“나는 아직 배고프다.”
* * *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은 박규태가 자신들에게 했던 말을 생각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혼자 잘났다는 건가?”
“그냥 친목을 다지자는 의미였는데……. 팍은 이상한 행동만큼이나 사회성이 꽤 부족한 것 같네.”
“뭐? 8월 초에 있을 갈라타사라이와 친선전에서 축구선수의 근본을 보여주겠다고?”
선수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박규태가 너무 자기 잘난 맛에 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대로 최근 성적이 좋지 않은 레알 마드리드의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몇몇 선수들은 박규태의 말에 옹호했다.
“최근에 우리가 우승에 가까웠던 적이 있나? 우리는 챔피언이 아니라 지금 도전자야.”
“김치팍의 말이 맞아. 우리는 너무 방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지난 시즌에 들어 올린 트로피도 없다고!”
“예전이었으면 갈라타사라이와 경기를 앞두고 클럽이나 자선 골프대회에 나가는 일은 없을 거야. 팍의 말이 옳았어! 우리는 예전에 있던 초심을 잃었어.”
대체로 어느 정도 프로로서 경험이 쌓인 선수들이 박규태를 옹호했고, 반대로 젊은 나이의 선수들이 박규태의 말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팀의 분위기가 엉망이 될 수 있는 상황.
감독인 벨로아 솔랑케는 지켜보기만 할 뿐이지 별다른 개입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8월 4일.
갈라타사라이와 친선경기 일정 당일.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많은 관중이 몰렸다.
김치팍! 김치팍! 김치김치팍팍!
이 좋은 김치팍을 울브스만 응원한거야?
키야아아아아! 주-모우우우우!
그리고 그들이 내뱉는 응원가를 들으며 박규태가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 국뽕 박규태 선생 #163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