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161 >
벌써 3번째였다.
일본의 축구국가대표 감독이 바뀐 횟수가 말이다.
그만큼 최근 일본축구는 부진하였다.
브라질에서 귀화한 엘치 페르난도는 K-리그는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했고, 최고 전성기를 달라고 있는 시노하라 히로토는 벨기에 리그에 진출했다가 지금까지 출전을 못 하고 있었다.
그나마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는 분데스리가의 헤르타에서 뛰고 있는 아사쿠라 신과 묀헨글라드바흐에서 뛰고 있는 타카노리 미우라뿐이었다.
[사무라이 블루! 한국을 이기기 위해서는 발롱도르 수상자인 박규태를 넘어야 한다!]
[타카노리 미우라와 아사쿠라 신을 중심으로 한 미드필더진의 힘으로 밀어붙여야 하는 일본!]
[가능성은 충분하다! 힘내라 일본!]
[경기의 핵심은 점유율! 일본의 장점을 활용하라!]
일본의 언론은 열심히 떠들었다.
일단 이기든 지든 본선 진출이 확정된 대한민국이었기에 일본은 그들의 동기부여가 상당히 떨어졌을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일전에서 질 대한민국이 아니었다.
“상대가 일본이다.”
이 한 마디로 동기부여는 충분했다. 절대 질 수 없는 경기였다.
한일전이었으니까.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선수들의 눈빛은 크게 타올랐다. 특히나 이번 소집은 대단한 이슈였는데, 4명의 선수를 제외한 전원이 해외파로 구성이 된 것이었다.
특히나 벨기에 리그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선수들이 많이 차출되었으며, 러시아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골키퍼인 조훈도 국가의 부름을 받게 되었다.
역대 가장 많은 해외파가 소집되자 축구팬들은 점점 기대감을 키워나갔다.
[점점 늘어나는 해외파! 대한민국 축구의 유망주 정책은 어느 정도 결실을 보았다!]
[기대되는 선수들의 경기력! 뱅상 엘라즈 감독은 어떻게 경기를 준비할 것인가?]
[박규태와 이강민을 중심으로 완성된 대한민국의 스쿼드! 과연 일본을 상대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들떠있는 언론과 다르게 국가대표팀 내부는 상당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새롭게 합류한 선수가 많았기에 조직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옆에! 옆에! 옆에 있잖아!”
“집중해! 라인을 유지해!”
“야! 주변을 살피라고! 주변을! 뭐 하는 거야? 지금 라인이 맞지 않아서 돌파를 허용했잖아!”
바삐 움직이는 선수들 사이로 뱅상 엘라즈 감독은 만족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선수들의 폼이 꽤 좋군. 프리 시즌이라고 어느 정도 관리를 허술하게 했을 거로 생각했는데 말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렇게 좋은 상태로 나타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덕분에 조직력을 맞추기가 한결 쉬워졌어.”
“맞습니다. 거기다 팀의 고참인 이강민 선수나 노지민, 김한솔 선수가 젊은 선수들을 잘 이끌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음……. 팍의 컨디션은 어떻지?”
뱅상 엘라즈 감독의 말에 선수들의 피지컬 트레이너가 씩 웃으며 따봉을 들어 올렸다.
“최고입니다. 이미 완벽하게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뱅상 엘라즈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멋진 발리슛을 때리고 ‘주-모우우우!’를 외치고 있는 박규태에게 향했다.
“음……! 연습 경기에서도 이상한 세레머니하는 버릇은 어떻게 못 고치나?”
* *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2030 월드컵의 본선에 진출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 월드컵 최종예선 A조 경기 8차전이 치러지는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인사드립니다. 캐스터 김준성입니다.
-해설인 박성웅입니다.
-아! 정말 기대되는 경기죠?
-맞습니다. 해외파가 가장 많이 소집된 선수단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기대감이 정말 엄청난 상황입니다.
-거기다 이번 이미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 지어놓은 대한민국이기에 다른 팀과 다르게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죠?
-맞습니다. 덕분에 뱅상 엘라즈 감독이 다양한 해외파 선수들을 소집해서 활용할 여유가 생겼죠.
-반대로 상대인 일본은 많이 꼬이고 있습니다. 벌써 국가대표팀 감독이 3번이나 바뀌었죠?
-맞습니다. 레논 감독이 자신의 지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났죠. 문제는 이제 2030 이탈리아 월드컵을 앞둔 상황이라는 점입니다. 대표팀의 조직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자주 감독이 바뀌면 좋지 않거든요?
-그런 것 같습니다.
-아! 말씀을 드리는 순간 선수들이 입장합니다!
사이타마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일본의 축구팬들이 필드에 입장하는 두 팀을 보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아!
얏빠리 니뽄!
오늘 꼭 이겨라!
사무라이 블루의 혼을 보여줘!
일본의 새로운 사령탑인 오쿠다 코헤이 감독이 이끄는 일본은 감독이 교체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럭저럭 결과를 만들면서 한국의 뒤를 이어서 A조 2위에 자리했다.
어제 있었던 카타르와 이라크의 경기에서 두 팀이 비기면서 일본도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 지었다.
이번이 첫 소집인 해외파 선수들이 대부분인 한국의 선수단과 다르게 일본은 지금까지 조직력을 많이 끌어올린 베스트 맴버가 선발로 나왔다.
하지만 경계심이 강한 쪽은 일본이었다. 그들의 시선은 이번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한 박규태에게 향했다.
‘저 선수가 크레이지 팍?’
‘평범해 보이는데?’
‘절대 우습게 볼 수 없어.’
‘저 미친놈이 언제 폭주할지 모른다!’
이미 박규태를 경험한 고참 선수들은 강한 경계심을 보내고 있었고, 반대로 이번에 처음 박규태를 보는 젊은 선수들은 ‘이 선수가 진짜 미친 거 맞나?’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반대로 중앙 미드필더인 한기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박규태는 코를 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눈 것일까.
이해할 수 없었다.
“잘 부탁해요. 부심!”
거기다 인사를 하는 척하면서 코를 후빈 손가락을 몰래 부심의 옷자락에 슬쩍 닦는 박규태를 보면서 일본 선수들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박규태는 자신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일본의 선수들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자식들……. 내가 그렇게 신경 쓰이나?’
아무래도 오늘 살살해야겠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주심을 바라봤다.
삐이이익!
주심은 박규태가 바라보기 무섭게 휘슬을 불었다.
그렇게 숙명의 한일전이 시작되었다.
* * *
일본은 미드필더진들이 중앙에서 짧은 패스 위주로 점유율을 끌어올려 경기를 풀어나가는 것을 즐긴다.
몇몇 한국의 축구팬들은 그런 일본의 축구를 보며 ‘스시카타’라면서 부르기는 했지만, 일본의 축구가 티키타카라고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우선 일본은 점유율을 더욱 중시하는 일반적인 티키타카와 다르게 더욱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거기다 티키타카가 짧은 패스를 활용해서 상대 수비진의 틈을 만들고 그 틈을 파고들기 위한 전술이라면, 일본의 전술은 앞으로 찔러줄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공을 돌리다가 측면이나 중앙에 공간이 나오는 쪽으로 연결하는 축구였다.
그나마 2000년대 초반에 접어들면서 그런 부분이 많이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다양한 문제가 있었다.
특히나 주전과 비주전의 경기력 차이는 물론이고 플레이 스타일의 편차가 심했다.
유럽을 경험한 주전들은 감독이 추구하는 빠른 공격전개와 적절한 몸싸움을 활용한 점유율 기반의 전술을 마음껏 선보이지만, 비주전들은 그런 플레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일본의 전통적인 패스를 중시하던 시절의 축구로 회귀한 모습을 보여줬다.
“집중해! 또 올라온다!”
“젠장……. 최전방 공격수 아니었어? 왜 우리를 상대할 때마다 자꾸 측면 공격수로 나오는 거냐고?”
“팍을 막아! 또 크로스가 올라온다!”
“크로스가 아니야! 돌파한다!”
아무튼, 그런 일본을 상대로 대한민국은 4-2-3-1 포메이션을 선보였다.
타이트한 압박을 시작으로 일본이 쉽게 점유율을 가져가지 못하게 만들면서 2선에 배치된 박규태-이강민-한정훈이 활약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
-경기 초반부터 대한민국이 강하게 압박합니다!
-뱅상 엘라즈 감독이 최근에 대표팀을 이끌면서 강한 압박을 중심으로 한 4-2-3-1 포메이션을 자주 사용하고 있거든요? 아무래도 이번 일본전의 해답으로 ‘압박’을 생각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그게 제대로 먹히는 것 같습니다. 점유율은 물론이고 다양한 부분에서 일본을 가볍게 앞서고 있습니다. 일본이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일본의 수비진은 강력한 2선 자원으로 무장한 대한민국의 압박을 이겨낼 수 없었다.
역습을 위해서 측면으로 올라갔던 타카노리 미우라까지 수비를 위해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오늘 경기에서 왼쪽 윙 포워드로 배치된 박규태가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특히나 전성기 시절의 가레스 베일을 보는 것 같은 돌파 장면이 자주 나오면서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의 눈을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이번에도 스프린트! 오늘 박규태 선수가 체력을 아낄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오른쪽 풀백인 사카이를 제치면서 다시금 측면을 뚫었습니다!
-이번에도 높게 올라가는 크로스! 중앙에 있던 강성용의 헤더어어어어어어!
-아아아! 아쉽게 넘어갑니다! 정말 좋은 기회였는데요! 대한민국이 전반 15분까지 정말 경기를 잘 이끌어나가고 있습니다! 일본이 제대로 된 반격을 못 하고 있습니다!
“뭐 하는 거야? 계속해서 오른쪽이 뚫리잖아! 미드필더가 풀백을 도와서 수비에 가담해야지! 그렇게 멀뚱거리면서 지켜보고 있으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일본의 국가대표팀 감독인 오쿠다 코헤이는 답답하다는 듯이 넥타이를 풀고 화를 냈다.
그만큼 전반전 초반에 보여주고 있는 일본 대표팀의 경기력은 그리 좋지 못했다.
최전방에 있는 브라질에서 귀화시킨 엘치 페르난도는 클럽과 똑같이 대표팀에서도 부진했다.
거기다 중앙에서 측면으로 자리를 옮긴 타카노리 미우라는 오늘 경기에서 오른쪽 측면 수비수로 기용된 곽진수를 넘지 못하고 있었다.
-곽진수 선수의 깔끔한 클리어링!
타카노리 미우라에게서 공을 빼앗기 무섭게 홈팬들의 야유가 들려왔다.
하지만 곽진수는 신경 쓰지 않고 어느새 오른쪽으로 스위칭해서 자리를 잡은 박규태에게 공을 연결했다.
박규태는 자신의 발에 정확히 안착한 곽진수의 긴 패스에 살짝 감탄했다.
‘요즘…… 패스가 물이 올랐어.’
가스통 렌도와 자주 붙어 다니더니 언제 이런 것을 배운 것일까? 절로 웃음이 나오는 좋은 패스였다.
공을 잡은 그는 급히 몸을 돌렸다.
그의 뒤에서 압박하던 타카노리 미우라가 급히 발을 넣어서 그가 소유한 공을 빼 오려고 했지만, 박규태는 여유롭게 그를 제치고 더 깊게 일본의 왼쪽 측면을 파고들었다.
-계속해서 2선의 선수들이 과감하게 서로의 위치를 스위칭하면서 일본의 수비진을 흔들고 있습니다!
-박규태의 돌파!! 미우라를 제치고 그의 뒤를 지키고 있는 사사키 싱고까지 제쳤습니다!
순간적으로 시작된 역습에 일본의 수비진은 긴장 어린 눈빛으로 박규태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들은 어떻게든 박규태의 돌파를 막기 위해서 옐로카드까지 각오했다.
박규태를 향해서 몸을 들이민 수비수들.
하지만 유럽에서 알아주는 괴물 같은 선수들과 힘 싸움을 한 박규태가 일본의 빈약한 피지컬에 밀릴 이유가 없었다.
반칙하려던 일본의 선수들을 몸으로 밀어낸 박규태가 그대로 중앙으로 밀고 들어가자 한국의 중계진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박규태! 박규태! 김치팍!! 김치파아아악!
-갑니다! 갑니다! 돌파합니다!
-달립니다! 수비수 한 명을 제치고 옆에 붙은 선수도 제쳤습니다! 기회입니다! 김치파아아아악!
완벽한 신체 컨트롤이었다.
박규태는 자신의 눈에 살짝 보이는 각도를 보자마자 매섭게 발을 휘둘렀다.
뻐어엉!
날카롭게 꺾이는 공이 회전하면서 그대로 일본의 골대 상단에 빨려 들어갔다.
그야말로 완벽한 ‘감아차기’였다.
철썩!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올!
-어나더팍!! 슈퍼팍! 김치팍! 박규태 선수가 일본을 상대로 선취점을 터뜨립니다!
-대단합니다! 이거죠! 이걸 보려고 우리가 이 경기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선수가 바로 챔피언스리그에서 빅 이어를 들어 올린 선수입니다!
골을 넣은 박규태는 ‘해외축구의 아버지’라 불리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평소와 다르게 담담한 표정으로 산책을 하듯이 사이타마 스타디움을 천천히 돌았다.
이제는 조금 물릴 수 있는 세레머니지만, 이상하게 할 때마다 짜릿한 한 선수의 세레머니가 박규태를 통해서 다시금 드러났다.
그리고 그의 세레머니가 사이타마 스타디움을 침묵하게 했다.
산책하듯이 천천히 뛰는 박규태.
그가 덤덤한 눈빛으로 묘하게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일본의 관중들을 지긋이 바라봤다.
< 국뽕 박규태 선생 #161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