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148 >
미켈 파레라.
파리 생제르맹의 백업 골키퍼인 그는 며칠 전에 있었던 주전 골키퍼인 스테판 페리가 사타구니 부분을 살짝 다치면서 선발로 출전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의욕이 가득했다.
아직 스테판 페리를 넘어서 확고한 주전을 차지하기에 그의 나이는 물론이고 실력도 부족했으나, 이번 경기에서 멋진 활약을 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정확히는 PSG가 울브스를 압도하면서 그에게 날아드는 슈팅이 몇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벌써 전반전의 절반이 지났는데, 두 번의 슈팅을 제외하면 내 쪽으로 슈팅이 하나도 안 날아드는군.’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팀이 이기는 상황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프로로서 어찌 팀이 이기는 게 싫을 수 있을까.
다만, 그는 자신이 멋지게 활약해서 이기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뱉었다.
거기다 울브스가 더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PSG의 선취점이 터지면서 미켈 파레라가 활약할 상황을 그리 많이 나오지 않을 것처럼 경기가 흘러가기 시작했다.
-울브스가 선취점을 내어줍니다.
-세르게이 마르코비치가 연결한 패스를 무라트 카잔키가 너무 쉽게 공을 연결받았습니다.
-이건 울브스의 수비진에서 아무래도 콜 미스가 나온 것 같습니다. 카를로스 디오고 선수와 누룰라 갱스 선수가 순간적으로 움직이던 위치가 겹쳤거든요?
-무라트 카잔키가 올린 크로스가 너무 쉽게 울브스의 중앙으로 연결이 되었고, 중앙에 있던 앤디 수아즈가 헤딩으로 공을 잘 걷어냈지만……. 걷어낸 공이 PSG의 공격형 미드필더인 패트릭 페닝스에게 연결이 되면서 선취점이 터졌습니다.
-울브스의 수비진이 순간적으로 흔들린 것이 너무 아쉬운 장면이었어요.
선취점을 내줬음에도 울브스는 거북이처럼 라인을 내리고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PSG는 그런 울브스를 상대로 기분 좋게 라인을 끌어올리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축구를 보여주었다.
특히나 라인을 높게 끌어올린 PSG의 수비진이 공격에 가담하면서 최종적인 라인에 중앙 수비수인 아딜 슬리버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하프라인을 넘는 기이한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마이크 타이슨 감독은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면서 전술 코치와 뭔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시 강렬한 슈팅!
-오싹한 슈팅이었습니다. 오늘 패트릭 페닝스가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확실히 총 11번의 슈팅 중에서 패트릭 페닝스가 기록한 슈팅이 절반을 좀 넘습니다.
-그리고 울브스는 아직 뭔가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반전이 이제 30분이 지나가고 있는 상황! 오늘 경기에서 울브스가 뭔가를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전반전도 이제 40분에 가까워진 상황.
PSG의 선수들은 이제 완전히 분위기가 올라서 과감한 플레이를 계속해서 보여주기 시작했다.
특히나 수비진의 과감한 공격 가담은 울브스의 수비진이 쉽게 수비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선취점을 내줬음에도 울브스는 차분했다. 그들은 침착하게 위기를 잘 넘겼다.
특히나 최근에 재활을 끝내고 팀에 복귀한 톤 필크만이 보여주는 환상적인 선방은 울브스가 선취점을 내주었음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였다.
거기다 울브스는 아직 역습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저 기회가 오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어지는 PSG의 공격을 위해서 그들의 수비진이 다시금 평소보다 깊게 라인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박규태가 조용히 바라보며 최종 수비수인 아딜 슬리버의 위치를 살폈다.
‘많이도 올라왔네.’
슬슬 하나쯤 역습을 위한 긴 패스가 연결되면 좋을 것 같다고 박규태가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이 울브스가 기어코 PSG의 공격을 막아내고 역습의 기회를 얻었다.
선취점을 넣은 패트릭 페닝스가 무리한 돌파를 시도하다가 울브스의 미드필더인 사이먼 셰데르스트룀에게 공을 빼앗겼다.
사이먼은 아구스틴 퀴논이나 다른 측면 윙 포워드에게 공을 연결하지 않고 바로 최전방으로 공을 때렸다.
-사이먼의 멋진 태클!
-이어지는 긴 패스가 최전방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박규태 선수가 공을 잡았습니다!
-공을 잡기 무섭게 울브스가 날카로운 역습을 시도합니다! 박규태가 공을 잡고 빠르게 달립니다!
아딜 슬리버는 최대한 박규태와 적절한 거리를 두고서 그가 돌파를 시도할 수 없게 앞을 막았다.
하지만 박규태는 거침이 없었다.
화려한 개인기는 아니었지만, 박규태는 침착하게 자신이 잡은 공을 지키며 드리블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조금 급하게 발을 내민 아딜 슬리버를 제치면서 드디어 완벽한 기회를 잡았다.
-뚫었습니다! 박규태 선수가 몸으로 밀고 들어가면서 아딜 슬리버를 제쳤습니다!
-급히 박규태 선수를 따라가는 아딜 슬리버!
‘안 돼!’
순간적으로 몸이 밀린 아딜 슬리버는 자신을 제치고 골대를 향해서 매섭게 달려가는 박규태를 바라봤다.
그리고 급히 손을 뻗어서 박규태의 유니폼을 잡았다. 하지만 아딜 슬리버는 박규태의 질주를 막을 수 없었다.
유니폼을 잡은 상태로 끌려가는 것처럼 아딜 슬리버가 결국에는 눈을 질끈 감고 몸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박규태도 더는 전진하지 못하고 필드에 그대로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삐이이익!
-주심이 카드를 꺼냅니다! 아딜 슬리버가 옐로카드로 위기를 잘 넘겼습니다.
-정말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30M를 달렸어요. 그것도 아딜 슬리버 선수가 손으로 유니폼을 잡아끌었음에도 박규태 선수의 질주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박규태 선수의 유니폼이 살짝 늘어난 것처럼 보이네요. 하지만 귀중한 기회는 계속 이어집니다.
-골대에서 25M 정도 되는 거리에서 프리킥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울브스에는 프리킥을 잘 차는 선수가 많죠? 가스통 렌도나 박규태 선수도 그렇고……. 아구스틴 퀴논 선수도 날카로운 오른발을 갖춘 선수입니다.
소쇼와 울브스의 원정팬들은 옐로카드가 아닌 레드카드를 받을 수 있는 반칙이 아니냐며 화를 냈다.
“지금 장난해? 주심! 레드카드라고! 명백한 득점 기회를 방해했는데 레드카드가 아니라고? 주심! PSG에 돈 받았어?”
“우우우우우! 주심은 김치 소스를 잔뜩 뿌린 민트치킨이나 먹고 죽어라!”
“팍의 유니폼이 늘어진 것 봐! 주심! 저 멍청한 아프로 파마가 우리 김치팍의 유니폼을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그러는 사이에 프리킥 준비가 끝났다.
키커는 박규태였다.
‘후우…….’
직접 노리기에는 각도가 조금 좋지 않은 위치였기에 박규태는 누구에게 공을 연결할지 고민했다.
‘앤디에게 연결하는 게 좋을 것 같군.’
180대 초반의 신장을 가진 앤디 수아즈는 그리 큰 키를 가진 수비수는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준수한 점프력을 갖춘 뛰어난 선수였다.
간간이 좋은 위치에서 헤딩으로 골을 만든 적이 있는 앤디 수아즈라면 분명히 기대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줄 것이다.
삐이익!
주심이 휘슬을 불기 무섭게 박규태가 손을 들고 천천히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박규태! 바아아아악규태애애애애!
-프리킥이 올라갑니다! 앤디 수아즈 선수가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공! 앤디 수아즈와 아딜 슬리버가 높게 뛰어오릅니다!
앤디 수아즈와 아딜 슬리버의 머리에 맞고 불규칙적으로 필드에 떨어진 공에 모두의 시선이 향했다.
하필이면 두 팀의 선수들이 없는 위치였다.
“막아! 몸을 날려서 막아!”
“루즈볼! 공을 잡아!”
모두가 급히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누구보다 먼저 움직인 선수가 있었다. 그는 공이 거기에 떨어질 것을 예측이라도 한 듯이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과감하게 슈팅을 가져갔다.
뻐어어엉!
-누룰라 갱스의 슈우우웃!
-고오오오오오올! 고오오오올! 울브스가 전반 37분에 골을 넣었습니다! 이걸로 점수는 1-1 동점입니다!
-누를라 갱스가 정말로 적절한 상황에서 팀을 살리는 골을 터뜨렸습니다!
-진짜로 울브스가 멋진 역습으로 프리킥 기회를 만들었고, 그 기회를 살려서 골까지 만들었습니다. 시작은 사이먼 선수의 패스에서 시작되었고요.
-맞습니다. 박규태 선수가 정말 멋지게 돌파를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반칙을 얻어내면서 프리킥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프리킥 키커로 정확한 킥 능력을 보여주었고요.
-190㎝의 장신인 누룰라 갱스가 헤딩 경합을 하지 않고 오히려 뒤에 살짝 빠져 있던 것이 오히려 더 좋은 결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골을 넣은 누룰라 갱스가 흥분한 표정으로 중계 카메라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PSG가 말했던 ‘이번 경기에서 주-모우! 세레머니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대신 반박하듯이 소리쳤다.
“주-모우우우우우!”
“주-모우우우우우우우!”
“젠장! 최고야! 최고!”
“오늘 누룰라는 라모스보다 더 대단한 것 같아!”
선수들은 그런 누룰라 갱스의 골을 축하하며 다시금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그렇게 축하를 하고 흩어지는 선수들.
하지만 누룰라 갱스의 흥분은 꽤 길었다.
“커모오오온! 주-모우! 아임 어나더 김치 레벨! 두 유 노 누룰라 갱스? 아임 누룰라 갱스! 커모오오온! 주-모우!”
최대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세레머니에 쏟은 그가 환하게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박규태를 향해서 따봉을 날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팍! 한국 사람들에게 전해! 나는 영원한 너의 도우미라고! 커모오오오온! 주-모우! 커모오오온! 김-치!”
그 모습을 보며 박규태가 진지하게 고민했다.
‘내가 너무 심하게 한류를 전파했나?’
* * *
“아쉬웠다.”
1-1로 전반전이 끝났다.
라커룸으로 들어선 PSG의 선수들은 카를로 마테리 감독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고개 숙일 필요는 없다. 상대의 카운터 펀치가 꽤 강렬했던 것뿐이지. 전반전의 경기 자체는 우리가 훌륭했다.”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울브스는 평소와 다르게 상당히 내려앉았고, 거북이처럼 신나게 얻어맞다가 전반전 막판에 럭키펀치가 터졌다.
카를로 마테리 감독은 그렇게 생각하며 PSG의 선수들을 잘 다독였다. 그는 전술적인 부분에서 고칠 것이 없다고 말을 하며 후반전에도 이렇게만 플레이를 하면 된다고 말했다.
PSG의 선수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 선수들은 부담감을 떨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골키퍼인 미켈 파레라는 달랐다.
그는 주먹을 움켜쥐며 분노했다.
‘멍청하게 당했어!’
그는 이렇게 가다가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다시 벤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지 걱정했다.
‘아니야! 할 수 있어!’
누룰라 갱스의 갑작스러운 슈팅을 제외하면 오늘 그는 울브스의 모든 슈팅을 막아내고 있었다.
‘더 잘해야 해! 스테판을 넘어서 주전 자리를 노리려면 오늘 같은 경기에서 확고한 도장을 찍어야 해!’
자신을 스스로 몰아붙이는 미켈 파레라.
이윽고 하프타임이 끝나고 필드로 향하는 그가 박규태를 강렬하게 노려보며 다짐했다.
‘완벽하게 막아낸다!’
과하게 힘이 들어간 미켈 파레라.
그런 미켈 파레라의 시선을 느낀 박규태가 알 수 없는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국뽕 박규태 선생 #148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