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146 >
마크 게이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가 상상했던 박규태는 이런 괴상망측하면서도 축구까지 잘하는 선수가 아니었다.
그냥 쇼맨쉽이 뛰어난 즐라탄 같은 부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뭐? 코리안 즐라탄? 누가 그런 별명을 붙였는지는 몰라도 그런 별명을 붙인 사람의 가족들 모두가 변비에 걸리기를 기도한다. 저건 코리안 즐라탄이 아니라 코리안 뻐킹 김치데빌이야.’
그가 느끼기에 박규태는 즐라탄+발로텔리를 합친 선수처럼 느껴졌다. 발로텔리처럼 관심종자에 즐라탄처럼 어마어마한 프라이드를 갖추고 있는 선수였다.
탓! 타다다다닷!
이번에도 박규태는 마크 게이의 앞에서 현란한 개인기를 보여주며 에버튼의 수비진을 뒤흔들었다.
에버튼의 미켈 피조 감독이 큰 목소리로 선수들에게 주의하라는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선수들은 쉽사리 박규태를 막을 수 없었다. 기어코 박규태가 전반전 37분에 울브스의 두 번째 득점을 성공시키며 에버튼의 골망을 흔들었다.
-박규태! 대단합니다! 박규태! 에버튼의 심장에 날카로운 비수를 찌른 것처럼 통렬한 슈팅이었습니다!
-미켈 피조 감독이 터치라인에 붙어서 큰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지시하고 있습니다!
-2-0으로 앞서나가는 상황! 경기 전에 인터뷰에서 울브스를 상대로 좋은 성적을 낼 자신이 있다고 밝혔던 마크 게이가 박규태 선수를 상대로 좋은 수비를 보여주고 있지만……. 결국에는 두 번이나 뚫리면서 팀의 실점에 일조했습니다.
‘이 망할 김치 자식!’
중계진이 말한 것처럼 마크 게이는 나쁘지 않은 활약을 하며 박규태의 돌파를 여러 번 저지했다.
‘그러면 뭐하겠어! 딱 두 번을 뚫렸는데……. 그 두 번의 실책이 모두 실점이 되어버렸는데?’
그는 자신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렇게 전반전을 2-0으로 끝낸 울브스는 후반전에 더 매섭게 에버튼의 수비진을 흔들었다.
필드에 선 에버튼의 선수들은 라커룸에서 전반전에 있었던 실수와 관련된 다양한 피드백을 들었다.
하지만 도무지 막을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분명히 에버튼의 수비진은 끈끈했다. 철저하게 수비진을 유지하면서 오프사이드 트랩을 잘 유지했다.
거기다 마크 게이가 박규태에게 뚫릴 것 같으면 옆에 있던 다른 선수들이 도움까지 주었다.
그 덕분에 실점을 면한 순간도 많았다.
적어도 에버튼의 수비진은 살아 있는 생물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울브스의 공격진을 막아냈다.
“에버튼이 이번 경기를 위해서 정말 많은 준비를 했어. 아마도 에버튼이 작년에 하위권에서 흔들리던 것과 다르게 이번 시즌에 리그 6위까지 올라온 원동력도 저런 준비성 덕분이겠지.”
마이크 타이슨 감독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에버튼은 정말 많은 준비를 했다.
가스통 렌도가 크로스를 올리기 전에 오른발로 두어 번 공을 앞으로 살짝 밀어내는 경향을 파악해서 그가 크로스를 올리지 못하도록 밀착 수비를 한 것도 훌륭했다.
엠마누엘 메르시에가 측면을 타고 올라가는 드리블을 시도하기 전에 항상 왼발로 먼저 공을 터치하는 버릇을 이용해서 그가 적극적으로 측면에서 활개 치지 못하게 만들었다.
박규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박규태를 상대로 그가 가진 사소한 버릇까지 활용해서 열심히 수비하고 있었다.
“확실히 후반전은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2점의 리드를 지키는 방식으로 전술을 변경할까요?”
“음…….”
전술 코치의 물음에 마이크 타이슨 감독이 잠깐을 고민하다가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네, 말씀하시죠.”
“에버튼이 팍을 얼마나 조사했을까?”
“음……. 김치를 좋아해서 며칠 전에 빵에 김치를 싸 먹었던 것까지 알고 있지 않을까요?”
“확실히 많이 조사했겠지.”
“…….”
“나도 팍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 하지만 이렇게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난 아직도 팍의 한계를 모르겠단 말이야. 그런데 에버튼의 머저리들이 잘 알고 있을까?”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규태가 마크 게이를 따돌리고 그대로 감각적인 왼발 슈팅을 때려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철썩!
와아아아아아아!
-고오오오오올 박규태! 해트트릭! 시즌 59호 골을 터뜨린 어나더 김치팍입니다!
-정말 쉽게 골을 넣네요! 어떻게 저럴 수 있죠? 진짜 대단합니다! 박규태 선수! 진짜 대단해요!
-에버튼의 수비진이 못한 것도 아니었거든요? 분명히 오늘 경기에서 박규태 선수의 여러 슈팅이 에버튼의 수비진에게 막혀서 좋은 기회가 많이 날아갔거든요?
-맞습니다. 하지만…… 에버튼의 끈적한 수비도 김치 버프를 받은 박규태 선수에게는 이길 수 없었습니다!
후반 17분에 터진 골로 에버튼은 완전히 기세를 잃었다.
그리고 이어진 후반 33분에 울브스의 중앙 미드필더인 도미닉 매든의 멋진 중거리 슈팅이 에버튼의 골망을 가르며 점수를 4점 차이까지 벌리게 되었다.
마크 게이는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고, 에버튼의 미켈 피조 감독은 길게 한숨을 내뱉으며 눈을 감았다.
* * *
[울브스, 에버튼을 상대로 4-0 대승!]
[박규태의 해트트릭! 시즌 60호 골까지 앞으로 단 1골!]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을 앞두고 주전을 아끼면서 기세까지 끌어올린 울브스!]
[고개를 숙인 마크 게이와 ‘주-모우!’를 외치는 박규태! 두 선수의 상반된 모습!]
[울브스 FA컵 결승전 진출! 상대는 누구?]
[울브스의 FA컵 상대는 리그 17위인 브라이튼!]
[5월 12일 FA컵 결승전 일정!]
[울브스의 빠듯한 4월 초 일정! 3월 31일 에버튼을 잡고 4월 4일에 있는 PSG와 경기를 준비해야 해!]
[프랑스 원정을 앞둔 울브스! FA컵에서 1.8군을 기용하면서 주전들의 체력을 아껴서 나쁘지 않은 상황!]
-울브스가 이번 시즌에도 더블은 하겠네.
-진짜 마이크 타이슨 감독도 대단하다. 사이먼 영입을 제외하면 건든 것도 없는데……. 요즘 울브스가 보여주고 있는 경기력을 보면 그냥 감탄만 나온다.
-확실히 울브스가 기세를 탔다.
-와……. 이번 시즌에 있을 최고의 매치가 성사된 거 아니냐? 발롱도르 수상자인 박규태 vs 피파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블라디미르 고메스!
-진짜 신계 대결이네?
-캬……! 기대된다! 이거지! 메날두 시대가 지나고 파블로 로탱이 집권하다가 이제 다시 신계가 양분되는 느낌이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까지의 날두는 실력으로까지 못한다. 하지만 인성은 까야지. 어휴, 극혐 노쇼두!
-누가 골 더 잘 넣을 것 같냐? 난 규태가 3골 넣고 블라디미르 고메스가 2골을 넣을 것 같다.
-원정이라서 PSG가 이기긴 할 것 같은데……. 울브스가 원정에서 몇 점을 넣느냐가 중요하겠지.
FA컵 준결승이 끝나기 무섭게 축구팬들의 시선은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으로 향했다.
특히나 박규태와 함께 신계에 속했다고 평가를 받는 블라디미르 고메스와 맞대결이 성사되면서 많은 축구팬들이 과연 이번 경기에서 누가 더 많은 골을 넣을지 기대하고 있었다.
급히 비행기에 올라서 파리 근처의 호텔을 잡은 울브스는 다음날에 근처에 있는 훈련장을 잡아서 회복훈련과 PSG를 상대하기 위한 훈련을 시작했다.
박규태는 최근에 벤치에만 앉아 있는 메튜 카니에게 다양한 조언을 해주며 그의 프로 생활을 돕고 있었다.
“사람은 말이야. 두 가지의 유형이 있어.”
“두 가지요? 그게 뭔데요?”
“그게 뭐냐고?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지. 이건 정말 중요한 정보야.”
“…….”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을 봐! 매사에 긍정적이고, 항상 웃으며 다니고, 사람들에게 친절하며, 그 누구보다 여유롭고, 그 누구보다 자비로운 사람들이 바로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지.”
“거기에 반쯤 미쳤다는 사실은 안 들어가는 건가요? 솔직히 요즘 팍을 보면 마약을 한 것처럼 보여요.”
“흐흐흐! 김치가 마약처럼 짜릿하지.”
메튜 카니는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처음에는 뭔가 대단한 선수처럼 느껴지던 박규태가 요즘에는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동네 바보형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것을 제외하면 박규태는 그 어떤 선수보다 프로의 귀감이 되는 멋진 선수였다.
“그것보다 걱정이네요.”
“뭐가? 걱정인데?”
“1군 출전을 자주 못 하잖아요.”
“그래서 걱정이야?”
“그렇죠. 선수는 결국에는 경기를 뛰어야 성장하니까요. 제가 팀의 5번째 중앙 수비수여서 선발로 뛰는 경기도 적을뿐더러 솔직히 앤서니나 라스를 제치기에는 아직 힘들다고 생각해요.”
“확실히…… 충분히 할 수 있는 고민이야.”
“아마로 멜로가 풀햄으로 임대를 가서 출전 시간을 보장받으면서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TV로 보니까. 저도 모르게 조급해져요. 그래서 가끔은 내가 1월에 팀을 떠나서 임대로 경험을 쌓아야 했나……? 그런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충분히 할 수 있는 고민이었다.
박규태도 회귀 전에는 치열한 주전 경쟁을 하며 여러 팀을 전전했었으니까.
그는 조용히 생각을 가다듬고 메튜 카니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가 회귀 전에 겪었던 어려움을 다른 선수에게 들은 이야기라는 방식으로 돌려서 잘 설명하자 메튜 카니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박규태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제가 너무 임대를 부정적으로 생각한 것 같네요. 팍은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모르는 게 없네요.”
“내가 모르는 게 없는 이유가 있지.”
“뭔데요?”
그의 말에 박규태가 씩 웃었다. 그러고는 메튜 카니를 보면서 따봉을 내지르며 말했다.
“다 김치와 국뽕 덕분이야! 김치 츄라이! 한식 츄라이! 태극기 츄라이! K-Pop 츄라이이이!”
* * *
파리 생제르맹.
줄여서 PSG는 프랑스 1부 리그인 리그 앙의 황소개구리나 다름이 없는 팀이다.
그들은 2017-18시즌부터 지금까지 10번의 리그 우승을 거머쥐며 진정한 ‘부’가 무엇인지를 맨체스터 시티와 함께 세계에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팀이었다.
그만큼 PSG의 자본력은 물론이고 다양한 인프라는 다른 프랑스 리그 팀들이 넘볼 수 없는 격의 차이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PSG도 가지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바로 ‘빅 이어’를 들어 올리는 것이었다.
다행히 그들은 2020년대 중반에 그들이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결승전에서 리버풀을 만난 그들은 치열한 승부 끝에 3-2라는 스코어로 빅 이어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발롱도르를 위해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 가겠다는 떼를 쓰던 네이마르를 보낸 뒤에 얻어낸 참으로 우승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참 달콤한 우승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뒤로 결승은 물론이고 4강조차 올라가지 못하며 번번이 8강이나 16강에서 탈락했다.
그러는 사이에,
25/26시즌에는 바르셀로나.
26/27시즌에는 레알 마드리드.
27/28시즌에는 첼시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머쥐며 기쁨을 만끽했다.
한동안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못 하자 PSG는 다시금 빅 이어에 목이 마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PSG는 석유 자본을 활용해서 다시금 슈퍼스타들을 프랑스로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그들은 폼이 조금 떨어지기 시작한 파블로 로탱을 맨체스터 시티에 팔면서 부족한 자금을 채웠다.
그리고 바이에른 뮌헨과 레버쿠젠에서 뛰던 윙어인 파울리뉴를 시작으로 아약스에서 37골 21도움을 기록한 환상적인 ‘10번’인 패트릭 페닝스와 바르셀로나의 특급 유망주인 음부사 뎀벨레를 거액을 주고서 데려왔다.
그리고 마지막 퍼즐 조각으로 그들은 맨체스터 시티의 신성이었던 블라디미르 고메스를 영입했다.
그야말로 축구계의 어벤저스였다.
하지만 PSG는 지금까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도달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PSG의 이사진은 팀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진출하지 못하는 이유를 감독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최고의 감독을 데려와!”
그들은 PSG에 어울리는 최고의 감독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레이더망에 걸린 감독이 있었다.
2024년도에 중국 출신의 구단주가 구단을 팔면서 생긴 잡음으로 팀의 분위기가 엉망이던 AC밀란에 부임해서 리그 3연속 우승을 거둔 감독.
매 시즌 리그 20골 이상을 항상 기록하는 에드워드 바이반을 라치오에서 한화 600억 원이라는 헐값에 데려온 감독.
카를로 마테리를 사령탑으로 데려왔다.
그는 이번 시즌에 PSG의 조직력을 잘 끌어올려서 리그는 물론이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PSG의 팬들은 기세가 잔뜩 올랐다.
-그가 우리를 다시 ‘빅 이어’로 이끌 거야!
-울브스에 팍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블라디미르가 있다고! 충분히 해볼 만한 경기야!
-이번 시즌이 아니면 한동안은 우승하기 힘들어!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부진한 지금이 우리 PSG가 우승할 수 있는 최고의 적기야!
-카를로 감독은 명장이야! 그가 PSG에서 보여준 모습을 보면 충분히 기대할 수 있지!
-제발 오랜만에 4강 구경도 해보자!
-울브스? 멍청한 김치스 녀석들을 상대로 PSG의 무서움을 보여주자고! 블라디미르! 해트트릭을 기록해!
PSG는 우승을 원했다. 그렇기에 이번 8강 1차전에서 확실한 승리가 필요했다.
[카를로 마테리 감독, ‘나는 울브스의 김치팍을 막을 완벽한 방법을 찾아냈다.’]
[카를로 마테리 감독, ‘우리는 이번 경기에서 그를 막아내고 팀의 승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카를로 마테리 감독, ‘그는 우리의 홈에서 ’주-모우!‘를 외치지 못할 것이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정말로 많은 준비를 한 PSG.
그들은 인터뷰부터 자신감이 대단했다.
그리고 박규태는 카를로 마테리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서 흥미가 돋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허허! ‘주-모우!’를 못한다고?”
그는 다짐했다.
아무래도 PSG에 제대로 보여줘야 할 것 같았다.
자신의 ‘주-모우!’는 세계 어디에서나 외칠 수 있는 환상적인 세레머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 국뽕 박규태 선생 #146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