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139 >
와아아아아아!
선취점이 들어간 순간 웸블리 스타디움이 진동했다. 울브스팬들이 외치는 함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의 어깨를 부담감과 함께 짓눌렀다.
“아직 할 수 있어!”
맨유의 제라르 트뤼포 감독이 선수들을 잘 다독였다. 그는 아직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집중해! 고작 1점이야!”
“우리가 보여줄 축구를 생각해! 조급함에 우리가 원하는 것을 못하면 경기는 더 힘들어질 거야!”
마이크 타이슨 감독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제라르 트뤼포 감독을 힐긋 보다가 다시 필드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흔들리는 맨유를 상대로 쐐기 골을 넣으려고 날뛰는 울브스의 공격진이 눈에 들어왔다.
“저런 공격진을 데리고 1 대 0으로 이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흐흐흐!”
상반된 두 감독의 모습처럼 전반전이 꽤 많이 흐른 상황에서 주도권을 잡은 쪽은 울브스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선취점을 내준 뒤에 쉽게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나 박규태가 활발하게 상대 수비진의 뒤를 돌아 들어가는 플레이를 여러 번 보여주면서 맨유의 수비진이 평소보다 더 라인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선취점을 가져온 울브스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빠르게 주도권을 잡습니다!
-맨유는 다시 공수의 밸런스를 잡고 천천히 역습을 준비해야 합니다. 지금 수비랑 공격이 따로 놀고 있어요!
-아! 이번에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부정확한 패스가 울브스의 진영에 떨어집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지금 수비는 나쁘지 않게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상하게 공격이 중간에 계속 끊어지고 있다는 점이에요!
-아무래도 이 선수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아! 오스카르 트룰스의 패스 미스!
-울브스가 빛처럼 빠른 역습을 시도합니다! 오스카르 트룰스가 자신의 패스를 커트한 아구스틴 퀴논을 급히 따라붙습니다! 하지만 늦었어요!
-이미 공은 전방으로 나아갑니다!
-박규태!
‘나이스 패스!’
박규태는 아구스틴 퀴논의 패스가 떨어지는 위치에 수비수를 등지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가슴으로 공을 잡고서 쉴 틈이 없이 그래도 뒤를 돌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제길!”
박규태의 자연스러운 드리블에 다니엘레 모레티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급히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유니폼을 잡아당겨도 박규태는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다니엘레 모레티의 힘을 이겨내고 돌파에 성공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니엘레 모레티가 박규태를 상대로 질척거리는 수비를 하는 동안에 나머지 선수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는 점이었다.
삐이이이익!
주심이 어드벤티지를 주며 경기를 계속 진행했다가 다니엘레 모레티의 노골적인 반칙에 결국 휘슬을 불었다.
옐로카드는 아니었지만, 프리킥 찬스가 주어졌다.
다니엘레 모레티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조금 먼 거리에서 얻은 프리킥 기회.
박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35M 정도 되는 거리던가?’
이 정도 거리라면 충분히 프리킥 득점을 노릴 수 있는 위치였다. 거기다 박규태는 시니사 미하일로비치의 프리킥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해볼 만한데?’
위치도 평소에 자주 연습했던 위치였다.
원래 키커였던 아구스틴 퀴논은 박규태의 표정을 보고 피식 웃더니 그대로 그에게 프리킥을 양보했다.
-박규태 선수가 프리킥을 찰 것 같습니다.
-사실 박규태 선수가 프리킥을 정말 잘 차는 선수입니다. 중요한 순간에도 프리킥으로 득점을 많이 올렸고요.
-맞습니다. 기대할 만할 것 같습니다.
“후우…….”
수비벽 너머에 골대의 위치를 생각하며 길게 숨을 내뱉었다. 살짝 감아서 그대로 골대 상단을 노릴 생각이었다.
긴장감이 감도는 필드.
주심이 휘슬을 불었고.
박규태가 손을 들어 올렸다.
삐이이익!
타다다다닷!
공을 향해 매섭게 달려든 박규태가 완벽한 타이밍에 자신의 오른발을 휘둘렀다. 공은 그가 원하는 만큼 휘어서 골대의 상단으로 날아들었다.
-박규태……!
-빡뀨태이에에에!
-고오오오오올! 어마어마한 득점! 박규태의 시즌 48호 고오오오오오올! 리그컵 결승전에서 어나더 김치팍이 기어코 득점을 올리며 우승에 한 발짝 더 다가갑니다!
-진짜 죽여주네요! 정말로 완벽한 프리킥이었습니다. 제대로 감아 찼어요! 공이 그대로 휘어서 골대 상단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맨유의 젊은 골키퍼인 모하메드 헐쇼프가 몸을 날렸지만……. 박규태의 슈팅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울브스의 두 번째 골이 터졌다. 맨유의 선수들은 더욱 처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문제는 아직 전반전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후반전의 남은 시간에 2골을 넣고 더는 실점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스스로 되물은 루이스 너츠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어떻게든 골을 넣으려고 발악을 했지만 울브스의 수비진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대단한 선수들이었다.
특히나 앤디 수아즈의 뛰어난 수비 조율 능력과 필요한 순간에 나오는 멋진 수비는 오늘 경기에서 루이스 너츠를 완벽하게 꽁꽁 묶어버렸다.
주심이 전반전이 끝났음을 알리는 휘슬을 불었다. 두 팀의 선수들은 다양한 표정으로 라커룸으로 향했다. 박규태도 그런 선수의 뒤를 따라 라커룸으로 들어섰다.
* * *
“뻐킹…… 크레이지 김치맨!”
오스카르 트룰스가 격분했다.
그는 오늘 경기에서 5번의 실책을 허용했다. 그리고 당연히 실수의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오스카르! 교체다.”
“…….”
“도미니크! 오스카르의 위치로 들어가서 일단은 부지런하게 움직여줘! 수비형 미드필더인 도미닉 매든이 공격에 가담하지 못하게 강한 압박을 넣어!”
“알겠습니다.”
같은 포지션의 경쟁자인 도미니크 바쟁이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스카르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이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아니엘로 디 카푸아가 뭔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으음……! 울브스의 선수들한테 김치와 관련된 이야기로 시선을 끌면 저렇게 처참하게 당하지는 않겠지?’
후반전에 그를 상대하는 울브스의 오른쪽 측면 수비수에게 김치를 찬양하는 말을 내뱉으면 기회를 얻지 않을까.
아니엘로는 그런 시답지 않는 생각을 하며 하프타임의 모든 시간을 흘려보냈다.
“좋아! 2점 차이지만……. 아직 우리에겐 45분이 남아 있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시간이야. 거기다 너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명문에서 뛰는 선수들이야. 가서 너희가 어떻게 레드 데빌스의 선택을 받았는지 보여줘!”
“yes, sir!”
그렇게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맨유의 선수들이 전반전처럼 굳은 움직임으로 울브스의 맹공을 겨우겨우 막아내기 시작했다.
그나마 새롭게 투입된 도미니크 바쟁이 준수한 탈압박 능력과 패스 능력으로 공을 돌리며 드디어 맨유가 역습하거나 공격을 주도하는 장면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좋았어! 그렇게 천천히 주도권을 가져오는 거야!”
제라르 감독은 조금씩 경기가 풀리자 조금은 환해진 얼굴로 선수들을 잘 다독였다.
그렇지만 리그컵 결승전이라는 긴장감이 문제였다. 특히나 젊은 선수들이 긴장감에 굳은 모습이 많이 나왔다.
반대로 울브스의 선수들은 달랐다.
리그컵 결승전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울브스의 선수들에게 긴장감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경기를 즐기고 있었다.
“주-모우우우우우우!”
“김치팍! 김치팍! 김치김치팍팍!”
“김치! 불고기! 비빔밥!”
팬들이 외치는 괴상한 응원 소리가 웸블리 스타디움을 가득 채웠다. 맨유의 선수들은 중립적인 경기장인 웸블리 스타디움이 이상하게 원정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분위기에 짓눌린 맨유는 후반 11분에 울브스에게 세 번째 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번에도 박규태였다.
그는 가스통 렌도가 올린 크로스에 정확하게 머리를 가져가면서 완벽한 헤딩을 보여주었다.
철썩!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올!
-박규태 선수가 리그컵 결승전에서 시즌 49호 골을 터뜨리면서 이제 시즌 50호 골까지 딱 하나를 남겨놨습니다!
-진짜 완벽한 타이밍에 완벽한 헤딩이었습니다.
-이거죠! 이게 박규태죠!
골을 넣은 박규태가 주먹을 불끈 쥐고서 팬들이 있는 방향으로 빠르게 달렸다.
그리고 슬라이딩을 하면서 크게 소리쳤다.
“슈-퍼! 김-치-슬-램!”
커모오오오오온!
주모우우우우우우!
김치팍! 김치팍! 김치팍!
너무 멋져요! 김치팍!
울브스의 팬들은 당연히 큰 목소리로 환호성을 내지르며 박규태의 시즌 49호 골을 축하해 주었다.
분위기가 완전히 울브스로 넘어가는 득점이었다.
맨유의 선수들은 울브스의 세 번째 골이 들어가자 심리적으로 완전히 몰리면서 주도권을 울브스에게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박규태는 맨유가 흔들리는 것을 놓치지 않고 시즌 49호 골을 넣은 지 5분도 안 돼서 시즌 50호 골을 터뜨렸다.
완벽한 타이밍에서 터진 박규태의 터닝슛이었다.
맨유의 선수들은 박규태가 해트트릭을 기록하자 고개를 푹 숙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어나더파아아아아악!
-대단합니다! 리그컵 결승전에서 박규태 선수가 시즌 50호 골을 기록하면서 해트트릭을 달성합니다!
-진짜 큰 경기에 강한 선수입니다! 리그컵 결승전에서 연습경기처럼 뛰고 있어요!
-이걸로 울브스가 4 대 0으로 앞서나갑니다!
순식간에 4 대 0으로 점수가 벌어졌다.
맨유의 팬들은 아직 시간이 꽤 남아 있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최악의 경기력에 실망한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후반 37분에 맨유에서 득점이 터졌다는 점이었다.
-아! 아니엘로 디 카푸아가 환상적인 드리블 뒤에 멋진 중거리 슛으로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4 대 1로 따라붙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하지만……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순간적으로 패스가 오기 전에 아니엘로가 울브스의 측면으로 파고드는 것을 곽진수 선수가 놓치면서 이렇게 아쉬운 실점 장면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집중하자! 어쩔 수 없는 실점이었어!”
앤디 수아즈는 이번 득점으로 어린 톰 맥기네스가 흔들리지 않게 잘 다독였다.
그리고 박규태는 실책을 범하며 아디엘로에게 돌파를 허용한 곽진수에게 다가가서 다독였다.
“아직 3점 차이가 나니까 걱정하지 말고 남은 시간 동안 자신감 있는 플레이를 보여줘!”
“선배님…… 그게 아니라.”
“왜?”
“저 아니엘로라는 녀석이 이상한 말을 해서 순간적으로 뚫린 거예요. 와……. 진짜 깜짝 놀랐다니까요.”
“뭔데?”
“아니! 갑자기 3년 숙성된 김치랑 갓 만든 김치 중에서 어떤 김치가 라면에 가장 어울리냐고 물어보잖아요.”
“뭐?”
“진짜 그거 때문에 순간적으로 ‘뭐가 더 맛있을까?’라는 생각이 떠올라서 집중력이 떨어졌어요. 덕분에 저 녀석에게 공이 향한 뒤에 반응이 늦고 말았죠.”
“이야……. 저 녀석도 이상한 녀석이구나.”
하지만 박규태는 자신이 내뱉은 말과 다르게 상당히 뿌듯한 표정으로 아니엘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음……! 저 녀석은 아까 건방지게 초밥이 좋다던 녀석과 다르게 근본이 되어 있었네. 하지만 질문이 잘못되었어. 김치는 3년 숙성된 김치가 라면에 훨씬 잘 어울리지.”
박규태는 태연하게 자신이 할 말만 내뱉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곽진수는 그 모습을 보고 뭔가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와……. 이게 진짜 김치팍이구나!”
< 국뽕 박규태 선생 #139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