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135 >
“미친놈 같은 국뽕중독자의 경기를 내가 왜 봐야 하는데? 너 미쳤냐? 내가 국뽕을 얼마나 혐오하는데?”
TV 앞에 앉은 세 명의 친구들.
그중에서 가장 덩치가 작은 청년인 김윤석은 질색하는 표정으로 치킨을 내려놓고는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냥…… 맨유 경기 보면 안 되냐?”
“응, 맹구가 아무리 발악해도 리그 3위.”
“…….”
“팩트로 조지니까 아무 말도 못 하죠?”
“아…… 진짜 짜증 나네.”
“그래서 치킨을 놔두고 나가겠다?”
“너 지금 이 방을 나가면 치킨은 모두 우리가 먹는다. 뼈까지 씹어먹을 거야.”
일어서려던 김윤석을 막는 두 친구.
김윤석은 얼굴을 찌푸리고 자리에 앉았다.
“대신에 다리 하나는 무조건 내 거다.”
곧이어 TV에 중계진의 소개가 나오고 간단한 EPL 상황을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세 사람은 신나게 닭을 뜯으며 오늘 경기에서 어떤 멋진 장면이 나올지 기대하고 있었다.
“진짜 지난 시즌부터 이번 시즌까지 울브스가 폼이 절정이야. 내가 봤을 때 이번 시즌도 우승각이다.”
“그래도 오늘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골키퍼 하나 바뀌었다고 지기라도 할까?”
“야! 네가 축구를 몰라서 그래! 골키퍼가 얼마나 수비진에서 중요한 역할인데?”
세 사람이 티격태격하고 있는 사이에 선수들이 필드에 입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사람은 TV에 나오고 있는 울브스의 선수들이 붉은 머리를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빨간 머리?”
“와……! 9명이 모두 빨간 머리야.”
“진짜 울버햄튼 원더러스가 아니라……. 울버햄튼 김치러스가 어울리는 팀인 것 같다. 어떻게 염색도 김칫국물과 똑같은 색으로 저렇게 머리를 물들였냐?”
-이야! 오늘 울브스의 선수단이 아주 달라졌습니다!
-하하하하! 머리가 꼭 활활 타오르는 불꽃 같습니다. 아니…… 정정하죠. 우리 김치팍의 상징인 김칫국물처럼 붉습니다!
-그리고…… 박규태 선수도 헤어스타일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빡빡머리가 되어서 나타났어요!
-뒤통수에는 ‘톤’이라는 글자를 스크래치로 새겼습니다. 한글로 ‘톤’이 적힌 옆에는 영어로 ‘톤’이 적혀 있네요.
-아! 방금 들어온 소식으로……. 울브스의 선수단이 쇄골을 다친 톤 필크만 선수가 빨리 복귀하기를 기원하면서 그가 좋아하는 색인 붉은색으로 염색을 했다는군요.
-그래서 박규태 선수가 머리를 저렇게 꾸몄군요. 그리고 스크래치로 이름까지 새기고요.
-맞습니다! 하하하! 팬들이 큰 목소리로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톤 필크만 선수가 슈퍼 세이브를 하면 부르는 응원가인 것 같습니다!
톤 필크만의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한 울브스의 홈팬들.
그리고 주심이 곧 휘슬을 불었다.
삐이이익!
경기가 시작되기 무섭게 TV 앞에 앉은 세 사람이 아까와 다르게 더욱 집중해서 경기를 지켜봤다.
“캬……. 근본이 다르구나.”
“저러니 발롱도르를 수상했지.”
“진짜……. 국뽕으로는 깔 수 있어도, 실력으로는 깔 수 없는 게 우리 슈퍼 김치팍이다.”
“무슨 소리야? 그 반대지. 국뽕으로 깔 수 없지만……. 실력으로는 깔 수 있다.”
“봐! 골대를 넘어가는 슈팅을! 오늘 전반전은 빠꾸이태로 시작하네……. 에라이!”
“박가놈아! 또 호난사처럼 때리고 보는 거냐?”
“왜 갑자기 호날두를 걸고 그러냐? 그래도 호날두가 맨유에서 진짜 잘했어.”
“어휴……. 대깨호새끼…….”
“내가 말했잖아 윤석이는 대가리가 깨져도 맨유랑 호날두만 응원할 새끼라고, 맨유에서 뛰었던 선수는 다 좋아할걸?”
“나도 호날두 싫어하거든?”
“그래서 메시vs호날두는?”
“다, 당연히……. 레알 마드리드 시절의 호날두지.”
“쯧쯧. 저 새끼는 나중에 호날두가 같이 탈세하자고 꼬드기면 좋다고 따라갈 녀석이야.”
“아무튼, 오늘 김치팍이 난사를 너무 많이 하네?”
“그래도 골은 넣을 거다. 요즘 폼이 진짜 미쳤으니까. 첼시랑 경기에서 해트트릭한 거 기억 안 나냐? 그게 며칠 전에 펼쳐진 경기였다.”
“며칠 전이 아니라 2주일이나 지난 경기인데?”
말은 그렇게 해도 오늘 박규태의 경기력은 나쁘지 않았다. 아스날의 수비진이 그의 드리블을 저지하지 못했다.
그의 발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순간적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움직임에 아스날의 중앙 수비수인 알란 차우루스가 몸의 균형을 잃었다.
‘저렇게 자연스럽게 드리블의 방향을 전환한다고? 예전에 드리블이 약점이라고 평가받았던 선수 맞아?’
계속해서 질주하던 박규태가 이번에는 반 박자 빠른 타이밍에 아스날의 골대를 노리고 슈팅을 때렸다.
공이 빠르고 날카롭게 골대를 향해 날아갔지만 아쉽게도 그의 슈팅은 아스날의 수문장이자 차세대 브라질 국가대표팀의 수호신이 될 것이라 평가를 받는 마티아스 헨리케의 슈퍼 세이브에 막히고 말았다.
-마티아스! 환상적인 세이브였습니다!
-이건 1골을 넣었다고 봐도 무방한 멋진 선방이었습니다. 오늘 아스날의 수비진이 잘 뚫리지 않고 있습니다.
의외로 잘하고 있었다.
아스날의 수비진은 다른 강팀이 울브스를 어떻게 상대하는지를 보고 잘 배웠다.
중요한 것은 울브스의 선수들이 전방으로 공을 전달할 수 없게 만드는 강한 압박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아스날도 경기 시작과 동시에 강한 압박은 물론이고 상대가 쉽게 전방에 있는 박규태에게 공을 전달하지 못하게 그의 근처에는 항상 2명 이상의 수비수를 배치했다.
전반전에는 그것이 제법 잘 통했다. 0 대 0의 균형이 전반 20분이 흐르는 동안 계속 유지되었으니까.
아니, 확실히 전반전은 아스날이 울브스를 몰아붙였다. 거기다 전반 27분에 기회를 얻었다.
너무나 완벽한 기회였다.
올리 마르테가 연결한 패스를 가레스 인니스가 울브스의 미드필더진을 뚫고 최전방에서 기회를 엿보던 세비 할튼에게 날카로운 스루패스를 연결했다.
그는 이어받은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애송이 골키퍼가 아주 위축되어 있군.’
그는 여유롭게 톰 맥기네스 골키퍼를 심리전으로 속이고 가볍게 로빙슛으로 울브스의 골망을 흔들었다.
-고오오오오올!
-아스날이 울브스를 상대로 선취점을 얻었습니다! 세비 할튼의 깔끔한 마무리이이이이!
-울브스가 모처럼 오랜만에 홈에서 선취점을 허용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모습입니다.
-그렇죠. 홈에서 항상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던 울브스였으니까요. 그리고 톰 맥기네스 골키퍼의 판단도 상당히 아쉬움이 남는 것 같습니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너무 빠르게 앞으로 뛰어들었고, 노련한 세비 할튼이 그런 톰 맥기네스의 키를 넘는 로빙슛으로 골을 넣었습니다.
톰 맥기네스가 눈을 질끈 감았다.
‘최악의 데뷔전이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상황에서 조급함에 선취점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가 한창 자책하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필드에 누워 있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팍…….”
박규태가 풀이 죽은 톰 맥기네스를 보며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환하게 웃어주었다.
“짜샤……. 내가 만회골 넣어줄게! 조금만 기다려라.”
그러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어서 앤디 수아즈와 다른 선수들이 풀이 죽은 톰 맥기네스에게 격려 섞인 조언과 파이팅을 외쳤다.
“톰! 5실점 해도 이기게 해줄게!”
“난 6실점 해도 이기게 해줄게!”
“할 수 있어! 집중하자!”
조용했던 울브스의 홈팬들도 톰 맥기네스의 이름을 외치며 힘을 내라고 응원했다.
“톰! 3실점을 해도 되니까! 자신 있게 플레이해! 난 네 녀석 나이에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셔서 이불에 오줌도 지렸다고! 그 정도 실수는 아무것도 아니야!”
“톰! 김치팍이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 거야!”
“레츠고! 울브스! 레츠고 울브스!”
“부담가지지 마!”
살짝 눈물을 글썽이는 톰 맥기네스.
크게 감동을 한 듯이 보였다.
‘진짜…… 이런 우스운 짓은 하기 싫었는데…….’
톰 맥기네스가 주먹을 불끈 쥐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길게 심호흡을 한 그가 잘 해내겠다는 다짐이 담긴 큰 목소리로 결국에는 마성의 단어를 내질렀다.
“주-모우!”
* * *
-벌써 4번째 슈퍼 세이브으으으으!
-톰!! 톰!! 선취점을 허용한 뒤에 그가 완전히 각성했습니다! 엄청난 반사신경입니다!
-아스날이 선취점을 뽑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점점 힘이 빠지는 느낌이에요!
“저 새끼! 정체가 뭐야?”
아스날의 사무엘 토드 감독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경악에 찬 목소리로 톰 맥기네스를 바라봤다.
톤 필크만과 앤디 수아즈가 조율하던 수비라인이 아니기에 계속해서 뻥 뚫린 듯이 아스날의 공격수들이 일대일 찬스를 여러 번 만들었다.
하지만 선취점을 제외하면 톰 맥기네스의 뒤를 넘어 골망을 흔든 슈팅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주-모우우우우우!”
톰 맥기네스는 동물적인 반사신경으로 몸을 날렸다. 세비 할튼이 방향을 속이고 오른쪽으로 찬 것을 조금 늦게 따라갔는데도 공을 안정적으로 쳐냈다.
와아아아아아아!
선취점을 내어줬을 때의 분위기는 이미 사라졌다. 울브스의 홈팬들은 톰 맥기네스가 최고의 선방을 보여주는 순간마다 광란에 빠진 듯이 반응하고 있었다.
“저 녀석이 저렇게 해주고 있는데……. 우리 공격진이 동점을 만들어주지 못하면 우습게 되겠지?”
가스통 렌도의 말에 박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급해집니다! 아스날!
-네! 급해졌어요! 아스날이 급히 라인을 올리며 강하게 나옵니다! 여기서 기세를 내주면 자신들이 오히려 더 크게 휘둘리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미드필더들이 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합니다. 거기다 상당히 높은 라인까지 압박을 시도합니다!
-세비 할튼에게 연결되는 공! 하지만 앤디 수아즈가 적극적으로 그에게 붙어서 수비합니다!
-순간적으로 내려온 루이스 페레즈가 기어코 세비 할튼의 발에 있던 공을 빼냈습니다!
-세비 할튼이 울브스의 협력 수비에 막혔습니다! 그리고 역습으로 전환하는 울브스!
아구스틴 퀴논에게 연결된 공.
그는 라인을 올린 아스날의 허점을 파고들 준비를 하는 박규태와 빠르게 측면으로 뛰고 있는 가스통 렌도를 확인하고서 길게 공을 찔러넣었다.
-가스통 렌도의 앞에 뚝 떨어지는 공!
-빠릅니다! 그가 공을 운반하면서 빠르게 전진하기 시작합니다. 아스날의 측면이 순간적으로 뚫렸어요!
가스통 렌도는 여유롭게 자신의 앞을 막아선 어린 아스날의 풀백을 보고 노련하게 발을 움직였다.
백업 풀백인 호세 메디아는 그런 가스통 렌도의 발기술에 알까기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와우! 가스통 렌도가 호세 메디아의 가랑이 사이로 공을 빼냈습니다!
-평소에 저런 플레이를 잘 하지 않은 가스통 렌도인데요! 오늘 경기에서는 드리블은 많이 시도하면서 열심히 공을 최전방으로 운반하고 있습니다.
호세 메디아가 급히 가스통 렌도에게 따라붙으며 적극적으로 수비를 시도했지만, 가스통 렌도의 시선은 중앙에 있는 박규태에게 이어진 상황이었다.
그는 아스날의 수비진을 꿰뚫는 패스를 찔렀다. 패스는 대각선으로 가로질러서 중앙으로 향했다.
-중앙으로 연결되는 날카로운 스루패스!
-가운데에는 박규태가 있습니다! 김치팍! 좋은 기회입니다! 완벽한 기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빠르게 치고 나가는 박규태.
이건 꼭 넣으라고 축구의 신이 점지해준 기회였다. 박규태가 아무리 국뽕과 김치에 미친 빡 대가리였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정도로 머저리는 아니었다.
툭!
가볍게 골키퍼를 속이는 페인팅 동작으로 아스날의 골키퍼인 마티아스 헨리케를 속였다.
그는 여유롭게 자신의 오른발을 휘둘렀다.
“안 돼!”
“돼!”
마티아스 헨리케 골키퍼의 비명. 박규태는 그의 비명에 살짝 웃어주고는 그대로 두 팔을 벌리고 어디론가 뛰어갔다.
그는 골이 들어갔음을 눈으로 보지도 않고 확신했다. 그만큼 완벽한 타이밍에 쏜 슈팅이었다.
철썩!
전반전이 거의 끝나가는 상황에서 터진 공에 몰리뉴 스타디움이 크게 울렸다.
환호성이 필드를 뒤덮었다.
-박규태! 전반 40분에 터진 환상적인 동점골!
-이거죠! 이게 어나더 팍입니다! 진짜 멋지게 아스날의 라인을 부수고 잘 파고들었습니다.
-아…… 진짜 절묘한 라인 브레이킹이었습니다. 가스통 렌도가 준 스루패스에 맞춰서 잘 들어갔어요!
-이걸로 점수는 다시 1 대 1 울브스가 전반전 막판에 경기의 흐름을 다시 자신들 쪽으로 가져옵니다!
골을 넣은 박규태는 빠르게 톰 맥기네스가 있는 방향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그에게 가까워지자 두 팔을 십자가처럼 벌리고서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웰컴 투 ‘Ju-Mo’ 월드!"
< 국뽕 박규태 선생 #135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