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뽕 스트라이커 박규태-132화 (132/199)

< 국뽕 박규태 선생 #132 >

생각보다 겨울 이적시장은 조용했다.

울브스에서 유벤투스로 이적한 브란도 사미가 빅사이닝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1월 초의 시장은 상당히 경직되어 있었다.

이유는 이적할 것처럼 보였던 선수들이 1월 초에 재계약을 했기 때문이었다.

“올해 겨울은 유난히 큰 이적이 몇 없을 겁니다. 바이에른 뮌헨이 아스날의 풀백인 조슈아 베르그노만를 영입하려고 쓴 금액이 한화로 약 540억 원에 불과하니까요.”

“그렇군요.”

르르에 콜리쉬의 말을 듣고 박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에 두 사람은 울버햄튼의 외곽에 있는 소아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울브스 구단에서 자주 가는 봉사 활동이 아닌 박규태의 팬클럽인 ‘김치규태교’에서 주도해서 하는 일이었기에 잠깐 두 사람이 시간을 내서 병원을 찾았다.

이미 다양한 인종의 봉사단원들이 기대감이 가득한 얼굴로 아이들에게 건네줄 장난감을 고르고 있었다.

끼이익.

이윽고 박규태가 탄 차량이 멈추고 그가 문을 열고 내리자 ‘김치규태교’의 회원들이 크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꺄아아아악! 김치팍!”

“오빠! 멋져요! 사랑해요!”

“진짜 김치팍이야!”

“형님! 오늘 팬티색은 김치색이겠죠?”

“진짜 김치팍이라니! 난 이제 죽어도 좋아!”

다양한 국가에서 온 팬들이 각자의 언어로 박규태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병원의 창문에는 아이들이 병원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아이들의 눈빛에 기대감이 가득한 것 같았다.

박규태는 우선 봉사 활동에 들어가기 전에 자원봉사자와 그의 팬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한 명씩 사인을 해주었다.

그리고 바로 병원에 들어섰다.

박규태는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 잠깐 비어 있는 방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10년 만에 마지막 시리즈로 돌아온 아동 애니메이션인 ‘김치맨 더 비기닝’의 주인공 ‘총각김치맨’의 코스튬을 입었다.

“음…… 하필이면 총각김치라니…….”

영원히 총각이 될 것 같은 기분에 박규태가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는 한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방을 나설 때의 그는 웃고 있었다.

아이들 앞에서 부정적인 표정을 보여줄 수 없었다. 어린 팬들을 상대로 박규태는 얼마든지 망가질 자신이 있었다.

‘어린 팬들이 날 지지해줄 밑바탕이 될 테니까. 그리고 항상 아이들은 옳은 법이지.’

그렇게 시작된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은 모두가 예상한 것보다 너무나 빨리 흘러가기 시작했다.

고작 1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생각과 다르게 벌써 5시간이 지난 뒤였다.

병원에 있는 아이들 모두에게 선물을 모두 전달해 주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꽤 상쾌했다. 그렇게 마지막 병실을 나오려는데 한 아이가 급히 박규태에게 외쳤다.

“팍! 1월 20일에 있는 첼시와 경기에서 꼭 이겨요!”

“13일에 있는 다음 경기는 풀햄전인데?”

“제 친구가 첼시 팬인데 20일에 있는 경기에서 팍이 1골도 못 넣을 거라고 했어요! 울브스가 이겨서 그 친구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싶어요! 팍 꼭 이겨요!”

아이의 외침에 박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목소리에 큰 확신이 있었다.

“약 잘 먹고 암도 이겨내겠다고 약속한다면 내가 해트트릭을 기록해 줄게.”

“약속할게요! 그러니까 팍도 해트트릭해 주세요!”

“그래, 골을 넣고 ‘주-모우!’도 외쳐줄게!”

아이의 말에 박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1월 13일에 있던 풀햄전에서 2 대 0 승리를 거둔 울브스는 이어진 1월 16일 리그 컵 준결승 2차전에서 토트넘과 승부차기까지 가는 승부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2경기 연속 무승부 이후에 이어진 2경기에서 모두 승리하면서 기세를 끌어올린 울브스의 분위기는 상당히 좋았다.

하지만 언론은 다른 것으로 울브스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박규태가 앞선 두 경기에서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한 것을 보고서 ‘드디어 박규태도 슬럼프가 왔다!’라는 식의 기사를 양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2경기 연속 무득점! 박규태에게 문제가?]

[박규태, 최근 4경기에서 1골 1도움으로 부진! 김치팍이 평소와 다르다!]

[슬럼프에 빠진 박규태! 울브스의 미래는?]

[울브스의 관계자, ‘팍이 최근에 김치를 거부한 적이 있다. 꽤 충격적인 일이었다.’]

-어휴……. 기레기들이 또!

-아닠ㅋㅋㅋ 4경기 1골 1도움이면 준수한 기록인데. ㅋㅋㅋㅋ 겨우 4경기 가지고 슬럼프라고 하네?

-그만큼 김치팍의 위상이 올라간 거지.

-ㅇㅈ한다. 요즘 김치팍이 1경기 1골을 못 넣으면 이상하게 부진 하는 느낌이다. 예전 메시를 보는 느낌임.

-ㅇㅇ 호날두도 그런 느낌이었지.

-왜 여기서 날강두를 넣냐? 너 호동생이지?

-솔직히 호날두랑 박규태가 보여준 경기력을 보면 비슷한 수준이지……. 뭘 그거로 호동생이라고 몰아가냐. 팩트를 이야기하는데 말이야.

-잡아라! 여기에 한국과 김치를 모욕한 호동생이 있다! 뭐? 날강두랑 김치팍이랑 같은 수준이라고?

-응, 느그날두 말년에 벤치딱.

-ㅋㅋㅋㅋㅋ 난 아직도 2019년에 날강두가 보여준 노쇼를 잊을 수 없다. 그 시절에 겪었던 노쇼 때문에 포르투갈은 물론이고 유벤투스를 싫어하게 됨.

-김치팍이 유벤투스를 언제 만날까.

-제발 만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응징해 줬으면 좋겠다.

박규태는 자신을 향한 언론의 의구심에도 딱히 큰 대응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선수는 경기로 증명해야 한다.

그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거기다 박규태의 최근 경기를 보고 물어뜯던 언론이 다른 선수의 이슈를 쫓으면서 잠잠해졌다.

-야! 미쳤다! 진짜 돌았어!

-뭔데? 파비오 실바가 유벤투스로 이적이라도 한데?

-와……. 너 뭐냐? 어케 맞췄누?

-이 새끼 인터뷰 개띠껍게 하더만 기어코 유벤투스로 이적하네……. 난 PSG로 이적할 거로 생각했는데.

-대장 노릇 좋아하는 녀석이라서 PSG 안 간 듯함. 유독 포르투갈 공격수들은 SNS로 입 털고, 구단이랑 마찰을 일으키고, 자기가 최고라는 착각에 빠지는 거냐? 왜 이렇게 예전 그분이랑 닮았지? 그 노쇼하신 강도 말이야.

-아! 아시는구나 날강두!

-ㅋㅋㅋㅋㅋㅋㅋ 날강두 노쇼 한 번으로 10년 동안 오지게 한국에서 욕만 처먹네. ㅋㅋㅋ

-이렇게 욕먹는 거 보면 불로불사도 쌉가능.

[파비오 실바! 유벤투스로 이적!]

[몸값만 한화로 2,800억 원!]

[마르티뇨 레알 회장, ‘예견된 헤어짐이었다. 파비오 실바는 최근 2달 동안 선수단과 마찰이 있었다.’]

[파비오 실바의 SNS 발언 화제! ‘나는 유벤투스에서 어나더 레벨의 선수로 거듭날 것이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이 날 물어뜯어도 난 신경 쓰지 않는다. 예전 르브론 제임스의 말처럼 그들은 금방 그들의 리얼월드로 돌아갈 테니까.’]

[레알 마드리드 팬들의 분노! 파비오 실바의 유니폼을 불태우는 영상이 미튜브에 올라와!]

[마르티뇨 회장, ‘리얼월드? 그럼 내가 파비오 실바에게 직접 리얼월드를 깨닫게 해주겠다.’]

[파비오 실바의 탈세 사건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다!]

[유벤투스의 한 관계자, ‘파비오 실바의 합류로 마지막 퍼즐이 완성되었다.’]

큰 이슈였다. 덕분에 박규태에게 향했던 시선이 모두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향하기 시작했다.

많은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이 파비오 실바의 발언에 격분했다.

“대단한 녀석이야.”

“와……. 난 저 발언을 또 듣게 될 줄 몰랐어!”

“카를로스는 NBA를 즐겨보지?”

“어, 그래서 더 놀랐지.”

라커룸에 들어선 선수들은 며칠 전에 있었던 파비오 실바의 이적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유벤투스가 그러면 이번 시즌에 유력한 챔피언스리그 우승 후보인가?”

“솔직히 PSG랑 바르셀로나도 지난 시즌처럼 막강해서 우습게 볼 수 없지.”

“그것보다 파비오 실바는 왜 레알 마드리드에서 그렇게 불만이었던 거야? 듣기로는 요즘 레알 마드리드 선수단 분위기가 정말로 좋았던 것 같은데…….”

그때였다.

박규태가 라커룸 가운데로 나섰다.

“그 녀석이 ‘아싸’였나 보지.”

이야기를 나누던 선수들이 그를 바라봤다.

“모두 생각해야 할 것이 있어. 지금 우리는 유벤투스와 레알 마드리드를 생각할 필요가 없어. 물론, 파비오 실바와 관련된 이야기도 솔직히 꺼낼 필요가 없지.”

“팍의 말이 맞아.”

“그래, 경기를 앞두고 잡담이 좀 길었지.”

“맞아! 우린 경기를 앞두고 있지. 첼시를 상대로 그런 집중력으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박규태의 날카로운 일침에 선수들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의 말이 틀린 게 없었으니까.

“좋아! 그런 눈빛이야! 상대를 찢어버리겠다는 타오르는 눈빛이라고! 커모오온! 유벤투스가 유력한 우승 후보? 정신 차려! 울버햄튼의 김치 늑대들이 무서워해야 할 팀은 없어!”

그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노력했지? 라커룸에서 잡담하기 위해서? 아니야! 우리를 응원하는 팬들을 위해서! 그리고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기 위해서 아니야?”

선수들의 눈이 타올랐다. 그들은 박규태의 말을 들으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팍의 말이 맞아!”

“커모오오오온 김치팍!”

“레츠고 김치스! 레츠고 울브스!”

“첼시를 상대로 지옥을 보여주자고!”

“그래, 언제 상대할지 모르는 팀을 생각할 필요 없지. 우리는 지금 경기를 앞두고 있으니까!”

“김치팍! 김치팍! 김치팍!”

“주-모우우우우우우우!”

선수들의 눈에 광기가 드러난 순간.

마이크 타이슨 감독이 딱 좋게 끼어들었다.

“가서 멍청한 첼시 녀석들에게 우리 울브스가 어떤 팀인지를 제대로 기억나게 해줘. 오케이?”

“옛 썰! 김치썰!”

“좋아! 가자고! 고! 고! 고! 고!”

잔뜩 기세를 끌어올린 선수들이 라커룸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마이크 타이슨 감독이 씩 웃었다.

“정말 아름다운 팀이야.”

* * *

FA컵 4라운드 첼시전을 앞두고 울브스의 홈인 몰리뉴 스타디움이 관중들로 꽉 들어찼다.

“파비오 실바가 유벤투스로 이적했으니까……. 레알 마드리드가 우리 김치팍을 노리지 않을까?”

“안 돼! 절대로! 김치팍이 없는 울브스는 김치가 없는 맨밥이랑 똑같다고!”

“팍이다! 선수들이 필드로 나왔다!”

“김-치이이이이팍!”

“제에에에엔장! 오늘도 멋진 플레이를 보여줘! 김치팍! 우리를 발할라로 데려가라고!”

팬들이 내지르는 목소리를 들으며 입장한 두 팀의 선수들.

첼시의 공격수인 사이먼 셔틀워스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몰리뉴 스타디움을 쭉 둘러봤다.

지난 시즌에 36경기 8골 3도움을 기록한 그는 이번 시즌에도 11경기 1골을 기록하고 있었다.

첼시의 팬들은 그에게 ‘골 넣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잘하는 공격수’라는 조롱 섞인 별명을 지어주었다.

박규태는 오늘 경기에서도 그가 골을 넣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선수들이 자리를 잡은 것을 확인한 주심이 잠깐 시계를 살피다가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길게 휘슬을 불었다.

삐이이이이익!

박규태는 길게 숨을 내뱉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해트트릭과 주모……! 해트트릭과 주모!”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첼시의 공격수인 사이먼 셔틀워스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도 저 미친 김치팍처럼 한류에 미치면 저렇게 골을 잘 넣을 수 있을까?”

하지만 첼시의 그 어떤 선수도 사이먼 셔틀워스의 혼잣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FA컵 4라운드가 시작되었다.

< 국뽕 박규태 선생 #132 > 끝

ⓒ 엉심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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