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129 >
이건 꿈이었다.
회귀 전 마케팅으로 유명했던 어떤 인물의 강의가 눈앞에 떠오르자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이미지’입니다.
남성은 강연장에서 강연하고 있었다.
그는 잠깐이지만 ‘VTS’의 인기를 넘어선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만든 한 명의 스포츠 스타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사이 영 상을 2번 수상하고 월드시리즈에서 여러 번 우승을 가져간 것으로 VTS를 넘어서는 인지도와 존재감을 가졌다면……. VTS를 넘어선 다양한 슈퍼스타가 한국에서 많이 탄생했을 겁니다.
그는 ‘실력’만으로 ‘넘버원’을 넘어선 ‘온니원’에 도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이미지’가 중요하다며 사람들을 보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이미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아이플이 2020년대 초반에 삼선의 스마트폰 시리즈인 ‘스페이스13’을 넘어서 한국 스마트폰 점유율을 좌지우지할 수 있던 이유!
-그게 ‘이미지’라는 것이죠.
-VTS를 넘어서서 세계에 자신을 알릴 방법……. 그건 ‘이미지’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눈앞에 보이던 남성이 사라졌다. 잠에서 깬 박규태는 방금 꾼 꿈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걸 생각 못 했군.”
그래, 이미지가 중요했다.
최근 박규태의 이미지는 어떠한가.
‘국뽕과 김치에 미친 놈일 뿐이지.’
반대로 VTS는 어떤가.
젠틀한 이미지와 뛰어난 퍼포먼스.
그리고 좋은 인터뷰 스킬로 만들어진 ‘슈퍼스타’의 이미지를 갖추고 있는 최고의 ‘K-Pop스타’였다.
박규태는 방금 꾼 꿈으로 깨달았다.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그래……. 나도 젠틀함과 화려한 퍼포먼스가 필요해. 국뽕과 김치에 미친 이미지로는 매 시즌 발롱도르를 수상해도 앨범을 발매할 때마다 전 세계를 강타하는 VTS를 넘어서기 어렵지.’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지금과 다른 이미지가 필요했다.
“날 꾸며야 한다.”
박규태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제 대세가 될 이미지를 생각했다.
“젠틀함과 스마트한 이미지……! 두 가지만 있다면 VTS를 넘어서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을 거야.”
그는 지금부터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무 거벼운 이미지는 ‘두 유 노 랭킹’을 상승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 이미지가 중요해. 원래라면 Top 3위권에 들어야 할 정도의 인지도인데 아직 5위권도 못 들어간 것을 보면……. 확실히 내 예상이 맞을 거야.’
박규태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두 유 노 클럽’에 가입하기 위해서 신나게 김치와 국뽕에 미친 듯이 집착한 그에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반짝이는 눈으로 달력을 바라본 박규태.
그가 에버튼과 경기가 잡혀 있는 12월 23일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눈이 내리는 차가운 12월임에도 EPL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특히나 축구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12월 26일에 있는 박싱데이는 그야말로 축제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12월 23일.
그러니까. 박싱데이의 바로 전 경기는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서 치러지고 있었다.
맨체스터 시티는 앞선 경기에서 어떻게든 울브스를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강등권에 속한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을 상대로 4-1 대승을 거두며 다시 바짝 1위와 차이를 좁혔다.
그리고 2시간 뒤에 잡힌 울브스와 에버튼의 경기.
에버튼 원정을 온 울브스의 선수들은 라커룸에서 평소와 다르게 고요하게 누군가를 지켜보고 있었다.
“음…….”
마이크 타이슨 감독도 뭔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한쪽에 앉아 있는 누군가를 바라봤다.
“팍? 갑자기 왜 그래?”
테오 나두의 물음에 박규태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우수에 잠긴 것처럼 깊었고, 평소와 다르게 입에서는 ‘김치’, ‘국뽕’, ‘주-모우!’, ‘코리아’ 등등이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알 수 없는 고전 문학에서 나오는 문장을 인용하여 다른 선수들과 대화를 했다.
울브스의 다른 선수들은 박규태의 그런 변화를 보며 상당히 어색해하고 있었다.
“아아……! 세상이 꽃처럼 아름답군. 오늘 난 김치와 한국을 찾지 않을 거다. 오늘 난 스마트팍이자 젠틀팍이야.”
“팍……?”
“누가 팍에게 마약을 풀었지?”
“저거 진짜 팍이야? 갑자기 왜 저래?”
“가짜가 아닐까? 진짜 김치팍은 중국에 납치되고 가짜인 빠꾸이태가 진짜인 척을 하는 거지.”
“세상에……. 팍이 진짜로 돌아버리다니.”
“저게 진짜 광기가 아닐까?”
선수들은 믿을 수 없다며 수군거렸다.
마이크 타이슨 감독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그런 박규태를 바라보다가 선수들을 잘 다독였다.
“오늘 경기 이후에 26일에 있는 레스터 시티와 경기도 생각하면……. 이번 원정은 무조건 이기는 게 좋겠지. 거기다 맨체스터 시티가 제법 무섭게 따라붙고 있으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선수들.
중간에 가끔 ‘주-모우!’나 다른 묘한 감탄사가 튀어나와야 할 타이밍이었지만, 박규태는 아직도 뭔가를 잊을 수 없는 아련한 눈빛으로 조용히 어딘가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이크 타이슨 감독은 평소와 다른 라커룸의 분위기에 뭔가 아쉬움이 느껴졌다.
다행히 다른 선수들의 분위기는 뜨거웠다. 그들이 박규태의 빈자리만큼 채워주고 있었다.
“커모오오오온!”
“주-모우우우우우!”
“레츠고 김치스! 레츠고 울브스!”
그렇게 분위기를 끌어올린 울브스의 선수들. 그들은 라커룸을 나선 뒤에 금방 필드에 입장할 수 있었다.
에버튼의 구디슨 파크는 이미 관중들로 바글바글했다. 그들은 오늘 경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오늘 경기에서 이긴다면 리그 7위인 레스터 시티와 승점 1점 차로 좁힐 좋은 기회였으니까.
팬들이 오늘 경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에버튼의 선수들도 오늘 경기에서 이기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에버튼의 수비진은 뭔가 떨떠름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박규태를 경계했다.
‘저 미친놈이 오늘 왜 이러지?’
‘약이라도 먹었나?’
‘새로운 무엇인가에 눈을 뜬 건 아니겠지?’
부르르.
뭔가 알 수 없는 한기가 느껴졌다.
에버튼의 중앙 수비수인 제이미 틸랑이 자신의 위치로 가기 전에 박규태에게 물었다.
“오늘 왜 그래? 새로운 성 정체성이라도 찾았어?”
“오늘 난 김치팍이 아니야.”
“그럼 뭔데?”
“날 젠틀팍, 또는 스마트팍이라 불러줘. 아아! 구디슨 파크? 정말 아름답군……! 역사와 전통이 느껴지는 좋은 경기장이야.”
“미친놈. 기어이 정신을 놨구나.”
제이미 틸랑이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주심이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을 불었다.
삐이이익!
경기가 시작되기 무섭게 울브스는 원정팀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공격적으로 나섰다.
덕분에 울브스는 경기 초반부터 크게 흔들리며 수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지난 시즌과 다르게 이번 시즌의 에버튼은 수비적인 부분에서 많이 개선되었다는 점이었다.
특히나 수비력이 무르익은 제이미 틸랑과 이번 여름에 분데스리가의 샬케04에서 영입한 유망주인 알버트 에요마가 좋은 호흡을 보여주고 있었다.
덕분에 그들은 작년 리그 16위까지 떨어지며 힘든 강등권 싸움을 했던 것과 다르게 이번 시즌에 다른 팀과 함께 유로파리그 출전권이 있는 7위를 두고 순위싸움을 하고 있었다.
알버트 에요마는 소문으로 듣던 박규태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가 내뱉는 악마의 트레쉬 토크를 조심하라는 다른 수비수들의 조언을 기억해냈다.
‘그런데…… 소문의 그 김치팍이 맞아?’
뭔가 다른 선수처럼 느껴졌다.
박규태는 뭔가 이상한 미소를 지으며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더럽고 거친 몸싸움을 즐긴다는 정보와 다르게 그는 상당히 친절했다.
알버트 에요마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혹시 왕따를 당하는 게 아닐까? 저렇게 친절한 선수가 미친놈이라니……. 분명히 다른 선수들이 저렇게 착한 선수를 근거 없이 비방하는 걸 거야.’
그는 소문이 믿을 게 못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이미 틸랑은 달랐다.
그는 평소보다 훨씬 긴장하고 있었다.
‘저 미친놈이 평소보다 더 이상해!’
그가 알고 있는 박규태는 저렇게 위화감이 드는 선수가 아니었다. 차라리 김치를 무기로 한 트레쉬 토크와 거친 몸싸움을 즐기던 지난 시즌의 박규태가 훨씬 정상처럼 느껴졌다.
‘저건 폭풍전야의 고요함과 같다.’
그는 긴장했다.
베테랑의 감이 그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전반 27분에 선제골이 터졌다.
골의 주인공은 박규태였다.
순간적으로 파고든 그는 평소보다 훨씬 긴장을 많이 한 제이미 틸랑을 제치고 그대로 멋지게 골대 상단을 노렸다.
박규태의 슈팅은 완벽한 슈팅이었다.
그것이 골이 되었다.
그리고 원정석과 중계 카메라를 향해 뛰기 시작하자 모두가 기대하기 시작했다.
“온다! 팍이 온다!”
“커모오오오온! 우린 기다리고 있었어!”
모두가 기대했다.
곧 박규태가 내뱉은 ‘주-모우’를……!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박규태는 중계 카메라를 향해 깔끔한 미소와 윙크를 날렸다.
그리고 팬들에게 손 키스를 날렸다.
박규태는 생각했다.
‘이걸로 스마트함은 모르겠지만……. 내 젠틀함은 드러나겠지. 좋은 이미지 체인징이 될 거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다르게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중계를 보던 네티즌의 반응도 차가웠다.
-와! 김치로 씨게 선 넘네?
-우욱 씹! 우에에에엑
-규태야……. 약 먹었니?
-형…… 왜 그래?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규…… 태님? 갑자기 왜 뇌절을 하시죠?
-형님 그냥 ‘주-모우!’를 외치거나 김치를 찬양해 주세요. 제발 김치규태교의 영원한 유일신으로 돌아와요!
-저 돌아버린 미소와 썩어빠진 윙크를 왜 우리가 봐야 하는데? 제발 그냥 김치나 외치고 한국이나 찬양하라고 김치팍!
-떽! 중국산 좆규이태! 네 이놈! 당장 김치팍의 몸에서 나오지 못할까!
인터넷 댓글의 반응처럼 원정까지 따라온 울브스팬들의 반응도 뭔가 미적지근했다.
박규태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이상함은 좋지 않은 결과로 다가왔다.
-띠링!
-‘두 유 노 랭킹’이 한 단계 떨어졌습니다.
-좋지 않은 반응이 잡혔습니다. ‘두 유 노 랭킹’을 상승시키기 위해서 노력하세요.
“아…….”
박규태가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제야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이번에는…… 골을 넣고 국뽕 세레머니를 가져가 볼까? 젠틀함과 스마트함이 문제였나?’
그가 정색한 표정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버트 에요마는 갑자기 정색하는 그를 보며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아까와 전혀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난 전반전 45분.
경기가 끝나기 몇 초 전에 박규태가 멋진 발리슛으로 쐐기 골을 터뜨렸다.
그리고 관중석으로 달렸다.
박규태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나도…… 젠틀하고 스마트해지고 싶다고.’
하지만 마음과 다르게 박규태가 뭔가 확인하기 위해서 중계 카메라를 보며 소리쳤다.
“주-모우우우우우! 김치찌개 1인분 추가아아아아!”
그러자 시스템은 물론이고 원정까지 찾아온 팬들이 다시 크게 환호하며 반응했다.
-띠링!
-‘두 유 노 랭킹’이 두 단계 상승했습니다.
-좋지 않았던 반응이 사라졌습니다.
-세계에 국뽕을 널리 퍼트리도록 노력하세요.
와아아아아아아아!
김치팍! 김치팍! 김치팍! 김치팍!
주-모우우우우우우우!
아까와 반응이 달랐다.
원정팬들이 괴성을 내질렀다.
그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슬프지만 그에게 주어진 현실은 국뽕과 김치뿐이었다. 그에게 젠틀함과 스마트함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박규태가 눈으로 땀을 흘렸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후반전이 시작되기 무섭게 박규태는 전반전에 억눌려 있던 김치와 국뽕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미친 듯이 알버트 에요마를 괴롭혔다.
알버트는 박규태의 김치러쉬에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전반전과 다르게 후반전에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줬다.
덕분에 그는 후반전이 시작되고 15분 만에 교체로 필드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터덜터덜.
혼이 빠진 얼굴로 벤치에 앉은 알버트가 침을 삼켰다. 그의 눈에 박규태는 김치에 미친 조울증 환자로 보였다.
그는 깨달았다.
소문은 거짓이 아니었다.
상대는 진짜 김치에 미친 녀석이었다. 알버트가 부르르 두려움에 몸을 떨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뻐킹…… 뻐킹 크레이지……. 김치맨……!”
< 국뽕 박규태 선생 #129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