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뽕 스트라이커 박규태-98화 (98/199)

< 국뽕 박규태 선생 #98 >

“무라트 카잔키! 무서운 선수지.”

박규태는 알고 있었다.

비록 많이 만나지는 못했지만, 소쇼에서 뛰던 시절에 PSG의 공격수인 무라트 카잔키는 정말 엄청난 선수였다.

비록 슬럼프와 부상으로 다른 선수에게 주전 자리를 내어주면서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지만, 그는 시즌마다 15-20골을 넣으며 PSG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하지만 상대 못 할 것도 없지.”

물론, 독일은 무라트 카잔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를 제외하고도 선수단의 수준은 대한민국을 월등히 뛰어넘었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탄탄한 팀워크였다.

문제는 올림픽 대표팀이 합을 맞춘 지 그리 오래된 팀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전술을 단순하게 가져가야 한다.

그래야 선수들이 더 쉽고 빠르게 전술적인 움직임을 가져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런 면에서 박명훈 감독이 이끄는 23세 이하 국가대표팀의 주된 전술인 4-4-2 포메이션은 나쁘지 않았다.

특히나 뛰어난 윙어 둘을 갖추고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 마무리를 가져갈 수 있는 공격수를 갖춘 상황이었으니까.

측면으로 직접 찌르는 패스.

그리고 바로 최전방으로 올리는 크로스.

단순한 플레이만큼은 어쩌면 독일을 상대로 통할지 몰랐다. 단순해도 파괴력만큼은 충분할 테니까.

그게 잘 안 먹힌다 싶으면 더러워도 김치를 들먹이면서 상대 수비수를 괴롭히면 어떻게든 되겠지.

박규태가 코를 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원과 수비진이 약점으로 걱정은 되지만, 그래도 엉망진창으로 뚫릴 수준은 아니었기에 충분히 해볼 만한 상황이었다.

‘곽진수도 있고……. 김한솔도 있으니까.’

그래, 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자 긍정적인 기운이 솟았다.

거기다 다른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오늘 투톱 파트너인 고준영을 바라봤다.

197㎝의 큰 장신에 93kg의 몸무게를 갖춘 그는 한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뛰어난 타겟터였다.

올해로 20살에 접어든 그는 전형적인 전통 타겟터로서 K-리그에서 이번 시즌 11골을 넣으며 좋은 인상을 남겼다.

덕분에 이번 올림픽 대표팀에도 수월하게 합류하면서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미국과 경기에서 딱히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아쉬움이 남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박규태는 알고 있었다.

그가 가진 능력이라면 충분히 유럽에서도 먹히리라는 것을 말이다. 일단 압도적인 신장을 갖춘 만큼 다른 선수보다 훨씬 유리한 것은 사실이었다.

‘내가 너무 국뽕을 흡입하고 선수들을 평가했나?’

그래도 좋았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는 것이 패배감이 가득한 것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까. 아니, 훨씬 나은 수준이 아니라 차라리 근거 없는 자신감이 좋은 경기력을 가져올 때도 있었다.

고준영은 긴장에 덜덜 떨었다.

그 강하다는 독일을 상대하니까.

당연히 긴장할 수밖에 없겠지.

“준영아.”

“네, 선배님.”

굵고 차분한 목소리.

고준영의 대답에 박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긴장하지 마.”

“…….”

“독일 별거 아니야! 내가 상대해봤는데! 다 조빱이었어! 조빱! 내가 독일 녀석들 상대로 얼마나 많은 주모와 김치 세레머니를 했는지 기억하지? 그때가 언제냐면…….”

“그 말씀…… 벌써 3223번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랬었나.

박규태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었다.

그가 껄껄 웃으며 고준영의 어깨를 두들겼다. 사실은 아까 코를 판 손가락을 그에게 닦고 있는 것이었다.

“짜식! 오늘 같이 잘해보자!”

“예…….”

뭔가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그렇게 준비가 끝난 대한민국.

선수들이 독일과 경기를 위해 라커룸을 나섰다.

* *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대한민국과 독일! 독일과 대한민국의 올림픽 조별예선 A조 2번째 경기를 중계해드리겠습니다!

-앞선 미국전에서 대승을 거뒀죠?

-맞습니다! 특히나 우리 박규태 선수가 멋진 활약을 보여주면서 미국을 상대로 5 대 1 승리를 가져갔습니다.

-하지만 오늘 경기……. 쉽지 않죠?

-맞습니다. 상대는 전차군단 독일입니다!

-조금씩 세대교체를 하면서 다시금 세계 축구계에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독일을 상대로 대한민국이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예! 맞습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독일을 상대로 승리했던 좋은 기억을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2018년을 기억해! 우리에겐 좋은 기억이 있잖아.”

이강민의 말을 듣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좋은 기억이라.

그런 게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독일을 상대로 대한민국은 제대로 된 승리를 거둔 적이 없었다.

박규태가 조용히 선수들을 바라봤다.

힘든 경기가 될 것이다.

어쩌면 오늘 경기는 물론이고 다음 브라질과 경기에서 질 수도 있었다.

아니, 질 것이 거의 확실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런 선수들의 분위기를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

다행히 팀의 중심인 이강민이 선수들을 잘 다독이며 박규태가 나설 상황을 만들지 않았다.

‘그래도 분위기가 야시꾸리하군.’

차분히 독일의 수비진을 바라본 박규태.

그는 유로파리그 결승에서 붙어봤던 중앙 수비수 만프레드 피츠너를 보면서 경기 초반에 승부를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삐이익!

주심이 휘슬이 불기 무섭게 독일의 선축으로 경기는 시작되었다.

당연히 독일은 자신들의 장점을 잘 내세워 대한민국의 수비진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아!

경기장을 찾은 독일 관중들은 경기 초반부터 대한민국을 크게 흔드는 자국 국가대표팀의 경기력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확실히 경기 초반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대한민국은 쉴 틈 없이 밀려드는 독일이라는 전차에 휘둘렸다.

“오랜만이군. 뻐킹 김치 스컹크!”

유로파리그 결승과 다르게 조금은 차분한 만프레드 피츠너의 인사에 박규태가 만국 공용 인사를 날렸다.

“홀리 김치 뻐큐”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독일의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왔다.

다행히 오늘 중앙 수비수로 선발 출전한 곽진수가 몸을 날려 실점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구해냈다.

-곽진수! 멋진 세이브입니다!

-수비수가 저렇게 몸을 아끼지 않고 수비를 하면……. 다른 선수들의 사기가 오르죠!

동시에 대한민국의 역습이 시작되었다.

중앙에 있는 미드필더 한기환에게 공이 연결되었고, 한기환은 생각할 틈도 없이 바로 오른쪽 측면으로 공을 보냈다.

약속된 플레이였다.

역습을 시도할 때는 중앙에 있는 한기환에게 우선 연결하고 바로 좌측이든 우측이든 측면으로 연결하는 플레이.

그리고 공을 연결받은 두 윙어가 공을 운반하고 바로 크로스를 올려서 박규태는 물론이고 높이가 되는 고준영이 헤딩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전술이었다.

그냥 간단하게 대놓고 높이가 되는 두 공격수를 활용하겠다는 전술이었다.

문제는 독일의 수비진이 정말 단순하면서도 파괴력이 꽤 되는 전술을 쉽게 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너 오늘 데뷔라면서? 얼굴 보니까 잠도 못 자고 다크써클까지 보이는데……. 이러다가 쓰러지는 거 아니냐?”

고준영을 마크하게 된 바이에른 뮌헨 출신의 중앙 수비수인 마르코 아하우스가 독일어로 신나게 입을 털었다.

고준영은 한국말로 조용히 혼자 중얼거렸다.

“김치.”

“뭐라는 거야? 어디 모자라?”

“김치. 태극기.”

고준영의 조용한 대답에 마르코 아하우스는 뭔가 꺼림직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독일어로 말해봐! 멍청아.”

그의 말에 고준영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마르코 아하우스를 바라보더니 독일어로 독설을 내뱉었다.

“내가 독일어를 쓰든 한국말을 쓰든 일단 경기에 집중하는 게 좋을 거야.”

모아이 석상을 닮은 고준영이 무표정하게 대답하자 마르코 아하우스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침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기세에서 밀린 것 같았다.

반대로 만프레드 피츠너와 박규태는 오히려 박규태가 신나게 입을 털며 상대를 괴롭히고 있었다.

“김치와 태극기가 가득한 발할라가 너를 기다리고 있어. 우리 김치규태교에 가입하게 되면 바르기만 해도 암이 낫는 김칫국물을 무상으로 제공할 생각이야.”

“제발……. 그런 사이비는 너 혼자 믿어.”

“김칫국물을 뿌렸더니 고장 난 세탁기가 정상이 되었습니다! 뽕렐루야! 오오오오! 뽕렐루야!”

“그런 물질이 있으면 축구도 잘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래서 잘하잖아.”

“젠장……!”

만프레드 피츠너가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분명히 꼴도보기 싫은 녀석인데, 이상하게 요즘 한국과 김치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자신은 한국을 싫어했다.

특히나 김치와 태극기로 이상한 말은 내뱉는 박규태는 그가 혐한이 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요즘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아아아! 김칫국물을 축구화에 뿌리니 메갓이 되엇어요! 뽕렐루야! 아아아아! 뽕렐루야!”

만프레드 피츠너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박규태를 바라봤다. 이상한 놈이지만 축구 실력인 진짜였다.

말은 많으면서도 집중할 때는 그 어떤 선수보다 빠르게 경기에 녹아들어서 상대 수비수를 곤란하게 만드는 공격수.

거기다 2m 신장에 가까운 까다로운 공격수도 쉽게 볼 수 없기에 그의 눈에는 걱정이 깊게 서리고 있었다.

‘내가 잘 막을 수 있을까?’

과거의 그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생각을 하며 만프레드 피츠너가 박규태의 옆에 바짝 붙어 다시금 시작되는 대한민국의 역습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박규태! 고립되었습니다!

-아! 공을 잘 잡았는데……. 상대의 수비진이 예상을 하고 자리를 잡은 상태였습니다!

그렇다고 쉽게 공을 뺏길 생각은 없었다.

그저 상대가 독일이라고 주눅들 생각은 전혀 없었다.

파악!

만프레드 피츠너에게서 등을 진 박규태가 공을 지키며 측면에서 중앙으로 지원이 오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박규태의 생각을 읽은 이강민이 순간적으로 측면 수비수를 따돌리고 중앙으로 달려들었다.

당연히 박규태는 이강민에게 패스하고서 빠르게 돌아서 독일의 틈으로 달려들었다.

기회였다. 순간적으로 독일의 수비진이 박규태와 이강민에게 흔들렸다.

아마 성인 대표팀이었다면 이렇게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박규태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리턴 패스를 받은 박규태.

그가 이번에는 고준영에게 공을 연결했다.

박규태보다 훨씬 전방에 있던 고준영은 큰 키와 뛰어난 피지컬을 활용해서 상대 수비진을 붕괴시킨 것은 물론이고 결국에는 박규태에게 큰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루즈볼이 된 상황에서 고준영이 몸을 날렸다.

전반 13분에 나온 첫 기회였다.

그는 어떻게든 박규태에게 공을 연결하기 위해서 크게 움직이며 시선을 끌었다.

동시에 독일 수비진의 틈이 보이는 순간.

고준영이 날랐다.

동시에 그가 떨궈준 공을 아크로바틱한 슈팅으로 성공시키며 대한민국이 1 대 0으로 앞서던 나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올!

-대한민국의 박규태 선수가 선취점을 넣었습니다! 이건 개인 능력이 아닌 팀워크로 만든 골이라서 더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걸로 1 대 0으로 대한민국이 앞서나갑니다!

골을 넣고 세레머니를 끝낸 박규태.

그에게 고준영이 다가왔다.

“선배님.”

“그래, 말해봐.”

“저도 선배님이 주신 특별한 김칫국물을 마시면…… 메시처럼 할 수 있는 겁니까?”

“그건 조금 무린데…….”

“그러면 선배님처럼 할 수 있습니까?”

“그 정도면 조금 가능성이 있지. 김치규태교의 김칫국물은 위대한 권능이 있는 최고의 영약이니까.”

박규태의 말에 고준영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뭔가 실마리를 잡았다는 표정이었다.

반대로 박규태는 뭔가 착잡한 표정이었다. 순진한 아이에게 산타의 진실을 숨기는 어른과 같은 느낌이었다.

고준영의 도움으로 골을 넣은 박규태 덕분에 대한민국이 독일을 상대로 1 대 0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 국뽕 박규태 선생 #98 > 끝

ⓒ 엉심킬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