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94 >
축구가 좋았다.
하지만 목숨을 걸 만큼 좋지는 않았다.
예전에 곽진수가 그에게 물었다.
-선배님은 왜 축구를 하며 사람의 관심을 받으려고 합니까? 목숨이라도 걸려 있습니까?
그냥 순수한 물음이었다.
박규태가 왜 그렇게 축구는 물론이고 국뽕을 좋아하는지. 어째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저렇게 악착같이 기행을 남발하는지가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의 물음에 박규태는 대답했다.
-김치가 거기에 있어서!
사실은 목숨이 걸려 있어서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박규태는 본래의 목적을 잊었다. 그는 조금씩 국뽕과 김치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기행, 그 자체를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국뽕태클!”
“크아악!”
예상외로 경기는 울브스가 보여준 경기력과 다르게 선취점을 먼저 넣으며 1 대 0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박규태가 미드필더까지 내려와 수비에 가담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중앙에서 움직이는 선수들이 측면에 가담할 수 없으니까.
다니엘 시몬이 그만큼 대단한 선수라는 뜻이었다.
왼쪽 측면에서 그가 보여주는 플레이는 그저 감탄만 나올 정도로 대단했다.
‘선수들의 활동량을 늘려서라도 도르트문트가 파고드는 오른쪽 측면을 막아야 해. 다니엘 시몬은 우습게 볼 수 없으니까. 그다음에 최전방으로 길게 공을 차서 팍에게 연결해야지.’
마이크 타이슨 감독은 선수들에게 도르트문트의 측면 공격을 막기 위해서 중앙에 있는 선수들에게 오른쪽 측면의 적극적인 수비가담을 지시했다.
“샘! 다니엘 시몬에게 잔디즙을 먹여! 녀석에게 초록색이 주는 공포감을 알려주라고! 오케이!”
경기 초반과 다르게 전반전도 절반이 지나가자 다니엘 시몬은 생각보다 경기가 쉽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유니폼이 군데군데 초록색으로 물들었다.
그는 거친 태클로 자신의 공을 빼앗은 샘 빈치를 보며 이를 꽉 물었다.
‘제길……!’
빼앗은 공은 바로 최전방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박규태가 바로 슈팅을 가져갔다.
뻐어어엉!
-박규태 슈우우우웃!
-아깝습니다! 골대를 크게 벗어나는 슈팅이었습니다.
골과 거리가 먼 슈팅.
박규태가 머쓱한 표정으로 패스를 찔러준 샘 빈치에게 따봉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을 본 한국의 네티즌이 신나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기 시작했다.
-구아아악! 빠쿠이태다!
-빠꾸이태 등장!
-이야……. 얼마 만에 등장한 빠꾸이태지?
-ㅋㅋㅋㅋㅋㅋㅋ 최근에 박규태가 너무 잘해서 내면의 빠꾸이태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역시 중국산의 빠꾸이태와 한국산의 김치팍은 너무나 다르다.
-빠꾸이태!! 사랑해요! 중국으로 귀화해!
-빠꾸이태의 중국 인민 14억명 대절규슛!
박규태의 국적이 순간 다른 나라로 바뀌었다.
전반전도 이제 슬슬 끝을 향해 흘러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늘 향에 익숙해진 도르트문트의 선수들이 다시 집중력을 되찾았지만, 이미 전반전의 분위기를 잡은 팀은 울브스였다.
분명히 팽팽한 경기였다.
도르트문트는 다니엘 시몬을 활용해서 울브스의 오른쪽을 거의 부수다시피 뚫어내고 있었고, 울브스는 반대로 박규태가 직접 도르트문트의 중앙을 뚫고 유효 슈팅을 기록하고 있었다.
도르트문트의 에두아르트 그라이프 감독은 터치라인에 붙어서 선수들을 잘 다독이고 있었다.
그는 풀백이 전해준 말을 듣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 상대가 냄새가 너무 심해서 막기 어렵다고? 젠장! 마늘 냄새가 난다고 뭐라 하면 인종차별로 지랄할 게 분명한데……. 망할 한국놈이 문제군.”
“감독님 어떻게 할까요?”
“예전에 토트넘에서 활약한 쏜도 그렇고……! 한국 녀석들은 이상하게 우리만 만나면 저렇게 날뛰었지. 파슬락! 다니엘에게 더 적극적으로 측면을 공략하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히 전체적인 경기력을 보면 도르트문트가 미세하고 앞서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경기가 풀리지 않았다.
기세가 완전히 울브스에게 넘어간 것이다.
“일단 동점을 잡는다. 그리고 후반전에 대대적인 역습으로 승리를 가져와야겠어.”
감독의 지시대로 도르트문트는 다니엘 시몬이 있는 왼쪽 측면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덕분에 곽진수의 표정도 핼쑥해졌다.
“크윽!”
다니엘 시몬이 보여주는 환상적인 기술들.
이번만큼은 곽진수도 그를 완벽하게 막을 수 없었다. 순간적으로 뚫린 측면을 보며 울브스의 선수들이 다급히 소리쳤다.
“라인을 유지해!”
“다니엘 시몬에게 슈팅을 할 수 있는 각도를 허용하지 마! 그리고 파고들 틈을 만들지 마!”
다급한 선수들의 외침을 무시하고 다니엘 시몬은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계속해서 울브스의 수비진을 흔들었다.
한 명……! 그리고 두 명!
수비수를 조금 더 제친 그가 슈팅을 시도할 기회를 얻었다. 당연히 그는 지체할 것 없이 발을 휘둘렀다.
하지만 축구의 여신은 그에게 웃어주지 않았다.
와아아아아!
-환상적인 세이브!
-톤 필크만이 도르트문트의 슈팅을 막았습니다! 다니엘 시몬이 만든 좋은 기회를 번번이 막아내는 톤 필크만!
-완전 야신이 빙의한 것 같습니다! 여기가 러시아라서 그럴까요? 진짜 야신이 온 것 같은 멋진 활약입니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세이브.
팀을 살리는 멋진 활약이었다.
“도르트문트가 기세를 타지 못하게 만들어! 전반전도 5분밖에 남았어! 정신 바짝 차려!”
마이크 타이슨 감독은 속이 바짝 타는지 딸기 맛 단백질 보충제를 잔뜩 마시며 목을 축였다.
박규태가 주변을 훑었다.
‘우리 팀도 그렇고……. 상대도 기세가 줄었어. 일반적이라면 이렇게 소강상태로 전반전이 끝나겠지만…….’
그는 결코 1 대 0이라는 스코어로 경기를 끝낼 생각이 없었다. 도르트문트라면 분명히 조금만 기세를 타게 되면 1점 차이를 손쉽게 따라잡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
그와 같은 생각을 했을까.
가스통 렌도가 아구스틴 퀴논에게 공을 연결받기 무섭게 도르트문트의 수비진 사이에 있는 박규태에게 공을 연결했다.
‘전반전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겠네.’
공을 달고 달리기 시작한 그를 보면서 도르트문트의 수비진이 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냄새나는 뻐킹 코리안 스컹크!”
풍겨오는 마늘 향과 다르게 박규태의 드리블은 너무나 깔끔하고 치명적이었다.
다니엘 시몬의 드리블이 현란하고 눈에 띈다면, 박규태의 드리블은 상당히 실용적으로 치명적이었다.
촤아아악!
날카로운 상대 수비형 미드필더의 태클도 깔끔하게 피한 박규태가 공을 더 몰고 들어갔다.
그리고 만프레드 피츠너를 앞에 두고서 박규태를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마르세유 턴을 선보이며 경기를 지켜보던 관중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박규태 선수!! 환상적인 마르세유 턴이었습니다! 충분히 슈팅을 가져갈 수 있는 위치까지 왔습니다.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요!!!
도르트문트의 골키퍼가 침을 삼키는 것을 확인한 박규태가 조금 더 과감하게 밀고 들어갔다.
마르세유 턴으로 제친 만프레드 피츠너의 파트너인 누르딘 제루키가 옆에 달라붙었음에도 그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누르딘 제루키를 몸으로 밀어내고 완벽한 슈팅 찬스를 잡았다.
“막아!! 막으라고!”
상대 팀 감독의 절규가 들린다.
개인 기량으로 도르트문트의 수비진을 찍어누른 박규태가 거침없이 슈팅을 가져갔다.
뻐엉!
철썩!
그리고 너무나 간단하게 골을 넣었다.
허탈한 표정으로 골망을 흔든 공을 바라보는 상대 수비진과 머리를 움켜쥐는 도르트문트 팬들의 모습을 보면서 박규태가 묘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고오오오오오올!
-박규태!! 멀티 고오오오오올!
-환상적입니다! 박규태! 정말 오늘 경기에서 엄청난 활약으로 팀의 리드를 이끌고 있습니다!
골을 넣은 박규태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의 표정에는 골을 넣었다는 희열만 남아 있었다.
‘그래……! 이제 국뽕과 기행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어! 난 ’관심종자‘야!’
남은 목숨?
이제 신경 쓰지 않을 거다.
그냥 숨을 쉬듯이 국뽕을 울부짖을 것이다.
박규태의 눈이 광기로 번뜩였다.
살기 위해서 국뽕을 전파했던 박규태는 없었다. 이제 그 반대였다. 박규태는 국뽕을 위해서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핑거 토네이도를 하면서 펄쩍 뛴 박규태.
이제 한국에서는 날강두의 세레머니보다 더 유명해진 박규태의 세레머니가 키로프 스타디움을 뒤흔들었다.
“주-모우우우우우!”
주-모우우우우우우!
전반전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서 내준 쐐기 골.
하지만 에두아르트 그라이프 감독의 눈은 독기가 가득했다. 그는 오늘 경기에서 절대 질 수 없었다.
주심이 전반전의 끝을 알리는 순간.
라커룸으로 향하는 도르트문트의 에두아르트 그라이프 감독이 단단히 화가 난 얼굴로 울브스의 선수단을 바라보았다.
“망할 놈의 김치 트리오.”
도르트문트의 선수들은 전반전에 있었던 감독에게 호소하며 후반전에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마늘 냄새가 심하다고?”
전반전에만 2실점이었다.
절대 2점을 내어줄 수준의 경기력은 아니었다. 도르트문트의 선수들은 충분히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냄새가 너무 심해서 집중력이 깨졌다고?”
“네……! 미치겠습니다.”
선수들이 마늘 냄새 때문에 죽겠다고 말을 들은 에두아르트 그라이프 감독이 자신의 수석코치를 불렀다.
“울브스가 그렇게 나온다면……! 프란츠! 마누엘과 미하일로를 준비시켜! 후반전에 바로 투입할 거야!”
“알겠습니다.”
과감한 승부수를 던진 그가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개싸움으로 가자! 개싸움으로…….!”
에두아르트 그라이프 감독의 눈에 불이 튀었다.
도르트문트의 선수들은 한국에 미친 울브스의 선수들에게 자신의 감독도 오염시켰다며 두려워했다.
* * *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2 대 0으로 앞서나가는 울브스.
도르트문트가 교체카드를 꺼냈다.
생각보다 빠른 승부수에 마이크 타이슨 감독이 놀란 표정으로 도르트문트의 벤치를 바라봤다.
‘무슨 꿍꿍이지?’
오른쪽 윙어와 중앙 미드필더.
두 자리에 새로 들어온 선수가 배치되었다.
후반전이 시작되기 무섭게 울브스는 도르트문트가 어떤 칼을 뽑아 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우선 중앙 미드필더로 투입된 마누엘 비스포가 많은 활동량을 가져가면서 점유율을 조금씩 늘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오른쪽 윙어인 미하일로 라이거티가 왼쪽으로 과하게 투자된 도르트문트의 공격 전개를 중앙까지 이동하며 풀어주기 시작했다.
덕분에 도르트문트는 전반전과 다르게 조금씩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었다.
문제는 두 선수가 투입되면서 바뀐 도르트문트의 분위기만이 아니었다.
“억! 이게 무슨 냄새야?”
앤디 수아즈가 경악했다.
교체로 들어온 오른쪽 윙어의 겨드랑이에서 풍기는 암내가 상상을 초월했다.
울브스의 수비진이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깨질 정도로 굉장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마늘 향을 뚫고 들어오는 암내라니……. 무서운 녀석들!’
박규태도 자신의 앞을 막아선 마누엘 비스포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도르트문트의 교체로 들어온 두 명의 선수.
그들의 겨드랑이에서 풍기는 암내가 대단했다.
지독한 암내만큼이나 두 선수의 실력은 확실했다.
후반전 7분.
드디어 도르트문트가 추격을 시작했다.
골을 넣은 선수는 교체로 들어온 중앙 미드필더인 ‘미하일로 라이거티’였다.
그가 암내가 나는 왼팔을 새처럼 퍼덕이며 오른손으로 골대에 들어간 골을 가지고 하프라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울브스의 앤디 수아즈가 코를 막았다.
“젠장……. 어떻게 저런 냄새가 나지?”
“냄새도 문제지만…… 왼쪽으로밖에 찌르지 못하는 녀석들이 저렇게 좌우로 흔드니까. 더 골치가 아파졌어."
“팍! 이제 어떻게 하지? 우리의 코리안 파워가 들어간 김치 향을 저 녀석들이 암내로 밀어내고 있어.”
“음……. 이렇게 나온다는 건가?”
박규태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도르트문트의 암내 듀오를 바라보며 이를 꽉 물었다. 상대 감독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의외의 복병이었다.
“한국산이 밀린다고?”
“…….”
“아직 신토불이는 끝나지 않았어.”
박규태가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이심전심.
마이크 타이슨 감독이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마르시오를 교체로 준비시키고 있었다.
“우리도 조금 더 연계에 신경쓰면 될거야.”
“마르시오가 들어온다는 뜻은 공격적으로 밀어 붙이겠다는 뜻이네?”
“그래……. 차라리 상대팀의 암내보다 우리팀의 구린내가 더 좋지.”
“집중하자! 다시 점수 차이를 벌리자!”
테오 나두가 나가고 마르시오가 투입되었다.
에두아르트 감독은 자기 생각과 다르게 울브스가 오히려 더 공격적으로 나왔다는 사실에 얼굴을 찌푸렸다.
‘조금은 울브스의 기세가 줄어들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되면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경기는 더 개싸움으로 흘러갈 것이다. 하지만 그가 생각했던 흐름처럼은 경기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개싸움 속에서 마르시오 같이 기술적이고 이성적인 선수는 날카롭게 도르트문트의 틈을 노릴 것이다.
에두아르트 감독은 그것이 걱정이었다.
와아아아아아!
팬들은 그저 멋진 경기력을 보여주는 선수들의 모습에 환호성을 내지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펼쳐지는 치열한 암투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절대 유로파리그 결승전다운 경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치열함은 그 어떤 경기보다 대단했다.
“헤이! 레프리!! 저 녀석 발냄새가 너무 심해!”
“이봐! 그거 상당히 인종차별적인 발언이야!”
“그럼 너희 암내보다 더 심할까?”
“저 녀석이 잡아당긴 유니폼을 보세요!”
“주심! 저 망할 녀석이 절 꼬집었어요!”
“우웩! 이 더러운 녀석이 코딱지를 내 입에 넣었다고! 주심! 옐로카드를 꺼내요! 더러워서 축구를 못하겠네!”
덕분에 주심이 상당히 바쁘게 움직였다.
구두경고로는 끝이 없었다.
덕분에 카드가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점점 개싸움으로 변하기 시작한 경기.
벤치에 앉아서 경기를 지켜보던 엠마누엘이 뭔가 복잡하고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명예가 질식해서 죽었네.”
< 국뽕 박규태 선생 #94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