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91 >
“방송이 장난이야?”
꽤 오래전의 이야기였다.
박규태가 활약한 경기가 끝나고 나서 PD는 스포츠국 국장에게 불려서 핀잔을 먹었다.
“죄송합니다.”
“뭐? 김치팍? 어나더팍? 국뽕팍?”
“…….”
“축구 중계가 애들 장난이냐고! 어! 나중에는 웃통을 벗고 환상의 똥꼬쇼라도 하겠다? 응?”
“죄송합니다.”
“경위서 쓸 각오해. 알겠어?”
“넵, 죄송합니다.”
“거기다 중계 아나운서라는 녀석도 그렇고……! 해설진도 약이라도 먹은 거야? 왜 그렇게 날뛰어! 어?”
“죄송합니다.”
중계를 책임졌던 PD는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때였다.
‘벌컥!’하고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국장실로 들어섰다.
“응? 부사장님이 여긴 어찌 오셨습니까?”
“하하하! 김만필이! 이번에 중계 끝내줬어!”
“네? 중계가 끝내줬다뇨?”
“우리 박규태 선수가 뛰었던 경기! 시청자들이 중계가 아주 활어처럼 살아 있다고 좋아하잖아. 덕분에 우리 방송국 미튜브 채널도 이슈가 되어서 조회수는 물론이고 구독자도 많이 늘었어!”
“아…… 그렇습니까?”
“하하하! 장난이 아니라니까? 캬! 진짜 내가 스포츠국 덕분에 요즘 살맛 난다! 살맛 나! 덕분에 요즘 우리 케이블 스포츠 채널 유료 채널 정기 구매자도 많이 늘었어!”
“감사합니다!”
스포츠국 국장이 살짝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사장은 그런 국장의 어깨를 두들기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중계는 이런 화끈함이 있어야지! 그래야 보는 맛이 살아나는 것 아니겠어? 반응이 진짜 좋으니까. 이렇게만 하자! 내가 어느 정도 커버해 줄 테니까. 알겠지?”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싱글벙글 웃으며 스포츠국 국장실을 빠져나간 부사장의 뒷모습을 보던 김만필 국장이 방금까지 핀잔을 주던 PD를 보더니 민망한 표정으로 그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다음에는 중계진에게 김치 만세라도 시켜봐.”
* * *
-김치이이이! 마아아아안세에에에에!!!
-박규태의 환상적인 선취골이었습니다! 이걸로 울브스는 조금 편하게 경기를 운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반대로 맨체스터 시티는 꽤 큰 부담감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승리가 필요한 맨체스터 시티와 반대로 울브스는 승리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무승부를 기록해서 승점 1점만 얻어도 우승이 확정되니까요.
울브스의 풀백들이 상당히 터프하게 맨체스터 시티의 윙어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힘들겠어. 오른쪽 풀백인 곽은 문제가 없지만……! 파블로 로탱을 마크하고 있는 카를로스 디오고는 벌써 두 번이나 그를 쉽게 놓치고 말았지.’
마이크 타이슨 감독은 후반전에 가장 먼저 카를로스 디오고를 빼고 퀴라시 아메드를 투입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카를로스 디오고가 훌륭한 풀백이지만, 파블로 로탱을 막기에는 조금 역부족인 부분이 있었다.
거기다 평소보다 활동량을 많이 가져가고 있는 카를로스 디오고가 지치기 시작하면 울브스의 왼쪽은 맨체스터 시티의 파블로 로탱에게 유린당할 것이 분명했다.
“어차피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단이 주전과 로테이션의 차이가 별로 없다고 해도 중원의 다미안 페르난데스와 알테로 코바치치는 로테이션급 선수야! 우리가 그 부분을 공략하면 결국에는 맨체스터 시티도 물러날 수밖에 없어!”
마이크 타이슨 감독은 오랜만에 공중에 주먹을 휘두르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부웅! 부웅! 부웅!
이것은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주먹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다.
그것을 증명하듯이 마이크 타이슨 감독의 주먹이 허공을 휘두를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근처의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울브스의 선수들이 더욱 창백한 표정으로 이를 꽉 물고서는 강하게 맨체스터 시티의 중원을 압박했다.
‘저 괴물에게 맞아서 죽는 것보다 필드에서 쓰러져서 죽는 게 더 마음에 편할 거야.’
덕분에 맨체스터 시티는 아까처럼 정밀한 패스를 쉽게 측면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파블로 로탱에게 공이 연결되면 맨체스터 시티의 날카로운 측면 공격이 이어졌다.
-파블로 로탱이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그의 뒤를 봐주는 맨체스터 시티의 알루데 칼로치아!
-알루데 칼로치아가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리며 중앙으로 파고들던 알테로 코바치치의 머리를 노립니다!
-조금 먼 거리에서 헤더어어어!
-톰 필크만의 환상적인 선방!
-오늘 울브스의 톰 필크만 골키퍼가 팀을 두 번이나 살리는 환상적인 선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파블로 로탱을 시작으로 풀백인 알루데 칼로치아까지 공격적으로 울브스의 왼쪽 측면을 흔들었다.
덕분에 카를로스 디오고는 물론이고 왼쪽의 날개 공격수인 가스통 렌도도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지 못하고 있었다.
맨체스터 시티의 빡빡이 감독 계보를 잇고 있는 필리페 아리에타 감독이 터치라인에 바짝 붙어서 소리쳤다.
“다미안 더 높게 올라와! 그리고 측면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은 굳이 경기장을 넓게 쓸 필요가 없어! 필요하면 중앙지향적인 플레이로 상대를 뚫어! 개인 기술을 마음껏 뽐내라고!”
원형탈모를 겪고 있는 필리페 아리에타 감독의 말에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이 움직였다.
“쯧……. 너희 감독이 원형탈모만 아니었어도 내가 벌써 3골을 넣었을 거야.”
“이제 귀에서 피가 나올 것 같아. 그러니까 뻐킹 코리안! 제발 조용히 해!”
폴 드림스틱을 괴롭히던 박규태가 공을 잡기 무섭게 그가 거친 태클로 울브스의 공격을 끊었다.
“위험하잖아! 너 그러다가 김치 발할라에 못 갈지도 몰라……! 내가 믿는 종교에서는 착한 사람은 김치 발할라로 떠나고, 나쁜 녀석들은 방사능 스시가 넘치는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거든!”
박규태의 항의에 폴 드림스틱이 이를 꽉 물었다.
그리고 철저하게 무시하기 시작했다.
반칙으로 잠깐 경기의 흐름이 끊긴 상황.
맨체스터 시티의 필리페 아리에타 감독이 급히 메모장에 전술 지시를 적어서는 풀백인 크리스 프롬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그 지시는 파블로 로탱의 귀에도 전달이 되었다. 그는 필리페 아리에타 감독의 지시를 듣고 미소지었다.
그의 치명적인 미소를 본 박규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폴 드림스틱에게 물었다.
“저 친구는 김치 좋아해?”
“X 먹어, 김치 변태 자식아.”
* * *
필리페 아리에타 감독의 지시는 적절했다.
별다를 것이 없는 지시였다.
그저 파블로 로탱에게 프리롤을 허용한 것이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그 지시는 최고의 선택이 되었다.
전반전이 끝나가는 시간까지 많은 활동량을 가져가며 틈을 보이지 않았던 울브스의 수비가 결국에는 뚫리고 말았으니까.
아름다우면서 치명적인 드리블이었다.
파블로 로탱이 보여준 측면 돌파에서 네이마르도 보였고, 에당 아자르도 보였으며,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도 보였다.
-고오오올!
-파블로 로탱의 반대편 측면에 있던 제레미 도슨이 중앙으로 날카롭게 파고들면서 순식간에 골을 넣어버렸습니다!
-전반전 막판에 맨체스터 시티가 기어코 동점을 만들면서 다시금 희망의 불씨를 키웠습니다!
-파블로 로탱의 깔끔한 도움이었습니다! 거의 홀로 3명의 선수를 제치고 만든 골입니다! 이게 진짜 0.9골입니다! 파블로 로탱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박규태가 선취점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에티하드 스타디움에 알렸다면, 파블로 로탱은 다시 동점으로 따라붙는 환상적인 도움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렇게 전반전이 끝나고 이어진 하프 타임에서 마이크 타이슨 감독은 일찍 교체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반전에 상당히 많이 뛰면서 체력을 소비한 카를로스 디오고와 샘 빈치를 빼고, 체력적으로 여유가 되는 아르사네 디예와 퀴라시 아메드를 투입했다.
“후반전에도 똑같이 갈 거야! 우리는 차분하게 수비를 하고, 상대의 중원이 공을 잡으면 압박하고, 역습을 시도할 때는 간결하고, 마무리는 김치처럼 끝내주게 만들어야 해. 알겠지?”
마이크 타이슨 감독의 마지막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울브스의 선수들이 다시 필드에 입장했다.
자신의 자리로 향하던 박규태는 맨체스터 시티의 중심인 파블로 로탱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치즈 케이크에 김치를 올려 먹어봤어?”
순간적으로 그의 감각이 말했다.
파블로 로탱도 만만찮은 또라이라고.
‘그래, 회귀 전에도 대단한 녀석이었지.’
그는 ‘파인애플 피자’를 시작으로 ‘민트 두리안 치킨’이라는 희대의 명작을 만들었고, 취두부와 라따뚜이를 섞어 먹었으며, 고추냉이와 초콜릿 우유를 섞어 먹기도 했다.
파블로 로탱은 회귀 전의 삶에서 다양한 괴식으로 많은 축구팬을 경악하게 만들었던 ‘괴식가’였다.
“나중에 관심이 생긴다면 내가 운영하는 요리 채널을 한번 봐줘! 내가 김치와 관련된 요리도 많이 했거든.”
그 말을 남기고 자신의 자리로 향한 파블로 로탱.
박규태는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카를로스 디오고가 전반전에 정신적으로 크게 지친 것처럼 보인 이유를 말이다.
파블로 로탱은 박규태와 비슷한 선수였다.
덕분에 박규태가 조금은 자신을 돌아보았다.
‘날 상대하는 수비수의 마음을 알 것 같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박규태에게 다가온 가스통 렌도. 그가 멀어지는 파블로 로탱을 보며 말했다.
“저 녀석……. 너처럼 우리 수비수를 괴롭히는데…… 후반전에 잘 막아낼 수 있을까?”
“음…….”
“카를로스가 교체되던 순간에 지었던 표정 봤어? 무슨 40년 복역을 끝낸 죄수처럼 환한 미소를 지었잖아.”
“그렇지.”
“위험한 거 아니야?”
하지만 박규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가스통 랜도를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파블로 로탱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퀴라시 아메드를 바라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양쪽 풀백도 장난 아닌 녀석들이니까.”
그의 말처럼 퀴라시 아메드는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파블로 로탱에게 물었다.
“두 유 노 민트김치?”
* * *
치열했다.
파블로 로탱이 환상적인 드리블로 수비수를 제치고 슈팅을 시도하면 박규태가 환상적인 헤딩으로 응수했다.
‘일진!일퇴!’
‘장군!멍군!’
‘김치!된장!’의 치열한 승부.
후반전이 깊어질수록 박규태와 파블로 로탱.
두 선수의 움직임에 두 팀의 수비진이 바짝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수비에 집중했다.
두 선수의 대결은 과거 메시와 호날두의 대결처럼 뭔가 빛이 나는 것처럼 보였다.
당연히 메시는 자신이고.
호날두는 파블로 로탱이다.
박규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찌 내가 날강두가 될 수 있겠어?’
그리고 두 선수의 승패가 갈린 것은 후반 39분이었다. 시작은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이었다.
파블로 로탱이 자신에게 연결된 공을 가지고 퀴라시 아메드를 제쳤다.
아랍어를 내뱉은 그는 거침없이 중앙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파블로 로탱만 주의할 수 없었다.
농구에서 자주 나오는 컷인 플레이를 하는 것처럼 페널티 에어리어로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수들이 파고들었으니까.
위기였다.
하지만 위기와 동시에 기회가 찾아왔다.
파블로 로탱의 슈팅이 날아왔고.
톤 필크만이 공을 막아냈다.
그리고 튀어나온 공은 조용히 역습을 준비하던 아구스틴 퀴논의 발에 딱 떨어졌다.
-어! 위험합니다! 맨체스터 시티!
-울브스가 기회를 잡았습니다! 환상적인 펀칭이 그대로 역습으로 전환됩니다! 빠르게 달려나가는 울브스의 선수들! 여유가 있는 선수들이 모두 올라갑니다!
뻐엉!
길게 이어지는 패스.
최전방에 자리를 잡은 박규태가 공을 잡고 수비를 등졌다.
공을 지킨 박규태가 거침없이 공격적으로 올라온 왼쪽 풀백인 퀴라시 아메드를 확인했다.
무엇에 홀린 듯이 박규태가 그에게 패스를 찔렀다.
조금은 강하게 연결됐음에도 퀴라시 아메드는 가볍게 공을 잡아냈다.
조금은 먼 거리였다.
슈팅하기에 무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퀴라시 아메드의 눈은 골대로 향했다.
뻐어엉!
상당한 거리에서 터진 중거리 슛.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공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공은 맨체스터 시티의 파파 바쿠얀 골키퍼의 손을 스치고 그대로 골망을 뒤흔들었다.
와아아아아!
에티하드 스타디움을 찾은 울브스의 홈팬들이 외친 함성이 경기장을 크게 울렸다.
동시에 골을 넣은 퀴라시 아메드가 관중석을 향해 슬라이딩하면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앗살라말라이쿰!”
최근에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미튜버의 유행어를 내뱉은 그가 기쁨에 넘치는 표정으로 다른 선수들과 함께 골을 넣은 기쁨을 나누었다.
반대로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표정을 굳혔다.
어떻게든 오늘 경기에서 이겨야 했다.
그래야만 울브스를 제치고 우승할 희망이 생기니까. 그들에게 방금의 실점은 너무 뼈아팠다.
그들은 남은 시간에 울브스를 두들겼다.
어떻게든 2 대 1을 3 대 2로 바꾸기 위해서 파블로 로탱은 물론이고 교체되어 들어선 엘리아 예프스와 알리페 라이올라까지 공격적으로 높게 라인을 형성했다.
하지만 단단히 수비하려고 내려앉은 울브스를 뚫기에 남은 시간은 너무나 부족했다.
삐익! 삐이익! 삐익!
경기가 끝나는 휘슬이 들려오자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들이 필드에 주저앉았다.
에티하드 스타디움이 비통함으로 가득했다.
반대로 울브스의 선수들은 리그 우승을 만끽하면서 그 자리에서 펄쩍 뛰고 좋아했다.
한국의 중계진도 흥분한 목소리로 울브스의 EPL 우승을 한국의 축구팬들에게 알렸다.
-김치팍! 김치팍이 울브스를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우승이라고오오오오오! 우리가 번개를 갈랐어어어어! 번개를 가르고 우승을 했다고! 박규태가 우승했습니다!! 울브스!!! EPL 우승입니다!
-대단합니다! 어메이징합니다! 정말 가슴이 울컥합니다! 먼 타국에서 우리 박규태 선수가 얼마나 고생을 했겠습니까? 정말 대단합니다! 오늘 경기 1골 1도움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신나게 ‘뇌절’하는 중계진들.
에티하드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맨체스터 시티의 홈팬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힘 빠진 박수를 보냈다.
박규태는 흥분한 표정으로 울브스의 원정석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가 웃통을 벗고 소리를 질렀다.
“주-모우우우우우! 여기 김치! 발할라아아아아! 티켓 하나 추가요! 내 몸을 수정과로 적셔어어어!!”
어떻게 가져왔는지 모르는 한국의 전통적인 음료가 박규태의 몸을 적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에티하드 스타디움의 경기장 관리자가 길게 한숨을 내뱉으며 울먹였다.
< 국뽕 박규태 선생 #91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