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77 >
겨울 이적 시장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특히나 EPL은 1위와 승점 차이가 거의 없는 최상위권 4팀과 마찬가지로 7위와 승점 차이가 거의 없는 중위권 4팀이 경쟁을 하듯이 돈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당연히 토트넘이었다. 토트넘은 나폴리에서 멋진 활약을 보여준 브라질 출신의 윙 포워드인 라우코의 영입을 노렸다.
본명은 마누엘 피델보 두스산토스 바르보사.
그는 브라질의 2부 리그인 CTB.
코리티바 풋볼 클럽에서 57경기 50골 21도움으로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며 나폴리로 이적했다.
그의 유니폼에 새겨진 ‘라우코’는 별명이었는데, 미치광이라는 의미의 ‘Um louco’에서 따온 별명이었다.
공을 잡았을 때, 확실히 그는 미치광이처럼 상대 팀의 측면을 허물어트리고는 했으니까.
라우코는 나폴리에서 긴 시즌을 소화하면서 발전했다. 브라질 2부 리그에서 보여주었던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매 시즌 두 자릿수 득점과 뛰어난 돌파 능력으로 나폴리의 왼쪽 측면에서 없어서는 안될 선수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번 시즌 겨울에 그는 EPL 진출을 노리고 토트넘으로 이적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짠돌이처럼 돈을 아끼던 토트넘도 리그 우승의 가능성이 보이자 이번에 큰 투자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맨체스터 시티는 미래를 위해서 AS 모나코의 17살 먹은 오른쪽 측면 수비수를 영입했다.
그들은 이번 시즌에 큰 영입이 없이 우승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울브스도 비슷했다.
큰 영입은 없었다.
오히려 백업 선수들 몇몇을 다른 팀으로 이적시키고 비어 있는 스쿼드를 채우는 수준의 영입을 보여주었다.
리그 4위인 리버풀도 큰 영입 없이 젊은 유망주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반대로 맨유가 지키고 있는 7위를 노리는 4팀은 달랐다.
8위 스완지 시티.
9위 풀햄.
10위 웨스트햄.
11위 사우스햄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붙잡고 있는 7위 자리와 승점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그들은 후반기에 반등하기 위한 폭풍 영입을 시작하였다.
우선은 사우스햄튼은 박규태의 백업 공격수인 대니얼 켈버트의 영입에 열을 올렸다. 그들은 울브스에게 한화로 약 550억의 몸값을 내고 영입할 의향을 드러냈다.
10위인 웨스트햄은 레알 마드리드의 세 번째 골키퍼인 치쿠우 음벤게를 한화로 약 60억 원으로 데려왔다.
주전 골키퍼인 파비오 블랑코의 폼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기에 나쁘지 않은 영입이라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의외로 리그 9위인 풀햄은 조용했다.
그들은 지금 가지고 있는 전력이라면 충분히 7위에 도달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는듯했다.
스완지 시티는 다양한 선수에게 러브콜을 보냈지만, 아쉽게도 그들의 이적 제안에 승낙한 선수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대망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레알 마드리드의 중원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다미안 세바요스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당연히 언론은 이 소식을 기사로 퍼 날랐다.
[맨유, 다미안 세바요스에게 이적 제의!]
[다미안 세바요스의 주급은 한화로 약 2억 원 예상!]
[레알 마드리드, 다미안 세바요스를 잡을 생각이 없어!]
[보스만 룰로 몸값이 필요없는 다미안 세바요스!]
[첼시, 울브스, 토트넘도 몸값을 지급할 필요가 없는 다미안 세바요스 영입에 박차를 가하다!]
보스만 룰 덕분에 레알 마드리드에 거액의 이적 자금을 지급할 필요 없기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물론이고 다양한 팀에서 다미안 세바요스에게 영입 제안을 날렸다.
울브스도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울브스의 선수 중에서 대륙 컵 대회의 경험이 있는 선수가 앤디 수아즈, 누룰라 갱스, 아구스틴 퀴논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경험이 풍부한 서른한 살의 미드필더.
다미안 세바요스의 영입은 현재 울브스의 선수단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했다.
다미안 세바요스의 영입으로 바쁜 울브스의 수뇌부처럼 스태프들도 조금씩 지쳐가는 선수들의 체력을 관리하기 위해 여러 고민을 하고 있었다.
“루이스 페레즈가 칠레 올림픽 대표팀에 차출이 되어서 1월 22일까지 빠질 것 같습니다.”
“도미닉이 그 자리를 대체하면 되겠지.”
“칠레 올림픽 대표팀에서 돌아온 루이스는 언제까지 휴식을 줄까요?”
“1월 25일에 있을 레스터 시티와 경기까지는 휴식을 주고, 1월 29일에 있을 토트넘전에 출전할 수 있게 준비하지.”
"테러로 일정이 바뀐 유로파리그 32강 1차전은 어떻게 할까요?"
"일정이 너무 타이트하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특히 측면 자원의 체력 고갈이 너무 심합니다."
구단의 피지컬 트레이너와 이야기를 나눈 마이크 타이슨 감독이 이번에는 마크 캠벨 수석코치에게 물었다.
“파비오 델파우리는 어떻습니까? 그 친구 지난 시즌에도 이때쯤에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던데요.”
“당연히 이번에도 피로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번 첼시전을 시작으로 많은 활동량을 소화한 그에게 한계가 찾아온 것 같습니다. 다음 경기에서 그를 빼는 것은 어떨까요?”
“음…….”
“이번에 영입한 꽉도 시험해볼 겸 파비오에게 한 경기 휴식을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친구 오른쪽 측면도 볼 수 있다고 했던가요? 어떻습니까? 오른쪽 측면으로 뛰기에 괜찮습니까?”
“나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갓 이적했음에도 적응력이 상당히 뛰어난 선수입니다. 거기다 연습 경기에서 보여준 움직임도 좋았죠. 특히나 플레이에 있어서 두려움이 없습니다. 감독님이 제일 좋아할 스타일의 수비수죠.”
“흐흐흐. 화끈한 친구로군요?”
“맞습니다. 조금만 가다듬으면 충분히 측면 수비수로도 활용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최근 경기에서 활동량이 많았던 파비오 델파우리를 빼고 새롭게 합류한 곽진수를 오른쪽 측면에 세워보자는 마크 캠밸 수석코치의 말에 마이크 타이슨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흠……. 다음 상대가 누구죠?”
“리그 20위에 있는 레딩입니다.”
“꽉을 시험해볼 최고의 상대로군요. 알겠습니다. 1월 15일 레딩과 경기에서 꽉은 물론이고 다른 이적생들의 경기력도 살펴보도록 하죠. 어떻습니까?”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국뽕전사 2호기인 곽진수의 EPL 데뷔 무대가 정해졌다. 상대는 리그 최하위 팀인 레딩이었다.
* * *
1월 15일.
몰리뉴 스타디움이 관중들로 가득했다. 벌써 몇몇 팬들은 이번 경기에서 이적생들이 보여줄 활약을 기대하고 있었다.
“오늘 이적생들을 모두 출전시킨다던데?”
“알렉스코 아리에타는 기대할만해! 그 녀석 셀타 비고에서 뛸 때 좋은 모습을 자주 보여줬거든.”
“난 라스 하젤레스커가 기대돼! 그 녀석의 사진을 봤는데 축구를 잘하게 생긴 얼굴이었어!”
“하하! 난 오히려 꽉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있어! 오리 울음소리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그는 팍이 있는 한국에서 왔으니 분명히 좋은 활약을 보여줄 거야!”
“빨리 경기가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았다.
곧이어 선수들이 필드에 입장했으니까.
와아아아아!
거대한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연패에 빠진 레딩의 선수들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지만, 그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승리를 다짐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강등권의 나락에서 빠져나가려는 레딩의 선수들을 잘 다독인 레딩의 톰 해리스 감독.
그는 필드에서 여유롭게 몰리뉴 스타디움을 훑어보고 있는 박규태를 보며 침을 삼켰다.
현재 EPL에서 가장 무서운 공격수였다.
리그에서 22골을 넣으면서 질주하고 있었다.
최다 득점 2위인 짐테인이 아직도 17골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과 다르게 박규태는 꾸준했다.
거기다 항상 팀의 패배를 막는 골을 넣었다.
그것이 무서웠다.
경기 막판에 터지는 동점골과 역전골을 많이 때려 넣은 박규태를 두려워하지 않을 EPL팀은 없었다.
삐이익!
경기가 시작하기 무섭게 레딩은 내려앉았다.
텐백이었다.
절대 실점을 하지 않고 0 대 0으로 전반전을 보내겠다는 다짐이 전술에서 드러났다.
툭!
중앙에서 측면으로 공이 연결되었다.
그리고 EPL 데뷔 첫 터치를 하게 된 곽진수는 침을 삼키고 천천히 공을 끌고 레딩의 측면으로 이동했다.
그의 앞을 막아서는 레딩의 윙어.
조반 카브렐라.
그가 곽진수에게서 공을 빼앗으려 몸을 밀어 넣었다. 동시에 곽진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억지로 조반 카블렐라의 몸을 밀어내고 그가 터치라인에 닿을듯말 듯이 아슬아슬한 질주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조반 카브렐라는 정신을 못차릴 것처럼 멍을 때리던 곽진수가 과감한 돌파로 그들의 측면을 파고들자 급하게 발을 뻗었다.
촤아아악!
거친 태클이 들어왔고.
곽진수가 필드에 쓰러졌다.
삐이이익!
동시에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곽진수 선수를 반칙으로 끊어버린 조반 카브렐라! 방금의 돌파를 허용했으면 레딩으로서는 위험했던 상황입니다.
-이거죠! 울산에서 곽진수 선수가 중앙에서 뛰던 측면에서 뛰던 발이 빠른 것이 장점이었어요!
-거기다 상당히 활동량이 많은 선수입니다.
-맞습니다!
곽진수의 EPL 데뷔 첫 돌파.
울브스의 팬들은 박규태의 성과 곽진수의 성을 활용한 재치있는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울버햄튼에는 멋진 공원(Park)이 있어!)
(그 멋진 공원(Park)에 오리가 살지!)
(그 오리는 축구를 잘해!)
(꽉!꽉!꽉!꽉!꽉!)
(그 오리는 축구를 잘해!)
(꽉!꽉!꽉!꽉!꽉!)
필드에서 천천히 일어난 곽진수가 감동한 표정으로 울브스의 관중석을 잠깐 바라봤다.
이어지는 경기.
간접 프리킥 찬스를 얻은 울브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기어코 프리킥을 활용해서 득점을 만들었다.
-고오오오올!
-박규태 선수의 헤딩이 완벽하게 레딩의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곽진수 선수의 기점! 프리킥으로 도움을 기록한 테오 나두! 그리고 마무리는 역시나 우리 박규태 선수 아니겠습니까?
-아……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공격과 수비에서 활약하는 두 선수가 모두 대한민국의 선수라는 것이 저는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대단합니다! 박규태! 그리고 곽진수!
골을 넣었다.
당연히 좋아해야 한다.
그런데 박규태는 좋아할 수 없었다.
골을 넣었지만.
세레머니를 할 수 없었으니까.
그는 마치 대런 플레처와 같았다.
세레머니 브레이커.
골을 넣은 박규태에게 맹수처럼 달려간 곽진수는 그를 끌어안으며 괴성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아! 선배 멋졌어요! 최고예요!”
“어……. 그래.”
“으하하하! 역시 한 골로는 만족할 수 없군요! 멋집니다! 역시 박규태 선배님이십니다!"
박규태가 찝찝한 표정으로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이어지는 경기에서 그는 금방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박규태에게 연결되는 공!
-기회입니다!
전반 15분.
레딩의 텐백으로는 박규태와 울브스의 공격력을 막을 수 없었다. 순간적으로 레딩의 수비진이 무너졌다.
두 번째 기회가 박규태에게 찾아왔다.
그가 공을 잡기 무섭게 레딩의 원정팬들이 갑자기 ‘제팬’을 계속해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제펜! 제펜! 제펜! 제펜!
제펜! 제펜! 제펜! 제펜!
2019년 여름.
한국에 들렀던 호날두가 컨디션을 핑계로 팬 사인회를 취소함은 물론이고 출전하기로 했던 경기에서 교체로도 출전하지 않았을 때, 한국의 팬들이 호날두를 향해서 ‘메시’ 챈트를 날렸던 것처럼 그들도 박규태를 향해서 ‘제팬’ 챈트를 외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박규태의 개의치 않았다.
흔들릴 필요가 없었다.
저들은 레딩이 팬이었으니까.
그리고 박규태는 호날두와 다르니까.
덕분에 레딩팬들의 ‘제팬’ 챈트는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박규태가 멋진 중거리 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고오오오올!
-박규태!! 전반 15분만에 2골을 넣습니다!
-이게 박규태 선수입니다! 이게 어나더 코리안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가슴이 울리는 멋진 중거리 슛이었습니다!
골을 넣은 박규태.
그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곽진수를 확인했다.
‘이번에는 놓칠 수 없다.’
그리고 돌진하는 곽진수의 손길을 피한 그가 관중석으로 달려가며 펄쩍 뛰어올랐다.
그의 시그니처나 다름이 없는 세레머니.
이제 호날두의 ‘호우!’보다 대한민국의 국민에게 익숙한 ‘주-모우!’가 몰리뉴 스타디움을 물들였다.
“주-모우우우!”
주-모우우우우!
그리고 ‘제팬’ 챈트를 날린 레딩의 원정 팬들에게 울브스의 홈팬들이 응답을 해주었다.
김치! 김치! 김치! 김치!
김치! 김치! 김치! 김치!
박규태는 몰리뉴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울브스의 ‘김치’ 챈트에 두 팔을 벌리며 눈을 감았다.
코리아! 코리아! 코리아! 코리아!
코리아! 코리아! 코리아! 코리아!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울브스의 홈팬들이다음에는 ‘코리아’ 챈트에 맞춰 소리를 빽빽 지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성스러워보였다.
세레머니 브레이커인 곽진수.
그가 감격 어린 표정으로 기도했다.
“국멘……. 뽕렐루야!”
< 국뽕 박규태 선생 #77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