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76 >
12월 29일.
뉴캐슬 원정.
홈에서 뉴캐슬을 상대했을 때와 다르게 원정 경기에서 울브스는 전반전에 2실점을 허용하며 좋지 않은 출발을 보여주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후반전 막판에 2 대 1로 거의 질 것이라 예상되던 경기를 박규태가 환상적인 30M 중거리 슛으로 무승부를 만든 것이 위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덕분에 토트넘은 1위를 굳건히 지키며 어쩌면 리그 우승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연히 토트넘이 잘나가면 배가 아픈 아스날의 팬들이 ‘너희는 곧 5위로 떨어질 거야!’라는 말을 하고는 했지만, 솔직히 리그 6위에서 힘겹게 순위를 지키고 있는 아스날은 맨유를 8위로 끌어내린 스완시 시티에게 6위까지 내어줄 것 같은 상황이었다.
[맨유 감독 경질!]
[벨로아 솔랑케 감독, ‘성적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확실히 전반기에 맨유가 보여준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지난 시즌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감독을 끌어내리고 수석코치인 사무엘 토드를 감독 대행으로 앉혀!]
[루이스 너츠를 잡은 맨유! 재계약으로 2032년까지 루이스 너츠와 함께 한다!]
[맨유의 팬들, ‘또 경질? 오랜만에 우승했는데?’]
[우드워드는 감독과 선수를 맨날 자기 입맛으로 바꾼다.]
8위까지 추락한 맨유는 감독이 바뀌었다.
회귀 전에는 많은 우승 트로피를 가져가며 꽤 길게 맨유에서 장기 집권을 했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이 없었을 뿐이지만.
거기다 우드워드 단장의 막장 영입에도 그는 없는 선수를 만들어 쓴다는 말까지 들으며 가지고 있는 선수들로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던 감독이었다.
그야말로 명장이라 칭해도 부족할 것이 없는 감독이었다. 그런 감독이 경질을 당한 것을 보며 박규태가 혼란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혼란하다. 혼란해.”
맨유의 전성기를 이끌 감독이 맨유를 떠났다.
그가 어떤 팀으로 갈지 궁금했다.
‘루이스 너츠는 재계약을 했으니까. 이제 맨유를 떠나지는 않을 것이고, 이번에는 벨로아 솔랑케 감독이 탈맹 효과를 받으려나?’
그가 알고 있는 미래가 크게 변했다.
하지만 박규태는 태연했다.
‘내가 잘하면 끝이다.’
그래, 스스로가 잘하면 된다.
그저 한국인들에게 국뽕만 잘 전달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시즌에 계속해서 멋진 활약을 이어나가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찾아온 2028년 1월 1일.
FA컵 3라운드 상대인 잉글랜드 리그1의 브리스톨 로버스와 경기를 위해서 울브스가 그들의 홈 경기장인 더 메모리얼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 * *
철썩!
-고오오오오올!
-경기를 끝내는 환상적인 아웃프런트 슈팅이었습니다! 테오 나두가 오늘 경기의 마지막이 될 골을 터뜨렸습니다!
-오늘 경기 네 번째 골의 주인공은 테오 나두입니다!
테오!
나두!
테오!
나두!
골을 넣은 자신의 이름을 계속해서 외치고 있는 원정팬들을 향해 테오 나두가 폴짝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쭈-모오오오오!”
“그래! 주모!!”
“골만 많이 넣어! 그러면 주모든 뭐든 다 받아줄게! 테오 나두! 넌 정말 최고야!”
“젠장! 이번 시즌 우리 팀의 공격수들은 너무 환상적이야! 너무 아름답다고!! 제발 그 기세를 계속 이어나가!”
관중석에 바짝 붙은 울브스의 팬들은 광기 어린 목소리로 골을 넣은 테오 나두와 오늘 경기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울브스의 공격진을 칭찬했다.
박규태는 후반 30분이 조금 지난 시점에서 교체로 투입되었는데, 아무래도 골을 넣을 기회가 그리 많이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1월 4일에 있을 리그 컵 준결승 1차전인 첼시와 경기를 앞두고 있기에 박규태도 무리해서 뛰지는 않았다.
삑! 삑! 삐이익!
-경기 끝났습니다!
-여유 있게 FA컵의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 울브스입니다! 정말 오늘 멋진 경기력을 보여줬습니다.
-그렇죠. 박규태 선수의 활약이 없었다는 부분이 조금은 아쉽지만……. 1월 4일에 있을 첼시와 경기에서 분명히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게 분명합니다!
그렇게 브리스톨 로버스와 경기에서 승리한 울브스.
그들은 쉴 틈도 없이 다시 울버햄튼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겨울 이적 시장이 열리기 무섭게 팀에 합류한 윙 포워드인 알렉스코 아리에타를 볼 수 있었다.
22살의 젊은 윙 포워드로 가스통 렌도의 백업으로 활용될 것이 유력한 선수였다.
반대로 떠날 준비를 하는 선수도 있었다.
바이에른과 협상 중인 아니발 올리베아. 그리고 1월 3일에 나폴리로 합류하는 존 하스타가 곧 떠날 선수들이었다.
두 선수는 백업 수비수로 나쁘지 않은 활약을 하며 울브스의 승리에 많은 이바지를 했던 선수들이었다.
그들이 빠진다면 울브스의 수비진은 상당히 얇아질 것이 분명했다. 당연히 울브스는 그들의 대체자를 준비하고 있었다.
첫 번째 후보는 덴마크 슈퍼 리가의 쾨벤하운에서 주전 수비수로 뛰고 있는 22세의 중앙수비수인 ‘라스 하젤레스커’였다.
좋은 선수였다.
회귀 전에도 EPL은 물론이고 다양한 리그에서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적응력만큼은 최고라고 평가받던 선수였다.
그가 온다면 아마도 아니발 올리베아의 빈자리를 충분히 채우고도 남을 것이 분명했다.
두 번째 후보는 놀랍게도 한국인이었다.
벌써 한국 기사에도 이번 이적과 관련된 이야기가 술술 퍼지고 있는 것 같았다.
[울브스! 울산의 곽진수에게 관심을 보이다!]
[한국 선수에게 눈을 돌리는 울브스! 이번 이적 루머는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 황지찬과 박규태 덕분?]
[20살의 수비수! 상하이와 울브스 사이에서 고민하다!]
[곽진수, ‘중국보다는 유럽에 가고 싶다. 힘들어도 도전을 하고 싶다. EPL에서 뛰는 것은 어릴 적부터 꿈이었다.’]
K-리그 울산의 수비수인 곽진수.
그가 울브스의 두 번째 타겟이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당장 EPL에 적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적어도 멘탈적인 부분에서는 부족함이 없는 선수였다.
회귀 전에는 세리에의 제노아로 이적했었는데, 인종차별을 내뱉은 유벤투스의 원정 팬을 향해 주먹 감자를 날리고 살해 위협을 받았던 선수였다.
“압권이었지. 그건 아직도 기억이 나네.”
더 대단한 것은 살해 위협을 받은 뒤, 유벤투스 원정에서 상대 공격수의 축구화에 침을 뱉으며 도발을 했다는 점이었다.
실력 부분에서 조금의 아쉬움은 있을지는 몰라도 수비수로서 갖춰야 할 ‘깡’만큼은 그 어떤 선수보다 뛰어난 선수였다.
다만, 회귀 전과 많이 다른 점이 있었다.
[곽진수, ‘아시아에서 가장 존경하는 선수? 과거에는 차붐과 손형민 선수였고, 지금은 이강민 선수와 박규태 선수를 존경한다.’]
[곽진수, ‘뭐? 김치를 좋아하냐고? 지금 나에게 근본이 있는지를 묻는 건가?’]
[곽진수, ‘당연히 김치를 좋아한다. 한국인에게 김치와 태극기, 태권도는 근본이다.’]
[곽진수, ‘울브스에 있는 박규태 선배에게 많은 것을 배우겠다. 세계에 대한민국을 알리고 오겠다.’]
“이 녀석……. 왜 이렇게 국뽕이 철철 넘쳐?”
뭔가 이상했다.
그가 알고 있는 곽진수가 아닌 것 같았다.
국뽕에 흠뻑 젖은 곽진수.
그가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박규태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 * *
새해 첫 승리를 거둔 울브스.
1월 4일에 있는 리그 컵 준결승 1차전.
첼시와 경기를 위해서 그들이 뉴 스탬포드 브릿지에 도착했다. 당연히 그들의 버스를 보며 첼시의 팬들이 야유를 내질렀다.
(우우우우우!)
(망할 울브스! 이번에는 꼭 엉망으로 만들어주마!)
(보니크 실바가 지난 경기의 복수를 해줄 거야!)
그들은 지난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이번 경기에서 첼시의 승리를 기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기도와 다르게 전반전부터 경기는 혼돈으로 물들고 있었다.
-고오오오오올!
-가스통 렌도! 전반전부터 폭주합니다! 전반 15분이 막 지난 시점에서 멀티골을 성공시키며 첼시의 수비진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우리 박규태 선수도 대단했습니다! 필요한 순간에 툭! 가볍게 내준 패스가 깔끔하게 들어갔어요!
-시즌 7호 도움! 확실히 최근 들어서 골을 많이 넣기보다는 연계에도 많은 관여를 하는 박규태 선수입니다!
국뽕에 취한 중계진의 외침
전반전에 2골을 몰아넣은 울브스의 분위기는 하프 타임의 라커룸까지 이어졌다.
마이크 타이슨 감독은 기어코 손으로 호두를 가루로 만드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후반전에도 과감한 공격을 지시했다.
하지만 후반전에 들어선 첼시는 전반전과 다르게 상당히 치밀하고 날카로운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순식간에 2 대 0이던 점수가 2 대 2가 되었다.
케빈 티몽이 감기로 아예 출전도 하지 않았음에도 첼시의 공격진은 매서웠다.
이어지는 첼시의 역습.
그들의 공격을 반칙으로 겨우 끊었지만, 데니스 카르바할이 날카롭게 찬 프리킥에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첼시의 팬들이 크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반대로 뉴 스탬포드 브릿지까지 따라온 울브스의 원정 팬들은 낙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은 9월 25일에 있었던 리버풀전에서 패배 이후로 오랜만에 패배를 기록할 거라 예상했다.
3 대 2로 달아나는 골을 넣은 첼시가 완전히 내려앉아서 승리를 챙기려고 했으니까.
하지만 후반 41분에 박규태의 발이 불을 뿜었다.
항상 중요한 순간에 팀의 패배를 막았던 박규태의 슈팅을 모두가 침을 꿀꺽 삼키고 바라봤다.
철썩!
그리고 첼시의 수비진과 골키퍼를 뚫고 골망을 흔든 골을 보고서는 울브스의 원정 팬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아!
패배가 눈앞에 있던 상황에서 다시금 팀의 패배를 막아낸 박규태를 보면서 몇몇 울브스의 팬들은 눈물까지 흘렸다.
무슨 짓을 하든지 질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반대로 첼시의 홈팬들은 낙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몇몇 팬들은 울브스는 물론이고 허무하게 동점을 허용한 첼시의 수비진을 향해서 거센 야유를 내뱉고 있었다.
어떻게든 골을 넣으려고 라인을 끌어올린 첼시.
하지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삐익! 삐이익! 삐익!
주심이 경기의 끝을 알리는 휘슬을 불었다.
3 대 3으로 끝난 리그 컵 준결승 1차전.
첼시에게는 상당히 아쉬운 결과였고.
울브스에게는 원정 경기치고는 꽤 선방한 결과였다.
2028년 1월 8일.
프리미어리그 22라운드.
울브스는 왓포드와 경기에서 3 대 2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다음 날에 그들은 팀에 새롭게 합류한 두 선수를 만날 수 있었다.
새롭게 합류한 라스 하젤레스커는 벌써 팀의 주축 수비진과 이야기를 나누며 뛰어난 적응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1월 2일에 합류한 알렉스코 아리에타가 아직도 다른 선수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않은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회귀 전과 같이 적응력만큼은 뛰어나네.’
그리고 이의제기를 하고 나서야 겨우 취업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었던 곽진수도 다른 선수들의 틈에서 어설픈 영어로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박규태와 눈이 마주친 곽진수.
그가 눈빛을 반짝거리며 박규태에게 다가왔다.
‘나보다 한 살이 어렸지?’
기대도 되었고.
걱정도 되었다.
회귀 전에는 스물다섯에 세리에A로 진출했는데, 이번에는 5년이나 빠르게 EPL에 진출했으니까.
생각에 잠긴 박규태에게 다가온 곽진수.
그가 박규태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국뽕전사 2호기 곽진수가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 박규태 선배님께 인사 오지게 박습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했다.
“아……. 잘 부탁합니다.”
“선배님! 편하게 말을 놓으세요! 제가 한 살이나 어립니다! 국위선양을 위해서 제대로 불타고 싶습니다! 좋은 지도편달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상이 아니었다.
‘나도 정상이 아니지만……. 이 녀석도 정상이 아니야.’
뭔가 이상하게 불안했다.
그것은 곽진수가 이상한 행동으로 팀의 케미스트리를 엉망으로 만들 것 같아서 생긴 불안이 아니었다.
무엇인가를 뺏길 것 같은 느낌.
“뭔가 찝찝해.”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곽진수를 바라봤다.
그것도 모른 체 곽진수는 어설픈 영어로 울브스의 선수들에게 한국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국뽕 박규태 선생 #76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