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70 >
최근에 웨스트 미들랜즈 주 울버햄튼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조금 늘었다.
당연히 박규태가 활약하는 덕분이라는 것을 현지의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동시에 그에 편승해서 한국인 척하면서 호의를 원하는 중국사람들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렇기에 몇몇 울브스의 팬들은 가짜 한국인을 찾기 위한 여러 질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몰리뉴 스타디움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펍인 ‘찰리와 아이들’에도 중국인 두 사람이 한국인으로 위장해서 공짜 맥주를 원하고 있었다.
그것도 노골적으로 말이다.
전형적인 진상이었다.
그리고 펍의 주인인 찰리는 그런 가짜 한국인들을 알아내기 위해서 최근에 한국인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했다.
“초이! 저 녀석들 한국인 맞아?”
“잠시만요.”
서빙을 끝낸 초이가 조용히 중국인으로 의심되는 두 사람 앞에 섰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한국인 맞습니까?”
“네! 우리 한국인 맞아요.”
“여기는 왜 이렇게 불친절하죠? 이해할 수 없어요!”
영어로 불만을 표출하는 둘.
곧이어 초이가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김치 만세!!”
하지만 두 사람은 멀뚱히 서 있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초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찰리에게 말했다.
“가짜 한국인입니다.”
그러자 펍에 있던 선량한(?) 울브스팬들이 멋진 근육을 드러내며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연히 두 가짜 한국인들은 펍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쫓겨나는 순간에 중국말로 뭐라 소리쳤다.
아무래도 좋지 않은 욕인 것 같았다.
초이는 그들에게 소리쳤다.
“타이완 남바완!!”
멋지게 가짜 한국인을 쫓아낸 찰리와 초이.
다시금 조용해진 펍에는 울브스의 팬들이 리그 최상위권에서 멋진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초이! 잠깐 쉬어도 돼! 나갈 주문은 다 나갔어.”
“네!”
초이.
아니, 최영준은 씩 웃고 잠깐 의자에 앉아서 쉬기 시작했다. 원래 그는 프랑스 소쇼에서 아르바이트했었다.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자신의 펍을 열기 위해서였다.
‘열심히 배워서 꼭 내 펍을 열고 말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배워야 했다.
특히나 그는 ‘찰리와 아이들’에서 맛있는 잉글랜드 음식을 배울 생각이었다.
특히 인도에서 영향을 받은 ‘치킨 티카 마살라’가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이었다.
그는 그것을 배우기 위해 이곳에 아르바이트로 취직했다. 당연히 그것만이 이유가 아니었다.
“흐흐흐.”
펍에 걸린 박규태의 유니폼.
최영준이 뿌듯함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애국심이 저절로 생길 정도로 환상적인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박규태, 그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곳에서 일할 이유가 하나 늘어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딸랑!
그때였다.
또 누군가가 들어섰다.
동양인 네 사람이었다.
울브스의 팬들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펍의 주인인 찰리도 묘한 눈빛을 보냈다.
‘중국인? 아니면 일본인?’
최영준이 조용히 그들의 앞에 섰다.
그리고 두 팔을 벌리고 소리쳤다.
“김치 만세!”
“...”
잠깐의 침묵 뒤.
아까와 다르게 상당히 격렬한 반응이 나왔다.
“주-모우우우우!”
“췍! 암 더 코리안 탑 클래스! 힙합 모범 노블레스!”
“김치팍! 김치팍! 김치김치 팍팍!”
흡족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최영준이 찰리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가짜 한국인이 아닌 진짜 한국인이라는 뜻이었다.
“어서 오세요! 하하하!”
찰리는 아까와 다르게 환한 웃음을 보이며 한국인 관광객 네 사람을 맞이했다. 펍에 있던 손님들도 친근하게 그들에게 다가와 여러 가지를 물었다.
그리고 3분 뒤에 손님들끼리 똘똘 뭉쳐서 신나게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당연히 욕설과 외설적인 말이 난무했다. 하지만 묘하게 입에 착착 감기는 운율 때문에 멈출 수 없었다.
(우리는 맨시티 새끼들을 싫어해!)
(아랍인에게 명예를 팔았거든!)
(우리는 맨시티 새끼들을 싫어해!)
(우린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야!)
(그냥 맨시티만 싫은 거야!)
점점 격양되는 훌리건들의 외침.
그들의 외침은 경기가 맨체스터 시티와 울브스의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당연히 ‘찰리와 아이들’처럼 울버햄튼의 여러 펍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 * *
12월 12일.
맨체스터 시티와 경기.
몰리뉴 스타디움은 이미 관중들로 가득 찼다.
그들은 맨체스터 시티를 헐뜯는 응원가를 내뱉으며 그들의 팀이 이기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잉글랜드의 훌리건에게 있어서 축구와 술이 없는 하루는 지옥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지금 현재를 격렬하게 즐기고 있었다. 그것이 살짝 어긋난 즐김이겠지만.
(너희 김치맨은 똥을 쌌어!)
(본머스의 재러드 베이원이 코를 막았지!)
(너희 김치맨이 똥을 쌌어!)
(오늘 경기에선 파블로 로탱이 코를 막겠지!)
본머스와 경기에서 후반전에 빠르게 화장실을 갔다 온 박규태의 모습을 비꼬는 맨시티 팬들의 응원가가 라커룸까지 들려왔다.
“인기가 좋은데?”
엠마누엘 메르시에의 말에 박규태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똥 싼 날까지 기억하는 스토커는 필요 없어.”
“팍의 말이 맞아! 저런 스토커들을 신경 쓸 필요도 없어! 오늘 경기만 집중해! 오케이? 모두 준비는 됐나?”
마이크 타이슨 감독의 치고 들어오는 말에 선수들이 씩 미소를 지었다. 최근에 그의 팔뚝이 더 두꺼워졌다는 것을 알고 있는 퀴라시 아메드는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곤죽이 된 수박처럼 되기 싫으면 말을 들어야지.’
어떻게 한 손으로 수박을 박살 낼 수 있을까.
문제는 저게 순수한 피지컬이라는 점이었다.
어떻게 약도 하지 않고 저런 근육을 만들 수 있을까. 박규태가 홀로 감탄을 하는 사이에 마이크 타이슨 감독은 자신의 연설을 끝내고 있었다.
콰지지직!
“이번에는 멜론이네.”
“그래도 두 손이라서 다행이다.”
“멜론을 한 손으로 부순 순간부터 보스는 사람이 아니게 될 테니까. 두 손으로 부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
멜론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마이크 타이슨 감독이 ‘허슬! 머슬! 킬링! 머신!’이라는 이상한 구호를 외쳤고, 선수들은 그의 목소리에 맞춰서 구호를 외치며 기세를 끌어올렸다.
그렇게 복도로 향하는 울브스 선수들.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바로 필드에 입장하기 시작한 선수들.
울브스의 몰리뉴 스타디움이 환호성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관중들은 그들이 응원하는 팀이 승리하기를 기원하며 침을 튀겨가며 큰 목소리로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 박규태는 맨시티의 선수들을 슬쩍 살폈다. 맨체스터 시티의 필리페 아리에타 감독은 오늘 경기를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대체로 주전을 모두 출전시켰다.
지난 시즌에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뛰지 못했음에도 19골을 넣으며 맨체스터 시티를 이끈 페르난도 티에우스.
3번의 발롱도르를 수상한 이 시대의 지배자인 파블로 로탱도 눈에 들어왔다.
거기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12골 3도움을 기록하며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냈던 젊은 윙 포워드인 엘리아 예프스까지 이번 시즌에 맨체스터 시티에 합류했다.
덕분에 한국에서는 이런 말까지 나돌았었다.
-울브스의 공격진 3인방이 일반 커피라면, 맨체스터 시티의 3인방은 TOP다! 이번 시즌에 어마어마한 돌풍을 보여줄 것이다!
‘한국에서는 어마어마한 기대를 했었지.’
덕분에 맨체스터 시티의 팬들은 맨유와 리버풀의 팬들에게 행복한 조리 돌림을 당했다.
돈만 많은 졸부라나 뭐라나. 하지만 맨시티의 팬들은 욕을 먹어도 싱글벙글하였다.
성적이 모든 것을 증명했으니까.
2020년대에 접어들어서 얻어낸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 그것이 모든 것을 증명해주었다.
맨체스터 시티의 영입 방식은 틀리지 않았다.
그저 돈이 많기에 성공한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서 가능한 성공이었다.
그들은 강력했다.
이번 시즌에도 강력할 것이고.
전반기에 그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경기에서 박규태와 울브스는 강력한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해야 했다.
‘두근두근하네.’
과연 어떤 경기를 하게 될까.
아마도 치열한 승부가 될 것이다.
삐이익!
때마침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박규태가 공을 뒤로 돌리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울브스와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 많은 한국팬이 오늘을 기다렸습니다!
-리그 선두권에 있는 두 팀의 대결이기에 더 설레는 것 같습니다. 상대는 발롱도르 수상자인 파블로 로탱이 있는 맨체스터 시티입니다!
-울브스가 과연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정말로 기대됩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전방으로 연결되는 패스!
맨체스터 시티는 확실히 다른 팀과 달랐다.
3대2의 혈전을 펼쳤던 맨유보다 더 유기적이고 선수 개개인이 갖춘 능력이 뛰어났다.
‘빅6 중에서 리버풀과 함께 전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를 받고 있던가? 확실히 필드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은 대단하네.’
특히나 공격진이 보여주는 파괴력이 굉장했다.
준수한 수비진이라 평가받는 울브스의 수비수들이 맨체스터 시티의 파블로 로탱의 움직임에 쩔쩔매고 있었다.
-파블로 로탱!
-완벽한 움직임이었습니다! 순간적인 발기술로 파비오 델파우리를 속였습니다!
-전반 10분이 막 지나고 있는 상황에서 맨체스터 시티가 60%가 넘는 점유율로 울브스를 압박합니다.
‘쉽지 않네.’
박규태가 맨체스터 시티의 수비진에 아슬하게 걸친 상태로 뒤를 바라봤다. 울브스의 미드필더진과 수비진이 어려운 경기를 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였다.
그의 옆에 딱 붙은 맨시티의 수비수.
존 하멜이 조용히 물었다.
“너 사무라이 좋아해?”
“뭐?”
박규태가 되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
“일본인 아니었어? 나 사무라이랑 닌자 좋아하거든! 멋지잖아! 할복도 그렇고……. 뭔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 있지!”
때마침 날아드는 공.
박규태가 입을 닫고 빠르게 공을 향해 달렸다.
존 하멜은 그의 옆에 붙어서 그가 공을 잡고 다음 행동을 가져갈 수 없도록 강한 몸싸움을 걸었다.
‘흡!’
한 번의 경합이 끝나고.
박규태는 회귀 전의 존 하멜이 어떤 인물인지를 기억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꽤 유명한 인물이었다.
‘악평으로 말이지.’
다시 공은 맨체스터 시티에 넘어갔다.
그리고 조금의 여유가 생긴 상황.
존 하멜을 보며 박규태가 입을 열었다.
“미안한데 난 한국인이야.”
“한국이라고?”
그러자 그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존 하멜은 회귀 전에 알아주는 와패니즈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축구팬들이 뒷골을 붙잡게 만든 망언을 자주 내뱉던 선수였다.
어떻게 보면 박규태와 전혀 다른 성향의 선수였다.
“여기서 일뽕을 만나네.”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박규태.
존 하멜도 그를 보며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닫았다.
“양심 없는 한국인이었어? 너희는 맨날 일본을 괴롭히잖아.”
‘일본은 무조건 선하다.’라는 생각을 하는 존 하멜의 말에 박규태가 바로 입을 열었다.
“난 네 녀석이 나치와 동급인 전범의 똥구멍을 빠는 머리가 빈 와패니즈라는 것은 확실히 알겠는데?”
“그 입을 닫는 게 좋을 거야.”
“응, 방사능에 오염된 생선 대가리.”
불타오르는 존 하멜의 눈빛.
박규태도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번 경기……. 절대 질 수 없다!’
국뽕과 일뽕의 대결.
아무래도 어떻게든 골을 넣어야 할 것 같았다. 이런 경기에서 ‘국뽕 스트라이커 박규태’는 질 수 없었다.
그가 구보하면서 군가를 부르는 군인처럼 국뽕에 절인 말을 내뱉으며 존 하멜의 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반대로 존 하멜은 이상한 일본어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일본 군가인 것 같았다.
“많은 가지의 벚꽃인가! 소매의 색깔……!”
그러자 박규태도 동시에 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이 강산을 지키는 우리! 사나이 기백으로……!”
이게 무척이나 시끄러웠는지 주심이 경기를 잠깐 멈추고 두 사람에게 주의를 시키기까지 했다.
“둘 다 입을 닫지 않으면 옐로 카드를 한 장씩 선물할거야. 알겠어? 제발 경기에 집중해!”
두 선수가 조용히 입을 닫았다.
하지만 완전히 닫은 것이 아니었다.
다른 선수들에 귀에 들리지 않게 소곤소곤 일본과 한국의 군가를 부르고 있는 두 선수였다.
웃긴 것은 두 선수 모두 군 생활을 제대로 경험도 해보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이었다.
존 하멜은 잉글랜드 출신의 미필 와패니즈였고.
박규태는 대체 복무로 4주 군사 훈련을 받았지만, 그것으로 군필이라고 하기에는 솔직히 우스운 수준이었으니까.
그렇게 국뽕 면제와 일뽕 미필.
두 선수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 국뽕 박규태 선생 #70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