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57 >
전승 행진.
그야말로 파죽지세의 기세로 승리해온 울브스는 유로파 3차 예선 2차전에서도 승리를 거두며 연승을 이어갔다.
“8월 2일, 5일, 8일, 12일.”
“그리고 15일에 왓포드와 경기가 있죠.”
“일정이 너무 빡빡해요. 마크도 그렇게 생각하죠?”
“물론이죠. 확실히 일정이 상당히 타이트합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팀을 잘 추스르면, 팀이 기세를 탈 수 있죠.”
마이크 타이슨 감독과 마크 캠밸 수석코치는 다음 경기인 왓포드전에 선발로 출전시킬 선수를 선별하고 있었다.
“샘 빈치는 어떻습니까?”
“최근 경기에서 집중력이 자주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제 18살의 선수에게 많은 것을 바라기에는 무리가 있겠죠. 조금은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선수 중에서 특이사항이 있는 선수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아구스틴 퀴논이 자신의 식단에 나초를 추가해달라 부탁을 하던데, 이 부분은 어떻게 할까요?”
“제가 직접 처리하겠습니다.”
50파운드의 아령을 들며 땀을 빼고 있는 마이크 타이슨 감독의 얼굴에 살벌한 미소가 생겼다.
“다른 건의사항은 없습니까?”
“별다른 것은 없습니다.”
그렇게 가벼운 회의는 끝났다. 그리고 마이크 타이슨이 밖에 있는 구단 직원에게 소리쳤다.
“앤서니! 아구스틴을 불러주세요!”
“왜요? 무슨 일이 있나요?”
“육체의 대화를 해야겠어요.”
“알겠습니다.”
구단 직원인 앤서니 레드필드가 씩 웃고는 아구스틴 퀴논을 데리러 훈련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나갔다.
감독실을 갔다 온 아구스틴 퀴논이 멍한 표정으로 훈련장에 나타났고, 선수들은 그런 아구스틴을 보며 수군거렸다.
“아구스틴이 넋이 나갔는데?”
“뭘 보고 온 걸까?”
마이크 타이슨 감독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마다 몸을 움찔 떨고서는 ‘으으! 진실의 방!’이라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박규태는 그 모습을 보며 절대 문제를 일으켜서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모든 훈련이 끝나고.
박규태는 테오 나두와 퀴라시 아메드, 두 사람과 함께 구단의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때 젊은 동양인이 다가왔다.
박규태가 보기에는 기자처럼 보였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 같지?”
“기자인가?”
“야, 여기에 CCTV 있냐?”
“중국의 국영 채널?”
“너 퀴라시 맞아? ‘시준핑 개객끼’해봐.”
급발진한 박규태의 말에 그가 펄쩍 뛰었다.
“무슨 소리야! 내가 한국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팍은 날 의심하는 거야? 실망이야.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얼마나 깊었는데!”
자신이 너무 급발진한 것이 아닌가 곰곰이 생각한 박규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함께한 시간이 겨우 3개월이야.”
“그 정도면 애도 만들 수 있는 시간이라고.”
“게이 같은 소리 그만하고 우리 앞에서 멀뚱히 바라보는 이상한 기자나 처리할 생각을 하자고.”
마침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자 기자가 질문했다. 보통이라면 ‘인터뷰를 부탁드려도 될까요?’라고 하겠지만, 패기 있는 기자는 당당하게 다른 것부터 물었다.
“두 유 노 김치?”
딱 봐도 영어를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떻게 기자가 된 것일까.
박규태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기자를 돌려보내려고 하는데, 퀴라시 아메드가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어떤 김치를 말하는 거죠?”
“네?”
능숙한 퀴라시 아메드의 한국말에 기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어떤 김치 종류인지. 그리고 장독대에 넣은 김치를 물어보는 건가요? 아니면 김치냉장고에 넣은 김치인가요? 몇 개월을 숙성시킨 김치를 물어보는 거죠?”
LA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말릴 수 없는 누군가처럼 퀴라시 아메드는 김치라는 단어에 반응했다.
“당신 한국인이 아니라 중국인 아니야?”
퀴라시 아메드의 말에 기자가 대답도 못하고 멍하니 입을 닫았다.
“모든 한국인은 김치와 관련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팍도 이런 김치의 세부적인 차이를 알고 있지?”
“그…… 그렇지.”
중국교포인 ‘빠꾸이태’가 되기 싫었던 박규태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기자는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물러났다.
돌아가는 순간에 서러움이 터진 것일까.
엉엉하는 울음이 들린 것 같았다.
“이봐! 멍청한 중국인! 다시는 김치를 무시하지 마라!”
퀴라시 아메드의 외침에 박규태가 움찔 몸을 떨었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미안, 아까 했던 의심은 취소할게.”
* * *
[쾌조의 울브스! 다음 상대는 왓포드!]
[울브스의 더블 스쿼드는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프리미어리그 2라운드!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경기는?]
상대는 왓포드 FC.
2020-21시즌에 강등을 경험하고 바로 다음 시즌에 승격에 성공한 그들은 지금까지 중하위권에서 끈질기게 버티면서 생존왕이라는 별명이 새롭게 붙었다.
그만큼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꽈앙!
박규태가 조용히 주인 없는 철제라커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마이크 타이슨 감독의 주먹에 라커가 종이처럼 구겨져 버렸다.
“최악이야! 어떻게 그런 움직임을 가져갈 수 있지?”
확실히 왓포드전의 전반전은 최악이었다.
박규태의 골과 엠마누엘 메르시에의 2골이 아니었으면 2 대 0으로 지고 있었을 상황이었다.
“2 대 2라는 점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야! 왜 망설이는 거야! 공격수들은 공을 기다리고 있다고! 도전적인 패스를 찔러 넣어서 역습을 허용한 것은 내 잘못이지만, 어물쩍거리다가 공을 빼앗긴 것은 선수의 잘못이야!”
어린 미드필더인 샘 빈치가 고개를 푹 숙였다.
오늘 2실점의 주인공이었으니까. 그는 특히 상대 중앙 미드필더인 애슐리 클라크에게 심한 견제를 당하면서 자신감이 줄어든 것 같았다.
덕분에 어설픈 패스가 많이 나왔다.
“아르사네! 준비해!”
그리고 한동안 기회를 잡지 못했던 아르사네 디예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좋아! 공격진! 전반전에 보여줬던 것처럼 상대를 뭉개버려! 팍이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도우라고. 오케이?”
“옛썰!”
“미드필더진! 특히나 루이스! 필요하면 측면으로 길게 공을 빼도 좋아. 어중간한 플레이가 나올 것 같으면 상대에게 뺏기지 말고 옆으로 빼버려.”
“알겠습니다.”
“수비진도 잘하고 있어! 필요한 순간에는 적극적인 파울로 상대의 흐름을 끊어! 좋아! 고! 고! 고! 고! 가서 왓포드 녀석들에게 늑대들의 무서움을 보여주라고!”
“감독님이 사과를 착즙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충분히 무서워할 것 같습니다.”
유일하게 마이크 타이슨 감독을 무서워하지 않는 팀의 주장 파비오 델파우리의 말에 그가 껄껄 웃었다.
그러다가 얼굴을 굳히고는 진지하게 물었다.
“후반전이 시작되면 왓포드 녀석들에게 내가 한 손으로 사과를 착즙하는 모습을 보여줄까?”
“…….”
“농담이었어.”
아니, 절대 농담이 아니다.
박규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요즘 그가 느끼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울브스에 속한 사람들은 정상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유일하게 여기서 나만 정상이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박규태가 스마트폰을 꺼내서 울브스의 커뮤니티에 ‘김치 발할라로 떠나는 4가지 응원 방법.’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미친 새끼.”
전반전이 끝나는 순간까지 박규태에게 시달린 왓포드의 중앙 수비수 크리스토퍼 제임스가 얼굴을 찌푸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처럼 폭발신은 없어?”
후반전이 시작되기 무섭게 박규태의 중거리 슛이 터졌고, 크리스토퍼 제임스는 그 슈팅을 몸으로 막아내면서 왓포드의 실점을 막아낼 수 있었다.
“닥쳐.”
“미안하지만, 심심해서 어쩔 수 없어.”
“한국 사람은 다 그렇게 시끄러워?”
“아니, 나 중국 사람인데?”
“뭐?”
“내 이름은 빠꾸이태야. 니쒸팔러마.”
사실이었다.
결정적인 슈팅을 놓쳤으니까.
그의 생각처럼 인터넷 중계의 댓글란에 매국노 드립이 터졌고, 박규태는 한국 사람이 아닌 중국교포 ‘빠꾸이태’가 되어서 미친 듯이 욕을 먹고 있었다.
-야! 누가 빠꾸이태를 넣었냐?
-답이 없네. 그걸 놓치냐?
-상대가 왓포드라고 중국산 빠꾸이태를 넣었냐? 마이크 타이슨 감독이 너무 방심하는 것 같은데?
-저 선수는 중국산 김치인 ‘빠꾸이태’입니다. 김치규태교가 보증합니다. (김치규태교 일동)
하지만 박규태가 다시 3 대 2로 앞서 나가는 멀티골을 터뜨리는 순간 중국교포 ‘빠꾸이태’가 아닌, 대한민국의 레전드 공격수인 ‘김치팍’으로 변신했다.
-아……! 신성하다!
-이게 전설의 1군이라는 거다. 일뽕들아!
-저 선수는 국내산 김치인 ‘김치팍’ 교주님입니다. 김치규태교가 보증합니다. 국멘……! 뽕렐루야! (김치규태교 일동)
-역시……! 토끼를 한 마리 사냥하더라도 전력을 다하는군. 무서운 감독이다. 마이크 타이슨!
순식간에 국적을 회복한 박규태가 멋진 헤딩으로 골을 넣었음에도 울브스의 수비진은 라인을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환상적인 선방!
-톤 필크만의 멋진 선방입니다! 이 선수가 있기에 울브스가 자신 있게 라인을 올릴 수 있습니다.
-거기다 점점 앤디 수아즈를 중심으로 울브스의 수비진이 안정되기 시작했습니다.
톤 필크만의 선방을 시작으로 다시금 이어진 울브스의 공격에 왓포드의 수비진이 흔들렸다.
이번에 골을 넣은 선수는 가스통 렌도였다.
“좋았어!! 가스통!”
“너만 믿고 있었다!”
“도시가스 LPG!! 최고야!”
“1골 더 넣어서 추격의 의지를 꺾어버려!”
순식간에 4 대 2까지 벌어진 점수.
왓포드의 감독이 급히 전술을 수정했다.
4-4-1-1 포메이션으로 수정한 왓포드의 감독은 수비진과 미드필더진의 라인을 내리고 천천히 점유율을 끌어올릴 생각을 하며 패스가 좋은 선수들을 교체로 투입했다.
거기다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에 발이 빠른 세컨톱인 알렉시스 아리스테르를 넣었다.
아무래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역습으로 천천히 점수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덕분에 왓포드의 중앙 수비수인 크리스토퍼 제임스와 박규태가 자주 붙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후반전 33분.
시간이 지날수록 역전할 확률은 줄어든다.
그것을 잘 알기에 왓포드의 선수들도 결국에는 내려앉고 안정적으로 점유율을 가져가던 방법을 포기하고 라인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틈을 박규태는 놓치지 않았다.
귀신같은 움직임으로 비어 있는 공간으로 파고든 박규태.
그는 엠마누엘 메르시에가 찔러준 패스를 잡지 않고 그대로 논스톱 슈팅으로 때려버렸다.
철썩!
너무나도 간단하게 들어간 골.
왓포드의 수비진이 허탈한 표정으로 골대에 들어간 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당연히 골을 넣은 박규태는 홈팬들을 향해 달려가 펄쩍 뛰어올랐고, ‘주-모우!’ 세레머니를 보여주었다.
“주-모우!”
샤따-내려!
몇몇 팬들은 태극기를 흔들었다.
5 대 2로 앞서나가는 경기.
굳은 표정으로 골대를 바라보고 있던 크리스토퍼 제임스가 분노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 * *
[6 대 2 대승! 울브스의 진격은 계속된다!]
[박규태 개막 이후 2경기 만에 해트트릭을 기록!]
[무서울 정도로 파괴적인 가스통 렌도-박규태-엠마누엘 메르시에의 삼각편대!]
[마이크 타이슨 감독, “최고였다! 울브스는 이런 젊은 선수들이 이끌어가는 팀이다. 이번 시즌에 멋진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
[크리스토퍼 제임스, “팍의 국적이 한국인이라고? 자기가 중국인이라는데? 뭐? 거짓말이라고? 이런 F×ck! 망할 자식! 뻐킹김치맨이 내 경기를 망쳤다!”]
왓포드를 상대로 큰 점수 차이로 잡아낸 울브스.
유로파 4차 예선 1차전의 상대인 레드 스타를 상대로도 5 대 0이라는 끔찍한 점수 차이로 승리를 거두었다.
조별예선 진출이 거의 확정된 상황.
당연히 마이크 타이슨 감독은 8월 22일에 있는 프리미어리그 3라운드 레딩과 경기에서 1군을 모두 내보냈다.
결과는 의외로 1 대 0 승리.
하위권인 레딩의 탄탄한 수비에 울브스의 선수들이 조금은 힘들게 경기를 풀어나갔다.
후반 14분에 터진 박규태의 골이 아니었으면, 아마 무승부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경기였다.
그렇게 7월 22일 AFC 아스트라와의 경기부터 8월 22일 레딩전까지 모두 이기며 연승을 이어나가고 있는 울브스.
A매치 기간에 들어가기 전에 8월 26일에 있는 유로파 4차 예선 2차전과 8월 29일에 있는 프리미어리그 4라운드 레스터 시티와 경기가 박규태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그것만 기다린 것이 아니었다.
-팍! 김치와 불고기 먹방……! 이번에 한 번 찍죠.
울브스의 구단주인 폴 앤더슨.
그가 박규태에게 연락을 걸어왔다.
< 국뽕 박규태 선생 #57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