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52 >
“사장님 표정이 왜 그래요?”
최영준의 물음에 펍의 사장 김춘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내뱉어다.
“우리 규태가 다른 팀으로 가면 무슨 재미로 사냐?”
“어휴, 포기하라니까요.”
“뭘 포기해? 어쩌면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은 상태인데!”
“그렇다고 우승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거기다가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할 수 있게 된다고 해도 지금 있는 선수들을 모두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요?”
최영준의 말처럼 소쇼가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더라도 좋은 성적을 거두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빠져나가는 선수도 많고, 다른 선수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금액을 보장해야 했다.
팀의 핵심인 박규태도 지금 받는 주급이 활약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낮은 금액이었다.
기존의 선수들에게도 주급을 올려 줘야 하고.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했기에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이적 자금도 크게 올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소쇼에는 그런 여력이 없었다.
“진짜로 박규태 선수에게 열무김치를 담그라고 시킬까?”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박규태 선수가 어디로 이적할지 우리 지켜보자고요. 저는 박규태 선수가 더 콥에 어울리는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리버풀 멋지잖아요.”
최영준이 환하게 웃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런데 김춘식의 표정이 이상했다.
“너…… 그런 팀 응원하니?”
“네? 사장님 그게 무슨…….”
“킹갓엠페러충무공카이저의 황유를 두고 그런 근본 없는 잣버플이나 응원하다니. 영준아! 조금은 실망했다.”
“황유는 무슨……. 맹구 아니에요? 맹구?”
“야! 맹구 아니거든? 이번 시즌에 리그 1위가 누군데? 맨유야! 맨유! 리버풀은 최근에 우승 못했잖아? 근데 이번에 황유는 그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그 맨유가 이번 챔스에서 AC밀란에 져서 16강도르를 수상했고, 반대로 리버풀은 지금 챔피언스리그 4강이 확실하죠?”
“너 월급 삭감.”
“비겁해요! 맹구라고 놀렸다고 그러는 게 어디 있어요?”
“응! 꼬우면 너도 사장해.”
최영준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 * *
모두의 기대와 다르게 소쇼는 들쭉날쭉한 경기력을 보이며 리그 4위에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다 리그 5위까지 올라온 AS모나코가 승점 2점 차이로 바짝 따라붙은 상황.
잘못하다가는 유로파리그 진출도 힘들 것 같았다.
박규태도 4월에 접어들며 득점력이 조금은 떨어진 느낌이었고, 그를 도와주는 테오 나두나 엔조 마이어도 체력적으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더군다나 그나마 있던 소쇼의 로테이션 멤버들도 폼이 크게 떨어져서 크리스티 조엘 감독의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다.
4월 18일.
릴 올랭피크와의 경기에서 소쇼는 3 대 1로 패배하면서 3위인 낭트와 승점 차이가 더 벌어졌다.
박규태는 득점할 찬스를 잡지 못했고, 테오 나두와 엔조 마이어의 발은 무거웠다.
경기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온 박규태.
그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최악의 경기력이었어.’
언제나 골을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박규태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오늘과 같은 경기력은 참을 수 없었다.
그때였다.
-띠링!
[두 번째 시련]
1, 27-28시즌에 30골을 기록하시오.
2, 대륙 컵 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시오.
(유로파리그는 4강 이상.)
(챔피언스리그는 8강 이상.)
[달성 보상: 드리블 플래티넘 카드]
[실패: 축구와 관련된 꽤 큰 불행]
박규태에게 드디어 두 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이적하라는 뜻이군.”
소쇼에서 실현 가능한 것은 첫 번째 기록뿐이었다.
솔직히 첫 번째 기록도 쉽지 않았다.
‘테오 나두는 임대가 끝나면 자신의 팀으로 돌아갈 거고, 다른 클럽으로 이적할 선수들도 넘칠 테니까. 이번 시즌처럼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기 어렵겠지.’
두 번째 기록도 홀로 이룩할 수 없었다.
어느 정도 팀이 갖춰져야만 가능한 기록이었다.
축구는 11명이 한 팀인 경기니까.
박규태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국뽕을 위해서.
발롱도르를 위해서.
두 번째 시련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
그가 드디어 이적을 확실하게 결정했다.
* * *
시즌은 이제 끝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리그 17위에 걸쳐 있는 아미엥과의 경기에서 4 대 3 승리를 거둔 소쇼는 리그 4위를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상대는 리그 3위인 낭트였다.
남은 경기는 4경기.
그리고 모든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3위에서 6위까지의 팀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진이 참 뭐 같네.”
“3위인 낭트를 상대하고 다음 경기가 리그 2위인 마르세유, 그리고 리그 18위로 강등권에 걸쳐 있어 독기가 바짝 오른 라 벨린숀이랑 마지막 경기가 대륙 컵 대회 진출 순위인 6위에 걸쳐 있는 디종까지! 진짜 한 경기도 쉬운 경기가 없네.”
“제발……! 다음 시즌에 부진해도 좋으니까, 우리도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팬들은 남은 4경기의 상대를 보며 좋지 않은 대진에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들의 우려처럼 소쇼는 낭트를 상대로 1 대 1 무승부를 기록하며 결국 AS모나코에게 승점을 따라 잡히고 말았다.
박규태도 계속해서 침묵하고 있는 상황.
그런 소쇼의 다음 상대는 마르세유.
리그 2위에 안착한 리그 앙의 강팀이었다.
-고오오올!
-박규태! 박규태가 후반 37분에 소쇼를 패배에서 건져냅니다! 1 대 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박규태 선수가 소쇼의 첫 골을 드디어 만들어냈습니다!
-이거죠! 박규태 선수의 감각적인 슈팅!
당연히 쉽지 않은 경기였다.
박규태를 향한 지속적인 집중 견제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것이지, 넣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박규태는 기어코 마르세유의 수비진이 허용한 틈을 파고들어 소쇼의 패배를 막는 동점골을 터뜨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주심은 칼같이 경기의 끝을 알리는 휘슬을 불었다.
삐이익! 삐이익! 삐익!
-경기 끝났습니다!
-이렇게 되면 3위 낭트, 4위 소쇼, 5위 AS모나코의 남은 경기에 따라서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이 주어지는 3위 자리의 주인이 바뀔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가장 유리한 팀은 아무래도 승점 2점을 앞서고 있는 낭트겠죠.
-아! 소쇼 팬들의 현수막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네요. 팀의 첫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기원하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소쇼가 창단하고 구단의 긴 역사 동안 단 한 번도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한 적이 없으니까요.
아미엥과의 경기 이후 계속해서 무승부만 기록하고 있는 소쇼였지만, 다행히 낭트와 AS모나코가 계속해서 승점을 쌓지 못했기에 순위의 변동은 없었다.
리그 37라운드.
라 벨리숀과의 경기에서도 무승부를 기록했다.
소쇼의 팬들과 선수들의 속이 타고 있는 상황.
하지만 다른 축구팬이 보기에 리그 앙의 3-5위 싸움은 너무나도 재미있게 흘러가고 있었다.
3위, 낭트 37경기 21승 11무 5패. 승점 74점.
4위, 소쇼 37경기 22승 7무 8패. 승점 73점.
5위, 모나코 37경기 20승 12무 5패. 승점 72점.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두고서 3-5위권의 팀이 마지막 경기까지도 치열하게 붙어야 하는 상황.
소쇼의 리그 앙 마지막 경기의 상대는 대륙 컵 대회 진출권이 걸려 있는 6위를 지키기 위해 독기가 오른 디종이었다.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위해 이겨야 하는 소쇼와 유로파리그 진출을 위해 승리가 꼭 필요한 디종의 리그 앙 마지막 경기!]
[낭트의 마지막 경기 상대는 PSG!]
[AS모나코의 상대는 생테티엔!]
[가장 대진운이 좋은 팀은 AS모나코!]
[기적을 만들어라! 소쇼! 그리고 박규태!]
-최근에 큰 견제로 시원하게 골을 못 넣네.
-마지막 경기에서 넣을 듯.
-그래도 시즌 28경기 34골 10도움을 기록했음. 만약에 박규태가 PSG 소속이었으면 더 넣었겠지. 거기다 발롱도르 후보에 올라갈 수 있었겠고.
-와…… 미쳤다. 리그 앙에서 저렇게 넣는 공격수면 다른 4대 리그에 진출하면 한 20골은 넣어주겠지?
-ㄴㄴ 리그 수준 차이가 얼마나 큰데? 아마 15골만 넣어도 성공적인 시즌이라고 평가할걸?
-리그 앙 마지막 38라운드 개꿀잼 대진이자너.
-소쇼가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내려나?
-낭트가 PSG를 잡아내지는 못하겠지만, 이미 1위를 확정 지은 PSG가 제대로 하겠음? 거기다 AS모나코는 개꿀 대진이고. 소쇼만 바짝 독이 오른 디종을 상대해야 함.
* * *
5월 22일.
리그 앙의 마지막 라운드.
디종의 홈인 파르크 뮈니시팔 데 스포르 경기장은 디종의 대륙 컵 대회 진출을 응원하기 위한 홈팬들로 가득하였다.
물론, 소쇼의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응원하기 위해 멀리서 찾아온 약 500여 명의 원정 팬들이 있었다.
그들은 소쇼의 승리를 기원하며 스마트폰으로 낭트와 AS모나코의 중계를 같이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틈에 최준영과 김춘식도 있었다.
“진짜…… 왜 이렇게 쫄깃하냐?”
“원래 막판에 순위 싸움하는 경기가 쫄깃한 거예요. 그래도 가능성이 있는 게, 낭트의 상대가 PSG라서 할만 해요.”
“AS모나코 쪽이 더 좋지 않아?”
“그쪽은 우리랑 승점 1점 차이라 소쇼가 승리를 거두면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제발 이겼으면 좋겠다.”
그때 필드에 입장하는 선수들을 보며 크게 환호성을 내지르는 디종의 팬들의 목소리에, 소쇼의 원정 팬들이 의기투합해서 같이 소쇼의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팬들의 열기는 필드에 있는 선수들에게 옮겨가 제대로 불이 붙었다.
삐이이익!
주심이 휘슬을 불기 무섭게 달려드는 선수들.
전반전 초반은 상당히 거친 경기가 진행되었다.
-오늘 경기가 상당히 거친 느낌입니다.
-맞습니다. 경기 초반부터 필드에 눕는 선수가 조금씩 보입니다. 주심이 결국 전반 7분 만에 옐로카드를 꺼내는군요.
디종의 선수 3명.
소쇼의 선수 2명.
순식간에 옐로카드를 받는 선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선수들의 반응도 훨씬 거칠어졌다.
-박규태 선수가 공을 따냈습니다. 공은 그대로 뱅상 르노에게 연결됩니다!
-뱅상 르노 슛!
-아! 공이 크로스바를 넘어갑니다!
전반전 동안에 박규태는 디종의 수비수들을 상대로 전혀 밀림이 없이 공중볼을 따내서 공격을 주도하고 있었다.
그만큼 컨디션의 날이 선 상황.
‘결정적인 기회가 오면 바로 때려볼 텐데.’
하지만 기회는 잘 오지 않았다. 그만큼 디종의 수비진이 악착같이 잘 막고 있었다.
그렇게 전반전이 끝났다.
하프타임에 크리스티 조엘 감독은 선수들에게 더욱 공격적으로 나서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렇게 후반전이 시작되고 10분 정도 흘렀을까.
갑자기 소쇼의 원정 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기를 뛰고 있는 선수들에게 소리쳤다.
“우리가 골을 넣으면 올라갈 수 있어! 소쇼! 1골만 넣어! 낭트가 PSG에게 2점 차이로 지고 있어!”
“팍! 1골을 넣어줘!”
“이기면 챔피언스리그 진출이야!”
다른 팀의 상황을 알게 된 소쇼의 선수들.
그들이 급히 몸을 움직였지만, 이미 디종의 선수들도 7위인 릴 올랭피크의 소식을 듣고 수비진을 내려버렸다.
-아, 릴 올랭피크가 실점하면서 1 대 1이 되었습니다.
-디종은 이제 무승부만 거두면 리그 6위로 유로파리그 티켓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소쇼는 1골이 필요한 상황!
-아! 정말 치열합니다! 1골이 필요한 소쇼와 무승부만 지키면 되는 디종의 경기입니다!
촉박하게 흐르는 시간.
소쇼의 원정 팬이 눈을 감고 기도하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힐 정도로 팬들의 간절함은 상당했다.
그렇게 후반 45분이 지나고, 추가시간 3분이 주어진 상황.
오늘 경기에서 잠잠했던 엔조 마이어의 발에서 드디어 환상적인 패스가 뿜어져 나왔다.
박규태가 수비수의 뒤를 돌아 파고드는 위치에 정확하게 날아드는 환상적인 로빙 패스였다.
가슴으로 공을 잡은 박규태.
그는 자신 있게 몸으로 공을 밀고 들어갔다.
급히 튀어나오는 디종의 골키퍼.
박규태의 눈이 골대로 향했다.
그리고 왼발을 가볍게 움직였다.
툭!
공을 향해 달려들던 골키퍼를 바보로 만드는 절묘한 칩슛과 조용히 공의 궤적을 바라보는 관중들.
“안 돼!”
골키퍼의 절규 뒤에 들려오는 골망을 흔드는 소리.
철썩!
골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박규태가 웃통을 벗고 미친 듯이 원정 팬이 있는 관중석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소쇼의 팬들에게 마지막이 될 세레머니를 보여주었다.
“주-모우우우우우!”
그 모습을 보며 소쇼의 팬들이 괴성을 내질렀다.
흡사 짐승의 울음과 비슷한 광기에 찬 목소리였다.
클럽 역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확정 짓는 환상적인 골이었기에 용광로와 같은 반응이었다.
우와아아아아아!
“내가 누구!! 내가 누구!!”
자신이 누군지를 묻는 박규태에게 소쇼의 팬들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대답했다.
“Tigre de Sochaux!!(소쇼의 호랑이)”
< 국뽕 박규태 선생 #52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