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49 >
아시안컵 결승.
2015년 이후로 오랜만에 결승전에 올라섰다.
선수들의 표정도 많이 굳어 있었다.
특히 손형민은 2015년에 준우승을 기록했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얼굴에 비장함까지 서려 있었다.
‘진짜 멀리도 돌아왔네.’
박규태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의 원래 계획대로라면, 2026아시안게임에서 우승으로 병역특례와 함께 ‘두 유 노 클럽’에 가입하는 것이었다.
‘그때 축협의 비리가 모두 폭로되면서…… 내 국뽕과 활약이 묻혀버렸지. 진짜 도움이 안 되는구나! 축협!’
축구협회의 비리가 터지면서 그의 활약이 뉴스에 별로 올라오지 않았고, 덕분에 그의 ‘두 유 노 클럽’ 입성이 늦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67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
결승까지 오는 동안에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며 한국 축구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결승전에서도 골을 넣으며 우승을 견인한다면, 이번에는 무조건 ‘두 유 노 클럽’ 가입이 가능할 것이다.
[박규태 MoM선정. 일본전에서 멀티골 활약!]
[대한민국 67년 만의 우승이 가능할까?]
[라커룸을 깔끔하게 치운 일본 대표팀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일본 기자의 질문에 박규태 “라커룸 청소가 자랑은 아닌 것 같다.”라고 밝혀!]
[일본 언론, “박규태! 겸손이 없는 선수!”]
[호주전 베스트 11은?]
[무서운 상대 호주!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인터넷 기사를 모두 살핀 박규태는 조용히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라커룸을 바라보았다.
선수들의 눈에는 비장함이 감돌았다.
이번에는 꼭 대한민국을 우승시키겠다는 다짐을 한 선수들을 보며 박규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커룸 가운데로 모인 선수들.
손형민이 입을 열었다.
“2015년에 있었던 아시안컵은 준우승으로 끝났다. 그때 나는 팀의 승리를 이끌 수 없었어. 하지만 이번 아시안컵은 달라. 국가대표팀의 수준은 많이 올라갔고 팀워크도 훨씬 좋아졌다. 우리는 챔피언이 될 자격이 있어.”
손형민에게 이번 아시안컵은 마지막일 수 있었다.
이강민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만큼 좋은 기회가 없었다.
공격진은 유럽의 강팀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었고, 수비진도 비록 큰 경기에서 흔들리는 경우가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크게 문제를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지금만큼 좋은 기회가 없었다.
그렇게 각오를 다진 대표팀의 선수들.
필드에 입장하기 위해서 그들이 복도로 나섰다.
* * *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2027 아시안컵 결승전! 대한민국과 호주의 경기를 중계해드리겠습니다.
결승전답게 TV를 시청하는 이들이 상당했다. 그만큼 이번 대표팀의 경기력이 좋았기에 우승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었다.
덕분에 치킨집은 상당히 바쁠 것이다.
그리고 그 기대처럼 대한민국은 경기가 시작하기 무섭게 호주를 상대로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은 거칠고 강한 압박을 이용해서 경기의 주도권을 잡고 차분하게 측면을 공략해 나갔다.
호주는 반대로 탄탄하게 수비를 하면서 빠른 공격수를 이용한 중앙지향적인 역습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측면을 마크해!”
“알렉스!”
왼쪽 풀백인 알렉스 가프.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 소속 에이바르에서 주전 풀백으로 뛰고 있는 그는 미꾸라지처럼 자꾸 호주의 수비진을 빠져나가는 박규태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젠장! 나도 알고 있다고!”
다른 수비수들의 외침에 신경질을 낸 그가 공중볼을 잡아낸 박규태에게 바짝 붙었다.
하지만 공은 이미 대한민국의 오른쪽 풀백인 노지민에게 향한 뒤였다.
노지민은 지체 없이 반대쪽으로 공을 연결했다.
그 공을 손형민이 잡고 그대로 중앙을 돌파하다가 자신의 전매특허인 형민존에서 슈팅을 가져갔다.
-오우! 아쉽습니다!
-아! 골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었는데……! 상당히 아쉽습니다! 손형민 선수가 좋아하는 위치였거든요?
-맞습니다! 형민존이 아닙니까?
“두 유 노 김치?”
박규태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며 알렉스 가프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망할 김치맨……!”
물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박규태는 자신의 능력을 잘 활용했다.
이강민이 내어준 패스를 받으며 중앙으로 파고드는 그의 움직임에 알렉스 가프가 거친 태클로 끊어냈다.
삐이익!
-프리킥 찬스입니다!
-알렉스 가프 선수가 옐로카드를 받는군요. 이번 태클은 상당히 거친 태클이었습니다.
-박규태 선수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잘 털고 일어나는군요. 하지만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전반 21분에 얻어낸 프리킥 기회.
이강민과 손형민이 자리하고 페널티 에어리어로 박규태가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188㎝의 큰 신장을 활용할 순간이었다.
당연히 호주의 수비진은 박규태를 주의해서 마크했다.
‘팍에게 공간을 주면 안 돼.’
‘어떻게든 막고 역습의 기회를 만든다.’
삐이익!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손형민이 먼저 공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공을 터치하지 않고 지나간 뒤에 이강민이 빠르게 공을 향해 달려들어 왼발을 휘둘렀다.
뻐어엉!
박규태의 머리를 노리고 올라오는 프리킥.
호주의 중앙 수비수인 케인 라이트와 카메론 버기스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뛰어난 위치선정 능력을 갖춘 박규태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막을 수 없었다.
“흡!”
프리킥이 날아들 위치에 선 박규태가 높게 뛰어올랐다. 그리고 타이밍에 맞춰 머리를 이용해서 공의 궤적을 살짝 바꾸었다.
철썩!
골키퍼가 반응할 수 없는 낮고 빠른 공이었다.
-고오올! 대한민국의 선취골!
-역시! 박규태 선수의 높이를 이용한 공격에서 우리가 득점을 얻어냈습니다! 그렇죠! 박규태 선수의 높이를 무시할 수 없죠!
-아! 우리 붉은악마 응원단이 큰 소리로 박규태 선수의 별명을 외칩니다! 김치팍! 김치팍! 김치김치 팍팍! 이거 정말 입에 착착 감기는 구호네요.
-하하하하하! 그렇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이제 김치 쉰내가 날 정도로 많이 불러진 별명.
김치팍을 외치는 한국 관중들을 향해 달려간 박규태가 크게 소리쳤다.
“내가 누구우!!!”
그 외침에 관중들이 큰 소리로 대답해주었다.
대한민국의 박규태!!!!
* * *
전반전이 1 대 0으로 끝났다.
선수들의 표정은 꽤나 상기되어 있었다.
골 결정력이 조금 아쉬웠지만, 경기력만큼은 그 어떤 경기보다 좋았으니까.
하지만 뱅상 엘라즈 감독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1골 차이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차이니까.
그리고 시작된 후반전.
호주는 1골을 넣기 위해서 아까보다 공격적으로 대한민국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몇몇 위험한 상황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실수가 잦았던 대한민국의 수비진이 이번에는 잘 막아내면서 가슴 졸이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반대로 라인을 올리며 공격적으로 나선 호주 수비진의 뒤를 박규태가 절묘한 라인 브레이킹으로 뚫었다.
남은 것은 골키퍼뿐이었다.
하지만 박규태의 선택은 슛이 아닌 패스였다.
박규태가 밀어준 패스를 받은 이강민.
그가 깔끔하게 골망을 흔드는 슈팅을 가져갔다.
-고오올!
-이강민의 골! 대한민국이 2 대 0으로 앞서나갑니다!
-이제 남은 시간은 20분 정도 됩니다!
그렇게 2 대 0으로 앞서 나가는 대한민국.
남은 시간은 이제 20여 분 남짓.
하지만 호주도 포기하지 않았다.
후반전 막판에 어떻게든 따라붙는 골을 넣으면서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의지만으로 이길 수 있는 경기는 없었다.
철썩!
-고오오올 손형민 골!
-박규태 선수가 헤딩으로 떨궈준 공을 그대로 슈팅으로 가져가면서 호주의 추격을 뿌리쳤습니다!
-손형민! 역시나 대한민국의 맏형입니다!
순간적으로 무너진 호주 수비진 사이에서 박규태가 떨궈준 공을 받아서 그대로 슈팅을 가져간 손형민.
그가 경기의 끝을 알리는 골을 터뜨렸다.
호주의 선수들이 급히 공격을 위해 나섰지만, 이번만큼은 시간이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간 시간.
삐익! 삐이이익! 삐이익!
-경기 끝났습니다!
-대한민국이 67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을 기록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말 대단합니다! 우승입니다!
-얼마만의 아시안컵 우승입니까?
-우리 태극전사들이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67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 정말로 대단합니다! 대한민국! 최고입니다!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선수들이 기쁨을 만끽했다.
그리고 필드에 누워버린 박규태.
그의 눈앞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띠링!
-축하드립니다! 두 유 노 클럽에 가입하셨습니다.
-생존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으아아아! 좋았어!”
박규태는 필드를 뒹굴며 기쁨을 만끽했다.
더는 국뽕팔이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 이제 국뽕전사 박규태는 은퇴다.
열심히 돈을 벌고 빠르게 은퇴해서 멋진 인생을 살고자 하는 박규태의 두 눈에 희열이 가득했다.
“으흐흐흐! 도비는……! 아니, 규태는 자유라고요! 시스템님이 저에게 자유를 주셨어요! 국뽕? 이제 개나 주라고요!”
그때였다.
자유를 만끽하던 박규태.
그의 눈에 또 다른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띠링!
-시스템이 플레이어에게 준 기회를 확인합니다.
-당신은 시스템에게 총 2번의 기회를 받았습니다.
-얻은 기회만큼 플레이어의 ‘수명’을 삭제합니다.
-당신의 남은 수명 50%가 삭제됩니다.
-당신의 남은 수명은 40년입니다.
-당신의 남은 수명 50%가 삭제됩니다.
-당신의 남은 수명은 20년입니다.
“뭐요? 이보시오! 시스템 양반! 그게 무슨 말이요? 그러니까, 내가 단명한다……! 그 말이오?”
두 눈에 지진이 생겼다.
다음 달 3월이면 21살이 되는 박규태.
남은 수명이 20년이면 약 41살까지 살 수 있었다. 죽음을 맞이했던 35세보다 6년을 더 살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 6년을 위해서 그렇게 힘든 노력을 했단 말이야?’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달려온 ‘국뽕인생’이란 말인가.
박규태가 허탈한 표정으로 시스템을 바라봤다.
당연히 시스템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그에게 다시금 기회를 주었다.
[수명복구미션]
-‘두 유 노 클럽’에 포함되셨습니다. 국뽕과 인지도를 쌓아서 ‘두 유 노 랭킹’ 1위에 도달하시오.
[보상: 페널티로 잃은 수명을 모두 회복합니다.]
-‘두 유 노 랭킹’을 확인합니다.
[두 유 노 랭킹]
1위-총알소년단(VTS)
2위-이강민
3위-손형민
4위-김윤아
5위-박지형
……(중략)
26위-김천주
27위-봉정호
28위-빅찬스
29위-엔젤하트
30위-박규태
“X발!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국뽕과 인지도로 VTS를 넘어서 랭킹 1위를 차지하라니.
거의 불가능한 미션이나 다름이 없었다.
한국인 최초 빌보드 3관왕은 물론이고, 빌보드 공식 24시간 내 7,460만 뷰를 기록한 기록은 물론이고, 영국의 국영방송인 BBC에서는 21세기의 비틀즈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그만큼 인기가 대단했다.
그리고 2027년인 지금까지도 그들의 인기는 식지 않고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어쩌면 한국 역사상 가장 대단한 아이돌로 이름을 남길지도 모르는 VTS가 아닌가.
가히 세계 최고의 팝스타라고 평가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그것이 지금의 VTS였다.
‘저 대단한 그룹을 넘으라니……! 미쳤군.’
지금의 국뽕과 인지도를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한 미션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금과 같은 활약으로도 불가능해.’
물론,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월드컵 우승이나 발롱도르를 수상하면 가능했다.
‘하지만…… 월드컵 우승은 솔직히 에바세바줌바울랄라 수준의 헛소리겠고, 역시나 할 수 있는 건 발롱도르 쪽이려나?’
발롱도르.
아시아 최초의 발롱도르라면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단발적인 수상으로는 조금 부족할 것이다.
“메시처럼 4연속으로 발롱도르 수상은 불가능해도 2연속 발롱도르 수상을 하게 된다면…… VTS를 넘어설 수 있겠지. 아시아 최초 발롱도르 2연속 수상! 비벼볼 만한데?”
솔직히 지금과 같은 폼을 유지하면 발롱도르 최종 후보 3인에 들어갈 실력은 된다고 생각했다.
그가 지금 리그 앙에서 쌓은 16경기 25골이라는 스텟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기록이니까.
그만큼 수아레즈의 재능과 필리포 인자기의 재능은 훌륭하다 못해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그렇지만 한계가 있었다.
VTS를 넘어서는 인지도를 쌓기에 부족함이 있었다.
그 이상의 재능들이 필요했다.
특히나 전체적인 개인기.
또는 드리블이나 패스처럼 부족한 부분을 더 보완해야 가능성이 있었다.
박규태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보다 더 성장해야 한다.’
그때 다시금 울리는 알림음.
-띠링!
-두 번째 선택.
1, 개인기와 관련된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시련.
2, 드리블과 관련된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시련.
그의 마음을 읽었을까.
시스템이 그에게 두 가지 선택을 제시했다.
< 국뽕 박규태 선생 #49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