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47 >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되었다.
“언양 불고기가 최고지.”
불고기 종류. 그리고 지역별 불고기까지 다 알고 있는 녀석이 이란 사람이라니.
‘진짜 한국놈 같은데?’
대한이란 놈이라 불러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대한이란 놈, 퀴라시 아메드는 경기 내내 박규태가 쉽게 전진할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특히나 박규태의 약점을 잘 파고들었다.
‘영리하기까지 하네.’
드리블이 약한 박규태가 몸으로 밀어붙이기 전에 거리를 살살 벌리며 크로스나 패스를 유도했다.
박규태의 패스 능력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위협적인 상황을 만들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정확했다.
거기다 박규태가 중앙까지 압도적인 피지컬을 이용해서 파고들면, 다른 중앙 수비수의 도움을 받아서 그의 전진을 막아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탄탄한 벽이었다.
“팍은 어떤 킴치가 좋아? 난 갓 만들어진 욜무킴치를 좋아해. 욜무킴치를 넣은 냉묜은 최고였어.”
거기다 중간중간 박규태의 귀를 때리는 퀴라시 아메드의 ‘역국뽕’ 트레쉬 토크까지 겪게 된 순간 박규태는 처음으로 자신과 상대했던 수비수들에게 미안함까지 느낄 수밖에 없었다.
‘와…… 이런 기분이구나.’
어째서 자신에게 욕설을 내뱉었는지, 박규태는 그간 상대한 수비수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렇게 0 대 0으로 전반전이 끝났다.
라커룸에 들어선 선수들.
뱅상 엘라즈 감독은 경기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상당히 거친 어휘를 사용하며 선수들에게 공격적인 움직임을 지시했다.
“수비만 하기 바쁜 이란을 상대로 전반전에 0 대 0을 기록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최근에 이란은 단단한 수비진을 제외하면 그리 무서울 게 없는 상대야!”
맞는 말이었다.
이란이 일본과 함께 우승 후보라고 평가는 받고 있지만, 최근 이란의 피파 랭킹은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단단한 수비진과 다르게 빈약한 공격진 덕분이었다.
“2 대 1로 패배해도 상관이 없지만, 0 대 0으로 경기가 끝나는 것은 내가 절대 용납할 수 없어! 팍! 퀴라시 아메드를 상대로 돌파가 힘들다면 더 노골적으로 수비진의 뒤를 파고드는 움직임을 가져가! 우리에게는 상대 수비진을 흔들 선수가 필요해!”
“그렇게 된다면…… 퀴라시 아메드가 더 공격적으로 올라올 텐데요? 오른쪽이 뻥 뚫려서 힘들지 않을까요?”
“상관없어. 어차피 퀴라시 아메드의 크로스나 패스를 받아서 마무리할 정도로 상대 공격진의 수준이 높지 않으니까.”
박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뱅상 엘라즈 감독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손형민과 이강민에게도 따로 세부적인 지시를 내렸다.
“캉민! 쏜과 함께 적극적으로 스위칭을 시도하면서 이란의 수비진을 흔들어놔! 필요하다면 최전방까지 올라가도 좋아.”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이강민.
선수들에게 후반전에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지시를 다 내린 뱅상 엘라즈 감독이 라커룸을 나서는 선수들을 독려했다.
“가서 보여줘! 아시아의 일인자가 누구인지!”
* * *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전반전과 다르게 대한민국의 움직임은 적극적이었다.
1골을 넣기 위해서 전력을 다한다는 느낌이었다.
“예전에 한국에 놀러 갔을 때, 엔젤하트의 여름 콘서트를 보러 간 적이 있었지. 정말 대단했어! 한국인들이 노래를 함께 부르는 장면은 장관이었지. 아! 한국말로 그걸 데찻이라고 하던가?”
“떼창이야.”
“맞아! 데창! 멋진 문화였지.”
공이 오지 않는 상황에서도 두 사람은 같이 붙어 다녔는데, 덕분에 박규태는 퀴라시 아메드의 말을 계속 들어야 했다.
‘이란의 투머치 토커가 여기 있었네.’
그는 고민했다.
자신의 옆에서 ‘한국은 위대한 나라다!’라는 말을 계속 내뱉고 있는 수비수를 어떻게 잠깐 떼어놓을 수 있을까.
긴 고민 끝에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한국 드라마는 봐?”
그 물음에 퀴라시 아메드의 눈빛이 반짝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 물음에 대답했다.
“물론이지! 요즘 보고 있는 드라마가 있는데……! 여명의 모래시계라고, 며칠 전에 완결이 났거든. 난 지금 7화를 보고 있어.”
“여명의 모래시계라…….”
알고 있었다.
회귀 전에 박규태도 제법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였다.
오랜만에 공중파에서 시청률 20%대를 찍은 수작이라고 엄청난 이슈 몰이를 했던 작품이었다.
특히나 드라마가 끝나는 순간마다 기막힌 반전으로 보는 사람의 가슴을 쫄깃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확실히 재미있는 드라마였다.
‘좋아……! 움직이자!’
뒤쪽으로 빠져나가려는 박규태의 움직임에 퀴라시 아메드가 소리쳤다.
“안 놓쳐!”
공간을 찾아 움직이는 박규태.
그에게 끈질기게 달라붙는 퀴라시 아메드.
그때 박규태가 입을 열었다.
“8화에서 주인공 임영권이 총을 맞고 죽어.”
“노우! 거짓말하지 마!”
“그리고 9화에서는 모래시계가 다시 돌아서 주인공이 죽기 전으로 돌아오고 다시금 문제를 해결하지.”
처음으로 퀴라시 아메드의 얼굴이 구겨졌다.
스포일러를 시작한 박규태는 드라마의 결말까지 빠르게 스토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퀴라시 아메드는 클립토나이트에 닿은 슈퍼맨처럼 괴로운 표정으로 얼굴을 크게 찌푸렸다.
이제 결말만 말하면 되는 상황.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역시…… 스포일러를 당하는 것만큼 짜증나는 것이 없지.’
스포일러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퀴라시 아메드가 그와 살짝 떨어졌으니까.
박규태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이란의 수비진을 타면서 중앙으로 파고든 그가 이강민이 건넨 패스를 받고 그대로 돌파를 시도했다.
퀴라시 아메드는 물론이고 이란의 수비진도 귀신처럼 파고든 박규태의 움직임에 살짝 반응이 늦고 말았다.
날카로운 라인 브레이킹.
빠르게 골키퍼와 1 대 1 기회를 만든 박규태는 여유롭게 왼발로 슈팅을 가져가면서 선취골을 터뜨렸다.
-고오오오오올!
-환상적인 라인 브레이킹이었습니다!
-이강민 선수의 쓰루패스를 받고 여유롭게 돌파한 박규태 선수가 드디어 선취골을 터뜨렸습니다!
-아! 퀴라시 아메드 선수가 반응이 늦었을 정도로 날카로운 움직임이었습니다!
골을 터뜨리고 관중석으로 달려간 박규태.
그가 관중석을 향해 펄쩍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주-모우!”
그의 외침에 팬들도 같이 호응했다.
주-모우우우우우!
그렇게 1 대 0으로 앞서가는 경기.
다시금 경기가 시작되기 무섭게 원망이 가득한 눈빛을 보내는 퀴라시 아메드가 박규태의 옆에 붙었다.
“한국인들은 원래 그래?”
그의 물음에 박규태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다른 드라마도 스포일러 해줄까?”
* * *
[이란과 1 대 1 무승부! 후반 40분에 나온 수비진의 집중력 부족이 발을 잡다!]
[이란의 중심인 퀴라시 아메드를 묶은 박규태! 이번 경기 MoM으로 선정!]
[1승 1무로 16강 진출을 거의 확정 지은 대한민국!]
[다음 상대는 아프가니스탄!]
[뱅상 엘라즈 감독, “1 대 1 무승부에 만족한다. 수비진의 실수보다, 공격진의 무득점이 더 싫었다.”]
[박규태, “퀴라시 아메드가 한국을 좋아하더라. 그래서 경기 내내 붙어 있으면서 많은 한국 드라마를 추천해주었다.”]
[퀴라시 아메드, “한국에 대한 상상이 깨졌다. 팍이 내가 사랑하는 한국 드라마의 결말을 말하며 날 괴롭혔다.”]
-앗……. 아아! 스포일러는 좀……!
-이건 커버 못 하겠는데?
-와…… 인성 무엇?
-이기기 위해서 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인을 희생시키다니! 그러고도 당신이 국뽕팍이란 별명을 가질 자격이 있습니까?
-김치규태교는 이번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는 가짜 김치팍입니다. 진짜 김치팍은 임실에서 치즈를 만들고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엌ㅋㅋㅋ 팬카페마저 김치팍을 손절했다.
-He is 차이니즈!
-‘빠꾸이태’라는 중국 출신 귀화선수입니다. 한국과 전혀 관련이 없는 근본 없는 선수입니다.
-엌ㅋㅋㅋ 경기중에 드라마 스포일러 했다고 국뽕전사를 중국인으로 만드냐 ㅋㅋㅋㅋ
-그래도 진짜 잘하더라……! 특히 후반전에 이란 수비진을 뚫고 라인 브레이킹하던 장면에서 감탄이 나왔음. 최근에 위치선정 능력이 좋아진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순간적으로 인자기인 줄.
-ㄴㄴ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 박규태 위치선정 능력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인자기랑 비교하기에는 좀 무리지.
-응, 아니야! 인자기가 자기 SNS에서 박규태의 움직임이 환상적이라고 코멘트도 달았어.
이란전의 무승부.
박규태는 고민에 빠졌다.
역사적으로 항상 문제가 된 수비진.
이번에도 그 수비진이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았다.
‘토너먼트에서는 공격보다 수비가 정말 중요한데.’
이란이 전성기보다 훨씬 낮은 피파 랭킹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아시안컵 우승 후보라고 평가받는 이유도 퀴라시 아메드가 이끄는 단단한 수비진에 있었다.
분명 대한민국의 수비수들도 실력은 크게 늘었다.
주전 풀백인 노지민과 김한솔은 각각 빅리그에서 활약하고 있었고, 중앙 수비수들도 준수한 수비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중요한 순간에 실점이 잦았다.
‘아시아 최고의 수비진이라 평가받을 정도는 되는데……. 이상하게 중요한 순간에서 실점이 잦단 말이지.’
새가슴이라도 되는 걸까.
박규태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다행히 C조 마지막 경기에서는 수비진이 크게 흔들리거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상대로 4 대 0 승리를 거두며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16강 상대가 정해졌다.
-중국이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합니다!
-대한민국의 16강 상대는 중국으로 정해지는군요!
상대는 중국이었다.
당연히 그들은 ‘대국’처럼 신나게 입을 털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다르다. 중국! 한국전 자신감 드러내!]
[위레이, “공한증? 옛이야기! 손형민과 이강민보다 내가 더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
[중국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쑨 하이징, “아시안게임의 실수를 만회하겠다.”]
[박규태, “중국은 무서운 팀! 힘든 경기가 될 것.”]
-???: 웃음을 참기 힘든 경기가 될 듯.
-이야…… 진짜 대국이라는 놈들이 꼭 저렇게 입을 털고 시작하더라. 진짜 대단해! 중국 최고야!
-김치팍이 저렇게 고평가하는 이유가 뭘까? 중국에 진짜 뭐가 있는 건가?
-진짜 박규태가 아니라 중국 교포인 ‘빠꾸이태’라서 저렇게 중국을 빨아주는 겁니다. 진짜 박규태였으면 4골을 넣을지 5골을 넣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ㅋㅋㅋㅋ 중뽕킬러 앞에서 주름잡네.
-소국이라 하기에는 수가 너무 많고, 대국이라 하기에는 속이 너무 좁으니……! 이도 저도 아니라서 중국이라 부른다!
잔뜩 설레발을 치며 자신감을 드러낸 중국.
경기가 시작하기 전부터 중국 관중의 야유가 한국 선수들에게 쏟아졌다.
우우우우우우우우!!
한국의 관중들도 그에 맞춰 응원 소리를 높였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삐이이익!
주심의 휘슬을 울리고 시작된 16강전.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고 2분 만에 중국 팬들의 머릿속에 아시안게임의 악몽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고오오올!
-박규태 선수의 환상적인 골이 터졌습니다!
-미쳤어요! 언제 저기에 나타난 거죠? 중국의 수비진을 모두 속이고 골을 넣었습니다!
-마치! 필리포 인자기처럼 움직였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박규태 선수! 최고입니다!
-이강민 선수의 쓰루패스도 칭찬해주고 싶네요.
전반 2분에 터진 선취점.
쑨 하이징은 아시안게임이 머릿속에 떠올라 부르르 몸을 떨었고, 반대로 박규태는 보약 같은 중국을 상대로 골을 넣고 관중들을 향해 달려가기 바빴다.
중국의 팬들은 순식간에 골을 내준 것을 부정하며 대한민국의 선수들에게 더 큰 야유를 보냈다.
어디선가 부부젤라의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골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이강민의 중거리 슛이 터졌다.
-고오오오오올!
-이강민의 중거리 슛!
계속해서 이어지는 대한민국 선수들의 슈팅.
‘가패축구.’
가두고 패는 축구를 그대로 수행하는 선수들의 모습에 한국의 팬들이 신나게 응원하기 시작했다.
전반전에 터진 골만 3골.
화가 잔뜩 난 중국 팬들.
몇몇의 중국 팬이 필드를 향해 오물을 투척하기도 했다.
-아! 진정해야 합니다!
-저런 모습은 절대 좋지 않거든요? 생각이 있는 축구팬이라면 저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어지는 후반전에서 뱅상 엘라즈 감독은 이강민과 손형민을 빼면서 다음 8강을 준비했다.
사실은 혹시나 거칠어지는 경기에서 두 선수가 다칠까 걱정이 되어서 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덕분에 후반전에는 1골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삐익! 삐이익! 삐익!
4 대 0으로 끝난 경기.
중국 선수들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대한민국이 4 대 0으로 중국을 잡아내면서 아시안컵 8강에 진출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공격력이 정말 매섭습니다! 대한민국! 어쩌면 이번 아시안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2골을 넣은 박규태.
그가 경기가 끝나기 무섭게 한국 관중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그들에게 약속했다.
“이번에 꼭 우승할게요!”
이번 아시안컵에서 우승하겠다.
그가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 국뽕 박규태 선생 #47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