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43 >
박규태는 벨기에를 잘 알고 있었다.
회귀 전.
6개월이지만 벨기에 주필러 리그에서 뛴 경력이 있었다.
그 시기의 박규태는 어느 정도 성장해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활약에도 6개월만 지내다가 다른 리그로 떠났던 이유는 벨기에의 인종차별 덕분이었다.
심한 인종차별은 없었다.
삶에서 묻어나오는 소심하고도 소극적인 인종차별이 그를 힘들게 만들었다.
음식을 시키면 정량보다 적게 나온다.
벨기에는 감자가 주식이라서 감자튀김을 굉장히 신경 써서 주는데, 동양인이나 소수 민족에게는 오래된 감자튀김을 판매한다.
원래라면 버리고 판매하지 않는다.
그것을 알고부터 박규태는 벨기에에서 생활하면서 상당히 말투가 거칠고 예민해지게 되었다.
물론, 다른 리그로 옮기면서 그 부분은 많이 순화되었지만, 지금의 성격을 만드는데 벨기에에서 겪었던 인종차별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었다.
‘가벼운 도발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마도 벨기에의 수비수인 구글리모 코폴라의 도발은 그런 의미가 아닐 것이 분명했다.
그의 예상처럼 몇몇 기자들은 구글리모 코폴라의 발언이 부적절하다고 기사를 올렸다.
[한국을 우습게 보는 구글리모 코폴라.]
[벨기에의 판 다이크! 자신감 넘치는 발언? No! 한국과 아시아인을 깔보는 인종차별적 발언!]
[아르망 콤파니 벨기에 감독, “구글리모 코폴라의 발언은 경솔했다. 축구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죄송할 뿐이다.”]
[아직 정신 차리지 않은 구글리모 코폴라, 명동 거리에서 눈 찢는 사진을 SNS에 올려.]
-쯧쯧……! 저러다가 김치팍에게 얻어맞고 울겠지.
-국뽕의 수호자 규태팍이 응징하겠지.
-저거 저번에도 저러드만……. 쯧쯧.
-쟤 듣보잡이잖아? 주전 수비수인 조나단 마이어랑 줄리아노 네우만은 ‘벨기에의 철벽’이라 평가받으면서 근본력을 자랑하는데……. 판 다이크 슈퍼 하위호환은 한국까지 와서 똥을 지리네?
-벨기에랑 프랑스, 그리고 여러 유럽 국가들에서 아직도 인종차별이 만연함. 규태팍이 있는 소쇼가 특이한 거야.
-진짜……. 프랑스에서 질릴 정도로 국뽕질을 하는데도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네;
-야! 국대 선수들 나온 광고 봤냐?
-뭔데? 무슨 광고?
-여기 링크로 들어가 봐라.
-엌ㅋㅋㅋ 저게 뭐냐?
-국벤져스? 엌ㅋㅋ 뭐냐?
박규태는 축구 관련 기사를 보다가 댓글에 나온 링크에 들어갔다.
그리고 하나의 짧은 광고를 볼 수 있었다.
손형민, 이강민, 박규태, 김한솔.
유럽에서 활약하는 4명의 선수가 슈퍼히어로 랜딩으로 등장하는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국가대표를 지키는 4명의 히어로!)
(캡틴 코리아! 손형민!)
(강철 같은 미드필더! 철인 이강민!)
(괴력의 근육질 수비수! 김한솔!)
(벼락 슈팅의 신! 규태르 팍! 박규태!)
(국벤져스가 대한민국을 수호한다!)
“와……. 그때 찍었던 장면이 이렇게 나오는 거야?”
박규태는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흔들었다.
국가대표팀의 승리를 기원하며 찍은 축구게임 광고가 국뽕을 자극하는 광고로 등장했다.
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나 벨기에와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 나온 광고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반응은 뜨거웠다.
-국벤저슼ㅋㅋ? 국뽕져스인데?
-역시……. 규태르 팍은 빠지지를 않네.
-와……! 언제 저런 광고를 찍었지?
-그래! 국뽕져스! 가즈아아아아!
-구글리모 코폴라에게 매운맛을 좀 보여줘라!
스마트폰의 화면을 조용히 바라보던 박규태.
그가 조용히 스마트폰을 내려놨다.
* * *
11월 11일.
수원 월드컵 경기장.
벌써 많은 축구팬들이 관중석을 가득 채우며 오늘 경기의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상대는 중원의 탄탄함으로 우리의 점유율을 빼앗을 거다. 특히나 측면에서의 움직임을 봉쇄해야 우리에게 승산이 있어. 그런 의미에서 중앙의 투톱이 측면의 수비 가담을 활발하게 가져가 줬으면 좋겠다.”
뱅상 엘라즈 감독의 말에 오늘 경기 투톱으로 선발에 포함된 박규태와 손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차례 전술 설명을 끝낸 그는 코치들과 함께 어린 수비수들에게 수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전술적인 움직임을 다시금 설명하기 시작했다.
박규태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점점 새로운 선수들이 주전으로 자리를 잡고 있군.’
레버쿠젠에서 활약하면서 맨체스터 시티의 오퍼를 받은 김한솔을 시작으로, 최근 K리그에서 활약하는 중앙 수비수인 조상훈과 수비형 미드필더인 임호준도 오늘 경기의 주전으로 포함되었다.
이강민이 발목 염좌로 3주 정도 뛸 수 없는 상태이기에 오늘 대한민국의 전술은 4-2-3-1이 아닌 3-5-2를 꺼내 들었다.
뱅상 엘라즈 감독은 강팀인 벨기에를 상대로 수비적인 전술을 사용해서 얼마만큼이나 효율적인 수비를 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좋아! 이제 곧 경기가 시작한다. 오늘 경기는 무엇보다 인내심이 중요하다. 특히나 측면에서 많은 크로스가 올라오고 위험한 장면이 자주 나올 거야. 하지만 이런 경기에서 점수를 지키고 무승부와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면…… 다음 월드컵에서 우리는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갈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다.”
“예스! 보스!”
“좋아! 가서 너희들의 저력을 보여주고 와!”
뱅상 엘라즈 감독의 라커룸 연설이 끝나는 순간 대한민국의 선수들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복도로 향하는 선수들.
벨기에의 선수들도 마침 같은 타이밍에 맞춰 줄을 서기 위해서 복도로 향하고 있었다.
박규태는 힐끗 벨기에의 수비진을 바라봤다.
“입장하시면 됩니다.”
천천히 필드에 입장하는 두 팀의 선수들.
곧 국가를 부르고 선수들이 악수를 나누었다.
박규태는 자신을 보면서 묘한 비웃음을 내비치는 구글리모 코폴라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호랑이 무리에 있다고 고양이가 자기를 호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박규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진형이 정해지고 선수들이 각자 포메이션대로 자리를 잡았다.
박규태는 벨기에의 포메이션을 보면서 오늘 경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중앙 수비수인 조나단 마이어가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에서는 4-1-2-3에서 수비에서는 3-4-3으로 전환을 하겠다는 뜻인가?’
그렇게 된다면 투톱이 고립되는 것은 물론이고, 수비하는 데 있어서 측면이 크게 흔들리게 될 것이 분명했다.
거기다 상대는 쓰리톱이었다.
중앙 수비수의 라인이 허물어지면 3명의 수비수가 3명의 공격수를 맞닥뜨리는 상황이 나오게 된다.
완벽히 3-5-2라는 포메이션에 카운터가 되는 전술을 들고 나온 벨기에였다.
뱅상 엘라즈 감독의 표정도 썩 좋지 않아 보였다.
‘읽혔군.’
이강민이 없는 대한민국이 꺼내 들 포메이션은 분명히 한정되어 있었다.
삐이익!
뱅상 엘라즈 감독이 생각에 잠긴 사이에 주심이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을 불었다.
벨기에는 자신들이 강팀이라는 자신감에 걸맞게 주심의 휘슬을 듣자마자 공격적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당연히 대한민국의 선수들은 3-5-2 포메이션에 맞춰 중앙을 탄탄하게 막아내기 시작했다.
문제는 측면이었다.
투톱은 물론이고 중앙의 미드필더가 측면을 도와서 적극적으로 측면 수비에 가담했지만, 측면 윙 포워드인 제레미 도슨과 마르코 게라의 돌파를 막기에는 쉽지 않았다.
-벨기에의 플레이가 상당히 깔끔하면서도 날카롭습니다. 대한민국의 측면이 상당히 허무하게 뚫리고 있어요.
-피치 전체를 압박할 수 없는 3-5-2 포메이션입니다. 덕분에 벨기에가 그만큼 편하게 경기를 가져가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전반전을 최대한 버티고 후반전에 변화를 줄 생각인 것 같습니다.
쉽지 않았다.
잘 막아내고 있었지만 불안했다.
김한솔이 있는 왼쪽 측면은 그래도 괜찮았다. 맨체스터 시티가 노리는 이유를 제대로 보여주면서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오른쪽 측면 수비수.
노지민이 크게 흔들렸다.
특히 상대 윙 포워드인 마르코 게라에게 전반 10분 동안 돌파만 4번을 허용하면서 여러 번 대표팀을 위기에 빠트렸다.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잘 적응하고 있는 노지민 선수인데요. 오늘 경기에서는 마르코 게라 선수에게 너무나 무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집중해야 합니다.
기어코 중앙으로 연결된 크로스.
로멜루 두벤트가 높게 몸을 날려 헤딩을 시도했다.
오우우우우!
탄성을 내지른 관중들.
그만큼 로멜루 두벤트의 헤더는 날카로웠다.
-막았습니다!
-조훈! 환상적인 세이브로 위기 상황을 잘 넘겼습니다! 이제 전반전이 절반 지나가고 있는 상황!
-벨기에의 매서운 공격을 대한민국의 수비진이 탄탄하게 막아내면서 0 대 0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반 30분이 지났다.
오프사이드 트랩을 활용해서 2번이나 벨기에의 찬스를 저지시킨 대한민국의 수비진.
그 모습을 보면서 최전방에 있는 박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데? 오늘 수비수들이 각성이라도 한 건가? 노지민 선배만 빼면 완전히 미쳤는데 말이야.’
솔직히 노지민의 컨디션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상대가 너무 잘하는 것일 뿐.
노지민은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능력 속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조금만 버티면 됩니다! 분명히 기회가 올 겁니다.
-맞습니다!
잘 버티고 있는 대한민국.
하지만 결국에는 실책이 나왔다.
여러 번 좋은 수비를 보여주던 조상훈이 로멜루 두벤트의 현란한 개인기에 결국 공간을 내어주고 말았다.
-위기입니다!
-아아아! 로멜루 두벤트!
철썩!
조훈 골키퍼가 몸을 날렸지만, 로멜루 두벤트의 슈팅이 더 빨랐다.
골망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경기를 지켜보던 중계진이 탄식을 내뱉었다.
-아쉽습니다.
-네……! 전반 35분까지 잘 막아내던 대한민국의 수비진이 한 번의 실수로 선제골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괜찮습니다! 빨리 정신을 차리고 경기에 집중해야겠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선수들!
최전방에서 대표팀의 실점을 지켜본 박규태.
그의 옆에 구글리모 코폴라가 와서 이죽거렸다.
“역시 원숭이들은 땅에 굴러야 한다니까?”
인종차별 발언을 내뱉는 구글리모 코폴라의 말에도 박규태는 딱히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벤치에 집중되어 있었다.
‘전술은? 이대로 계속 가는 건가? 아니면 전반전 막판에 전술을 바꿔서 승부수를 일찍 볼 생각일까?’
뱅상 엘라즈 감독의 판단을 확인한 박규태.
그때 뱅상 엘라즈 감독의 외침이 들려왔다.
“플랜B! 플랜B!"
전반전이 약 10분 남은 상황에서 뱅상 엘라즈 감독의 선택은 모험이었다.
“좋아……!”
박규태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구글리모 코폴라가 옆에서 뭐라고 이상한 시비를 걸었지만, 박규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포메이션이 바뀌었습니다.
-4-4-1-1인 것 같습니다. 손형민 선수가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로 내려가고 박규태 선수가 최전방 원톱 자리에서 대한민국의 공격을 이끌게 되겠습니다.
‘흐……. 얼마만의 원톱이냐.’
대한민국의 전술이 바뀌기 무섭게 벨기에도 빠르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3-4-3에서 4-1-2-3으로 전술을 변환한 벨기에.
수비형 미드필더인 조나단 마이어가 공격형 미드필더에 있는 손형민을 철저하게 마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까와는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줄리아노 네우만과 조나단 마이어라는 두 마리의 호랑이 사이에서 여유롭게 수비를 하던 구글리모 코폴라.
조나단 마이어가 빠지고 포백의 한 자리를 차지한 그가 아까와는 다르게 불안한 수비 능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박규태는 그런 구글리모 코폴라를 상대로 적극적으로 공중볼 경합을 가져가며 벨기에의 수비진을 흔들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공을 따내는 박규태!
-조금씩 전방으로 이어지는 긴 패스가 많아진 대한민국입니다. 이제 전반전의 남은 시간은 6분 정도 남았습니다.
“큭!”
강한 몸싸움에 밀린 구글리모 코폴라가 당혹감을 드러냈다.
박규태라는 공격수가 이렇게 강력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한 모습이었다.
‘분명히 아까는 아무것도 못하는 녀석이었는데……!’
그렇게 조금씩 흔들리던 벨기에의 수비진은 기어코 구글리모 코폴라의 결정적인 실수 때문에 박규태에게 기회를 내주었다.
공중볼 싸움에서 진 구글리모 코폴라는 바닥에 쓰러진 상태로 박규태의 발리슛을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고오오오오오올!
-박규태!! 박규태가 벨기에의 수비진을 뚫고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골을 터뜨렸습니다!
-공중볼 싸움에서 공을 지켜낸 뒤에 살짝 튀어 오른 공을 감각적인 발리슛으로 처리했습니다!
와아아아아!
환호성을 내뱉는 관중들.
박규태가 바닥에 쓰러진 구글리모 코폴라를 폴짝 뛰어넘고서는 관중석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가까이 붙어서 소리쳤다.
“국뽕져스 어셈블!!”
< 국뽕 박규태 선생 #43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