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38 >
김치규태교.
박규태의 팬카페.
최근에 카페의 회원이 31만 명까지 늘어났다.
시원시원한 골 결정력.
오그라드는 독특한 세레머니, 그리고 해외에 한국을 알리고 있다는 점에서 남녀노소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런 김치규태교의 운영진은 최근에 열혈 회원 10명과 함께 프랑스 소쇼로 여행을 떠났다.
“와! 여기가 소쇼군요.”
“네, 김치규태교의 성지죠.”
“그거 컨셉이 아니었어요?”
20대 중반의 열혈 회원인 ‘Q평E평큰누나미드평평’의 물음에 김치규태교의 운영진이 얼굴을 찌푸렸다.
“어허! 컨셉이라니? 이 사람…… 이교도였어?”
“네?”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규태 님의 은총을 받지 못해서…….”
“설마…… 진짜 사이비교였어요?”
당혹감을 드러낸 그에게 운영진 중 한 사람이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하하하! 장난이에요.”
“그렇죠?”
“네, 평평 님이 이번 투어가 처음이라서 운영진분들이 장난을 좀 친 거예요.”
“아……!”
“그것보다 빨리 숙소로 가시죠. 오늘은 소쇼랑 몽벨리아르의 관광지를 돌아보고 내일 리옹전을 보러 가야 하니까요.”
급히 움직이는 김치규태교 회원들.
근처에 잡아놓은 숙소에 짐을 푼 그들이 밖으로 나섰다.
아침 늦게 도착해서 아직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황.
“일단 점심부터 먹고 움직일까요?”
“점심은 어디서 먹지?”
점심을 어디서 먹을지 의견을 나누고 있는 그들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한국에서 오신 분들인가 봐요?”
중년 흑인의 물음에 불어가 능숙한 회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며칠 쉬었다 가려고요.”
“반갑습니다. 전 파울로라고 합니다. 하하하! 소쇼에 잘 오셨습니다. 소쇼가 상당히 좋은 곳이죠. 쁘헤 라 호스 공원도 좋고, 푸조 박물관도 좋죠. 몽벨리아르 쪽으로 봐도 구경할 거리가 많죠.”
“하하하! 그것도 좋죠. 그런데 사실은 조금 일정이 빠듯해서요. 내일 소쇼랑 리옹의 축구 경기도 봐야 하고.”
그 순간 중년인의 눈빛이 달라졌다.
“오! 팍을 보러왔군요!”
“네, 저희가 사실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박규태 선수의 팬클럽 회원들이거든요!”
“이런! 제가 이렇게 중요한 분들을 붙들고 있었군요. 제가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알아서 살짝 들었는데, 점심을 어디서 먹을지 고민하고 있으신 것 같더군요.”
“네, 혹시 근처에 맛집이 있을까요?”
“음……. 프랑스 전통요리도 좋지만…… 소쇼의 팬들이 자주 찾는 펍을 추천해드리고 싶군요. 한식도 있고, 프랑스 퓨전 음식도 파는 멋진 곳이죠.”
“그렇군요. 그럼 안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하하하! 물론이죠! 한국에서 오신 분들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나게 앞장서서 김치규태교의 회원들을 안내하는 중년의 흑인은 꽤 잘 꾸며진 펍에 그들을 데리고 갔다.
“여깁니다! 소쇼의 팬들이 단골로 찾는 펍이죠. 점심도 되고, 술도 팔고! 소쇼에서 가장 장사가 잘되는 곳입니다.”
가게에 들어선 순간.
몇몇 현지인들의 눈이 그들에게 향했다. 그들의 눈빛은 마치 먹잇감을 찾은 짐승 같았다.
김치규태교의 회원들은 그 눈빛을 보고 조금 긴장했다.
그때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다가오는 사람들.
“무…… 무슨 일이시죠?”
김치규태교의 회원 한 사람이 내뱉은 말에 가게의 손님 중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두 유 노 김치팍?”
그것이 시작이었다.
“두 유 노 김치 그라탕?”
“된장 소스로 만든 꼬꼬뱅! 츄라이! 츄라이!”
“두 유 노 주-모우?”
두 유 노 시리즈의 행진.
한국에서 사용하는 밈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프랑스 현지인을 보면서 김치규태교의 회원들이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그때 한 젊은 백인 여성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자신을 FC소쇼의 경기를 관람하면서 관중들의 반응을 찍어 올리는 전문 미튜버라고 소개했는데, 그녀가 김치규태교의 회원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사랑해요. FC소쇼-몽벨리아르를 해달라고요?”
“네! 한국에 가는 외국 스타들이 자주 하는 그 말이요. ‘사랑해효 욘혜가준계.’ 팍이 인터뷰에서 알려줬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치규태교의 한 회원은 한국을 방문한 외국 톱스타들의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김치규태교의 회원들은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어설픈 불어로 천천히 또박또박.
“Je t'aime(사랑해요)! FC소쇼-몽벨리아르.”
* * *
다음날.
소쇼와 리옹의 경기를 보기 위해서 김치규태교의 회원들은 9번이 새겨진 박규태의 유니폼을 입고 숙소를 나섰다.
스타드 오귀스트 보날을 찾아가는 동안에도 태극기와 박규태 선수가 김치를 들고 있는 사진이 프린팅된 깃발을 들고 있는 그들에게 소쇼의 팬들은 호의적으로 다가왔다.
김치규태교의 회원들은 소쇼의 팬들이 자신들보다 더욱 박규태의 신봉자 같아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경기장에 입장하는 순간에도 ‘김치팍’과 ‘주모’가 계속 들려왔고,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도 박규태의 응원가가 가장 많이 팬들의 입에서 많이 나왔다.
“어! 박규태 선수다!”
“박규태 선수!!”
“빨리 태극기 흔들죠!”
“김치팍 깃발도 흔들어요!”
선수들이 필드에 입장하고 김치규태교의 회원들도 열심히 태극기와 김치를 든 박규태의 깃발을 흔들었다.
그리고 시작된 경기.
팬들이 내뱉는 격렬한 응원에 김치규태교의 회원들은 순간적으로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사이비 광신도 집단 같아요.”
“그러게요. 와……. 우리보다 더 김치규태교처럼 보이네.”
김치팍! 김치팍! 김치팍!
주-모! 주-모! 주-모!
“팍!! 리옹 녀석들에게 김치킥을 날려!”
“김치 펀치! 김치 펀치! 팍은 신이야!”
“주-모오오오!”
도대체 저런 말은 어디서 배운 것일까.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그때였다.
“아……!”
“여기서 먹혔네.”
“진짜 잘 막고 있었는데.”
잘 막고 있던 소쇼의 첫 실점.
VAR 판정을 기다렸지만, 판정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응원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전반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와아아아아아아!
박규태가 페널티킥을 유도했다.
“김치파아아아악!”
“팍!! 사랑해! 내 팬티 색깔도 김치색으로 맞출 거야!”
“나중에 우리 집으로 와! 김치 셰이크를 만들어줄게! 팍!! 사랑해! 팍! 으아아아아!”
광란에 빠진 소쇼의 팬들.
김치규태교의 회원들도 함께 기뻐했다.
그런데 페널티킥 키커는 박규태가 아니었다.
“응? 어째서?”
“뭐지? 톰 크라우저가 키커인데?”
의외의 상황.
하지만 톰 크라우저는 부담스러운 상황에서도 깔끔하게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면서 동점을 만들었다.
선수들과 같이 관중석으로 다가온 박규태.
그가 톰 크라우저와 함께 젖병 세레머니를 했다.
그제야 팬들은 박규태가 어째서 페널티킥을 양보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빠가 된 걸 축하해 톰!”
“톰! 넌 멋진 녀석이야!”
“이렇게만 가자! 리옹의 녀석들을 엉망으로 만들어!”
팬들의 축하 속에서 톰 크라우저가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 전반전이 끝났다.
1 대 1 동점으로 전반전이 끝났지만, 전체적인 경기력은 리옹이 훨씬 앞서고 있었다.
소쇼의 팬들은 계속해서 응원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물든 김치규태교의 회원들도 광신도처럼 소쇼와 박규태의 응원가를 부르며 후반전을 기다렸다.
* * *
“예상보다 실점이 적어서 만족스러웠다.”
라커룸에 들어선 크리스티 조엘 감독은 생각보다 준수한 활약을 보여준 수비진을 칭찬했다.
“최소 2점에서 최대 3점을 허용할 것이라 여겼던 전반전에서 이렇게 막아냈다는 것은, 후반전에 우리의 플레이를 가져가기 훨씬 편하다는 뜻이겠지.”
2 대 1로 따라가야 하는 상황과 1 대 1의 동점 상황은 명백히 다르다는 것을 선수들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표정이 나쁘지 않았다.
“미드필더진은…… 반성해. 최소한 점유율 40%는 만들었어야 했어. 하지만 36%까지 밀렸지.”
확실히 오늘 경기에서 소쇼의 미드필더진은 썩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좋아, 뱅상이 아예 중앙 미드필더 지역까지 내려가서 볼을 운반해. 4-5-1이 되어도 좋으니까. 후반전에는 점유율을 크게 끌어올릴 거야. 알겠지?”
“알겠습니다.”
“테오! 자신 있게 드리블하는 것은 좋지만, 최소한 중앙에서 누가 뛰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들어가. 측면을 뚫기 힘들면 폴 루크와 스위칭을 하면서 상대 수비를 흔들어도 좋아.”
“네, 그렇게 할게요.”
“좋아. 후반전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명확해! 전방부터 시작하는 강한 푸쉬! 최전방으로 찌르는 긴 패스. 마지막으로 테오 나두와 폴 루크의 스위칭. 다 기억했지?”
“물론이죠.”
“좋아! 좋아! 후반전에 역전을 해보자.”
“할 수 있다!”
선수들의 외침에 크리스티 조엘 감독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라커룸을 나섰다.
그렇게 하프타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리옹은 전반전보다 더 강한 전방압박을 시도하는 소쇼의 움직임에 당혹감을 드러냈다.
-소쇼가 후반전이 시작하기 무섭게 강하고 거칠게 리옹을 압박합니다. 게겐 프레싱이 생각나는 움직임이에요.
-맞습니다. 크리스티 조엘 감독은 점수가 필요하다면 뒷공간의 돌파를 허용하더라도 저렇게 강하게 상대 수비진을 압박하는 전술을 잘 꺼내 듭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공을 빼앗았습니다!
-테오 나두의 슛!
-아! 골대를 맞고 넘어갑니다.
후반전의 시작과 동시에 소쇼는 리옹의 수비진을 집요하게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두어 번의 뒷공간 돌파를 허용했지만, 마르코 비에베 골키퍼의 선방으로 실점을 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위험한 전술.
하지만 리옹을 상대로 꽤 유효하게 먹히고 있었다.
덕분에 전반전에 90%까지 올라갔던 리옹의 패스 성공률이 79%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전술 변화의 결실을 얻게 되었다.
리옹의 패스를 빼앗은 테오 나두가 크로스를 빠르게 올렸고, 박규태는 그 크로스를 머리로 떨궈주었다.
그 공을 향해 빠르게 달려든 뱅상 르노가 날카로운 슈팅을 가져가면서 골을 터뜨렸다.
-고오오오오올!
-소쇼! 이겁니다! 위험해도 이렇게 해야 합니다! 리옹의 패스를 빼앗고 시작된 역습이 그대로 먹혔습니다.
-드디어 역전입니다! 2-1로 앞서나가는 소쇼!
크리스티 조엘 감독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툴루즈전처럼 잡아낼 수 있다!
그는 확신했다.
하지만 리옹은 달랐다.
유럽 챔피언스리그의 단골인 그들은 기어코 소쇼의 빈틈을 노려서 다시금 동점을 만들었다.
-이브라힘 디아냐의 골입니다.
-어떻게 저런 시야를 갖췄죠? 아르빌 페키르와 연계를 하면서 소쇼의 수비진을 무력화시켰습니다.
-점수는 다시 2 대 2! 경기가 재미있게 흘러갑니다.
리옹의 간판 공격수인 이브라힘 디아냐의 골.
소쇼의 선수들이 아쉬움을 감추고 다시 경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점을 만든 리옹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기어코 골을 터뜨리면서 다시 역전에 성공한 리옹.
점수가 3 대 2가 되는 순간 소쇼의 홈팬들이 외치던 응원도 조금은 기세를 잃었다.
후반전도 이제 10분 정도 남은 상황.
역전은 물론이고 동점도 쉽지 않았다.
리옹은 수비수를 교체로 투입하면서 완전히 내려앉았고, 소쇼는 리옹의 단단한 수비에 막혀서 기회를 못 잡고 있었다.
급히 루카스 토로를 투입하는 크리스티 조엘 감독.
오늘 경기에서 별다른 활약을 못 했던 폴 루크를 측면으로 보내고 경험이 많은 루카스 토로를 중앙에 투입했다.
-디디에르 아르카와 교체되어 필드에 투입된 루카스 토로가 중앙으로 배치됩니다.
-이렇게 되면…… 소쇼는 측면에서 기회를 만들어보겠다는 의중인데……. 글쎄요.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후반 36분.
측면으로 옮긴 폴 루크가 날카로운 돌파에 성공하면서 리옹의 수비진을 상대로 틈을 만들었다.
샤뮤엘 벨라노바를 피해서 중앙으로 파고든 테오 나두의 발에 정확하게 연결된 패스.
테오 나두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슛을 쐈다.
철썩!
-고오오오오오올!
-다시 점수는 3 대 3!! 테오 나두가 경기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환상적인 슈팅을 넣었습니다!
-대단합니다! 소쇼!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리옹의 알랭 카르노바 감독이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이라도 공격적으로 나서야 할까.
그렇게 생각을 했지만, 이미 시간은 40분을 넘어서 후반전의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무승부를 지키겠다는 리옹과 만족하지 않고 더욱 공격적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하는 소쇼.
삐이익!
그렇게 끝날 것 같은 경기에 균열이 생겼다.
후반 44분.
소쇼가 프리킥 기회를 얻었다.
꺼림칙한 시간대에 나온 반칙.
엎어진 박규태와 그를 바라보는 사뮤엘 벨라노바.
몸을 털고 일어난 박규태는 그의 옆에서 깐죽거렸다.
“오! 코리안 스타일이 그렇게 맛보고 싶었어?”
“닥쳐. 죽여 버리기 전에.”
사뮤엘 벨라노바의 짜증에 박규태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삐이익!
주심이 휘슬을 불었고, 프리킥 키커인 폴 루크가 손을 번쩍 들고는 공을 향해 빠르게 뛰어들었다.
낮고 빠르게 올라가는 공.
박규태는 본능에 몸을 맡겼다.
빠르게 달려가 머리부터 내민 그는 수비수와 충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퍼억!
스터드가 그의 가슴 앞을 스쳤다.
하지만 공은 그의 머리에 맞고서 골대로 흘러 들어갔다.
수비라인을 뚫고 박규태가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상황이었기에 골키퍼는 쉽게 반응할 수 없었다.
-고오오오오오오올!
-박규태! 박규태! 이번에도 슈퍼 원더골!!
-김치팍! 그가 오늘 경기를 끝내는 환상적인 원더골을 터뜨렸습니다! 리옹의 수비진이 그를 막지 못했습니다!
-대단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후반전이 딱 1분 남은 상황에서 골이 터졌습니다!
-아! 다 잡은 경기를 놓쳤습니다! 리옹!
유니폼의 가슴 부분이 상대 수비수의 스터드 때문에 찢어지고 살짝 피가 나오는 상태였지만, 박규태는 신경 쓰지 않고 빠르게 홈 관중들이 있는 방향으로 미친 듯이 달렸다.
그리고 자제하던 무릎 슬라이딩을 하며 소리쳤다.
“내가!! 누구라고!!!”
소쇼의 홈팬들이 광신도처럼 소리쳤다.
“한국에서 온 슈퍼 김치팍!!”
김치규태교의 회원들도 그 광기에 물들었다.
“으아아아! 김치팍 님이 날 보셨어!”
“아니! 우리가 가져온 태극기를 본 거야!”
“세레머니를 하면서 내 눈을 똑바로 보셨어!”
“네 옆에 있는 아가씨를 본 거야!”
“아니야! 국뽕에 물든 날 선택한 거야! 날 김치가 가득한 발할라로 데려가실 거야!!”
광기에 물든 그들이 미친 듯이 태극기를 흔들었다.
< 국뽕 박규태 선생 #38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