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31 >
‘아무래도 광고로 국뽕도 좀 채웠고, 필요한 순간에 골이나 도움을 기록한 것도 영향을 끼친 것 같네.’
박규태는 월드컵 결산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의 그는 처음으로 월드컵에 출전한 2030 월드컵에서 단 한 골도 못 넣었다.
솔직히 경기력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자만한 거지. 동유럽에서 좀 버틴다고.’
경험도 쌓이고, 피지컬도 꽤 탄탄해졌기에 동유럽에서 좀 통했다.
남들이 보면 버티는 수준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가 생각하기에는 계속 동유럽에서 있었다면 크로아티아나 다른 동유럽 국가의 프로팀에서 더 많은 경기를 경험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우쭐했던 박규태는 자신의 월드컵 첫 출전에서 세계적인 선수들에게 압도당해서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팀도 조별예선에서 탈락했다.
‘그래서 국뽕을 채우지 못했지.’
그는 은퇴하기 전까지 꽤 많은 경기에 나섰지만 월드컵에서 크게 뚜렷한 성과를 드러내지 못했으니, 월드컵 결산을 모를 수밖에 없었다.
조용히 실버 카드를 바라보는 박규태.
“자, 그러면 긁어볼까?”
그렇게 좋은 보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실버 카드에서 나온 재능들도 상당히 쓸만한 수준이었다.
-‘실버 카드’를 개봉하시겠습니까?
- or
“당연히 예스지.”
은빛 카드가 반짝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박규태는 솔직히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실버에서 나오는 카드가 꽤 도움은 되지만, 플래티넘 카드만큼의 임팩트는 없지. 내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능력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빙글빙글.
빠르게 회전하던 카드가 천천히 회전을 멈추기 시작했다.
곧 작은 알림음이 들린 뒤 박규태는 카드의 앞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 오오오오! 오오오!”
박규태가 환한 표정으로 카드를 확인했다.
* * *
박규태의 특징을 물으면 모두가 이렇게 대답했다.
-기본기가 부족하지. 개인기나 퍼스트 터치…… 이런 부분?
-투박해. 너무 투박해서 좋은 기회를 많이 놓치지.
-‘리그 되’에서 보여준 환상적인 활약도 압도적인 골 결정력이었기에 가능했지. 솔직히 기술적으로 뛰어난 공격수는 아니야.
-188㎝의 큰 키를 갖춘 공격수치고는 주력이 꽤 빠른 편이지만, 솔직히 엄청 빠르다고 볼 수 없지.
-피지컬은 유럽에서도 충분히 통하지.
-경기를 보는 시야도 좋고, 위치선정도 준수하고, 많이 뛰면서 상대 수비수를 압박하는 플레이가 좋은 선수.
활동량이 많고, 골을 잘 넣는 투박한 타겟터.
그게 박규태의 특징이었다.
[두 유 노 클럽 플레이어]
이름: 박규태
나이: 만 20세.
<루이스 수아레스의 골 결정력>
<한기환의 퍼스트 터치>
‘한기환의 볼 터치…….’
실버 카드에서 의외로 좋은 재능이 튀어나왔다.
한기환.
지금은 17살로 U-19 대표팀에서 뛰고 있었다.
거기다 회귀 전에 박규태와 같이 아시안컵에서 같은 팀으로 뛰었던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준수한 패스 능력과 수비 능력으로 주목받은 그는 퍼스트 터치가 상당히 좋았던 선수였다.
‘이건 대박이다. 실버 카드에서 뽑을 수 있는 최고의 재능이 나온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기본기와 발기술 하나만으로도 유럽에서 뛸 수 있는 재능이라고 평가받은 한기환은 잦은 부상과 빈약한 피지컬로 유럽행을 포기했고, 결국은 한국과 일본을 전전하며 활동하다가 박규태보다 상당히 이른 나이에 은퇴했었다.
박규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실버 카드에서 나올 재능이 아니야.’
회귀 전에 얻었던 실버 카드들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한기환의 재능만큼 좋지는 않았다.
당연히 세계적으로 뛰어난 발기술을 갖춘 선수들과 비교하면 부족한 점이 많은 재능이었지만, 지금의 박규태에게는 상당히 도움이 되는 재능이었다.
‘볼 터치가 엉망이어서…… 놓친 기회가 얼마나 많은데.’
조금씩 설레기 시작한 심장.
박규태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빨리 이 재능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게 분위기를 잡던 박규태.
갑자기 울리기 시작한 스마트폰 때문에 다잡았던 분위기가 깨지자 얼굴을 찌푸렸다.
(김치팍! 김치팍! 김치김치 팍팍!)
“젠장…….”
아무래도 평생의 흑역사로 남을 것 같았다.
* * *
2026-27시즌이 다가왔다.
월드컵이 끝나기 무섭게 구단들은 월드컵에서 활약한 스타들을 지키거나 빼오기 위해 노력했다.
소쇼도 월드컵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했던 박규태를 지키기 위해 조심스럽게 재계약을 물었지만, 저번과 다르게 박규태는 단호하게 재계약을 거절했다.
‘이번 시즌까지는 소쇼에서 뛰겠다. 하지만 재계약을 할 생각은 없다.’
크리스티 조엘 감독은 어떻게든 박규태를 붙잡을 생각이었지만, 구단은 오히려 박규태의 이적에 관심이 많았다. 짠돌이에 돈을 밝히는 구단주에게 박규태의 이적은 큰돈을 가져다줄 것이 분명했으니까.
“멍청하기는. 팍의 이적허용조항이 고작 830만 유로(한화로 약 110억 원)라고! 재계약을 해서 팍을 지키면…… 830만 유로가 아니라 지금 몸값의 10배인 8,300만 유로가 될 텐데……! 멍청한 구단주!”
크리스티 조엘 감독은 분통이 터졌다.
그래도 기회는 남아 있었다.
“팍이 조건을 달았지 않습니까?”
“최소한 유로파 리그에 진출하면, 재계약을 하겠다는 조건이었지. 그래, 그런 조건이 있었지.”
“네,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쉬울 것 같나? 승격팀에게 고작 1,100만 유로를 지원해준 구단을 보고도? 젠장! 망했어! 망했다고!”
비관적인 크리스티 조엘 감독과 다르게 귀 몬구아르 수석코치는 침착했다.
구단의 짜디짠 지원과 최악의 상황에서도 크리스티 조엘 감독은 항상 답을 찾았다.
그렇기에 승격에 성공했고, 이번 시즌을 ‘리그 앙’에서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거기다 저렇게 푸념을 내뱉어도 크리스티 조엘 감독은 쉽게 소쇼를 떠날 수 없었다. 구단주의 손녀가 그의 아내였으니까.
괜히 프랑스를 사랑하는 잉글랜드인이 아니었다.
소쇼의 재정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저렇게 푸념과 욕을 내뱉지만, 결국은 인정하고 해답을 찾기 위해 크리스티 조엘은 이번에도 머리를 쥐어뜯을 것이다.
“일단…… 수비수! 그리고 윙어가 필요해.”
“자유계약 대상자 중에서 준수한 실력을 갖춘 선수를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임대로 데려올 선수도 알아보죠.”
“부탁하지.”
생각보다 크리스티 조엘 감독과 귀 몬구아르 수석코치의 수완은 좋았다.
금방 선수들을 소쇼로 물어왔다.
본머스에서 방출된 중앙 수비수인 레이 파슨을 공짜로 데려왔고, 울브스 출신의 유망주 윙어인 테오 나두를 1년 임대로 데려왔다.
특히나 테오 나두는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13경기 3골 4도움을 기록한 뛰어난 선수였다.
점점 갖춰지는 스쿼드.
크리스티 조엘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선수들을 데려왔고, 동시에 원활한 자금 활용을 위해서 필요 없는 선수를 이적시장에 내놓기 시작했다.
벤자민 몽맹의 라 벨리숀 이적 협상을 시작으로, 이스마엘 베일리까지 이적시장에 내놨다.
인기는 나쁘지 않았다.
벤자민 몽맹은 골 결정력이 문제일 뿐 다른 부분에서는 충분히 리그 앙에서도 먹힐 수준의 공격수였다. 라 벨리숀은 물론이고 다른 리그 앙의 팀들도 관심을 드러내며 여러 가지 딜을 해왔다.
이스마엘 베일리는 툴루즈에서 딜을 해왔다.
준수한 중앙 미드필더 자원이 급했던 툴루즈에게 이스마엘 베일리는 꽤 관심이 가는 선수였을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선수단이 개편되었고, 드디어 선수들의 휴가가 끝났다.
새로운 시즌을 위한 준비.
프리시즌이 찾아왔다.
* * *
테오 나두.
울브스가 기대하는 유망주 윙어.
그는 지난 시즌에 울브스에서 뛰어난 활약을 했지만, 같은 자리의 경쟁자인 알프레도 알바레즈의 어마어마한 활약에 밀려서 임대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소쇼의 임대 제의가 왔을 때, 그는 임대 제의를 무시했다.
이제 막 승격한 소쇼보다는 분데스리가의 중위권 팀이나 세리에A의 몇몇 팀으로 임대 이적이 그의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크리스티 조엘 감독의 진심 어린 자필편지와 그와 호흡을 맞출 공격진의 성적을 보고 결심했다.
소쇼에서 잠깐이지만 멋진 커리어를 쌓겠다고.
“저 선수가 소쇼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
“리그 되에서 몇 골을 넣었는데요?”
“시즌 43골? 음…… 많이 넣었네.”
“그래도 ‘리그 앙’에서는 힘들겠죠.”
“그래서 감독! 20골을 원해요? 20도움을 원해요?”
자신감이 넘치는 테오 나두.
팀 자체에서 치러진 청백전에서 그가 왜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는지 실력으로 알 수 있었다.
“죽이는군.”
“제2의 ‘호나우지뉴’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아. 저 드리블과 개인기는 보고도 막을 수 없을걸?”
“브라질에서 프랑스로 귀화했다고? 브라질이 멍청한 선택을 했어. 저런 괴물 같은 테크니션을 프랑스에게 내주었으니까.”
“팍이랑 같은 나이래. 도대체 2006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최근에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들이 대부분 2006년생이잖아.”
박규태도 테오 나두의 드리블에 감탄을 내뱉었다.
저것은 축구가 아니었다.
‘그냥 예술이지.’
골 결정력이나 패스가 미숙해서 아직 유망주 레벨에 머무르고 있을 뿐, 경험이 쌓이면 무조건 월드클래스로 성장할 것이 분명한 선수였다.
‘회귀 전에도 좋은 선수였지. 하지만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전성기가 짧았어.’
무릎 슬라이딩 세레머니를 하다가 다친 부위가 고질적인 부상으로 발전하면서 전성기의 절반을 날렸다.
그래도 수준급의 선수인 것은 사실이었다.
정말 대단한 선수였다.
그래서 기대감이 들었다.
박규태가 속한 A팀의 공격을 이끄는 테오 나두.
그가 빛나는 드리블로 B팀의 수비진을 초토화시켰다.
그리고 슈팅을 가져갔다.
“나이스!”
“잘 막았어!”
“와……. 진짜 드리블이 미쳤는데?”
하지만 골키퍼에게 슈팅이 잡혔다.
모두 그의 드리블에 놀라서 소리쳤지만, 박규태는 뭔가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테오 나두가 원래 저렇게 슈팅이 형편없었나?’
그건 그가 알고 있는 테오 나두가 아니었다.
드리블만큼 환상적인 슈팅이나 패스를 갖춘 선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저렇게 한심한 수준까지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패스도 최악이었다.
그냥 뚫기는 하는데, 마무리가 어설펐다.
그래도 골은 넣었다. 그가 갖춘 드리블과 개인기가 굉장했으니까.
테오 나두가 골을 넣고 박규태에게 다가왔다.
“들었어. 네가 지난 시즌에 ‘리그 되’를 초토화하며 구단 역사상 한 시즌에 가장 골을 많이 넣은 공격수라고.”
“그게 뭐?”
“하지만 이제는 다를 거야. 내가 어나더 레벨을 보여주지.”
그렇게 말을 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테오 나두를 바라보던 박규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뭔가, 프라이드가 상당하네.’
조금은 우습게 보인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뭔가 보여줘야 할 것 같은 상황.
다행히도 기회는 빠르게 찾아왔다.
테오 나두의 돌파로 이번에도 B팀의 측면이 뻥 뚫렸다.
하지만 아까처럼 중앙으로 돌파할 수 없었다.
박규태가 미드필더까지 내려와 돌파를 저지했으니까.
‘칫! 어쩔 수 없지.’
그도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빈약한 킥 능력.
도저히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슈팅, 패스, 크로스.
모든 것이 아쉬웠다.
어쩔 수 없이 돌파를 그만두고 중앙에 있는 선수에게 패스를 찔러 넣은 테오 나두.
하지만 패스가 너무 세게 들어갔다.
패스는 그가 원하는 선수가 아닌 박규태에게 향했다.
그것을 보고 테오 나두가 얼굴을 찌푸렸다.
팀에 합류하기 전에 팀원들의 정보를 열심히 공부했고, 박규태의 퍼스트 터치가 그리 좋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망했네!’
역습을 막기 위해서 다시 돌아가려는 순간, 그가 놀라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툭!
강하게 들어온 패스를 가볍게 왼발로 잡아낸 박규태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슈팅을 가져갔다.
그건 도저히 퍼스트 터치가 허접한 선수로 보이지 않았다.
공을 잡는 순간부터 슈팅까지, 너무나도 부드럽게 이어졌다.
철썩!
그건 바로 테오 나두가 바라는 이상향과 같은 슈팅이었다.
그의 투박한 킥 능력과 전혀 달랐다.
멍하니 골대를 바라보던 테오 나두.
그의 앞에 박규태가 다가와 테오 나두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어나더 레벨이라고?”
“…….”
“내가 보기에는 ‘어낮어’ 레벨 같은데?”
알 수 없는 한국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테오 나두의 두 눈이 승부욕에 물들었다.
< 국뽕 박규태 선생 #31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