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23 >
확실히 전반기와 후반기는 달랐다.
아무리 젊음을 다시 만끽하고 있는 박규태라도 한 시즌을 보내면서 계속해서 좋은 컨디션과 체력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리고 찾아온 르 아브르전에서 그는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골은 넣었지.’
사실 공격수가 골만 넣으면 장땡이지만, 솔직히 움직임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다음 경기는 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옐로카드를 받았기에 경고 누적으로 어쩔 수 없이 얻은 휴식이었다.
다음 경기인 QRM전을 통째로 쉬게 된 것이 다행이었다.
‘최근에 살짝 체력적으로 힘들었으니까.’
거기다 다음에 선발로 나설 경기를 생각하면 너무나 필요했던 휴식이었다.
리그 앙의 맹주.
파리 생제르맹이 소쇼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지금의 소쇼로서는 이길 수 없는 경기다.
‘내가 점수를 만들어도 상대가 더 쑤셔 넣을 거니까.’
박규태가 노력해도 PSG의 수비진을 상대로 겨우겨우 1골을 넣을 수 있지만, 상대의 공격진은 기본 3골을 그들에게 쏟아 넣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부딪쳐보고 싶었다.
컨디션이 좋은 상태로 싸워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휴식을 반겼다.
하지만 그의 생각처럼 1월 27일에 치러진 파리 생제르맹과의 경기에서 소쇼의 수비진은 크게 무너지면서 점수를 너무 쉽게 내주었다.
-아! 박규태 선수가 분투했지만 아쉽게도 4 대 1이라는 점수로 파리 생제르맹이 ‘쿠페 데 라 리그’ 결승에 진출합니다!
-너무 아쉽습니다. 수비가 조금만 더 집중했다면…… 좋았겠지만, 상대는 파리 생제르맹입니다.
-네, 소쇼가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강력한 팀입니다.
호베르투 다 실바와 무라트 카잔키가 이끄는 파리 생제르맹의 공격진을 막기에는 소쇼의 수비진은 너무나도 부족했다.
박규태가 선취점을 터뜨리면서 경기를 이끌어나간 것도 정말로 잠깐이었다.
바로 호베르투 다 실바의 동점골이 터졌으니까.
연이어 터진 무라트 카잔키의 역전골.
그리고 이어지는 쐐기골들.
파리 생제르맹은 소쇼를 상대로 리그 앙의 절대자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그래도 박규태의 경기력은 나쁘지 않았다. 파리 생제르맹을 상대로 골도 넣었으니까.
오히려 더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덕분에 한 사람은 일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타타타타닥.
타타닥.
타타닥타닥.
빠르게 움직이는 손가락.
키보드 소리가 깊게 울리는 사무실.
르르에 콜리쉬가 기지개를 켰다.
“샬케04가 어지간히도 팍에게 빠졌나 보군.”
최근 샬케의 관계자와 많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어떻게든 박규태와 르르에 콜리쉬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안해서 어쩌지…….’
샬케04를 제외한 다른 팀들도 점점 박규태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 박규태에게 큰 관심이 없었던 레알 소시에다드는 이번에 사비 알론소 감독이 직접 경기를 보려고 프랑스까지 왔었다.
‘PSG전을 보고 놀란 표정으로 돌아갔지.’
아무리 로테이션 멤버로 갖춰진 수비진이라지만, 파리 생제르맹이었다.
그들은 4대 리그 중위권 팀의 주전급 수비수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 수비진을 상대로 박규태가 선취점을 만들었다. 그것도 20m를 돌파해서 만든 득점이었다.
그 장면이 퍽 인상 깊었던지 레알 소시에다드를 제외하고도 제법 많은 팀이 박규태의 몸값을 물어봤다.
‘당장 이적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EPL의 중상위권 팀부터 4대 리그에 속한 상위권 팀들까지 모두 박규태에게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샬케04는 더욱 급해졌고, 박규태의 에이전트인 르르에 콜리쉬를 신나게 괴롭히고 있었다.
‘다음 시즌까지는 움직이지 않는다.’
물론, 르르에 콜리쉬는 다음 시즌까지는 프랑스에서 뛰고 싶다는 고객의 요구를 확실하게 들어줄 생각이었다.
띠리리리리링!
커피를 마시며 잠깐 쉬고 있는 르르에 콜리쉬가 피곤한 표정으로 다시 울리는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 * *
PSG전이 끝나고 박규태는 깨달았다.
회귀 전의 박규태와 지금의 박규태는 전혀 다른 선수라는 사실을 말이다.
‘리그 앙에서도 먹힌다.’
스타드 렌은 물론이고 PSG전에서 득점을 기록하면서 그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기대했다.
지금 상태에서 첫 번째 시련을 돌파하고, 보상으로 압도적인 재능을 하나 더 얻는다면 어떨까.
절로 웃음이 나왔다.
“흐흐흐.”
박규태는 더욱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두 유 노 클럽이 얼마 남지 않았어.’
지금도 가까운 ‘두 유 노 클럽’을 순식간에 가입하고 한국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축구선수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남은 시련을 이겨나간다면.
보상으로 압도적인 재능을 많이 얻게 된다면.
메시나 호날두를 뛰어넘는 선수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성장하게 된다면, 더는 ‘두 유 노 클럽’에 연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팍! 혼자서 뭐해?”
엔조 마이어의 물음에 이미 머릿속으로는 메시와 호날두를 제치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축구선수가 되어 있던 박규태가 뒤늦게 대답했다.
“아! 메시와 호날두. 두 선수와 관련된 생각을 하고 있었어. 워낙 훌륭한 선수들이었으니까.”
“그렇지! 시대를 관통한 최고의 선수들이었으니까.”
엔조 마이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위험한 질문을 내뱉었다.
“팍은 누가 최고라고 생각해?”
그 순간 몸을 풀던 몇몇 선수들의 눈이 돌변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선수는 주장인 소피안 다함이었다.
“당연히 메시지.”
그의 눈에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그는 진성 꾸레였으니까.
벤자민 몽맹은 그런 소피안 다함을 보며 비웃었다.
“하……. 그 키 작은 친구가 최고의 선수라고? 멍청하기는. 당연히 호날두가 최고의 선수지!”
그리고 그 대답을 하기 무섭게 몇몇 선수들이 메시가 더 뛰어나다, 호날두가 더 뛰어나다 설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박규태는 슬쩍 엔조 마이어에게 물었다.
“넌 누구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지단의 팬이라서 호날두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네. 지단이 레알 마드리드 선수였으니까.”
박규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팍은 어떻게 생각하는데?”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메시와 호날두로 나뉜 선수들의 의견.
섣불리 말하면 질타를 당할 것이 분명한 상황.
박규태는 어느 선수의 유명한 화법을 꺼내 들었다.
“나 박규태는 박규태가 최고의 선수라고 생각한다.”
순간적으로 벙찐 선수들.
그가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 * *
2월이 찾아온 것은 금방이었고, 겨울 이적시장도 금방 문을 닫았다.
소쇼는 1월 말에 장도 푹스와 아바마라 응게산, 두 선수를 각각 레알 소시에다드와 스포르팅 히혼으로 이적시키며 우측면의 자원을 모두 팔아버렸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선수를 영입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유망주 출신의 루카스 토로를 데려왔다.
프랑크푸르트와 레반테에서 꽤 오랜 시간을 활약하면서 경험이 쌓인 베테랑이었다.
많게는 20대 초반에서 적게는 10대 중후반인 소쇼의 젊은 선수들에게 많은 경험을 전수해줄 베테랑 선수의 영입에 소쇼의 팬들이 작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거기다 폴 루크와 뱅상 르노와 같은 젊은 유망주까지 싸게 데리고 오면서 미래까지 챙겼다.
몇몇 전문가들은 측면 수비수로 좋은 활약을 보여준 장도 푹스를 판 것이 옳지 않은 결정이라고 성토했지만, 그 빈자리는 미카엘 파리스가 대체할 수 있었기에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리고 찾아온 2월 2일 스트라스부르전.
새롭게 영입한 선수들의 데뷔전이 될 경기였고, 덕분에 많은 소쇼의 팬들은 기대와 동시에 걱정을 살짝 내비쳤다.
경기 전.
박규태보다 한 살이 어린 폴 루크가 긴장감과 기대감이 섞인 표정으로 필드에 입장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 친구가 소쇼에 왔지?’
박규태는 폴 루크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훗날 마르세유의 주전 미드필더로 성장하는 선수였다.
그리고 나중에 발렌시아로 이적해서 이강민 선수와 함께 미드필더진을 구성하면서 한국에도 이름을 날린다.
그런 선수가 소쇼로 왔다.
‘점점 내가 알고 있는 미래랑 계속 달라진다.’
지난여름부터 이번 겨울까지, 참 많은 선수가 팀을 옮겼다.
이미 많은 부분이 그가 알던 미래와 달랐다.
‘모르겠다. 평행세계라도 되는 걸까? 아니면…… 내가 사실은 통속의 뇌라던가. 원래는 죽었는데…… 미친 과학자가 내 뇌에 전기 자극을 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
박규태가 고개를 흔들었다.
쓸데없는 잡생각을 털어버린 그가 숨을 크게 내뱉었다.
곧바로 마음을 다잡은 박규태.
그가 필드에 입장했다.
-박규태, 이번에도 날카로운 슈팅!
-스트라스부르의 수비진이 크게 흔들립니다. 확실히 박규태 선수는 이미 ‘리그 되’를 넘어선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전반전이 시작되기 무섭게 박규태는 스트라스부르의 중앙 수비수인 크리스티안 비엘리크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탄탄한 수비를 자랑하는 그를 상대로 박규태는 여유까지 느껴질 정도로 뛰어난 돌파와 단단한 포스트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박규태 선수! 공중볼을 잡았습니다!
-이어지는 벤자민 몽맹의 슛!!
-아! 아깝습니다! 오늘 소쇼의 선수들, 특히나 박규태 선수와 벤자민 몽맹 선수의 몸이 정말 가벼워 보입니다.
-네! 전반전 5분이 지났는데, 벌써 좋은 기회를 만들면서 좋은 분위기를 이끌고 있습니다.
“제길…….”
스트라스부르의 중앙 수비수.
크리스티안 비엘리크는 자신을 단단한 몸으로 밀어내고 공중볼을 잡아내는 박규태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툭!
가볍게 그를 밀어낸 박규태가 빠르게 공을 치고 나아가면서 그를 제쳤다.
속도가 빠른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따라잡을 수 없었다.
‘젠장……!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어?’
투박한데도 위협적이었다.
툭!
중앙으로 파고든 선수가 눈에 들어오자 박규태가 가운데로 가볍게 패스를 내어주었다.
동시에 공을 받은 벤자민 몽맹은 강하게 슈팅을 가져갔다.
대애애앵!
골대를 뒤흔드는 강슛.
박규태가 벤자민 몽맹에게 따봉을 보냈다.
“짜식……! 넌 오늘도 1따봉 적립이다.”
그러고는 주변을 살폈다.
‘벤자민 녀석, 오늘 몸이 너무 가벼워서 오히려 슈팅이 아주 개발새발로 날아다니는데? 이거 슈팅을 처리할 기회가 오면 주저 없이 내가 차야겠어.’
컨디션이 너무 좋은 게 오히려 독이 되다니.
박규태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전반전 33분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드디어 박규태에게 슈팅을 할 기회가 찾아왔다.
오늘 첫 데뷔전을 치르는 폴 루크가 내어준 대지를 가르는 날카로운 패스가 박규태의 오른발에 딱 걸렸다.
방향을 전환한 박규태.
그가 반 박자 빠른 타이밍에 왼발을 휘둘렀다.
손형민이 자주 골을 만들었던 ‘형민존’에서 터진 감각적인 왼발 슈팅이 그대로 휘어지며 골대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야말로 양발 간지의 위엄이었다.
철썩!
골망을 뒤흔든 박규태의 선취골.
와아아아아!
골을 넣는 순간, 박규태는 이번에도 팬들이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그리고 무릎 슬라이딩을 하려는 순간 멈칫했다.
‘내 무릎 연골이 걱정된다고 했지.’
스포츠 기사란을 살피다가 자신의 무릎 슬라이딩이 너무 위험해 보인다는 축구 팬의 댓글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무릎을 굽힌 상태의 엉거주춤한 자세가 된 상황.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는 선수들과 팬들을 보며 급히 박규태가 자신의 세레머니를 바꾸었다.
예전에 꽤 유명했던 춤.
박규태가 쏴이의 말춤을 추기 시작했다. 곧 소쇼의 팬들이 같이 엉성하게 말춤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소쇼의 홈 경기장.
스타드 오귀스트 보날이 이번에도 한국 출신의 스트라이커에게 국뽕으로 범벅이 되기 시작했다.
< 국뽕 박규태 선생 #23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