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21 >
소쇼의 라커룸.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모든 지표에서 압도적으로 밀리는 경기는 정말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표정은 여러 가지로 뒤범벅이 되어서 박규태가 보기에 썩 좋지 않아 보였다.
“최악이었다.”
크리스티 조엘 감독의 발언에 모두가 공감했다.
그들이 보여주고 싶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레드카드를 받은 장도 푹스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장! 고개를 숙이지 마.”
“네, 보스.”
“레드카드는 언제든 나올 수 있는 거야.”
“알겠습니다.”
“모두 내 말에 집중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엉망이었던 경기력이 아니야. 우리가 지금 뭘 하고 있지?”
“축구를 하고 있죠.”
“그런데 어째서 상대의 골대를 노리지 않고 있는 거지? 전반전에 제대로 된 기회조차 만들지 못했어. 유효 슈팅이 딱 하나라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이건 경기력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가짐의 문제야.”
“하지만…… 공격적으로 나서게 되면 수비진을 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엠마누엘이 더 신나게 날뛸 텐데요.”
“어차피 1 대 0으로 지고 있어. 거기서 한 점을 더 내주면 어때? 어차피 2 대 0이나 3 대 0이나 지게 되는 건 확실한데!”
“…….”
“하지만 점수를 만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도전해! 1 대 1로 점수를 만들면 연장까지 갈 수 있고, 연장에서도 버틴다면 승부차기까지 갈 수 있어.”
마음가짐을 고치라는 크리스티 조엘 감독의 말에 박규태가 거들었다.
“2골을 넣으면 연장까지 갈 필요도 없죠.”
“굿. 좋아! 그런 마인드가 필요해. 실수해도 좋아! 조금 더 도전적으로 상대방과 경합해!”
그의 말을 이해한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겁먹고 움츠러들 필요가 없었다.
선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경기력이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하프타임이 끝났다.
후반전을 위해 필드에 입장한 선수들.
곧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두 팀의 선수들이 움직였다.
먼저 적극적으로 움직인 팀은 소쇼였다. 1점을 따라잡아야 하는 쪽이었으니까.
반대로 스타드 렌은 천천히 경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1점을 앞서고 있었고, 전반전에 소쇼가 보여주었던 경기력이 그들의 예상보다 별로였으니까.
하지만 후반전이 시작되고 10분.
소쇼의 경기력이 달라졌다.
중앙까지 내려온 벤자민 몽맹이 숫자가 부족한 중원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측면으로 공을 연결해서 높은 크로스가 최전방의 박규태에게 이어지도록 노력했다.
-위협적인 크로스!!
-이번에도 알베르토 뤼디거가 잘 막아냅니다.
-확실히 빅클럽에서 뛰었던 경험이 있는 알베르토 뤼디거입니다. 지금까지 박규태 선수를 잘 마크하고 있습니다.
전반전보다는 확실히 기회가 많았다.
다만, 박규태를 마크하는 알베르토 뤼디거에게 막혀서 유의미한 슈팅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잖아. 오늘 득점은 힘들 거라고.”
알베르토 뤼디거의 말에 박규태가 어깨를 으쓱 들어올렸다.
그는 벌써 여러 번 박규태의 슈팅을 막았다.
하지만 박규태는 차분하게 기다릴 뿐이었다.
그의 움직임에 알베르토 뤼디거의 반응이 조금씩 늦어지고 있었으니까.
그 조금의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유리 몸이 아니었다면, 더 굉장했을 거란 뜻이네.’
잦은 부상으로 전성기가 빠르게 지나간 알베르토 뤼디거도 이렇게 상대하기 힘든데, 만약 전성기의 알베르토 뤼디거였다면 어땠을까.
박규태는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금 움직였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기회.
이번에는 높게 떠오른 공이었다.
자리를 잡은 박규태는 빠르게 헤딩을 시도했다.
하지만 알베르토 뤼디거와 경합으로 헤딩은 그리 정확하지 않았고, 스타드 렌의 골키퍼가 가볍게 공을 잡아낼 수 있었다.
-아! 좋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박규태 선수! 오늘은 조금 아쉬운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시간은 20분! 과연 소쇼가 1점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박규태는 자신의 움직임에 조금씩 뒤처지는 알베르토 뤼디거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체력적으로 지친 것도 있지만, 집중력이 많이 흐트러졌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작은 틈은 곧 그에게 좋은 기회가 되어서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소쇼가 상당히 치열하게 달라붙습니다.
-전반전에 점유율이 36%까지 떨어졌던 것이 후반전에 들어서 44%까지 회복했습니다. 소쇼가 후반전부터는 스타드 렌을 상대로 경기의 주도권을 꽤 회복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더 강하게 압박해! 전방부터! 도전적으로 붙어!!”
크리스티 조엘 감독의 말처럼 소쇼는 실점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방부터 강하게 압박을 시도했다.
하지만 골이 터지지 않았다.
필드에 한 명이 부족하다는 점이 소쇼의 발목을 잡았다.
박규태는 계속 고립이 되어 있었고, 소쇼의 수비진은 상대의 공격에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었다.
30분, 40분, 45분.
야속하게도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갔다.
“제발! 소쇼! 제발!”
“아무나 골을 넣어줘!”
“팍! 김치의 파워를 보여줘!! 제발!”
원정까지 따라온 팬들은 축구의 신에게 기도했다.
제발 동점골이 터지라고.
하지만 후반전의 모든 시간이 다 사용되었고, 스타드 렌은 공격수를 빼고 수비수와 미드필더를 넣으면서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주심이 추가시간 5분을 부여합니다.
-이 남은 5분이 소쇼에게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남은 시간은 5분.
하지만 공을 소유한 쪽은 스타드 렌이었다.
공을 돌리면서 시간을 소모하기 시작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소쇼의 선수들은 조급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두 명의 선수를 제외하고.
박규태는 침착하게 알베르토 뤼디거의 옆에서 계속 돌파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
그리고 엔조 마이어는 공을 빼앗는 순간 최전방으로 크로스를 날리기 위해 움직였다.
후반전 추가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스타드 렌의 미드필더인 비토르 올리베이라가 마음을 놓고 공을 뒤로 돌리려는 순간, 엔조 마이어가 달려들었다.
파악!
강하게 몸싸움을 걸어 공을 빼앗은 엔조 마이어.
비토르 올리베이라는 순간적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몸싸움을 싫어하고, 몸싸움에 장점이 없는 엔조 마이어가 이렇게 강하게 몸싸움을 걸어올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덕분에 엔조 마이어는 가까스로 공을 뺏을 수 있었다.
공을 잡은 그가 빠르게 측면으로 달렸다.
마지막 기회였다.
주심은 시계를 보고 있었고, 아마도 이번 공격이 실패하면 바로 휘슬을 불어서 경기를 종료시킬 것이 분명했다.
중앙으로 파고드는 박규태를 보면서 엔조 마이어가 자신의 왼발을 휘둘렀다.
뻐엉!
높게 올라가는 공.
‘제발!’
엔조 마이어는 박규태가 골을 넣을 수 있게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공이 나아가는 방향을 쭉 바라보았다.
공은 빠르게 중앙으로 달려드는 박규태와 알베르토 뤼디거가 있는 방향으로 떨어졌다.
“흡!”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박규태도 알았다. 그렇기에 신중하게 움직였다.
알베르토 뤼디거가 강하게 들러붙었다.
퍼억!
밀리지 않는 박규태.
그가 공을 터치했지만, 몸싸움 때문에 흔들리면서 다시 공이 높게 떠올랐다.
높게 떠오른 공.
알베르토 뤼디거가 공을 보기 위해 순간적으로 그에게서 살짝 떨어졌다.
그 작은 틈에 맞춰서 박규태가 두 다리를 공중에 띄운 후 다리를 교차하면서 공을 발로 차버렸다.
넣을 수 있다는 확신과 믿음이 있었다.
오버헤드킥으로 그가 마지막 기회를 노렸다.
철썩!
그리고 그 공은 날카롭게 골망을 흔들었다.
주심이 경기의 종료를 알리기 위해 휘슬을 불려는 그 순간, 박규태의 오버헤드킥이 터진 것이었다.
-박규태!! 박규태!! 미쳤습니다!! 박규태!
-우아아아아아 박규태!! 박규태!! 소쇼를 살리는 환상적인 원더골이 터졌습니다!!
-주심이 경기를 끝내려는 순간에 터졌어요! 스타드 렌의 수비진이 허탈한 표정으로 골망에 들어간 공을 바라봅니다.
-대단합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정말로 기적을 쓰고 있는 박규태 선수와 FC소쇼입니다!
골을 넣기 무섭게 원정 팬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간 박규태는 그대로 무릎 슬라이딩을 하면서 소리쳤다.
“내가 누구라고!!!”
그리고 그의 세레머니를 보며 팬들은 소리쳤다.
“dieu!!(신)”
“넌 신이야!”
“팍!! 사랑해! 젠장! 앞으로 김치만 먹을게!”
“쥬우우우우모!!”
그를 지칭하는 다양한 말들이 쏟아졌다.
세레머니를 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박규태.
그가 알베르토 뤼디거를 보며 한 마디 말을 남겼다.
“득점이 힘들긴 했지. 90분에 한 골이었으니까.”
“엿 먹어. 망할 놈의 자식.”
알베르토 뤼디거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무시하고 박규태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 * *
박규태의 극적인 동점골로 연장전까지 가게 된 경기.
후반전이 끝나고 연장전이 시작되기 전 짧은 휴식 시간.
소쇼의 선수들이 필드에 드러누웠다.
“으으!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아!”
“쥐가 올라왔어! 누가 발을 좀 잡아줘!”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이었지만, 선수들의 두 눈빛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짧은 휴식이 끝나고, 연장전 전반이 시작되었다.
당연히 스타드 렌은 매우 거칠고 공격적으로 나왔다.
하지만 아까와 다르게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임마누엘을 도와주는 공격수들이 모두 빠졌으니까.
덕분에 소쇼의 수비진은 조금 수월하게 위기를 넘기고 있었다.
다급한 스타드 렌과 다르게 소쇼는 편안했다.
어차피 한 명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들은 승부차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연장전 전반이 빠르게 끝났다.
스타드 렌의 홈 경기장인 로아존 파크는 알 수 없는 불길함이 감돌고 있었다.
연장전 후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타드 렌은 어떻게든 골을 넣으려고 노력했고, 소쇼는 그 공격을 막으면서 어떻게든 승부차기까지 승부를 이어가려고 했으니까.
-연장전이 모두 끝났습니다!
-아……! 결국은 승부차기까지 왔네요.
-오늘 경기가 여기까지 올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정말 대단한 집념과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양 팀의 선수들입니다.
시간이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찾아온 승부차기.
승부차기를 위해서 선수들이 순서를 정하기 시작했다.
“엔조 마이어, 디디에 아르카, 벤자민 몽맹, 막상스 라크루아, 마지막으로 팍이 공을 찬다.”
귀 몬구아르 수석코치의 말에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타드 렌의 첫 번째 키커는 엠마누엘 메르시에였다.
-스타드 렌이 먼저 시작합니다.
-엠마누엘 메르시에……!
숨을 길게 내뱉은 그는 마르코 비에베 골키퍼를 속이고 깔끔하게 골을 넣었다.
아쉬움이 가득한 마르코 비에베 골키퍼.
이어서 엔조 마이어가 공 앞에 섰다.
조용히 골키퍼를 바라보던 그는 강한 슈팅으로 골키퍼의 손을 뚫고 골을 넣었다.
“으후! 실패하는 줄 알았네.”
“잘 찼어.”
박규태가 그런 엔조 마이어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승부차기.
관중들은 골 하나가 들어가는 순간마다 환호성과 함께 탄식도 같이 내뱉었다.
그리고 4번째 키커까지 모두 성공시킨 두 팀.
스타드 렌의 5번째 키커인 비토르 올리베이라가 긴장한 듯이 땅을 보고 숨을 내쉬더니 빠르게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까부터 계속 오른쪽으로 몸을 날리던 마르코 비에베 골키퍼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감에 맞춰서 왼쪽으로 몸을 날렸다.
퍼억!
-막았습니다! 소쇼의 마르코 비에베 골키퍼가 비토르 올리베이라 선수의 슈팅을 막았습니다!
원정까지 온 소쇼의 팬들이 내지르는 함성을 제외하고는 로아존 파크의 관중석은 조용했다.
그리고 오늘 경기를 끝낼 수 있는 소쇼의 마지막 키커.
박규태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공 앞에 섰다.
스타드 렌의 요안 카르디날레 골키퍼가 신중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자세를 잡았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거대한 야유가 그의 귀를 때렸다.
-소쇼가 드디어 경기를 끝낼 기회를 잡았습니다.
-엄청난 야유가 박규태 선수에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삐이이익!
주심의 휘슬이 울리기 무섭게 박규태가 빠르게 공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뻐엉! 철썩!
골키퍼의 반대 방향으로 슈팅을 찬 박규태.
그가 골망을 흔드는 공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면서 빠르게 소쇼의 팬들이 있는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올! 골!!
-소쇼가 치열한 혈투 끝에 승부차기로 스타드 렌을 꺾고 ‘쿠페 데 라 리그’ 4강에 진출합니다!!
와아아아아아아!
박규태가 무릎 슬라이딩을 하면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곧 소쇼의 선수들이 그를 뒤덮었다.
< 국뽕 박규태 선생 #21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