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18 >
-소쇼의 선취골! 예술적이고 감각적인 골이 터졌습니다!
-보면 볼수록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맞습니다. 그만큼 방금 박규태 선수가 보여준 발리슛은 예상할 수 없었던 슛이었습니다.
중계진의 목소리에 기쁨이 가득했다.
같은 한국인이 외국에서 활약하는 장면을 보고 흥이 동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것이다.
거기다 박규태가 측면에서 날아든 크로스에 논스톱으로 발리슛을 때린 장면이 너무 아름다워서 더 호들갑을 떠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만큼 환상적인 발리슛이었고, 느린 화면으로 살펴도 놀라움만이 가득한 득점 장면이었다.
-선취골의 주인은 박규태 선수입니다.
-리그 16호 골! 정말 골 결정력이 어마어마합니다.
-투박한 기술을 갖췄음에도, 골을 넣는 순간에는 그 어떤 선수보다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 경기 전에 박규태 선수의 인터뷰가 담긴 칼럼이 나왔는데, 그걸 보면 저런 활약은 결코 재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맞습니다. 어린 선수가 타지에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저절로 응원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선취점을 가져간 소쇼.
라 벨리숀에게는 최악의 상황이, 반대로 소쇼에게는 최고의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라 벨리숀의 감독은 터치라인에 붙어서 선수들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플랜B! 준비했던 전술로 바꿔!”
그리고 윙에 있는 선수들이 중앙으로 움직이고, 중앙에 있던 두 선수 중 한 선수는 내려가고, 한 선수는 높은 위치에 올라가서 자리를 잡았다.
-아! 라 벨리숀이 전술을 바꿨습니다.
-다이아몬드 4-4-2군요.
-정확히는 4-3-1-2 같습니다.
-라 벨리숀이 승부수를 상당히 일찍 꺼내 들었습니다.
-시즌 초에 딱 한 경기에서 4-3-1-2로 제법 재미를 봤던 라 벨리숀이기에 기대가 됩니다.
‘크로스를 허용하더라도 장신의 선수가 많아서 골을 허용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건가?’
박규태는 라 벨리숀의 전술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에 있는 코리 사코는 플레이 메이킹이 되면서 뛰어난 득점력까지 자랑하는 미들라이커였으니까.
거기다 양쪽 윙어인 케빈 트라오레는 활동량이 장점인 윙어이기에 4-3-1-2에 어울렸다.
‘문제는 반대 윙어인 마티아스 베레스인데, 아마 후반전에 교체로 다른 선수를 투입하겠지.’
4-3-1-2 전술의 특성상 측면을 활용하는 공격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라 벨리숀의 감독은 자신 있을 것이다.
어차피 측면을 공략하기엔 라 벨리숀의 윙어들은 마티아스 베레스를 제외하면 그리 날카롭지 못했으니까.
그들로선 크리스티 조엘 감독이 만든 4-4-2의 약점인 중앙을 파훼하는 것이 훨씬 전술적으로 유리했다.
거기다 라 벨리숀은 중앙에 피지컬이 좋거나 기술이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다.
충분히 꺼내 들만한 전술이었다.
물론, 약점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라 벨리숀은 그 부분도 놓치지 않았다.
상대의 측면 공격에 취약한 ‘4-3-1-2’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서 선수들도 톱니바퀴가 맞물리듯이 정교한 조직력을 갖추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4-3-1-2로 전환된 상황에서도 결코 흔들림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결코, 갑자기 준비한 전술이 아니었다.
크리스티 조엘 감독은 그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귀 몬구아르 수석코치와 급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시금 기세를 잡아가는 라 벨리숀.
박규태는 길게 한숨을 내뱉고는 미드필더 지역까지 깊게 내려가 수비를 했다.
전반전을 무실점으로 지키는 것이 중요했기에 그는 평소보다 더 많은 활동량을 가져가면서 열심히 뛰었다.
그나마 라 벨리숀의 4-3-1-2에 적응이 늦는 선수가 유일하게 코리 사코였기에 박규태의 노력이 제법 통했다.
삐이익!
그렇게 전반전이 1 대 0으로 끝났다.
짧은 하프타임.
크리스티 조엘 감독은 고심했다.
상대의 4-3-1-2에 대응할 방법은 있었다.
그걸 지금 꺼내 들지 고민이었다.
‘지금 꺼낼까?’
하지만 고민은 잠깐이었다.
결론을 내린 크리스티 조엘 감독이 조용히 쉬고 있던 루도비치 델마스를 불렀다.
“루도비치! 준비해!”
“그럼…….”
“그래, 최근에 준비했던 전술로 가도록 하지.”
고개를 끄덕인 루도비치 델마스.
2m의 신장을 지닌 그가 주섬주섬 점퍼를 벗었다.
박규태는 살짝 굳은 그에게 다가가 미소를 지었다.
“오늘 진정한 악당이 누군지 보여줘.”
“후우……. 떨리니까 말 걸지 마.”
말은 그렇게 내뱉었지만, 루도비치 델마스도 긴장을 조금은 떨친 모습이었다.
이번 시즌에 단 2경기밖에 뛰지 못한 루도비치 델마스.
그는 상당히 위축되어 있었다.
하지만 차근차근 준비하면서 기회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그 노력을 보답 받았다.
* * *
-후반전이 시작됩니다.
-소쇼가 하프타임에 선수를 교체했습니다. 루도비치 델마스 선수가 들어왔는데요.
-2m의 장신인 중앙 수비수입니다. 아무래도 전술을 4-1-4-1로 바꿀 생각인 것 같습니다.
하프타임이 끝나고 두 팀의 선수들이 필드에 입장했다.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벤자민 몽맹이 빠지고 장신의 루도비치 델마스가 투입되자 조금은 의아함을 드러냈다.
“4-1-4-1이겠지?”
“잠그겠다는 뜻인가.”
“나쁘지는 않은데……. 근데 하필이면 왜 루도비치 델마스를 투입한 거지? 키가 크고 몸싸움을 잘하는 것을 제외하면…… 느리잖아.”
“그러니까.”
하지만 루도비치 델마스가 벵자민 몽맹의 자리에 그대로 투입된 것을 확인하자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 그대로 4-4-2의 포메이션이 유지됩니다.
-이건 또 신기한 광경이네요. 2m의 신장을 갖춘 루도비치 델마스가 벤자민 몽맹의 자리에 투입됩니다.
-아……. 노골적으로 공중볼을 통한 공격을 하겠다는 것을 라 벨리숀에게 알려주는 FC소쇼입니다!
-이러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4-3-1-2로 전술을 바꾸면서 측면으로 올라오는 공중볼에 취약해졌고, 그 부분을 신장이 큰 선수들로 메꾸고 있던 라 벨리숀이거든요?
-그런데 라 벨리숀의 장신 선수들보다 더 키가 큰 선수를 투입한 소쇼입니다.
-외통수입니다! 라 벨리숀의 전술에 카운터를 쳤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완벽한 카운터는 아니었다.
거기다 의문점이 남아 있었다.
과연, 루도비치 델마스가 공격수의 위치에서 자신의 몫을 발휘할 수 있을지, 그 부분이 가장 큰 변수였다.
‘일회성 전략이지만…… 이걸로 라 벨리숀을 완벽하게 찍어 누를 수 있다.’
박규태는 확신했다.
연습을 많이 했던 변칙적인 전술이었다. 그리고 이 변칙 전술의 효과가 바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엔조 마이어가 높게 크로스를 올리면, 2m의 루도비치 델마스는 압도적인 제공권으로 공을 잡아냈다.
그리고 공을 지키다가 박규태에게 공간이 생기면, 바로 그가 있는 방향으로 간결한 패스를 연결했다.
덕분에 박규태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제냐엘 돈돈 골키퍼의 선방!
-케냐 출신의 제냐엘 돈돈이 이번에도 박규태 선수의 슈팅을 막아내면서 점수는 아직도 1 대 0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말 아쉽네요. 좋은 기회였는데요.
라 벨리숀의 빈센트 망소 감독은 고민에 빠졌다.
루도비치 델마스가 들어오면서 소쇼가 달라졌다.
라인을 내리고 수비를 하다가 저렇게 길고 높은 공으로 역습을 해버리니 라 벨리숀으로서는 답이 없었다.
‘저러다가는 언젠가 실점하겠어.’
어떻게든 무승부라도 가져가야 하는 상황이기에 그는 급히 수비진에게 소리쳤다.
“팍에게 집중해! 어차피 루도비치 델마스는 슈팅을 과감하게 가져가지 못할 거야!”
일반적인 선택이었다.
중앙 수비수를 보던 선수가 좋은 슈팅 능력을 갖췄다고 생각하기에는 무리였으니까.
하지만 바로 다음에 나온 루도비치 델마스의 중거리 슛에 빈센트 망소 감독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애애앵!
-오우! 환상적인 중거리 슛이 터졌습니다!
-라 벨리숀에게는 정말로 철렁했던 순간이었습니다.
투박하지만 강렬했다.
루도비치 델마스의 중거리 슈팅을 본 순간 박규태를 마크하던 중앙 수비수들의 집중력이 조금은 흐트러졌다.
인내하고 또 인내하던 박규태는 그것을 파악하고는 조용히 자신이 활약할 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후반전 14분.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엔조 마이어의 날카로운 로빙 패스가 중앙에 있던 루도비치 델마스의 머리에 정확히 도달했다.
-날카로운 로빙 패스!
-중앙에서 루도비치가 공을 머리로 잡아냈습니다!
-수비수를 등지고 공을 지켜내는 루도비치! 그가 측면으로 돌아나가는 박규태 선수에게 가볍게 공을 연결합니다.
투박한 볼 트래핑.
하지만 조금은 더 발전한 그의 드리블이 불을 뿜으면서 라 벨리숀의 수비진이 당혹감을 드러냈다.
-박규태 선수는 188㎝의 큰 키에 비해 주력이 꽤 빠른 편입니다! 박규태! 달립니다!
급히 박규태를 막기 위해서 움직이는 수비수.
하지만 박규태는 자신의 몸에 달라붙는 수비수를 단단한 몸으로 밀어내고 그대로 슈팅을 가져갔다.
제대로 슈팅을 가져가지 못했음에도, 박규태의 슈팅은 골대의 구석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철썩!
-고오오오오올!
-어마어마합니다! 슈퍼골!! 원더골! 판타스틱골!
-박규태 선수의 멀티골로 2 대 0으로 앞서나가는 FC소쇼! 크리스티 조엘 감독의 용병술이 제대로 들어맞았습니다!
타겟터가 아닌 포처의 움직임.
골을 넣은 박규태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회귀 전보다 훨씬 빠르게 육체가 성장하고 있다. 관리를 제대로 한다면 더 높은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겠어.’
두 번째 골을 넣은 그가 원정 팀 응원석으로 달려가 손가락 두 개를 들어 올렸다.
“팍이 해트트릭을 예고한다!”
“팍! 꼭 넣어! 해트트릭으로 라 벨리숀 녀석들을 혼내주라고!”
“내 아기 사자들! 죽여준다고! 죽여줘!”
광란에 빠진 소쇼의 원정 팬들.
점수가 더 벌어지자 라 벨리숀의 빈센트 망소 감독은 다시 4-4-2로 전술을 회귀시켰다.
하지만 공중볼 싸움에서 큰 우위를 가져가는 소쇼는 라 벨리숀의 약점을 계속 물고 늘어졌다.
‘이제 딱 한 골이다.’
박규태의 눈이 빛났다.
그는 해트트릭의 마지막 한 골을 넣기 위해서 미친 듯이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쉽게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초조하게 시간이 지나고 있는 상황.
다행히 그의 노력에 축구의 신이 감동이라도 했는지, 후반 36분에 완벽한 기회가 그에게 찾아왔다.
시작은 엔조 마이어였다.
그가 공을 잡기 무섭게 중앙으로 파고들었고, 루도비치 델마스와 박규태를 동시에 신경 쓰던 중앙 수비수들이 그 움직임에 순간적으로 쏠렸다.
‘기회다!’
엔조 마이어와 눈을 마주친 박규태는 그대로 수비수의 뒤를 넓게 돌아서 오프사이드 라인을 파훼하고 파고들었다.
당연히 그 타이밍에 맞춰서 엔조 마이어의 킬패스가 날카롭게 그의 발에 도달했다.
-박규태! 기회가 왔습니다!
-빠릅니다! 빨라요!
-골키퍼와 1 대 1의 상황! 제냐엘 돈돈 골키퍼가 박규태 선수를 향해서 달려 나옵니다.
툭!
박규태는 해트트릭을 앞둔 상황에서도 침착했다.
앞으로 나오는 골키퍼를 확인한 순간, 그는 차분하게 칩슛으로 공을 골키퍼의 머리 위로 넘겼다.
공이 골대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박규태.
그가 빠르게 원정까지 따라온 소쇼의 팬들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무릎 슬라이딩을 하면서 소리쳤다.
“주-모우우우우우우!”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3 대 0.
그리고 박규태의 해트트릭.
라 벨리숀의 홈 경기장이 소쇼의 원정 팬들이 내지르는 광기에 물들었다.
< 국뽕 박규태 선생 #18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