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17 >
악플.
살면서 악플을 받지 않는 유명인은 없을 것이다.
한국의 야구선수인 박경호는 자신의 기사에 따라다니는 ‘국민거품 박경호’라는 악플러에 시달렸다.
토트넘에서 뛰던, 지금은 레스터 시티에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 황혼을 보내고 있는 손형민도 계속해서 다양한 악플러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으니까.
심지어 ‘라따뚜이’라는 애니메이션이 나왔을 때, 어느 악플러는 요리하는 쥐를 보고 ‘쥐새끼가 요리해서 토악질 난다.’라고 감상평을 남기기도 했다.
‘아이들의 대통령. 뽀통령이라 불리는 펭귄도 ‘안경빨’이라고 욕을 먹는데, 프랑스 2부리그에서 뛰고 있는 나도 욕을 먹을 이유는 많겠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당연히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악플러들은 그 의견을 너무 거칠게 말한다.
‘삐뚤어진 관심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박규태는 그 부분을 이용하고자 했다.
간단한 이벤트였다.
해트트릭을 기록하면 소쇼에서 팬티만 입고 삼바춤을 추면서 팝핀 댄스를 하겠다는 악플러를 초대하면 그만이었다.
해트트릭에 실패해도 상관없었다. 딱히 손해 볼 것은 없으니까.
조용히 스마트폰을 들어 올린 박규태.
그가 누군가에게 연락했다.
예전에 봤던 영화의 명대사를 내뱉으며 멋있게 무게를 잡았다.
“너, 나하고 일 하나 같이 하자.”
그리고 스마트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
-여기 새벽 3시야! 새벽 3시! 이놈아!
박규태가 뻘쭘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내려놨다.
12월 19일.
경기가 있기 하루 전.
한국의 포털 사이트의 스포츠 탭에 칼럼이 하나 올라왔다.
평소 축구와 관련된 재미있는 내용으로 칼럼을 쓰던 젊은 축구 전문가인 황민호의 칼럼이었다.
[국뽕전사 박규태, 그리고 외로운 해외파의 축구.]
잘 정리된 칼럼은 박규태의 삶.
그리고 그가 어떻게 프랑스까지 유학을 떠났는지, 어떤 식으로 그가 프랑스에 적응했고 소쇼에서 어떤 생활을 하며 그가 어떻게 위기를 겪고 이 자리까지 왔는지, 그 모든 것이 적혀 있었다.
[축구와 애국심. 두 가지에 내 목숨을 걸었다. 남들이 ‘국뽕’이라 놀려도 좋다. 하지만, 외국에서 생활하는 한국인들은 모두 조국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
[대한민국을 소중하게 여기는 나만의 방식이라 생각해주면 감사하겠다.]
“진짜……. 이게 무슨 고생이냐.”
스포츠 칼럼니스트이자 기자인 황민호.
그가 투덜거리기 무섭게 전화가 왔다.
벨이 울리는 스마트폰을 들어 올려 귀에 가져갔다.
“이제 만족하냐?”
-캬……. 당연하지. 그런데 내 인터뷰 스킬이 좀 굉장하지 않아? 그치? 국뽕이라고 놀려도 좋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내가 나라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으……. 오글거려. 다시는 이런 거 시키지 마.”
-형이 그런 말을 하는 것 보니까, 제대로 먹혔네.
“다음부터는 이런 칼럼 안 올릴 거다.”
-너무해! 불꽃 카리스마 민호우!
“닥쳐. 진짜 너랑 이야기하면 머리가 아파.”
-그렇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민호짱은 내 칼럼을 써주지 않는걸?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고등학교 시절에 널 인터뷰해서……. 진짜 후회된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황민호는 웃고 있었다.
딱 10살 차이의 두 사람은 동갑내기 친구처럼 편안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거 뭐냐?”
-뭐가?
“20일 경기에 해트트릭을 기록하면 약속을 지켜주세요. 이거 왜 넣은 거야? 뭐 있어?”
-아! 있어. 재미있는 이벤트를 생각했거든.
의미심장한 박규태의 웃음소리.
황민호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 * *
해트트릭.
한 명의 선수가 한 경기에서 혼자 3골 이상의 득점을 올릴 때 해트트릭이라고 한다.
순서도 상관이 없고, 오른발, 왼발, 머리, 소중이. 어느 곳으로 넣어도 상관이 없다.
3골을 넣으면, 해트트릭이었다.
특히나 감독들의 전술적인 역량과 진화하는 수비수들의 기술로 인해 개인이 파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어려워진 현대의 축구에서는 더욱 보기 힘든 기록이 되고 있었다.
그만큼 한 경기에서 한 명의 선수가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란 어려운 것이었다.
“좋아! 모두 모여! 모여!”
“마법의 주문으로 경기를 시작하자고.”
12월 20일.
라 벨리숀과의 경기를 위해 원정을 온 소쇼의 선수들은 라커룸에 모여서 승부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리그 2위인 ‘르 아브르’가 앞선 경기에서 1패를 더 기록하면서 오늘 경기에서 승리하게 된다면, 승점 차이를 더 벌릴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주-모우!”
“주-모우!”
어느새 선수들 사이에서 행운의 주문이 된 ‘주-모’를 외친 그들은 라커룸을 떠나 필드로 향했다.
복도에는 이미 라 벨리숀의 선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수들은 모두 모이기 무섭게 필드로 입장했다.
-라 벨리숀 데 샤토루와 FC소쇼-몽벨리아르의 경기를 중계해드리겠습니다.
-리그 1위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소쇼와 중위권에서 플레이오프 진출을 노리는 라 벨리숀의 경기라 더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나 라 벨리숀은 저번 18라운드에서 르 아브르에게 1패를 당해서 6위에서 9위까지 순위가 떨어진 상황입니다.
-이번 홈경기에서 소쇼를 상대로 승점을 얻기를 원하겠죠.
-물론, 소쇼도 승리를 원할 겁니다. 앞선 19일에 리그 19라운드 경기에서 리그 2위인 ‘르 아브르’가 로데즈에게 1 대 0으로 패배했습니다.
-소쇼에게는 2위와의 승점 차이를 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두 팀의 전술은 같습니다. 4-4-2를 들고 나왔고, 세부적인 부분에서 오늘 경기의 결과가 갈릴 것 같습니다.
삐이이익!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라 벨리숀의 공격으로 시작되었고, 라 벨리숀의 공격수인 프란 나바로가 공을 뒤로 연결했다.
중앙 미드필더인 코리 사코가 공을 잡았다. 그는 측면에 있는 선수에게 공을 연결했다.
아약스 출신의 윙어인 마티아스 베레스.
그는 지난 시즌에 아약스에서 방출되어서 라 벨리숀으로 영입된 선수였고, 이번 시즌에 큰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의 활약으로 흔들리던 라 벨리숀은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중위권으로 치고 올라올 수 있었다.
그런 마티아스 베레스가 중앙에서 연결해 준 공을 끌고 거침없이 소쇼의 측면을 파고들었다.
백업을 위해 따라붙은 풀백과 2 대 1 패스까지 주고받으면서 빠르게 전진한 그는 좋은 기회가 오자마자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렸다.
뻐어엉!
지켜보는 소쇼의 팬들.
그들의 등줄기가 차갑게 식을 정도로 날카롭고 정확한 크로스였다.
-프란 나바로에게 연결되는 공!
-슈우웃!
-아!! 플로앙 뒤마의 슈퍼 세이브! 그가 살렸습니다! 그가 라 벨리숀의 날카로운 공격을 막았습니다!
-정말로 잘 막았습니다.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결정적인 슈팅이라서 반응하기 어려웠을 텐데…… 플로앙 뒤마 골키퍼가 소쇼를 살렸습니다.
-하지만 계속 이어지는 공격! 라 벨리숀의 코너킥이 남아 있습니다. 계속 집중해야 합니다!
큰 키를 갖춘 라 벨리손의 선수들이 빠르게 소쇼의 페널티 에어리어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코너킥 공격을 준비하는 상대 팀의 모습을 보면서 크리스티 조엘 감독은 선수들에게 집중력을 유지하라고 소리쳤다.
박규태도 급히 수비진까지 내려왔다.
‘확실히 우리팀 수비진보다 다 키가 크네.’
라 벨리숀의 장신 선수들을 보며 박규태가 자리를 잡았다.
188㎝의 큰 키를 갖춘 그도 분명히 이번 수비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뻐어엉!
이어지는 코너킥 공격.
공이 날카롭게 휘어 올라왔고, 라 벨리숀의 공격수인 프란 나바로가 공중에 뜬 상태로 발리슛을 가져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박규태가 몸을 날려 그의 슈팅을 막아냈다.
세컨드 볼을 그대로 측면으로 차버린 엔조 마이어가 박규태의 등을 때리면서 환하게 웃었다.
“팍! 좋았어!!”
-박규태! 그걸 막았습니다!
-와……. 방금 그 몸을 날린 수비는 한 골을 넣은 것과 다름없는 선방이었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박규태의 몸을 날린 수비.
하지만 그런 상황임에도 경기의 주도권은 계속해서 라 벨리숀이 잡고 있었다.
특히나 전방으로 날카로운 패스를 뿌려주는 엔조 마이어가 상대의 마크맨에게 막혀서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
-생각보다 경기가 순조롭게 풀리고 있는 라 벨리숀입니다. 하지만 빈센트 망소 감독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결정적인 기회에서 계속 득점에 실패하고 있으니까요. 그 부분이 걱정일 겁니다.
-저렇게 주도권을 잡은 팀이 계속해서 좋은 기회를 놓치다가 한 번의 역습으로 무너지는 것도 많이 봤습니다.
촤아아악!
“삐이익!”
“주심! 이건 카드를 받을 수준이었어요!”
오늘 고생을 많이 하는 엔조 마이어가 얼굴에 묻은 잔디즙을 손으로 닦으며 항의했다.
하지만 주심은 반응하지 않았다.
물론, 의미 없는 행동은 아니었다.
저렇게 계속 항의를 하면, 아무리 관대한 주심이라도 결국은 의식을 할 수밖에 없고, 결국은 언젠가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쳇……. 진짜 오늘따라 귀찮게 달라붙네.’
자신을 마크하는 마크맨을 노려본 엔조 마이어가 몸을 탈탈 털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염뼝! 염뼝! 염뼝!”
“그건 또 어느 나라 말이야?”
그에게 강한 태클을 걸었던 풀백, 판카티 다보가 물었다.
“우리 팀의 공격수인 팍이 알려준 마법의 주문이야.”
“그래?”
어깨를 으쓱 들어 올리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그를 보면서 엔조 마이어가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이상하다. 팍이 염뼝은 상대방의 축구 능력을 2배나 떨어뜨리는 저주라고 했는데…….”
* * *
상대의 홈 경기장이라서 그럴까.
전반전이 20분가량 지난 상황임에도 소쇼는 쉽게 주도권을 가져오지 못하고 있었다.
크리스티 조엘 감독은 터치라인에 바짝 붙어서 선수들을 독려했고, 세세한 전술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할 수 있어! 조금만 집중해! 그리고 엔조가 공을 운반하거나, 전방으로 패스를 때려줄 수 있게 중앙에서 도와줘! 필요하다면 측면과 중앙이 스위칭하면서 플레이해도 좋아!”
그에 따라서 선수들은 움직임을 바꾸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전술에 변화를 가져가는 소쇼입니다.
-박규태 선수가 이런 상황에서 뭔가 해결사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기회를 잡아내는 능력도 좋고, 활동량도 좋은 선수이기에 분명히 좋은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치열한 경기가 이어질 것 같았던 상황에서 드디어 소쇼에게 첫 기회가 찾아왔다.
전반 26분.
엔조 마이어를 지독하게 따라다니면서 마크하던 판카티 다보가 그를 마크하다가 살짝 미끄러지면서 중심을 잃었다.
엔조는 당연히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빠르게 돌파하는 엔조! 달립니다!
-빨라요! 한 명을 더 제치고 달립니다!
한 명을 더 제친 그는 빠르게 측면을 파고들었고, 중앙으로 파고드는 선수를 확인하자마자 조금 빠른 템포의 크로스를 올리며 라 벨리숀의 수비진을 긴장감에 빠트렸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기회.
라 벨리숀의 수비진이 놓친 비어 있는 공간을 찢고 박규태가 틈을 파고들어 발을 휘둘렀다.
-박규태!! 박규태! 박규태!
-박규태 선수의 발리슛!
애매한 위치에서 쏜 발리슛.
하지만 월드클래스의 골 결정력을 갖춘 박규태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철썩!
와아아아아아아!
원정까지 따라온 팬들의 환호성.
야신이 돌아와도 막을 수 없는 환상적인 골이 터졌다.
전반전의 절반이 지나간 상황.
드디어 1 대 0으로 소쇼가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 국뽕 박규태 선생 #17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