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15 >
이적 루머가 퍼지고, 박규태는 자신의 에이전트 르르에 콜리쉬를 만났다.
“페이크겠죠.”
“맞습니다. 팍의 말처럼…… 샬케04를 제외한 모든 팀은 그저 당신을 연막으로 쓰고 다른 공격수를 살피고 있습니다.”
이제 3개월 활약한 공격수를 영입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클럽은 얼마 없다. 적어도 반년에서 1년 사이는 두고 보겠지.
박규태는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들뜨지 않았다.
‘애초에 득점 선두를 지키려면…… 좋든 싫든 일단은 소쇼에서 한 시즌을 끝내야 한다.’
다만, 지금의 관심을 활용하지 않으면, 그건 정말 호구라고 평가할 수 있었다.
그의 에이전트인 르르에 콜리쉬는 박규태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지금 같은 상황이 선수의 몸값을 올리기 가장 쉬우며, 재계약을 할 때 선수의 주급을 상승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물론 르르에 콜리쉬는 그가 이번 겨울에 아예 4대 리그에 진출했으면 좋겠다고 조언을 했지만, 박규태는 그 조언에 고개를 흔들었다.
“좋은 이미지를 만들고 싶습니다.”
“금전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당장 재계약을 하게 된다면 주급을 꽤 받을 수 있지만, 이적허용조항의 금액이 상승할 겁니다. 이적허용조항의 금액이 오르면 이적 시 그만큼 팍의 주급 상승률이 줄어들 겁니다.”
“상관없습니다. 그 부분은 충분히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손해는 맞다.
하지만 목숨보다 중요한 건 아니다.
‘몇 십억 버린 게 아깝다고? 이걸로 내 이미지가 좋아지고, ‘두 유 노 클럽’의 입성에 많은 도움을 주게 된다면 싸게 먹히는 거지. 내 목숨을 고작 몇 십억으로 지킨 건데.’
그래도 너무 손해를 보기는 싫었다.
박규태는 르르에 콜리쉬에게 옵션으로 최대한 뜯을 수 있을 만큼은 뜯어달라고 부탁했고, 그의 에이전트는 고객의 부탁에 미소를 지었다.
“최고의 조건을 얻어오겠습니다.”
멀어지는 르르에 콜리쉬.
그를 보면서 박규태는 작게 기도했다.
이번 재계약으로 소쇼의 팬들과 한국에 있는 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게 해달라고.
그리고 순식간에 다가온 12월 12일.
ES. 트르와 오브 샹파뉴를 상대하게 된 FC소쇼.
트르와의 다얀 두쿠레와 제르지누 은얌시.
두 중앙 수비수는 오늘 경기에서 박규태의 약점을 잘 물고 늘어졌다.
덕분에 박규태는 경기가 시작되고 재미를 보지 못했다.
‘오늘은 조금 빡빡하네.’
세상에 약점이 없는 선수가 어디 있을까.
박규태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유명한 메시나 호날두도 결국 약점은 존재했다.
‘그걸 어떻게 현명하게 넘기느냐.’
그것이 일류와 이류를 가르는 경계선이라고 박규태는 생각했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메시랑 호날두 자서전에 나오더라.”
“무슨 헛소리야?”
옆에 바짝 붙은 다얀 두쿠레는 뜬금없이 혼잣말을 내뱉는 박규태를 보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박규태는 그런 다얀 두쿠레를 보며 조용히 한국과 관련된 것을 질문했다.
“너 VTS 아냐?”
“알지. 내 여동생이 좋아하거든.”
“너 강민 리는 알지?”
“발렌시아에서 뛰는 선수, 그 정도는 알지.”
“파김치 워리어도 알아?”
“그건 또 뭐야?”
박규태는 신나게 ‘두 유 노’ 시리즈를 내뱉으며 주변을 살피기 위해서 두 눈을 굴렸고, 다얀 두쿠레는 그것도 모르고 그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다른 곳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너 쏴이는 알지? 강북 스타일을 부른 쏴이.”
“몰라. 이번에 김치를 아느냐고 물어볼 생각이었지?”
다얀 두쿠레의 말에 박규태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너희 골대를 두들길 생각이었어.”
“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엔조 마이어가 찌른 스루패스를 향해서 달려가는 박규태. 그제야 다얀 두쿠레는 박규태가 자신과 살짝 거리를 벌린 상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차!’
잠깐 시선을 돌린 것이 실수였다.
고작 다섯 발자국의 차이였지만, 그것은 꽤 큰 차이가 되어 트르와의 심장에 비수를 꽂았다.
철썩!
-고오오오오오오올!!
-박규태 선수가 지루하던 전반 34분에 선제골을 터뜨렸습니다. 트르와의 수비진이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습니다!
-라인 브레이킹의 타이밍이 아주 환상적이었어요.
-이걸로 시즌 22호 골이자, 리그 15호 골을 터뜨렸습니다! 정말로 압도적인 득점 페이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골을 넣은 박규태는 관중들을 향해 달려갔다.
관중들은 은근히 그의 세레머니를 기대했다.
하지만, 박규태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뭐야? 세레머니를 안 하는 건가?”
“팍의 ‘후 엠 아이’와 ‘Jumo’를 기다렸는데.”
조금은 아쉬워하는 관중들.
그때 박규태가 조용히 관중들을 바라보다가 유니폼을 살짝 들어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뭔가 적혀 있는 티셔츠가 관중들의 눈에 들어왔다.
-이번 겨울에 이적은 없다!
-소쇼! ‘리그 앙’까지 함께 가자.
그 문구를 본 순간 아까보다 더 큰 환호성이 터져버렸고, 골을 넣은 박규태를 축하해주러 온 선수들도 환하게 웃으며 그를 껴안았다.
특히나 엔조 마이어와 벤자민 몽맹이 좋아했다.
그렇게 트르와전에서 2 대 0 승리를 거둔 FC소쇼.
경기가 끝나는 순간, 박규태의 재계약 오피셜이 떴다.
[박규태, FC소쇼와 3년 재계약! 팀 내 주급 2위로 껑충!]
[이것이 대한민국의 로맨티시스트다! 재계약 소식을 세레머니로 팬들에게 먼저 알린 박규태!]
[박규태의 이적허용조항은 한화로 ‘약 110억 원.’]
[소쇼의 홈팬들, “처음으로 구단주가 사람다운 일을 했다!”]
[엔조 마이어, “행복하다! 팍과 리그 앙에 도전할 수 있어서 정말로 행복하다! 그리고 초코파이 좋아한다.”]
박규태, 그가 기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비록 금전적으로는 손해를 봤지만 ‘이미지’와 ‘국뽕’으로는 큰 이득이었다.
* * *
[‘리그 되’ 득점 순위]
1, 박규태 15골.
-FC소쇼.
2, 오파 은게테 11골.
-파리 FC.
3, 알랑 케루에당 11골.
-르 아브르.
4, 레니 팽토 9골.
-GFCO 아작시오.
5, 율리시스 쇼바우 8골.
-랑스.
리그에서 꽤 큰 차이로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는 박규태.
그리고 승승장구하는 FC소쇼.
그들의 다음 상대는 ‘리그 앙’의 팀이었다.
“다음 ‘쿠페 데 라 리그’ 경기 상대가 ‘오세르’라고?”
AJ 오세르.
지난 시즌의 승격팀.
동시에 이번 시즌에 리그 앙에서 가장 유력한 강등팀이 되리라 예측되었고, 전문가들의 예상처럼 강등권으로 무너진 팀이었다.
“그래도 무시할 수 없지.”
당연히 무시할 수 없었다.
아무리 ‘리그 앙’의 강등권이지만, 지난 시즌에 ‘리그 되’를 지배했던 팀이었으니까.
“파비안 레페가 있는 팀이니까.”
“아! 예전에 샬케의 영건 4인방이었던 그 파비안 레페?”
“맞아.”
엔조의 물음에 박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망주 시절에 좋은 슈팅력과 쓸만한 위치선정 능력을 갖춘 공격수라는 평가를 받던 파비안 레페.
몇몇 아마추어 전문가들은 그의 경기를 보고 ‘두 번째 훈텔라르’가 나타났다며 크게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그는 크게 성장하지 못했고, 결국에는 임대와 이적을 밥 먹듯이 하며 여러 팀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자유계약으로 풀려난 2022-23시즌.
마지막 종착지로 AJ 오세르에 입단한 파비안 레페는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리그 되’에 잘 적응했고, 결국 팀을 ‘리그 앙’으로 승격시켰다.
그 후 ‘리그 앙’에서도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며 몇몇 팀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각 팀의 스카우트들이 움직인 것도 사실은 박규태가 아닌 파비안 레페를 보기 위해서 움직인 것이었다.
‘덕분에 재계약이 술술 풀렸지.’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자존심이 조금 상했다.
지난 시즌.
리그 34경기 18골 4도움을 기록한 파비안 레페.
이번 시즌.
리그 17경기 15골 1도움을 기록한 박규태.
다를 게 뭐가 있을까.
오히려 시즌이 지나면 지날수록, 박규태가 파비안 레페보다 훨씬 뛰어난 선수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보여줄 생각이었다.
자신이 훨씬 뛰어난 공격수라는 사실을.
‘날 놓친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주지.’
조용히 의욕을 다진 박규태.
그때 옆에 앉아 있던 엔조 마이어가 무엇인가를 건넸다.
“팍! 분명히 초코파이를 언급하면, 한국 팬들이 초코파이를 준다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초코파이가 아니라 이상한 초콜릿이 왔어!”
“뭔데?”
“킴치초콜릿? 도대체 이게 뭐야?”
그 물음에 박규태가 조금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맛있는 거야.”
엔조 마이어는 박규태의 말에 김치맛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으으으…….”
그리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원망이 가득한 눈빛.
그가 박규태를 노려봤다.
“팍! 다음 경기에서 패스 안 줄 거야!”
* * *
12월 16일.
오세르의 홈 경기장인 스타드 드 리베 데샹에 많은 관중이 몰리기 시작했다.
약 1만 8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곳을 찾은 오세르의 홈팬들과 소쇼의 원정 팬들은 이번 ‘쿠페 데 라 리그’ 4라운드에서 자신의 팀이 승리를 거두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런 관중들 사이에 앉아 있는 스페인 출신의 스카우트.
하비 페레스는 필드가 보이는 자리에서 조용히 캠코더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레알 소시에다드의 유럽지역 스카우트인 그는 최근에 파비안 레페에게 많은 관심을 쏟고 있었다.
‘샬케04 시절의 잠재력은 보이지 않지만, 지금 우리 팀의 백업 공격수로 확실한 옵션이 될 거야.’
그는 현재 구멍이 난 레알 소시에다드의 공격진에 파비안 레페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라 평가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혼자만 파비안 레페를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피오렌티나도 스카우트를 보냈군.’
피오렌티나도 꽤 경험이 많은 스카우트를 보내면서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유일하게 이곳에 있는 스카우트 중에서 샬케04만이 파비안 레페에게 관심이 없었다.
와아아아아!
선수들이 입장하기 무섭게 큰 환호성이 들려왔다.
스카우트들의 눈빛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피오렌티나의 스카우트.
로베르토 제라치가 박규태에게도 관심을 드러냈다.
‘팍이라고 했나? 이 친구의 자료도 잘 정리해야겠어.’
데뷔한 지 1년도 안 된 어린 선수라서 구단에서도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었고, 그도 아직은 박규태보다는 파비안 레페가 더 좋은 선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음…….’
하지만 저 폼을 계속 유지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
그때였다.
삐이이익!
주심이 휘슬을 불었고, 두 팀의 선수들이 치열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AJ 오세르와 FC소쇼.
두 팀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 국뽕 박규태 선생 #15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