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14 >
그르노블의 파비앙 메르카달 감독.
그는 오늘 4-2-3-1 전술을 꺼내 들었다.
오늘 경기에서 그는 선수들에게 많은 활동량을 요구했는데, 특히나 중앙에서 움직이는 3명의 미드필더에게 많은 수비가담을 지시하면서 중앙을 확실하게 잡고 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크리스티 조엘 감독의 4-4-2에서 항상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던, 미드필더진의 숫자 부족을 노린 전술적 변화였다.
-경기가 시작되고 초반은 그르노블이 확실하게 기세를 잡고 있습니다.
-많은 활동량을 가져가면서 중원을 잡은 그르노블! 하지만 소쇼의 수비가 생각보다 단단합니다.
-주전이 많이 빠졌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경기력이 정말로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늘 크리스티 조엘 감독의 4-4-2는 기존과 조금 달랐다.
정확히는 4-4-1-1이나 다름이 없었다.
박규태가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까지 내려와서 적극적인 수비 가담으로 중원으로 쏠리는 그르노블의 압박을 막아주었고, 동시에 미드필더진과 수비진을 구성하는 선수들이 시메오네 감독의 두 줄 수비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점유율을 낮춘 대신에 단단한 수비를 보여주고 있었다.
“측면으로!”
“간격 맞춰! 이거 뚫리면 죽는다고 생각해!”
어린 나이의 선수들로 꾸려진 소쇼의 선수진.
그중에서 그나마 경험이 많은 몇몇 선수들이 라인의 간격과 선수들의 위치를 조정하고 있었다.
덕분에 그르노블은 전반전 15분이라는 시간 동안 63%라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져갔음에도 유효 슈팅 2개라는 씁쓸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생각보다 경기가 상당히 치열합니다.
-이번에 측면에 연결되는 공!
-역습입니다! FC소쇼의 엔조 마이어 선수에게 공이 향합니다. 측면으로 뛰어가는 엔조 마이어! 달립니다! 빠릅니다!
-크로스!
-박규태 선수의 헤더!
-공을 잡고 벤자민 몽맹에게 패스!
공을 잡은 벤자민 몽맹은 침착하게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자신의 공을 빼앗으려는 수비수를 한 번 접는 것으로 제치고는 그대로 슈팅을 가져갔다.
-슈퍼 세이브!
-그르노블의 벤자민 판 리어 골키퍼가 몸을 날려 위험한 상황을 지켜냈습니다!
-하하하! 벤자민이 벤자민의 골을 막아냈군요.
아쉬운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는 벤자민 몽맹.
박규태가 그런 그에게 따봉을 날렸다.
“1따봉 적립이다.”
“따봉은 알고 있어. 그거 포르투갈어 맞지?”
“맞아. 너 최고라고.”
포르투갈에서 쓰이는 따봉과 한국에서 쓰이는 따봉의 의미가 살짝은 달랐지만, 벤자민 몽맹은 아무것도 모른 채 환하게 웃으며 전의를 다졌다.
“좋았어! 오늘 팍에게 따봉을 10번 받아야지.”
“아니야, 그건 아니야. 따봉 말고 골을 노려.”
따봉 10번이면, 도대체 몇 번의 기회를 날릴 생각일까.
기겁한 박규태가 급히 벤자민 몽맹을 만류했다.
그러나 이런 여유도 잠깐이었다. 금방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으니까.
전반 24분.
“팍! 받아!”
박규태에게 날아드는 공.
자연스럽게 공을 가슴으로 받아낸 박규태는 턴을 하고서 빠르게 골대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를 따라 빠르게 움직이는 루카스 레이.
그가 순식간에 박규태의 앞을 막고서 자리를 잡았다.
‘와라! 멍청한 동양인……! 박살을 내주마!’
박규태는 그런 루카스 레이를 보고 빙긋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할까?’
뚫는다면, 바로 슈팅을 가져갈 수 있다.
좋은 기회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박규태의 시선은 벤자민 몽맹에게로 향했다. 그라면 충분히 좋은 기회를 만들 것이 분명했다.
‘무리하지 말고 가볍게.’
툭!
가볍게 공을 띄웠다.
수비수의 머리를 지나 라인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벤자민 몽맹의 발에 떨어지는 박규태의 로빙패스.
그가 공을 잡기 무섭게 조금 더 파고들더니 중앙으로 파고든 엔조 마이어에게 확실한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엔조 마이어!! 슛!
-고오오오오올!!
-오늘 경기에서 FC소쇼의 선취점이 드디어 터집니다!
-박규태 선수의 발에서 시작된 공격이거든요? 거칠고 투박한 축구밖에 못한다는 인식이 있는 소쇼지만, 이런 세밀한 축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오오오! 좋았어!”
“벤자민! 진짜 죽여주는 패스였어!”
“좋아! 이렇게 가자! 이렇게만 가자!”
환호성을 내지르는 소쇼의 원정 팬들.
박규태는 선수들과 함께 원정 팬들에게 달려가 소리쳤다.
“우리가 누구!!”
그러자 홈팬들이 소리쳤다.
“Les Lionceaux!!(아기 사자들!)”
소쇼의 별칭을 내뱉는 원정 팬들.
FC소쇼가 전반전에 선취점을 만들며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 * *
점수를 내준 뒤.
그리고 점수를 만든 뒤, 두 팀의 전술이 세밀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상대가 중앙에 더 힘을 쏟고 있어! 최대한 미드필더와 수비진 사이의 공간을 줄여!”
“소쇼의 수비진이 앞으로 나오게 과감하게 슈팅을 가져가! 너무 신중하게 움직이지 마!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는 소쇼의 수비진이 먼저 자리를 잡을 거야!”
두 팀의 벤치는 바삐 움직였다.
점수를 만든 소쇼는 더 촘촘한 수비를 요구했고, 반대로 점수를 만들어야 하는 그르노블은 선수들에게 더 과감한 슈팅과 판단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이런 세세한 전술의 변화 덕분에 박규태와 루카스 레이가 계속해서 경합을 벌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승자는 박규태였다.
거친 플레이로 박규태의 기를 죽이려던 루카스 레이는 그의 생각과 다르게 오히려 휘둘리고 있었다.
벌써 그의 옆구리는 박규태가 교묘하게 꼬집어서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계속 필드에 쓰러지는 바람에 그의 유니폼은 잔디즙으로 물들어 있었다.
“개자식……. 죽여 버리겠어.”
“그런 말을 내뱉는 녀석들이 대체로 먼저 뒤지더라.”
“엿 먹어. 건방진 동양인.”
이번에도 높게 올라오는 공.
박규태와 루카스 레이가 자리다툼을 시작했다.
교묘하게 손을 움직여 루카스 레이의 유니폼을 살짝 잡아당긴 박규태는 그보다 먼저 자리를 잡고 공을 지켜냈다.
“비켜!”
급한 마음에 루카스 레이의 동작이 커졌고, 손이 살짝 올라가 박규태의 얼굴을 스쳤다.
딱히 위협적이지는 않았지만, 박규태는 주심의 위치를 파악하고 바로 얼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으아아아악!”
삐이이익!
-아! 루카스 레이가 손을 썼다는 판단입니다.
-너무 손이 높았어요.
“주심! 저 녀석이 먼저 더럽게 했어요. 그리고 손도 그리 높지 않았어요! 저 녀석이 오버액션을 하는 거라고요!”
억울함이 가득한 루카스 레이의 표정.
하지만 주심의 판정은 변함이 없었다.
옐로카드를 꺼내든 주심은 그에게 주의하라고 경고를 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박규태.
그가 카메라와 주심의 시선이 없는 곳에서 루카스 레이를 보고 방긋 미소를 지었다.
“역겨운 자식.”
“축구는 원래 이렇게 지능적으로 하는 거야.”
“엿 먹어.”
루카스 레이를 약 올리며 신나게 즐긴 박규태.
그가 힐끗 엔조 마이어와 시선을 교환했다.
프리킥을 차기 위해서 공 앞에 선 엔저 마이어는 박규태를 보더니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는 자세를 잡았다.
-프리킥 찬스! 직접 노릴 수 있는 위치입니다.
-소쇼의 엔조 마이어 선수는 프리킥 정확도가 상당히 뛰어난 선수입니다. 이번에 직접 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삐이익!
주심이 휘슬을 불기 무섭게 엔조 마이어가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뻐엉!
엔조 마이어가 찬 공은 낮고 빠르게 선수들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고, 박규태는 그 공에 타이밍을 맞춰 몸을 움직였다.
190㎝가 넘는 루카스 레이의 앞에 선 그가 머리로 공을 받고 그대로 턴을 시도하며 몸으로 밀고 들어갔다.
-프리킥은 박규태 선수의 머리에 연결되었습니다!
-공을 지켜낸 박규태 선수가 턴을 하고 페널티 에어리어를 향해 돌파합니다! 빠릅니다! 정말 빠릅니다!
-기회가 왔습니다!
몸을 밀어 넣어 기회를 만든 박규태.
우당탕.
드리블에 루카스 레이가 당혹감을 드러냈다.
“큭! 이게 무슨!”
수비수인 루카스 레이와 박규태의 발에 부딪히면서 살짝 떠오른 공에 박규태가 그대로 발리슛을 가져갔다.
발등에 정확하게 얹힌 공.
박규태의 슈팅은 그르노블의 골키퍼인 벤자민 판 리어가 반응하기 전에 이미 골망을 흔들어 버렸다.
와아아아아아아!
환호성을 내지르는 소쇼의 원정 팬들.
박규태는 선수들과 함께 원정까지 따라온 소쇼의 팬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팬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주모오오오오!”
“쥬모오오오!”
“쭈모오오오!”
-골!! 골입니다!
-박규태 선수가 그르노블을 상대로 시즌 19호 골을 터뜨렸습니다! 대단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2 대 0으로 달아나는 FC소쇼!
-정말 대단하네요! 엄청난 골 결정력을 보여주고 있는 박규태 선수입니다! 환상적입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루카스 레이.
골을 넣은 박규태가 그의 앞을 지나가며 펄쩍 뛰어올라 호날두의 ‘호-우!’ 자세를 따라했다.
“주-모우!”
그 도발에 루카스 레이가 고개를 떨구었다.
* * *
[주모! 프랑스를 지배하는 한국인 공격수 박규태!]
[FC소쇼! 그르노블을 상대로 3 대 1 승리.]
[박규태 그르노블전 1골! 압도적인 기량 보여줘.]
[리그 14호 골로 득점 선두로 치고 나가는 박규태!]
[단단한 소쇼! 압도적인 공격력보다 깊게 살펴야 할 것은 지금까지 딱 9실점만 허용한 수비진!]
[주-모우! 한국산 호날두의 맹폭격!]
-캬……. 진짜 거의 1경기에 1골씩 넣는 느낌이네.
-골 넣는 법을 잘 알고 있음. 1부리그 승격해도 충분히 시즌 두 자릿수 골을 비벼볼 수 있을 듯함.
-주-모우!
-그르노블의 4번인가? 그 녀석 SNS에 헛소리 남기더니, 결국에는 경기에서 박규태한테 씹압살 당해서 병풍 됐잖아.
-주-모우우우!
-ㅋㅋㅋㅋㅋㅋ 입으로 흥한 자, 입으로 망한다.
-어찌하누. 입 털다가 털려 부렸어.
-꺼-억 개꿀띠. 수비 멘탈 개탈탈띠.
-진짜 퍼거슨 경이 옳았습니다. SNS는 인생의 낭비가 맞습니다! 아아……. 어찌 연전연승을 계속할 수 있는 겁니까? 퍼거슨 경……!
-그러니까. 뒤에 ‘경’이 붙는 거야.
팀 전체가 공격적으로 압박을 하는 움직임이 아닌, 시메오네 감독의 두 줄 수비를 적극적 활용하면서 주전이 많이 빠졌음에도 그르노블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다시 모든 주전을 엔트리에 넣을 수 있게 된 소쇼는 프랑스 컵 8라운드에서 세미프로팀인 ‘MDA 풋’을 상대로 5 대 0으로 대승을 거두었다.
후반전에 20분 정도 출전한 박규태는 2골을 몰아넣으면서 자신의 골 결정력을 과시했다.
그렇게 12월 12일에 있을 리그 18라운드 ‘ES. 트르와 오브 샹파뉴’와의 경기를 준비하기 시작한 FC소쇼.
그런 그들에게 불길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분데스리가의 샬케04, FC소쇼의 박규태에게 관심 드러내.]
[ACF 피오렌티나의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감독, ‘리그 되’를 지배하는 공격수에 관심 있다고 인터뷰에서 밝혀.]
[레알 소시에다드, 겨울에 한국인 공격수를 데려오기 위해서 프랑스로 스카우트팀을 보냈다!]
소쇼의 환상적인 공격수.
박규태에게 많은 팀에서 관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 국뽕 박규태 선생 #14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