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12 >
“젠장.”
벤자민 몽맹은 결승골을 넣은 박규태를 바라봤다.
처음에는 자신보다 못한 선수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골을 잘 넣기 시작하더니, 어느 때부턴가 그보다 더 많은 기회를 붙잡았다.
그나마 장클로드 클레가 생테티엔으로 이적하면서 주전 자리를 지킬 수 있었지만, 언제 그 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사실이 그의 심장을 옥죄고 있었다.
그 바람에 그의 플레이에는 조급함이 생겼다.
조금은 침착하게 처리할 수 있는 부분에서 그는 급하게 움직였고, 충분히 넣을 수 있는 골도 놓쳤다.
“마음에 안 들어.”
그는 지금 이 모든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경기가 끝나고 라커룸에 들어선 선수들은 그를 제외하고는 모두 오늘 경기의 짜릿한 승리를 즐기기에 바빴다.
“팍! 역시 네가 최고야!”
“Coréen!! 소쇼를 이끄는 최고의 한국인이라고!”
승리를 기뻐하는 선수들.
그 중심에서 박규태가 미소를 짓고는 소리를 질렀다.
“주모오오오오오! 여기 국뽕 한 사발!!”
“그거 한국말이지? 무슨 뜻이야?”
“축구를 2배로 잘하게 되는 주문이야.”
“정말? 어쩐지 팍이 골을 미친 듯이 잘 넣더니! 그런 비결이 있었단 말이야?”
엔조 마이어는 순진한 눈으로 박규태의 농담을 진담으로 이해하고 말았다.
하지만 최근에 박규태가 보여주는 활약을 보면, 이런 농담도 쉬이 무시할 수 없었다.
몇몇 선수는 이미 어설프게 박규태가 외치는 ‘주모’를 따라 하고 있었다.
그중에 엔조 마이어도 있었다.
“주모오오오오오오!”
“쥬모오오오오!”
“쭈모오오오오!”
라커룸을 뒤흔드는 주모의 향연.
선수들 모두가 ‘주모오오오오’를 외쳤다.
그리고 그 소리가 라커룸을 넘어 복도를 뒤흔들었다.
“쯧……. 멍청하기는.”
한심하다는 듯 선수들을 바라보는 벤자민 몽맹.
그는 라커룸을 나와 샤워룸으로 향했다.
홀로 샤워룸으로 들어선 그는 슬쩍 주위를 살피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쥬…… 모! 큼큼……!”
* * *
샤므와 나오르 FC를 1 대 0으로 잡아낸 FC소쇼.
한 명이 퇴장을 당한 상태에서 짜릿한 승리를 거둔 그들은 2위인 르 아브르와 승점을 3점 차이로 벌리며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프랑스 컵 7라운드.
‘쿠페 데 라 리그’와 다른 컵 대회인 프랑스 컵에서 프랑스 내셔널리그의 세미프로팀 ‘르 망 쉬니옹 클럽’을 상대하게 되었다.
모처럼 주전들을 체력을 아낄 기회.
당연하게도 크리스티 조엘 감독은 2군에 있던 선수들과 로테이션 멤버를 모두 내보내면서 주전들의 체력을 보존했다.
전반전을 4 대 0으로 박살 낸 소쇼.
후반전이 시작되었고, 선수들의 경기력 유지를 위해서 엔조 마이어와 벤자민 몽맹, 박규태를 후반전 늦게 교체시켰다.
박규태는 후반 35분에 출전.
후반 42분에 날카로운 발리슛으로 프랑스 컵 첫 골을 터뜨리면서 나쁘지 않은 골 감각을 유지했다.
그리고 찾아온 11월 21일 경기.
리그 4위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님 올랭피크를 상대로 FC소쇼는 체력을 비축했던 주전을 모두 내보냈다.
-님 올랭피크! 이번 시즌에 많은 돈을 투자해서 좋은 선수들을 많이 영입했습니다.
-미드필더진에 얀 그보오와 코디 학포는 물론이고 공격진에 밥티스트 기욤과 라시드 알리우이를 데려왔습니다.
-반대로 소쇼는 돈을 쓴 영입은 전혀 없었고, 임대를 보내놨던 어린 선수들과 2군에 있던 선수들을 끌어올리는 방법으로 지금의 스쿼드를 구성했습니다.
-구단의 운영에 있어서 상당히 대척점에 있는 두 팀이 오늘 리그 15라운드에서 맞붙게 되었습니다.
님 올랭피크는 부진했던 공격진과 미드필더진을 이번에 갈아엎으면서 많은 준비를 했다.
거기다 승격과 강등을 경험한 베테랑들이 팀의 중심을 잡으면서 이번 시즌에도 상위권에서 강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두 팀의 스타일도 극명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소쇼가 거칠고 강한 압박과 빠른 역습으로 경기를 끌고 나가는 것과 다르게, 님 올랭피크는 수비진으로 시작되는 탄탄한 패스와 공간을 잘 만드는 지공으로 소쇼를 밀어붙였다.
“측면으로 공이 올라온다!”
“커트해!”
높게 올라오는 크로스.
박규태는 높게 뛰어올라서 공을 따냈다.
그리고 필드에 떨어진 공을 지키기 위해서 수비수를 등지고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아니, 저 새끼는 또 저러네.’
욕심이 가득한 눈으로 벤자민 몽맹이 그에게 패스를 재촉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측면으로 볼을 돌리는 박규태.
이어진 플레이에서 호르헤 누네즈가 올린 크로스에 중앙으로 파고든 소피안 다함이 정확한 헤딩을 가져가면서, 님 올랭피크를 상대로 선취점을 만들었다.
-깔끔한 플레이!
-FC소쇼가 님 올랭피크를 상대로 전반전에 골을 넣으면서 먼저 기세를 잡았습니다!
-이게 젊은 팀의 장점입니다. 기세가 오르면 그 어떤 팀도 상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전반전의 선취점.
그것을 계기로 FC소쇼는 님 올랭피크를 계속해서 공략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박규태-엔조 마이어-호르헤 누네즈의 나쁘지 않은 호흡은 님 올랭피크가 수비하는데 어려움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벤자민 몽맹은 없었다.
님 올랭피크의 홈팬들이 내지르는 야유.
우우우우우우!
그 야유를 들으며 벤자민 몽맹이 얼굴을 찌푸렸다.
전반전 20분이 조금 지난 시각.
그에게 5번의 기회가 왔지만, 그는 맥없이 그 기회를 모두 놓쳤다.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왔음에도 너무나 힘이 들어가서 골대를 넘어가는 슈팅으로 마무리하였다.
덕분에 님 올랭피크의 수비진은 벤자민 몽맹보다 박규태를 더 많이 압박하기 시작했다.
‘아오……. 진짜 정신을 못 차리네.’
덕분에 박규태는 계속해서 강한 압박 속에서 FC소쇼의 공격을 이끌어야 했다.
크리스티 조엘 감독도 그 모습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벤자민은 역시 힘들겠지?”
“하지만, 그보다 뛰어난 공격수가 팀 내에 없습니다. 호르헤 누네즈는 아직 나이도 어리고, 중앙에서 움직이기보다는 측면에서 움직이는 게 팀에 훨씬 도움이 됩니다.”
귀 몬구아르 수석코치의 대답에 크리스티 조엘 감독이 긴 한숨을 내뱉었다.
“후……. 벤자민이 빨리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각처럼 벤자민 몽맹은 달라지지 않았다.
계속해서 탐욕스럽게 골을 원했다.
그것은 욕심이었다. 누군가에게 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조급함.
그것이 벤자민 몽맹의 플레이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
“아!”
“이번에도 놓치네.”
“도대체 골을 넣을 생각이 있는 거야?”
원정 팬들은 벤자민 몽맹이 연이어 기회를 날리자 탄식을 내뱉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팍! 조금 더 빨리 패스를 해줘!”
“벤자민, 지금 상황에서는 그냥 볼을 돌리는 게 좋았어.”
“아니, 조금만 더 빨리 패스를 했으면 완벽하게 넣을 수 있었어!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어떻게 그게 무시가 되는 거지?”
박규태의 빈정거림에 벤자민 몽맹이 이를 꽉 물었다.
“젠장! 쓰레기 같은 팀.”
“벤자민! 말이 너무 심했어.”
엔조 마이어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벤자민 몽맹은 입을 닫고 다시 자신의 위치로 향했고, 박규태는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렇게 여러 기회를 날린 FC소쇼.
어느새 정신을 차린 님 올랭피크의 맹공을 막으며 남은 시간을 보낸 그들은 겨우겨우 무실점으로 전반전을 끝낼 수 있었다.
하프타임에 라커룸으로 들어선 선수들.
“씨X.”
벤자민 몽맹은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거친 말을 내뱉고는 수건을 던지며 화장실로 향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박규태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국뽕을 위해서 정신교육을 해줘야겠어.”
* * *
“제길.”
벤자민 몽맹.
사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플레이가 너무 급하다는 것을.
하지만 인정할 수 없었다.
분명히 골을 넣을 수 있는 장면이 많았다. 그리고 그 장면들이 그의 머리에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실수를 그저 남에게 돌리고 있었다.
“분명히 넣을 수 있던 기회였는데.”
“아니, 그건 들어갈 수 없는 슈팅이었어.”
“…….”
그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그는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팍……. 이상한 헛소리를 하러 왔다면, 그냥 가는 게 좋아. 지금 내 기분이 좋을 때 말이야.”
“너도 병신 같은 플레이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 내 김치뽕 파워가 너의 그 짝불알을 터뜨릴 수 있으니까.”
“농담이 아니야. 팍.”
화가 잔뜩 난 표정의 벤자민 몽맹.
그가 박규태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네가 뭐라고 내게 그런 말을 하지?”
“그러는 너는 뭐가 된다고 팀원들이 공들여 만들어준 기회를 그렇게 엉망으로 만드는 건데?”
으드득.
이를 꽉 물어버린 벤자민.
그가 매섭게 박규태를 노려봤다.
하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래도 미안한 감정은 있나 보네.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니까. 넌 팀원이 만든 좋은 기회를 네 탐욕으로 날린 거야.”
“닥쳐!”
“팩트를 알려줄까? 지금보다 좋은 기회가 많았어. 그저 네가 침착하게 플레이하지 못해서 날린 것이지.”
“…….”
“근데 웃긴 게 뭔지 알아? 지난 시즌의 너는 지금보다 더 어려운 기회를 뚫고 골을 만들었다는 거야.”
“지난 시즌?”
“그래, 지난 시즌의 너는 네가 가진 능력을 잘 활용했어. 어중간한 기술과 좋지 않은 골 결정력. 그리고 쓸만한 주력. 하지만 네 가장 큰 장점은 어떤 순간에도 주위를 둘러보던 침착함과 뛰어난 위치선정이었지.”
“침착함과 위치선정……!”
“지금의 너는 어때? 침착함은 물론이고, 과감을 넘어선 괴팍한 슈팅과 맛이 가버린 위치선정 능력을 보여주는 공격수야. 난 오히려 궁금해. 그렇게 맛이 간 상태로 어떻게 리그에서 4골이나 넣었는지 궁금할 정도라고.”
“…….”
“잘 생각해. 네 장점은 그 어떤 것도 아닌 상황을 잘 살필 수 있는 침착함과 베테랑도 울고 갈 뛰어난 위치선정 능력이니까.”
깊은 생각에 잠긴 벤자민 몽맹.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박규태가 화장실을 나서려고 했다.
그때 등 뒤에서 벤자민이 물었다.
“어째서 날 도와주는 거지? 우린 경쟁자잖아.”
“내 축구를 위해서지. 그리고 국뽕을 위해서.”
“쿡퐁? 도대체 그게 뭐지? 그게 무엇이기에 네가 그렇게 축구에 간절하게 만드는 거야?”
그 물음에 뒤돌아선 박규태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내 목숨을 건 신념이지. 내 삶 그 자체야.”
“목숨을 건…… 신념…….”
“그래, 넌 축구에 목숨을 걸어봤어?”
그 물음에 벤자민 몽맹이 대답하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 * *
크리스티 조엘 감독은 전반전과 다르게 꽤 멋진 눈으로 후반전에 임하는 벤자민 몽맹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거…… 너무 걱정할 게 아니었군.”
“좋은 눈입니다. 아무리 현대 축구가 조금씩 숫자와 데이터로 변화하고 있다지만, 결국에 플레이하는 것은 선수니까요.”
“팍과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네, 화장실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더군요. 은근히 팍이 리더십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좋군. 경기가 잘 풀릴 것 같아.”
그의 생각처럼 후반전부터 FC소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님 올랭피크를 압박했다.
특히나 벤자민 몽맹이 전과 다르게 좋은 기회를 날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이스 패스!”
좋은 위치에서 공을 잡아낸 벤자민 몽맹.
그는 침착하게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빠르게 중앙으로 파고드는 박규태를 확인했다.
“팍!”
그의 외침과 동시에 날아드는 날카로운 패스.
박규태는 그 빠르고 날카로운 패스에 논스톱으로 슈팅을 가져가면서 FC소쇼의 두 번째 골을 만들었다.
-고오오오올!
-벤자민 몽맹의 날카로운 패스! 그리고 팍의 환상적인 슈팅이 오늘 경기 두 번째 골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모습이에요! 벤자민 몽맹 선수의 뛰어난 위치선정 능력과 공을 잡은 뒤에 침착하게 다음 플레이를 전개하는 능력! 이게 크리스티 조엘 감독이 그에게 바라던 것이었거든요?
박규태는 세레머니를 하고는 힐끗 벤자민 몽맹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약발이 잘 먹혔는데?’
축구와 국뽕에 목숨을 걸었다는 말.
사실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살기 위해서는 ‘두 유 노 클럽’에 가입해야 하니까.
‘두 유 노 클럽’에 가입하려면 국뽕이 필요하고, 그 국뽕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관심이 필요했다. 그리고 관심을 받기 딱 좋은 것이 축구였고.
축구 실력이 좋아야 관심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남이 들으면 궤변이라고 생각할까?’
피식.
박규태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뭐 어때? 내 목숨이 중요한데.”
계속해서 이어지는 경기.
벤자민 몽맹은 전반전과 전혀 다른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후반 31분.
그가 기어코 환상적인 골을 터뜨렸다.
-벤자민 몽맹의 환상적인 골입니다!
-전반전에 팽팽하던 경기가 후반전에는 FC소쇼로 기울더니, 기어코 님 올랭피크가 크게 실점을 허용하는군요.
-님 올랭피크! 생각하기 싫은 실점입니다.
“으아아아아!”
“벤자민! 드디어 터졌구나!”
“그래! 넌 원래 그런 녀석이라고!”
오늘 경기에서 엉망인 그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던 소쇼의 원정 팬들은 그가 골을 넣자마자 얼굴을 바꾸고는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골을 넣은 벤자민 몽맹.
그가 불끈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관중석 근처로 달려갔다.
촤아아악!
깔끔한 무릎 슬라이딩을 한 벤자민 몽맹.
그가 관중들을 향해 소리쳤다.
“쥬모오오오오오!”
< 국뽕 박규태 선생 #12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