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10 >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한국과 일본의 선수들이 치열하게 붙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기회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후반전 20분이 빠르게 지나갔다.
뱅상 엘라즈 감독은 오늘 필드에서 많이 뛰어다닌 박규태를 벤치로 불러들였다.
교체로 필드를 빠져나가는 순간, 서울 월드컵 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면서 박규태는 확신했다.
오늘 경기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하지만 축구의 신은 다른 주인공을 생각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박규태는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아!! 동점골을 허용합니다.
-후반 41분에 동점골을 허용하는 대한민국……!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아……. 다시 점수는 2 대 2가 됩니다.
수비진의 실수로 동점을 허용한 대한민국.
남은 시간은 지지부진하게 흘러갔다.
그렇게 전후반 90분이 모두 지난 상황.
모두가 무승부로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동점골을 넣은 일본의 윙 포워드인 도안 리츠가 주인공이 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축구의 신이 점지한 진짜 주인공이 나타났다.
추가시간에 얻은 프리킥 기회를 얻은 대한민국.
이강민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강민, 고오오오올!
-얼마 남지 않은 추가시간에 이강민이 멋진 프리킥 득점을 올렸습니다!
-이강민!! 대단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와아아아아아!
함성으로 울리는 서울 월드컵 경기장.
주먹을 불끈 쥐며 환하게 웃는 이강민.
경기장의 관중들은 이강민의 이름을 연호했다.
그를 보면서 박규태가 벤치에서 멍하니 중얼거렸다.
“뭐야, 시X……! 내 국뽕 돌려줘요.”
* * *
[이강민이 대한민국의 승리를 지켰다!]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 이강민의 2골로 일본 격파!]
[대한의 건아! 이강민의 뛰어난 활약!]
[대한민국, 일본을 상대로 3 대 2 짜릿한 신승!]
[신인 스트라이커 박규태! 1골 1도움 맹활약!]
[뱅상 엘라즈 감독, “좋은 움직임과 결정력을 갖춘 공격수다.”]
[2골의 이강민, 1골 1도움의 박규태! 젊은 선수들의 활약!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다!]
-캬! 이강민 덕분에 이겼다!
-주모!!! 여기 발렌시아로 국뽕 하나 배달해주이소!
-캬……. 진짜 미드필더가 득점력까지 뛰어남.
-박규태도 잘했다. 1골 1도움……. 기대되는 스트라이커다.
-역시……. 공격수는 외국물을 마셔야 함.
-ㅇㅈ한다. 정명순이랑 비교해서 피지컬이나 기술적인 부분이 비슷한데, 골 결정력이랑 경기를 보는 시야는 꽤 좋음.
-진짜 데뷔전 골을 시원하게 때려버리네.
-이렇게 되면 정명순 빼고 황지찬-박규태 이렇게 둘로 북중미 월드컵 준비해도 될듯한데.
-이제 1경기 뛴 선수를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한다고? 너무 나간 느낌인데.
-그래도 장명순은 K리그에서 보여준 거라도 있지. 박규태는 별로 없잖아. 나도 지금은 박규태보다는 장명순이라고 본다.
-엌ㅋㅋㅋ FC 코리아가 프랑스 2부리그 무시하네?
-팩트) 박규태 프랑스 2부리그 폭격중.
-아……. 저 ‘대한의 건아’는 진짜 스테디셀러 제목이야. 수십 년이 지나도 여러 기사의 제목으로 쓰일 거야.
-진짜 ‘대한의 건아’ 부숴버리고 싶다. 노이로제 걸릴 것 같아.
일본전의 3 대 2 승리.
이강민의 활약에 살짝 묻힌 느낌이 있지만.
경기를 본 사람들의 뇌리에 남는 멋진 활약을 하면서, 박규태는 축구팬들에게 기대되는 유망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몇몇 성질 급한 인물들은 박규태를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시켜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쏟아내고 있었다.
“그래! 더욱 타올라라!”
박규태는 이런 상황이 좋았다.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축구 관련 커뮤니티가 불타오르는 것을 확인한 박규태가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다. 국뽕을 완전히 빼앗기지 않았어.”
그렇게 그의 첫 국가대표 소집이 끝났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 박규태.
소쇼의 선수들은 그가 돌아오자마자 그의 A매치 데뷔전과 데뷔골을 축하해주었다.
특히나 엔조 마이어는 빛이 나올 정도로 반짝거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기관총처럼 말을 ‘두다다!’ 내뱉었다.
“팍! 국가대표 데뷔전은 어떤 느낌이야?”
“팍! 데뷔골을 넣는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어?”
“팍! 한국에서 가장 맛있는…….”
“그만! 제발 그만! 귀에서 피 나오겠어!”
“귀에서 피도 나와?”
“염병! 누가 엔조의 입을 좀 막아줘!”
그렇게 엔조 마이어에게 시달린 박규태.
그는 훈련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조용히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첫 번째 시련]
-25-26시즌 ‘리그 되’에서 득점왕을 달성하시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시오.
[달성 보상: 골드 카드]
[실패: 축구와 관련된 작은 불행]
말은 시련이지만, 사실은 미션이나 다름이 없었다.
박규태는 곰곰이 생각했다.
“시련의 내용이 달라졌다.”
그가 알고 있던 내용과 달랐다.
회귀 전의 첫 번째 시련은 ‘시즌 20골’과 아시안게임 엔트리 합류였으니까.
훨씬 어려워졌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압도적인 골 결정력도 생겼고, 베테랑의 경험까지 쌓였다.
그렇기에 박규태는 자신감을 드러냈다.
“일단은 득점왕이겠지.”
첫 번째 목표를 잡은 박규태.
그가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 * *
9월 13일.
8월에 있었던 ‘쿠페 데 라 리그’ 2라운드.
FC소쇼에 패배한 FC메스.
그들은 이번 리그 경기에서 소쇼를 잡아낼 생각을 했다.
박규태는 국가대표 경기를 다녀왔기에 휴식 차원에서 출전하지 않았고, 팀의 공격수인 장클로드 클레와 중앙 미드필더인 필리페 가보리프가 9월 1일에 다른 팀으로 이적하면서 전력이 떨어진 FC소쇼였다.
충분히 메스에게는 승산이 있는 상황.
그런데도 소쇼는 메스를 상대로 5 대 1이라는 압도적인 점수 차이로 승리를 거두면서 리그 1위를 지켰다.
9월 19일에 펼쳐진 FC로리앙과의 경기에서는 전후반 60분을 소화하고 교체로 벤치에 들어갔다.
팀은 4-1로 승리를 거두었다.
분위기는 좋았다.
하지만 국내 언론은 헛소리를 내뱉었다.
[박규태, 갑작스러운 슬럼프?]
[박규태! 무득점 경기……! 무엇이 문제인가?]
[아직 박규태는 어린 선수. 부담감이 짐이 될 수 있다.]
[주전을 빼앗기면서 미래가 어두워진 박규태.]
“또 시작이네.”
박규태가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협회도 문제지만, 기자들도 문제였다.
조금만 부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기자들은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건 부진이 아니라…… 그냥 어린 선수를 관리해주려고 로테이션을 돌리는 건데 말이지.’
그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두 유 노 클럽’에 가입하려면, 저런 비틀린 관심도 필요했다.
“내가 잘 나가면 그때는 싹 고소를 때려야지.”
투덜거리는 박규태.
그는 다음 경기를 위해서 훈련에 박차를 가했다.
* * *
9월 23일.
리그 8라운드.
FC소쇼는 랑스를 상대하게 되었다.
라싱 클럽 랑스.
줄여서 ‘랑스’는 매 시즌 중위권을 유지하는 ‘리그 되’의 망령이었다.
14-15시즌 강등을 당하고 그들은 지금까지 ‘리그 앙’으로 승격에 성공하지 못했고, 그렇게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 시즌은 달랐다.
신예 공격수인 얀 키탈라를 시작으로, 에레디비지에의 FC위트레흐트에서 뛰었던 미드필더 요리스 판 오버레임.
리그 앙의 툴루즈FC에서 중앙 수비수로 활약한 크리스토퍼 줄리앙.
여러 선수를 영입하면서 꽤 강력한 팀으로 탈바꿈했다.
덕분에 이번 시즌 리그 4위를 기록하면서 승격의 부푼 꿈을 꾸고 있었다.
-랑스! 꽤 단단한 수비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쇼가 초반부터 쉽게 슈팅을 가져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팍에게 공이 연결되면, 랑스의 수비수인 크리스토퍼 줄리앙이 붙어서 강한 몸싸움을 걸고 있습니다.
“강하게 압박을 해!”
“저 동양인을 잡아놔!”
박규태는 오늘 자신을 잡아먹을 듯 무섭게 노려보는 크리스토퍼 줄리앙을 피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내 장점인 피지컬이 통하지 않는 상대.’
크리스토퍼 줄리앙은 전형적인 파이터형 중앙 수비수였다.
기술은 떨어지지만 신체 능력만큼은 ‘리그 앙’에서도 먹힐 만큼 훌륭했다.
몸싸움부터 쉽지 않았다.
그리고 주력도 그보다 근소하게 빨랐다.
점프력도 좋았다.
게다가 신장도 컸다.
박규태는 덕분에 슈팅을 제대로 가져가지 못했다.
‘그런데도 2부리그에서 뛰고 있다?’
약점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박규태는 슈팅을 자주 시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벤자민 몽맹에게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크리스토퍼 줄리앙을 데리고 부지런하게 측면으로도 움직였다.
크리스토퍼 줄라앙이 박규태를 마크하면서 생긴 틈으로 많은 기회를 잡은 벤자민 몽맹.
그는 신나게 슈팅을 쏴대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덕분에 소쇼의 홈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벤자민 몽맹의 날카로운 돌파와 슈팅에 열광하고 있었다.
“오늘 벤자민이 날아다니는데?”
“팍은…… 조금 실망스럽네.”
“어쩔 수 없지. 그리고 공격수가 항상 골을 넣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이런 경기도 있는 법이지.”
하지만 골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선제골의 주인공은 랑스의 공격수인 얀 키탈라였다.
그는 팀의 미드필더인 요리스 판 오버레임이 올려준 크로스에 정확하게 머리를 가져가면서 골을 만들었다.
-쉽게 전반전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생각보다 지지부진한 전반전이었습니다. 특히 FC소쇼는 많은 기회를 놓친 것을 아쉬워할 겁니다.
-벤자민 몽맹은 너무 기회를 많이 놓쳤고, 팍은 기회를 잡지도 못했습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소쇼!
전반전이 너무 무기력하게 흘러갔다.
크리스티 조엘 감독은 고민이 가득한 표정으로 벤자민 몽맹과 박규태를 살폈다.
박규태는 많은 활동량을 가져가면서 랑스의 수비진을 데리고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굳이 뺄 이유는 없었다.
‘지금은 몽맹을 바꾸는 게 맞다. 하지만…… 몽맹을 대신해서 넣을 공격수가 우리 팀에 없다는 게 문제군.’
한참을 고민하던 크리스티 조엘 감독.
결국은 변화 없이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박규태는 필드로 향하면서 엔조 마이어를 불렀다.
“엔조!”
“왜?”
“벤자민이 라인을 따라 들어가면 중앙으로 치고 올라와.”
“그러다가 뚫리면 큰일 나잖아.”
“너라도 올라와야지. 나 혼자서는 크리스토퍼 줄리앙을 뚫을 수 없어. 벤자민은 오늘 되게 탐욕스러워서 힘들어.”
“알겠어. 벤자민이 라인을 끌고 올라가면서 생기는 공간을 노리고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거지?”
“잘 알아들었네. 역시 축구 머리는 좋구나.”
“그거 칭찬이지?”
“어, 칭찬이야.”
기분이 좋은지 해맑은 미소를 보여준 엔조 마이어가 자신의 위치를 향해 움직였다.
후반전의 시작과 함께 FC소쇼는 기세를 잡았다.
미드필더진을 이끄는 소피안 다함이 랑스의 미드필더진을 찍어 누르면서 안정적으로 공을 지켰다.
덕분에 소쇼는 전반전과 다르게 공격에 집중할 수 있었다.
후반 11분.
박규태는 힐끗 눈을 돌렸다.
공이 측면으로 돌았다.
벤자민 몽맹이 기회를 잡기 위해서 랑스의 수비진을 데리고 높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중앙에서 움직이던 엔조 마이어가 올라왔다.
우측 윙어인 이스마엘 베날리가 공을 잡았다.
박규태는 그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사인을 보냈다.
‘컴온! 나에게 줘!’
이스마엘 베날리는 그 사인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는 낮은 크로스로 박규태에게 공을 연결했다.
퍼억!
가슴으로 공을 받은 박규태.
크리스토퍼 줄리앙이 그를 압박했다.
하지만 그는 크리스토퍼 줄리앙을 등지고 공을 보호했다.
피지컬에 밀려도 짧은 시간은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버티던 박규태가 엔조 마이어에게 슬쩍 공을 넘겼다.
“알아서 마무리해!”
박규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엔조 마이어는 조금 더 랑스의 수비진 사이를 파고들더니, 기어코 벼락같은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고오오올!
-엔조 마이어의 완벽한 슈팅입니다!
-팍이 등을 지고 단단하게 공을 지키면서 기회를 만들었고, 그가 지켜낸 공으로 엔조 마이어가 슈팅을 가져가면서 동점골을 만들었습니다!
동점골이 터지는 순간.
랑스의 수비진이 당혹감을 드러냈다.
시즌 초반부터 리그에서 7골이나 때려댄 박규태가 슈팅을 거의 하지 않았으니까.
그는 오히려 연계 플레이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연계를 잘할 거라곤 생각을 못했겠지.’
사실, 박규태는 높게 올라오는 공을 잡고 등을 지는 플레이를 자주 즐겼었다.
회귀 전의 그는 뛰어난 ‘골게터’라고 볼 수 없었지만, 뛰어난 ‘타겟터’라고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동유럽의 하위리그에서 버틸 수 있었다.
거기다 연계에만 신경 쓰지도 않았다.
-측면으로 연결된 공!
-소쇼가 동점골을 넣고 기세를 탔습니다!
-랑스의 수비진이 정신이 없습니다! 흔들리고 있는 랑스! 전반전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박규태는 크리스토퍼 줄리앙의 집중력이 떨어진 것을 파악하고는 그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으로 살짝 움직였다.
‘피지컬만 좋으면 뭐해? 다른 선수보다 집중력도 크게 떨어지고, 축구 지능도 그리 좋지 않은데?’
그리고 크로스가 올라올 타이밍에 맞춰서 빠르게 랑스의 수비진으로 파고들었다.
“줄리앙!”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크리스토퍼 줄리앙은 마크해야 할 박규태를 놓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박규태를 급하게 쫓았지만, 이미 박규태는 높게 떠올랐다.
철썩!
그리고 깔끔하게 날아든 크로스의 궤적을 머리로 바꾸며 랑스의 골망을 뒤흔들었다.
< 국뽕 박규태 선생 #10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