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9 >
한일전.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에서도 관심이 많아서 ‘축구’나 ‘야구’ 같은 인기가 높은 스포츠 종목은 한일전의 평균 시청률이 30% 정도는 우습게 넘긴다.
경기가 열리면 다양한 포털 사이트 쪽에서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떠오르고, 끝난 뒤에는 스포츠 뉴스 1면을 장식한다.
당연히 해당 경기에 뛰는 선수들이나 그들을 이끄는 코치진, 감독들의 경우도 큰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동시에 어떤 분야에서든 한일전은 전력의 수십 배 이상의 힘을 낼 수 있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그러니까, 이건 기회지.’
한일전에서 좋은 성과를 내면, 아무리 성적이 부진했던 선수라도 ‘구국의 영웅’ 취급을 받는 대스타로 떠오른다.
반대로 실패하면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이 되기도 하고.
‘이건 기회야. ‘두 유 노 클럽’에 들어갈 기회.’
물론, 한일전 한 번으로 ‘두 유 노 클럽’에 들어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기틀을 마련할 수 있지.’
그걸로 충분했다.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다.
축구협회도 여러 방면에서 삽질을 하면서 곧 박규태가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줄 것이다.
[부상 병동의 대한민국 vs 늦은 세대교체의 일본]
[일본의 엘치 페르난도 감독, “무토 요시노리의 후계자를 찾는 경기가 될 것.”]
[한국과 일본, 필요한 것은 차세대 스트라이커!]
[일본의 신진 스트라이커, ‘히사야 오노다’ 출격하나?]
[대표팀의 선택은 정명순? 아니면 박규태?]
[조한우 vs 조훈, 주전 골키퍼의 주인이 될 선수는?]
[9월 9일 한일전의 승자는 누가 될까?]
[뱅상 엘라즈 감독의 깊어지는 고민!]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서울 월드컵 경기장.
약 66,000석의 규모를 갖춘 경기장은 벌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만큼 오늘 경기에 관심이 굉장하다는 뜻이었다.
대한민국 선수들의 얼굴에도 긴장과 동시에 꽤 결연한 의지가 가득했다.
팀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강민과 손형민은 솔선수범해서 선수들을 하나씩 챙기기 시작했다.
특히나 손형민은 오늘 원톱으로 경기를 풀어나가야 하는 박규태에게 붙어서 정신적인 부분을 살피고 있었다.
“네, 그렇게 해볼게요.”
하지만 그의 그런 걱정과 다르게 박규태는 신인이라고 볼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신인 맞아? 왜 이렇게 무덤덤해?’
손형민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거기다 박규태에게서는 알 수 없는 여유까지 느껴졌다.
뭔가 알 수 없는 느낌.
손형민은 곧 적절한 표현이 떠올랐다.
‘이상하게 경력 있는 신입처럼 느껴지네.’
묘한 표정으로 젊은 유망주를 살피는 손형민, 그리고 그런 시선을 받으면서도 박규태는 태연하게 오늘 경기와 관련된 생각을 했다.
‘오늘 경기에서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는다.’
박규태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 * *
필드에 입장하는 양국의 선수들.
서울 월드컵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의 환호성이 선수들의 귀를 때리기 시작했다.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북중미 월드컵 최종 예선이라고 볼 수 있는 3차 예선의 마지막 경기!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를 중계해드리겠습니다.
-오늘 일본은 9월 5일에 있었던 시리아와의 경기에서 보여준 전술과 선수들을 그대로 가져갑니다.
-반대로 대한민국은 공격진과 미드필더진에 작은 변화가 있습니다. 유진수 선수 대신에 이영태 선수가 투입되었고, 공격진에는 오늘 데뷔전을 치르는 박규태 선수가 원톱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두 팀의 포메이션이 똑같습니다.
-네, 4-2-3-1 포메이션이죠.
‘중앙의 공격형 미드필더가 어떤 식으로 공격을 풀어나가는지에 따라서 오늘 경기의 승패가 갈리겠어.’
물론, 그 부분에서는 한국이 월등하다고 볼 수 있었다. 이강민이라는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가 존재했으니까.
선수들이 둥글게 모였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볼을 가지고 있을 때는 공격적으로 공을 운반하거나 앞으로 찔러줘. 볼을 잃었을 때만 조심하면 충분해. 알겠지?”
“규태는 상대 수비수의 압박이 너무 힘들다 싶으면 조금은 측면에서 움직이는 윙 포워드를 활용하고.”
“알겠습니다.”
“하나, 둘, 셋! 파이팅!”
가볍게 파이팅을 외치고, 각자의 위치에 선 선수들.
삐이이익!
경기의 시작과 함께 박규태는 자신을 바라보는 일본 선수들의 시선을 느끼며 조용히 이강민에게 공을 넘기고는 앞으로 달렸다.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오른쪽에서, 일본이 왼쪽에서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정말 많은 축구팬이 이곳 서울 월드컵 경기장을 찾아주셨습니다.
-기본적으로 4-2-3-1 포메이션이 중앙에 선 공격형 미드필더의 득점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전술입니다. 동시에 그만큼 중앙에 선 공격형 미드필더가 많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전술이죠.
공을 돌리면서 공격을 시도하는 대한민국 대표팀.
박규태는 생각보다 널찍한 일본의 수비진과 미드필더진 사이의 공간을 보며 의아함을 드러냈다.
‘설마 날 무시하는 거 아니지?’
일본의 수비진은 그보다는 중앙에서 패스의 연결고리가 되는 이강민을 더 의식했다.
박규태는 공을 가진 이강민을 바라봤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필드 전체를 살피던 이강민과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수비진과 미드필더진 사이에 자리를 잡은 박규태에게 적절한 패스를 찔러 넣는 이강민.
박규태는 그 패스를 받기 위해 움직였고, 아시아인치고는 꽤 힘이 좋고 덩치가 있는 중앙 수비수 키노시타 테츠로가 박규태가 공을 잡지 못하게 몸을 밀어 넣었다.
터억!
“큭!”
물론, 박규태는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공을 지키고 그를 제치는 데 성공했다.
그제야 급히 움직이는 일본의 수비진.
‘늦었어!’
하지만 이미 박규태는 준비가 끝났다.
20m 거리에서 터진 그의 중거리 슛.
철썩!
-고오오오오올!
-전반 4분에 터진 박규태 선수의 중거리 슛!!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박규태 선수가 A매치 데뷔전 4분 만에 데뷔골을 터뜨렸습니다!
-정말 시원한 슈팅입니다!! 박규태! 뱅상 엘라즈 감독이 정말로 좋아합니다! 주먹을 불끈 쥐었어요!
경기가 시작되고 딱 4분이 지난 상황.
박규태가 자신의 A매치 데뷔전에서 환상적인 중거리 슛으로 데뷔골을 터뜨리며 일본의 골망을 흔들었다.
* * *
“환상적인 선수군.”
“골을 넣을 줄 아는 선수입니다. 정말로 대단합니다!”
“A매치 데뷔전을 치르는 선수가 맞습니까? 긴장한 것 같지도 않고, 거기다 환상적인 중거리 슛까지! 진짜 대단하네요.”
스태프들의 표정이 밝았다.
당연하게도 뱅상 엘라즈 감독도 만족스러웠다.
‘골을 넣을 수 있는 타이밍과 조금의 공간이 있으면 과감하게 슈팅을 가져갈 수 있는 선수다.’
이런 유형의 선수는 한국에 없었다.
그렇기에 뱅상 엘라즈 감독은 잘 쓰지 않았던 4-2-3-1 전술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렇게 된다면 굳이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선 이강민에게 부담감을 주는 4-2-3-1 전술을 쓸 필요가 없지.’
뛰어난 센터 포워드가 나타난 이상, 굳이 이강민에게 부담감을 줄 필요가 없었다.
‘다른 전술을 생각해봐야겠어.’
그렇게 생각하고는 뱅상 엘라즈 감독이 최전방에서 일본 수비진을 강하게 압박하는 박규태를 바라봤다.
-박규태 선수! 이번에도 강한 압박으로 일본의 수비진이 후방에서 천천히 빌드업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공격수의 저런 압박은 상대 수비수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오거든요? 분명히 일본의 수비진이 실수하는 순간이 옵니다.
실점한 일본은 아까와 다르게 촘촘한 수비진을 보여주면서 박규태의 슈팅을 철저하게 막았다.
‘그래, 적어도 이런 수준의 수비가 나와야 뚫을 맛이 나지.’
박규태는 그렇기에 더 활발하게 움직였다.
일본의 선수들은 최대한 점유율을 살리면서 다시금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서 노력하기 시작했다.
-유타 토요카와에게 연결되는 공!
-일본은 측면에서 뛰는 선수들이 상당히 발이 빠릅니다. 그 부분을 생각해서 수비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강한 압박.
일본은 그 해답으로 측면을 생각했다.
중앙에 있는 공격형 미드필더인 쿠보 타케후사가 측면으로 공을 연결했다.
일본의 측면 공격수들이 빠른 발을 이용해서 대한민국의 측면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올라오는 크로스!!
-헤더어어어어!
-조훈의 슈퍼 세이브!!
-조훈 골키퍼의 선방! 정말 멋진 세이브입니다!
-일본의 측면 공격을 조심해야 합니다. 지금 대표팀의 측면 수비수들이 일본의 윙 포워드를 제대로 억제하지 못하고 있어요!
선취골이 터지고 11분이 지난 전반 15분.
기어코 일본의 측면 공격수들이 대한민국 대표팀의 수비진을 허물며 동점골을 만들었다.
동점골의 주인공은 무토 요시노리였다.
“괜찮아!”
“다시 0 대 0으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하자.”
베테랑들의 외침에 몇몇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수비진은 항상 똑같네.’
박규태는 조용히 그런 선수들을 바라보고는 다시 경기에 집중했다.
삐이익!
다시 시작된 경기.
경기는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온 상황.
일본의 선수들은 이제 원톱인 박규태를 경계하면서 대한민국의 역습을 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선수가 90분을 온전히 집중할 수 없다.
공격을 전개하면서 자연스럽게 박규태를 향한 경계심과 집중을 살짝 놓고 말았다.
그게 큰 실수였다.
‘이미 기세를 잡았어. 조금은 수비진을 올려도 문제없겠어.’
수비진의 중심인 야스히로 코바야시가 수비의 라인을 조금씩 올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확인한 박규태가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기회다.’
박규태는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 부지런히 일본의 수비진을 압박하며 뛰어다녔고,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딱 한 번의 기회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찾아온 전반 43분.
중앙에서 꽤 압박이 심하다는 것을 느낀 야스히로 코바야시가 살짝 올라왔다.
공을 받은 그가 앞으로 나서면서 측면으로 다시 공을 배급하려고 주변을 살폈다.
그때 옆에서 강한 압박이 느껴졌다.
야스히로 코바야시가 급히 전방으로 공을 연결했지만, 어설픈 패스를 기다리던 이강민에게 커트 되었다.
야스히로 코바야시를 압박하던 박규태는 이강민이 공을 잡고 수비진 뒤로 살짝 공을 넘기는 순간, 달리기 시작했다.
절묘하게 떨어지는 공.
박규태는 공을 배로 밀면서 빠르게 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박규태! 기회입니다!
-달립니다! 빠릅니다! 빨라요!
“제기랄! 막아!”
최후방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수비수 키노시타 테츠로가 빠르게 달려와서 그의 앞을 막아섰다.
툭! 투툭!
박규태는 그럼에도 거침이 없었다.
그는 개인기와 함께 몸으로 키노시타 테츠로를 밀어내면서 그대로 페널티 박스로 파고들었다.
‘아무리 승패와 상관없는 경기지만, 일본전은 이겨야지.’
툭!
박규태는 밀고 들어가다가 힐킥으로 공을 뒤로 연결했다.
일본 선수들이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그리고 그 공을 잡은 선수, 이강민이 논스톱으로 깔끔하게 슈팅을 가져가면서 골망을 뒤흔들었다.
-이강민!! 고오오오오올!!
-박규태 선수의 아름다운 힐킥을 받아서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일본의 선수들이 제대로 잡지를 못했습니다.
-역시나 이강민입니다!
와아아아아!
환호성을 내지르는 서울 월드컵 경기장의 관중들.
박규태는 중간중간 그의 이름을 외치는 관중들을 보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알림음이 들려왔다.
-띠링!
-플레이어의 첫 번째 시련이 시작됩니다.
박규태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눈앞에 뜬 홀로그램을 바라봤다.
< 국뽕 박규태 선생 #9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