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5 >
FC소쇼-몽벨리아르는 프랑스의 자동차 회사인 푸조사에서 근로자들의 여가 활용을 위해 기업의 근거지인 소쇼에 창단한 축구 클럽이었다.
비록 15년도에 중국 자본에 팔리고 23년도에 짠돌이 같은 구단주에게 다시금 구단이 팔렸지만, 푸조사의 근로자들은 여전히 FC소쇼를 사랑했다.
몽벨리아르의 위성도시인 소쇼.
소쇼 근처의 작은 펍은 프랑스 자동차 회사인 ‘푸조’사의 근로자들로 가득했다.
25년 8월 2일.
리그 1라운드 ‘AS낭시’전 1골.
25년 8월 8일.
리그 2라운드 ‘르 아브르’전 1골.
25년 8월 12일.
쿠페 데 라 리그 ‘레드 스타93’전 3골.
리그에서 두 경기와 ‘쿠페 데 라 리그’ 한 경기.
총 3경기에서 5골을 뽑아낸 박규태의 위상은 FC소쇼를 사랑하는 지역 팬들에게 큰 이슈가 되고 있었다.
“크하하하! 내 말이 맞지?”
“그래, 자네 말이 맞아.”
“저 멋진 한국인은 우리를 ‘리그 앙’으로 인도할 거야!”
“고작 3경기야.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예전의 ‘Jo’가 기억 안 나? 그 친구는 2군에만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예전에 있던 ‘Jo’와는 전혀 다른 선수야! 3경기에 5골이라고! 팍은 골을 기가 막히게 넣는 괴물이야!”
독일식 맥주와 스페인식 안주.
그리고 한국식 치킨을 판매하는 요상한 펍의 주인인 김춘식은 그런 근로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히죽 미소를 지었다.
“요즘 한국인 선수가 잘 나가나 봐?”
“어휴! 말도 마세요. 박규태라는 어린 선수인데…… 골을 기가 막히게 넣어요. 예전에 누구야. 그 손형민 보는 것 같다니까요!”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유학생 최영준의 말에 김춘식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야?”
“거기다 애국심도 엄청난 선수예요.”
“애국심?”
“미튜브 영상 안 보세요? 요즘 박규태 선수가 한국에서 엄청나게 이름을 날리고 있어요.”
“영상 이름이…… 국뽕전사 박규태? 국뽕이 뭐냐?”
“어…… 좋은 의미예요.”
아리송한 최영준의 설명을 뒤로하고 영상을 틀자 박규태가 활약하는 장면이 나왔다.
확실히 투박하지만, 골을 넣는 순간에 보여주는 임팩트는 그 어떤 선수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았다.
거기다 데뷔골을 넣고 피를 흘리며 외치는 ‘두 유 노 코리아? 아임 프롬 코리아!’는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김춘식에게 꽤 큰 감동을 주고 있었다.
그는 힐끗 영상의 댓글란을 살폈다.
-엌ㅋㅋ 국뽕전사 미쳤네 ㅋㅋㅋ
-‘두 유 노 클럽’에 가입시켜야 하는 거 아님?
-ㄴㄴㄴ 고작 저 정도로 ‘두 유 노 클럽’에 가입했으면, 스팸과 김치도 ‘두 유 노 클럽’에 가입했어야지.
-‘리그 되’면…… 프랑스 2부리그지?
-ㅇㅇ 수준은 그리 높지 않지만, 저런 유형의 스트라이커는 또 처음 보네.
-황찬조랑 비슷한 유형 아니냐?
-ㄴㄴ 다름. 황찬조도 저렇게 골은 못 넣음.
-황지찬이랑 비슷한 느낌이네.
-근데 황지찬은 골 못 넣잖아.
-황소처럼 잘 뛰는데…… 골을 못 넣지.
-어휴…… 쪽팔려.
-나도 쪽팔려; 외국에서 ‘두 유 노’를 하는 놈이 있을 줄이야!
-아…… 진짜 ‘두 유 노’는 좀 아닌데, 제발 그만 좀 했으면 ㅠ
영상의 댓글 반응은 ‘웃기다’와 ‘부끄럽다’ 이 두 가지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김춘식이 얼굴을 찌푸렸다.
“아니! 외국에서 열심히 한국을 알리는 어린 선수에게 부끄럽다니! 쯧쯧. 요즘 애들은 애국심이 너무 없어!”
“에이…… 솔직히 조금 부끄럽잖아요.”
“야! 빨리 가서 서빙이나 해!”
“쒸…… 맨날 나한테만 뭐라고 해.”
투덜거리며 홀로 나선 최영준을 놔두고 김춘식이 재빠르게 스마트폰의 자판을 두들겼다.
-야~~~!!!,,,이,,,써글넘들아!!!,,,ㅋ 애국심이,,,그렇게 없어서,,,되겠느냐!!!! 먼 타지에서,,,고생하는 선수를,,,응원해야지,,떽! 고얀 녀석들!
파바바바밧.
빠르게 움직이는 김춘식의 엄지손가락.
“좋아! 애국 중년 김춘식이 뜨거운 맛을 보여주마!”
그가 남아 있는 청춘을 불사르기 시작했다.
* * *
리그 3라운드 경기.
리그 15위인 케벨리 로엥과의 경기에서 박규태는 자신에게 끈질기게 달라붙는 수비수 에룬 판 데르를 제치고 빠르게 공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팍! 이번에도 위협적인 돌파를 보여줍니다!
-발기술이 투박하지만, 돌파에서 보여주는 파괴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공격수죠.
-좋은 피지컬을 갖춘 선수입니다. 주력이 조금 느린 것이 흠이지만, 그렇다고 달팽이 수준은 아니니까요.
-말씀드리는 순간 슛!
-아! 루이 소쇼우드 골키퍼의 선방!
“아오! 이게 안 들어가네.”
불안한 동작으로 슈팅을 가져가서 그런지 공이 골키퍼 정면으로 향했다.
가볍게 골키퍼가 슈팅을 막는 모습을 본 박규태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아…… 진짜 쉬운 걸 놓치네.’
확실히 기본기가 부족한 것을 이런 순간에 느꼈다.
어려운 슈팅은 잘 넣는데, 가끔 쉬운 슈팅을 너무 허망하게 날리는 느낌이 있었다.
팀원들의 움직임도 둔했다.
엔조 마이어의 컨디션도 오늘은 썩 좋지 않았다. 중앙에서 케벨리 로엥의 중앙 미드필더를 상대로 몸싸움에서 크게 밀리고 있었다.
수비진을 이끄는 게라르 퐁텐은 어이없는 실수 두 번을 하면서 전반전에 기회를 2번이나 내주었다.
그런데도 점수는 아직도 0 대 0을 유지했다.
양 팀 모두가 경기력이 썩 좋지 않은 상황.
‘이런 경기에서 이겨야지.’
박규태는 이런 경기에서 꾸역꾸역 이겨야 강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전반전이 끝났다.
크리스티 조엘 감독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라커룸에서 욕 좀 먹겠는데.’
그의 생각처럼 조엘 감독은 선수들의 실수를 하나씩 지적하면서 후반전에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을 지시했다.
“엔조! 그 머저리 같은 수비방식을 고쳐! 그거 못 고치면 발을 부러뜨려서 축구를 못하게 만들 거야!”
“죄송합니다. 보스.”
“게라르! 집중해! 넌 버질 판 다이크가 아니야! 내 전술에서 수비수가 후방 빌드업을 할 필요가 없어!”
오늘 경기에서 엉성한 모습을 보여준 선수들의 모습을 지적한 크리스티 조엘 감독이 마지막으로 박규태를 바라봤다.
“팍!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던 거 기억하지?”
“물론입니다.”
“후반전에는 멋진 골 보여줘.”
크리스티 조엘 감독의 말에 박규태가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욕먹는 건 피했네…….’
저렇게 선수들에게 거친 말을 내뱉어도 구단의 성적이 좋고, 선수들도 자신의 실수를 알고 있기에 별다른 말은 나오지 않았다.
“후반전에 골을 넣어서 이긴다. 그것만 생각하고 움직여! 오늘 경기에서 이기면 리그 1위다. 알겠나?”
그 말을 끝으로 하프타임이 끝났다.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아까와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는 FC소쇼의 모습에 케벨리 로엥의 선수들이 조금은 위축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엔조 마이어 크로스!
-벤자민 몽맹의 헤더를 막아내는 루이 소쇼우드 골키퍼! 이번에도 그가 케벨리 로엥을 살립니다!
-전반전과 다르게 후반전에는 FC소쇼의 경기력이 올라온 것 같습니다. 케벨리 로엥이 속수무책으로 흔들립니다.
후반 10분, 그리고 20분과 30분.
시간이 흐를수록 케벨리 로엥의 수비는 촘촘해졌다.
오늘 경기에서 무승부를 가져가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전술 변화였다.
그리고 찾아온 후반 41분.
박규태는 자신의 위치에 정확하게 떨어지는 엔조 마이어의 크로스에 급히 몸을 움직였다.
슈팅을 하기엔 힘든 자세.
하지만, 박규태는 자신 있었다.
그가 디딤발이 살짝 미끄러진 상태로 오른발을 휘둘렀고, 공은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철썩!
-고오오올!
-팍!! 팍!! 그가 중요한 순간에 골을 터뜨렸습니다!
-환상적인 골!
-어려운 자세에서 슈팅을 가져갔습니다!
-골을 넣고 쓰러진 팍에게 소쇼의 선수들이 달려듭니다! 원더풀한 골이었습니다!
“으아아아 나이스!”
“멋진 골이야! 팍! 넌 진짜 죽여주는 녀석이야!”
“쉬운 것은 다 놓쳤는데…… 그런 어마어마한 슈팅을 어떻게 넣는 거야? 진짜 대단한 녀석이야!”
“으어억! 누가 내 다리를 깨물었어! 나와! 나 관중들한테 세레모니 해야 한다고! 국뽕을 채워야 해!”
선수들에게 깔린 박규태.
그런 그를 보면서 소쇼의 원정 팬들이 큰 환호성을 내질렀다.
* * *
-대단합니다!
-FC소쇼! 이걸로 ‘리그 되’의 선두로 나섭니다!
-팍이 이번에도 FC소쇼를 살렸습니다!
“어떻습니까?”
“좋군요.”
파주 축구 국가대표 트레이닝 센터.
줄여서 파주 NFC의 사무실에서 23세 국가대표팀 감독인 박명훈과 성인 국가대표팀 감독인 뱅상 엘라즈 감독이 한 선수가 나오는 영상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팍……. 전체적인 피지컬은 유럽에서도 먹힐 수준이군요. 주력이 조금 아쉽지만 188㎝의 키를 생각하면 그리 느린 수준도 아닙니다. 확실히 매력적인 공격수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특히나 골을 넣는 감각이 있는 선수입니다. 최근에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한 황찬조 선수를 대신해서 원톱으로 내세워도 될 것 같습니다.”
“문제는 경험인데…….”
“저도 그 부분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팍의 자료를 모으러 프랑스로 갔던 미스터 캉은 어떻게 평가했습니까? 그의 의견을 듣고 싶은데요.”
“어설프면서도 날카롭다. 그렇게 평가하던데요?”
“음……. 고민되는군요.”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황광수 수석코치가 의견을 제시했다.
“어차피 2026 북중미월드컵 본선 진출은 확정되었으니까요. 9월 초에 있는 월드컵 최종예선 B조 마지막 두 경기에 부르죠.”
“벤치에 앉혀서 경험을 시키자는 뜻입니까?”
“네, 기회가 된다면 교체로 출전시키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황지찬 선수만 바라보기에는 공격수가 너무 없습니다.”
뱅상 엘라즈 감독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최근에 폼이 좋은 공격수가 없었다.
필요하다면 만 19살의 공격수도 기용해야 할 처지였다.
“그것보다 아시안게임은 준비가 어떻게 됩니까?”
박명훈 23세 이하 국가대표팀 감독이 미소를 지었다.
“준비는 완벽합니다. 발렌시아가 월드컵은 물론이고, 아시안게임 차출까지 허락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역문제가 있으니까요. 발렌시아도 그 부분은 간과할 수 없겠죠. 거기다가 2018-19시즌의 손처럼 좋게 풀릴 수 있겠고, 문제는 리의 체력이겠죠.”
“확실히 이강민 선수의 체력이 큰 문제겠군요.”
한참을 이야기를 나눈 두 사람.
“그럼 팍은 일단 성인 대표팀으로 부르겠습니다. 그 이후에는 아시안게임에 차출하는 거로 가닥을 잡죠.”
“네,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9월 1일에 팍을 성인 국가대표팀에 부르겠습니다.”
뱅상 엘라즈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축구협회 관계자를 통해서 FC소쇼에 연락을 보내라는 말을 남겼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사무실.
황광수 수석코치가 자신의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박규태의 영상을 보면서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국뽕전사 박규태라……. 제목도 참 재미있게 지었네.”
국뽕전사 박규태.
이 작은 동영상 하나로 미래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 국뽕 박규태 선생 #5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