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4 >
회귀하고 노트를 만들었다.
그 노트에 박규태는 ‘두 유 노 클럽’을 위한.
국민의 국뽕을 채우기 위한.
그리고 자신의 성공을 위한.
계획을 하나씩 써 내려갔다.
첫 번째 계획은 FC소쇼의 주전이었다.
두 번째 계획은 23세 이하 축구대표팀 합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박명훈 감독이 그를 보러 오는 경기에서 활약하는 것이었다.
‘그 경기가…… 리그컵이었나?’
그가 기억하기를 리그컵이라 할 수 있는 ‘쿠페 데 라 리그’에서 ‘리그 앙’의 상위권 팀을 상대로 골을 넣었고, 그 덕분에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다.
다음 세 번째 계획.
이 계획 가장 중요했다.
우선, 현재 대한민국의 피파 순위는 24위로 생각보다 높았다.
1998년 12월 이후로 최고 순위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이강민이라는 희대의 천재와 꽤 탄탄하게 갖춰진 미드필더진 덕분이었다.
문제는 그런 선수단을 갖추고도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흔들리는 수비진도 문제지만…… 골을 넣을 수 있는 스트라이커의 부재가 더 큰 문제였지.’
그런 골 결정력의 부진은 3국의 공동 개최로 화제가 된 2026 FIFA 북중미월드컵으로까지 이어진다.
이강민의 분투에도 대표팀은 경악스러운 골 결정력으로 2026 FIFA 북중미월드컵 16강 진출에 실패하면서 국민을 실망시켰다.
그런 상황에서 이강민은 손형민처럼 병역특례를 받기 위해서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까지 출전했다.
‘그때 내가 나타나는 거지.’
실제로도 그랬다.
과거에도 23세 이하 국가대표팀에 차출된 박규태는 중국과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으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물론, 그 이후에는 한 골도 못 넣었지만.
16강부터 이강민과 열 난쟁이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겨우겨우 금메달을 얻었었다.
“과거와 다를 거야.”
회귀 전과 다르게 이번에는 큰 활약을 할 자신이 있었다.
“국뽕을 위한 면제 브로커.”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축구선수.
어린 나이에 ‘두 유 노 클럽’에 가입한 이강민의 병역특례를 위해서 골을 넣는 합법적 면제 브로커.
국뽕이 차오르기에 좋은 요소였다.
그게 박규태의 세 번째 계획이었다.
“캬……. 생각만 해도 국뽕이 차오르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리그에서 활약해야 했다.
프리시즌도 거의 끝났다.
박규태는 이미 크리스티 조엘 감독의 눈에 들었다.
비록 개막전은 벤치 멤버로 시작하게 되지만, 기회가 온다면 골을 넣을 자신이 있었다.
* * *
25-26시즌의 ‘리그 되’ 첫 경기.
FC소쇼의 첫 상대는 AS낭시 로랜이었다.
줄여서 낭시.
낭시는 이번 시즌에 승격을 원하는 리그 되의 강팀이었다.
지난 시즌에는 스타드 데 랭스와 FC낭트에 밀려서 승격에 실패했지만, 그들은 이번 시즌은 꼭 승격에 성공해서 ‘리그 앙’에서 뛰는 것을 원했다.
낭시를 이끄는 3명의 미드필더.
나엘 자비, 세르주 은게상, 데니스 베인.
이들은 3마리의 개를 풀어놓은 것처럼 압도적인 활동량으로 상대 팀의 중원을 엉망으로 만드는 데 특화된 선수들이었다.
그래서 크리스티 조엘 감독은 중앙 미드필더인 엔조 마이어를 측면으로 돌렸다. 지금의 엔조 마이어는 낭시의 중원을 감당하면서 질 좋은 패스를 전방에 연결할 능력이 없으니까.
경기가 시작되었다.
벤치에 앉은 박규태는 조용히 필드를 바라봤다.
중원에 힘을 준 낭시는 높은 점유율을 기반으로 경기를 지배하면서 FC소쇼의 중원을 누르고 있었다.
낭시의 중앙 미드필더 나엘 자비에게 연결된 공.
그는 능숙하게 양발을 활용해서 자신을 압박하는 FC소쇼의 미드필더를 제치고 공격진에게 패스를 연결했다.
“흐름을 끊어야 해! 그리고 측면으로 공을 연결해! 굳이 중앙에서 무리하게 점유율을 올리려고 할 필요가 없어!”
크리스티 조엘 감독의 외침을 듣고 선수들이 전술에 맞춰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대한 수비적으로.
동시에 기회가 오면 측면을 이용했다.
중앙이 아닌 측면에서 뛰는 엔조 마이어는 역습의 중심이 되어서 낭시의 수비진을 흔들었다.
어린 선수들로 구성된 FC소쇼.
전반전 17분.
그들의 시작은 그리 좋지 않았다.
철썩!
“아…….”
“저걸 놓쳤네.”
“미카엘! 정신 차려!”
“집중하자! 다시 집중하자!”
미카엘 파리스가 놓친 낭시의 공격수인 티에리 암브로스가 그대로 중앙까지 파고들며 선취점을 만들었다.
오늘 데뷔전을 치르는 미카엘 파리스.
그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데뷔전의 압박감이 그를 옥죄고 있었다.
‘저거 저러다가 큰 실수 하겠는데?’
박규태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저런 얼빠진 얼굴을 보여준 선수들은 대체로 그날 경기에서 큰 실수를 자주 보여주고는 했다.
축구의 신이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을까.
미카엘 파리스가 페널티 박스에서 거친 태클을 시도했다.
당연히 주심은 그것을 보고 휘슬을 불었다.
페널티킥이었다.
삐이익!
“아……!”
“멍청한 녀석! 뭐 하는 거야?”
“미카엘 파리스? 누가 저런 녀석을 우리 팀에 추천한 거야? 저 녀석은 아직 멀었다고!”
우우우우우!
홈팬들의 비난과 야유를 듣자 미카엘 파리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스머프를 보는 것 같네.”
박규태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저 부분은 어떻게 해줄 수 없었다.
미카엘 파리스는 좋은 선수였지만, 정신적인 부분 때문에 크게 성장하지 못한 선수였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 이후로 큰 실수는 없었다.
수비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게라르 퐁텐이 잘 다독인 덕분이었다.
페널티킥으로 실점하면서 2 대 0으로 점수가 벌어졌다.
소쇼는 측면을 통해서 역습을 시도하려고 했으나, 최전방의 벤자민 몽맹과 장클로드 클레의 삽질로 전반전의 모든 기회를 날리고 말았다.
“팍!”
전반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
박규태는 자신을 부르는 귀 몬구아르 수석코치를 보면서 교체 출전하게 될 것이라 예상했다.
“후반전에 바로 교체다.”
“누구랑 교체입니까?”
“장클로드.”
“알겠습니다.”
장클로드 클레의 위치를 확인한 박규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경기에서 크리스티 조엘 감독이 그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많이 뛰고, 거칠게 압박하면서 낭시의 리베로가 미드필더진을 도울 수 없게 만들라는 뜻이군.’
필요하면 중앙까지 내려와서 낭시의 미드필더진과 경합을 해도 좋을 것 같았다.
크리스티 감독도 오늘 박규태에게 원하는 것은 골보다는 거친 압박으로 낭시의 수비진과 미드필더진 사이의 공간을 만들라는 뜻이었으니까.
‘그 공간을 우리 윙어들이 활용하겠지.’
하프타임.
크리스티 조엘 감독은 라커룸에서 선수들의 경기력에 큰 불만을 드러냈다.
다만, 미카엘 파리스에게는 딱히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미카엘 파리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박규태는 힐끗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마냥 맹탕은 아니네.’
표정이 좋았다.
승부욕이 가득한 얼굴.
저런 얼굴을 보여주는 선수는 후반전에 대체로 반전을 만들면서 경기의 분위기를 바꾼다.
“팍!”
크리스티 조엘 감독이 그를 불렀다.
“네.”
“후반전에 데니스 베인과 앙디 펠마르가 낭시의 미드필더를 도울 수 없게 만들 자신이 있나?”
“물론입니다.”
무덤덤한 박규태의 대답에 얼굴을 찌푸렸던 크리스티 조엘 감독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좋아! 후반전에 가서 낭시 녀석들에게 보여줘! 너희가 마냥 멍청한 녀석들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야!”
* * *
후반전.
최전방에 배치된 박규태는 낭시의 포메이션을 살폈다.
‘전술은 전반과 똑같이 3-5-2로군.’
박규태는 이 쓰리백에서 리베로를 보고 있는 데니스 베인을 바라봤다.
‘내가 괴롭혀야 할 선수로군.’
데니스 베인이 공격 전개 시 공을 끌고 미드필더진까지 올라와서 낭시의 미드필더진을 도왔다.
덕분에 소쇼의 중원은 점유율을 유지하기 힘들어했다.
삐이익!
후반전이 시작되고, 낭시는 공을 돌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교체 투입된 박규태도 움직였다.
데니스 베인은 아까와 다르게 강하게 자신을 압박하는 어린 동양인 공격수를 보면서 당혹감을 드러냈다.
툭!
“측면으로 돌려!”
급히 측면으로 공을 돌린 데니스 베인.
그가 박규태를 보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이봐, 애송이.”
“나만 보면 다 애송이라고 그러네.”
“오! 미안하군. 동양인은 다 어려 보여서 말이지. 나이가 몇이야? 딱 봐도 10대로 보이는데.”
“19살.”
“또라이 새끼. 애송이 맞잖아?”
“19살이면 성인이지.”
“그래도 애송이야. 아무튼, 전반전의 그 머저리랑 다르게 열심히 뛰어다니는데?”
박규태가 생각하기에도 그와 교체되어 필드를 빠져나간 장클로드 클레는 그리 활동량이 많은 공격수가 아니었다.
“오늘 내 임무거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규태가 공을 받기 위해 움직이는 데니스 베인을 압박했다.
“칫!”
아까와 다르게 데니스 베인은 쉽게 미드필더 진영까지 올라갈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중앙 미드필더의 꼭짓점이었던 세르주 은게상이 공을 연결하기 위해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소쇼의 미드필더들이 아까보다는 더 수월한 수비를 할 수 있었다.
동시에 측면의 엔조 마이어가 양질의 패스와 크로스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경기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데니스 베인은 끈질기게 달라붙는 박규태를 보면서 생각보다 후반전이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세르주 은게상에게 공을 연결하면, 박규태는 무섭게 2선까지 내려가서 낭시의 중원이 쉽게 공을 연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뺏겼어!”
“막아! 돌파를 허용하면 안 돼!”
그런 박규태의 희생이 드디어 빛을 발휘했다.
세르주 은게상에게 공을 빼앗은 그가 빠르게 돌파를 시도했다.
‘끊어야 한다!’
데니스 베인은 어쩔 수 없이 거친 태클로 박규태의 전진을 막았다.
삐이익!
“아이고……. 삭신아.”
필드를 한 바퀴 구른 박규태가 나이에 맞지 않게 엄살을 부리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프리킥을 얻어낸 박규태.
그를 향해 엔조 마이어가 다가왔다.
“팍! 괜찮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엔조 마이어.
박규태는 그런 엔조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나 괜찮아. 그것보다 프리킥으로 넣을 수 있겠어?”
“20m 조금 되는 거리네.”
“그렇지.”
“팍이 만든 기회니까. 확실하게 넣어줄게.”
엔조 마이어의 확답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엔조의 등을 툭툭 치면서 꼭 넣으라고 말한 박규태가 자신의 자리를 향해 움직였다.
수비벽을 살핀 엔조 마이어.
그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빠르게 공을 향해 달렸다.
뻐엉! 철썩!
“좋았어!!”
“엔조 마이어? 대단한 녀석이 들어왔어!”
“좋아! 2 대 1이야!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어!”
“이번에는 우리도 리그 앙으로 올라가자!”
소쇼의 홈팬들이 내지르는 환호성.
엔조 마이어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점수는 2 대 1.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1점 차이가 되자 낭시의 포메이션이 바뀌었다.
“파이브백?”
“내려앉았네.”
“우우우우! 비겁한 녀석들!”
야유를 보내는 소쇼의 홈팬들.
하지만 낭시의 선수들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승리를 위해서 내려앉아 웅크렸다.
오히려 급한 쪽은 FC소쇼의 선수들이었다.
후반 45분이 모두 지나갈 동안에 기회가 없었다.
울화통이 터질 듯한 표정으로 필드를 바라보는 홈팬들의 야유는 더욱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박규태가 나타났다.
그들이 내려앉은 덕분에 반대로 그는 아까보다 훨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엔조 마이어가 올려준 마지막 기회.
낮게 휜 크로스를 보고 그가 멈춤 없이 몸을 날렸다.
크로스의 궤적을 머리로 바꾼 박규태.
그를 막으려는 낭시 수비수의 스터드에 눈썹이 살짝 찢어졌지만, 그의 시선은 공을 쫓고 있었다.
철썩!
그리고 후반 46분에 들어간 박규태의 동점골.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상태에서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관중석으로 달려갔다.
패배가 확실했던 경기에서 나온 동점골이었다.
거기다 데뷔전에서 터진 데뷔골이었다.
승점 1점을 얻으며 무승부를 만들어낸 박규태를 보면서 홈팬들은 광란에 빠졌다.
박규태가 관중석을 보면서 소리쳤다.
그는 충실하게 국뽕을 채우기 위해 움직였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두 유 노 코리아? 아임 프롬 코리아!!”
예전의 밋밋한 공격수는 없었다.
나라를 사랑하는 멋진(?) 선수만이 있을 뿐이었다.
< 국뽕 박규태 선생 #4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