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226화 (완결+에필로그) (226/226)

[게이트 오브 서울 226화]

음울한 짐승들이 흐느꼈다.

수많은 자들이 죽었고 너무나 많은 것을 희생해 왔건만 그토록 갈망하던 것은 결국 거짓이었다.

가만히 마네킹처럼 서 있던 그들 중 누군가가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자 서서히 그 뒤를 따랐다.

그저 발소리만 사방을 울렸다.

고개를 푹 숙이고 흐느적거리며 걷는 모습은 마치 좀비 같았다.

그렇게 길거리로 내려온 그들은 정처 없이 걸어 다니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석민과 아영은 그 모습을 전부 보았다.

그들은 이제 그 무엇에도 관심을 둘 힘조차 없는지, 영혼이 빠져나간 표정으로 석민과 아영조차 보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갔다.

순식간에 수천의 사람들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군대는 오지 않았다.

아영이 힐끗 석민의 눈치를 보았다.

카운트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이젠 2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석민의 눈은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수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목숨 건다는 말이, 목숨 걸고 사명을 이루라는 말이지 진짜 죽으란 말은 아닌 게 아닐까?

극한의 상황에 석민은 어떻게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합리화하려 했다.

석민은 퀘스트를 생각해보았다.

[선택받은 자를 희생하여 사명을 완수하라.]

그리곤 그것을 곱씹어 보았다.

“쓸데없는 미련의 결과야. 그래도 최악은 면했으니까 다행이긴 한데.”

하늘에서 천둥치는 듯한 소리가 났다.

어정쩡하게 열린 문에 끼인 방주의 나머지 부분이 조금씩 터져나가면서 천사들의 봉인석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때, 방주와 문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날카로운 발톱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래곤들이었다.

그것들은 어떻게 해서든 문이 닫히기 전에 이곳으로 넘어오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조차도 마치 석민이 딴맘을 먹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 짜인 상황처럼 보였다.

석민은 입에 파이프를 물고는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별수 없구만.”

석민의 눈가에 주름이 깊어지고 입매가 꽉 다물렸다. 그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시발.”

너무 가혹한 일이라 생각했다.

‘신인지 절대자인지, 이걸 준 놈은 왜 이렇게 피를 좋아하는 거야?’

아영은 그저 말없이 하늘만 쳐다봤다.

결과적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건 자신과 대통령이 되었다.

분명 그녀는 석민을 설득할 때 그가 목숨을 잃도록 두지 않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그의 목숨을 희생시켜야만 했다.

자신은 그에게 위로해줄 자격이 없었다.

“미안합니다.”

아영은 입술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울음을 헤치고, 그녀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심하게 떨리는 목소리에서 그녀의 짙은 죄책감이 묻어나왔다.

“미…안합니다.”

“울지 마, 시발. 지금 진짜 울고 싶은 건 나야.”

석민은 콧물까지 흘리며 서럽게 우는 아영에게 어색하게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이상 자신 목숨이 귀하지 않단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괜히 울음소리를 들으니 석민도 울적해졌다.

저 머리 위에 있는 것들이 넘어오면 우리나라는, 아니 전 세계는 이 사태를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겨우 드래곤 2마리한테도 쩔쩔매지 않았던가.

그는 반의반도 피우지 않은 파이프를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어쩔 수 없지.”

아영은 잔뜩 충혈된 눈으로 석민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퀘스트를 마무리 짓자고.”

아영이 놀라 동그랗게 뜬 눈을 바라보며 석민이 말을 이었다.

“설령 내가 안 죽는다 해도, 그 국가안보실장 놈이 가만히 놔두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그게 무슨?”

“우리는, 이제 쓸모를 다 했잖아.”

석민이 검지를 관자놀이에 대 제스처를 취했다.

“생각을 해봐. 이미 우리는 국가를 한 번 배신한 놈들이라고. 대통령이 천년만년 우리를 챙겨 줄 사람도 아니고. 정권이 바뀌거나 아니면 선호석 같은 이가 정권의 치부를 없애기 위해 이번처럼 독자적으로 일을 벌인다면? 예전엔 이런 생각을 안 했지만, 이젠 아니야. 분명 이런 일들을 또 일어날 수 있고, 그렇다면 너도 준비를 해야 할 거야.”

“그런….”

아영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너는 군에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자신이 모질게 말을 내뱉고도 아영이 바티크처럼 될까 걱정하다가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병 주고 약 주고라더니, 자신이 딱 그 꼴이었다.

아영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석민은 그런 그녀의 얼굴을 힐끔 보고는 살짝 미소 지었다.

“좋아, 여기까지야.”

석민은 아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생 많았어. 손발도 잘 안 맞고 의사소통도 제대로 안 됐었지만, 그래도 우린 제법 괜찮은 파트너였어.”

아영은 차마 그 손을 마주 잡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 손을 잡고 나면 모든 게 다 정말 끝나버릴 것만 같았다.

“내가 이러고 계속 있기를 바라는 거야?”

석민이 짓궂은 표정으로 눈썹을 올리며 쳐다보자 아영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악수를 받았다.

“그러면….”

“아니, 잠깐만 마지막으로 할 게 있어.”

그리고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안 하려고 했는데 해야겠어.”

석민은 그렇게 말하며 통화 목록에서 익숙한 이름을 찾았다.

***

혜원은 반쯤 잠들었다가 진동음에 놀라 급히 휴대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뭐해?

“뭐긴 뭐야…. 자고 있었지.”

그녀는 떡진 긴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면서 대답했다.

석민의 걱정에 최근 제대로 잠을 자기 못했기에, 피곤에 찌든 혜원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녀의 이마엔 식은땀으로 축축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석민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애써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답했다.

“지금 몇 시인 줄 알아? 새벽 6시야.”

그녀는 침대 옆 탁자 위에 올라 있던 석민이 준 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조금 이르게 전화했나 보네.

전화 속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가득해 혜원은 속으로 안심을 했다.

“괜찮은가 보네? 거기에 괴수니 광신자들이니 뭐니 있다던데.”

-모두 다 잘 풀렸어. 별거 없더라. 총도 제대로 못 쏘고, 괴수들도 별로 없고. 게다가 오늘따라 여긴 춥지도 않더라.

“아, 그래? 그러면 잘됐네.”

혜원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답하면서도 뻑뻑한 눈을 손가락으로 비볐다.

“그럼….”

-단, 문제가 하나 있어.

그 말에 혜원의 얼굴이 극도로 경직됐다.

“문제? 무슨 문제?”

-아주 위험한 문제가 딱 하나 남았는데, 그게 너무 어렵네. 그거 때문에 전화했어. 조금 더 오래 걸릴 것 같단 말이지.

“그래?”

혜원은 석민에게 욕을 한 바가지 퍼붓고 싶어졌다.

“야.”

-왜?

“시동 거냐?”

-뭔 시동?

“돌아올 거지? 확실하게 말해봐.”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자 핸드폰을 쥔 손이 부들거리면서 떨렸다.

-…내가 확신이 서지 않는 일은 함부로 약속하지 않는 거 잘 알잖아.

“아니, 시발! 도대체 대답이 왜 그따위야!!”

혜원의 목소리가 그녀의 집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너, 뭔 일 있는 거지? 그치? 그렇지 않고서야 이딴 소리를 못 하지!”

잔뜩 흥분한 혜원의 목소리와는 대조적으로 대답하는 석민의 목소리는 따분함으로 가득했다.

-아, 항상 내가 말했잖아. 내가 좀 세긴 하지만 총은 만민에게 평등한 거.

태연자약한 목소리에 혜원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화를 다스렸다.

평소에 입에 달고 다닌 말이었으니, 평소처럼 자신의 앞에 불쑥 나타나리란 약간의 안도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약속 안 잊었지?”

혜원은 얼굴을 가릴 정도로 내려온 앞머리를 다시금 뒤로 쓸어 넘기며 물었다.

-당연히 안 잊었지.

석민의 목소리가 매우 진지하게 변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아?”

-한 3일에서 일주일? 그 정도 걸릴 것 같아. 그때까진 통화 못 할 거야.

“알았어. 그럼….”

-어.

통화가 끝나고 혜원은 가만히 휴대폰을 응시하다가 이내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그렇게 깊은숨을 푹 내쉬고 나자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곧 다시 침대에 누운 그녀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 무언가 끝없이 그녀를 찌르고 있었다.

‘뭐지? 왜….’

도대체 무엇이 마음을 심란하게 뒤흔드는지 생각해보고 싶었으나, 피곤했던 그녀는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통화를 마친 석민은 아영을 쳐다봤다.

“좋아, 그래서 어떻게 바치는 거지?”

사실 그건 아영도 몰랐다. 그래서 아영이 잘 모른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려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하는 듯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아영의 눈앞에 알람글이 떠올랐다.

[선택받은 자를 설득하셨습니다.]

‘설득이라고?’

아영의 두 눈이 심히 복잡해졌다.

‘내가 설득을 한 건 없어.’

동시에 석민의 눈앞에도 새로운 창이 떠 있었다.

[스스로 희생하여, 문을 닫으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석민은 잠시 숨을 골랐다.

심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떨리고 오금이 저렸으며 다리에 힘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ㅇ…, 흠흠, 예….”

그는 사레가 들어 낮게 기침을 했다.

“예.”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천천히 석민의 몸이 떠올랐다.

그때 석민의 얼굴에 떠오른 건 분노, 두려움, 고통, 회환, 그리고 삶에 대한 미련.

아영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한마디 말조차 하지 못하고 그가 떠오르는 모습만 지켜봐야 했다.

석민은 어설픈 미소를 억지로 지으며 아영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난생처음 그는 뼛속까지 새겨질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삶을 갈망할 줄, 이 순간이 와서야 그도 깨달았다.

아영은 석민을 향해 마주 손을 뻗다가 이내 손을 내리고는 하염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모습을 마지막까지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눈에 새기는 것이야말로 그를 위해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했다.

석민은 정확히 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 석민의 발끝에서부터 불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어?”

놀란 아영의 표정이 석민의 눈에 생생히 비쳤다.

불은 순식간에 석민의 온몸을 감쌌으나, 고통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늘로 올라갈수록 석민의 몸은 태양처럼 환하게 빛났다.

그리고 문에 당도한 순간, 엄청난 빛을 뿌렸다.

방주와 문틈 사이로 빠져나오던 드래곤들이 그 빛을 보고 포효를 내지르며 불을 뿜어냈다.

그러나 석민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석민의 몸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빛으로 세상이 점점 새하얗게 변해갔다.

아영은 더 이상 석민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가렸다.

그때, 무언가 거센 바람과 뜨거운 열기가 아영을 엄습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나부꼈다.

인간의 오감을 뛰어넘는 빛의 세기에 아영은 눈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그녀가 눈을 뜰 수 있었을 땐 이미 이변이 진행 중이었다.

서울 하늘을 가득 메우던 구름들이 차원의 문을 중심으로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그리고 까마득한 과거의 일처럼 느껴지던, 새파란 하늘이 아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걸 안 보게 된 지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아영은 눈에서 다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그 현장은 차를 타고 도망치던 박재만 역시 목격할 수 있었다.

“이런 세상에.”

그는 차를 멈추진 않았지만 고개를 쭉 내밀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물론, 전방주시 태만의 대가는 곧 치르게 되었다. 눈앞에 전차가 나타나 그에게 포를 겨누고 있었는데도 눈치채지 못하고 그대로 전진했던 것이다.

“흡!”

뒤늦게 그것을 본 박재만이 숨을 들이켜며 급하게 방향을 틀려고 했으나 이미 전차를 포를 발사한 뒤였다.

그의 눈앞에 방탄 앞 유리가 깨지면서 차량이 폭발했다.

불타는 차량은 앞으로 몇 미터 더 움직이다가 멈췄다.

그리고 왕십리역으로 진격하던 군대도, 모든 희망을 잃고 사방으로 흩어진 교단의 생존자들도 구름이 걷히는 것을 목격했다.

경기도까지 가리고 있던 구름들이 서서히 전부 걷혔다.

소요 사태로 통행금지가 떨어져 있었지만, 늘 어둡기만 하던 밖에서 환한 빛이 들어오자 곳곳에서 사람들이 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분명 겨울이건만, 그들은 따뜻함을 느꼈다.

잠시 후, 전부 다 걷힌 하늘엔 태양의 빛을 품고 있었다.

아영은 눈이 시린 것도 모른 채 눈물을 흘리며 태양을 바라봤다.

곧, 그녀가 있던 곳에 전차가 당도했다. 포신이 아영을 향하고 있었다.

아영은 순순히 양손을 들었고, 군인들이 달려와 무장 해제시키고 거칠게 그녀를 속박했다.

그리고 그대로 군에 끌려갔다.

태양 아래 서울과 경기도는 따뜻한 침묵이 감돌았다. 모든 사람들은 포근한 태양 빛을 눈을 감고 만끽했다.

지난 6년 동안 서울을 가리고 있던 구름은 사라졌다.

[에필로그]

아영은 석민의 말대로 군에 복귀하지 못했다.

세세하게 보고서를 작성하고 그에 따른 증거물도 만들어서 준비했지만, 아무런 인정도 보상도 받지 못했다.

“자네가 우리를 이용했던 것처럼, 우리도 자네를 이용한 것이라 치지.”

선호석 국가안보실장이 말했다.

“당신 존재 자체를 없애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안전하겠지만….”

선호석은 아직 미련이 남는지 살기 어린 눈으로 아영의 목을 보았다. 여차하면 진짜 죽여 버리겠단 의미인 것 같았다.

“연금을 받으면서 살게 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 대통령님의 마지막 배려라고 생각해.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내 앞에서 해군 정복을 입고 올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그건 자네에게 어울리지 않아. 아, 그리고 사람이란 존재는 태어나서 몇 개월만 지나도 말은 잘 조잘거리면서 입 다무는 건 잘 못 하더라고. 그런 불상사가 없게 잘….”

아영은 온갖 모욕과 비아냥을 꿋꿋하게 흘려 넘겼다.

“그 친구가 정말 죽었다고?”

“그렇습니다.”

“그렇게 뒈졌으니 다행이지. 만약에 살았으면 자네는 몰라도 그 친구는 살기 힘들었을 거야.”

그 말에 참고 있던 아영의 얼굴이 콱 찌그러지더니, 결국 선호석의 얼굴에 커피를 확 뿌리고 거친 걸음으로 정부청사를 나왔다.

의외로 선호석은 아영을 잡지도, 뭐라고 하지도 않은 채 커피를 맞아주었다.

그때가 사태가 끝난 지 1달이 지날 무렵이었다.

그사이 정말 바빴다.

모멸감에 아영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주변을 보았다.

정부는 천사들의 봉인석을 비롯해서 대량의 드래곤하트를 확보했다.

그 외에도 서울에 잔뜩 풀려있던 괴수들 또한 대부분 포획하여 서울의 안전을 확보했다. 물론 미래에 사용할 드래곤하트를 위해 연구용과 종족 보존용은 제외하고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상과 기술들이 있다며, 신나하는 과학자들의 모습을 보아 조만간 큰 발전을 이룰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이 서울에 다시 들어갈 일은 아직은 요원했다.

정부에서 서울시 전체에 통행금지 명령을 내리고 거리 정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어서 곧 서울 전체가 재개발에 들어갈 예정이다.

잔뜩 망가지고 방치된 지 오래긴 했지만, 과거에 설치된 인프라가 막대했기 때문에 최대한 재활용하려고 정부에서 노력 중이었다.

그러나 그런 명령을 무시하고 서울 방벽을 넘어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태 때 많은 사람들이 미처 챙기지 못한 막대한 재산들이 여전히 남아 있을 테고, 그걸 가로채 한몫 챙기려는 의도였다.

그런 자들은 순찰을 도는 군인들이 찾아내 퇴거 조치에 들어갔지만, 인간의 욕심은 어쩔 수 없었다.

감염자들의 치료는 유감스럽게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살아있는 천사의 육신이 남아있지 않았고, 봉인석에 잠든 천사에게서 피를 추출하려고 실험 중이나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여 국가에선 상대적으로 멀쩡한 감염자들만 따로 추려서 모아두고, 신체 훼손이 심한 감염자들은 인도적인 방법으로 전부 사살하고 화장시켰다.

한편, 천사들의 봉인석에 관하여 여론이나 국민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말들이 나왔다.

특히 인권이나 동물권 단체 쪽에서 나온 말들이 많았다.

봉인석을 발전용으로 사용하거나 실험용으로 쓰려할 때마다 잠에서 깨어나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 때문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처절하고 잔인해서 방법의 개선을 요구했으나,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한국 정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연단에 선 대통령은 이렇게 천명했다.

“이들은 침략자입니다. 이들은 우리나라를, 나아가 전 세계를 위협했습니다. 얼마나 수많은 이들이 피눈물을 흘려왔습니까? 이들은 인간이 아니라….”

차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대통령 성현제의 목소리는 매우 단호했다.

아영은 그것을 껐다.

그리고 그대로 차를 몰아 그녀는 혜원의 가게 쪽으로 가보았다. 너무 바빠서 석민의 최후를 전해주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혜원의 가게는 없어졌다.

그 육중하던 강철 문도 해체되어 뻥 뚫려 있었고, 1층에 입주해 있던 가게들도 전부 문을 닫은 상태였다.

도대체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영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아영은 천천히 걸음을 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있던 방음 시설이나 총기 창고, 사격장 등 모든 것이 사라지고 커다란 공실만 있었다.

아영은 한 번 가게 안을 빙 돌아보고는 말없이 걸음을 돌렸다.

***

그녀의 취직은 매우 힘들었다.

“해군 간부 출신이라고요? 오, 유디티? 미안하지만 당신 같은 사람은 너무 많습니다. 너무 많아.”

퀘스트가 완료된 이후로 스탯과 특별한 능력은 전부 사라졌다.

그래서 아영이 가진 스펙이라곤 다른 퇴역 군인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그나마 군인 연금과 안전가옥에 있던 총기, 군수품을 암시장에 팔아 챙긴 돈으로 당장 궁핍하진 않았다.

그녀는 마카로프 권총을 제외하고는 전부 처분했다.

이제 사태가 끝난 덕분에 예전처럼 경기도에서 대놓고 총을 차고 다니는 일도 없어졌다.

그렇게 좀 더 시간이 흐르고, 정부에서는 총기 소지가 불가능했던 시절 때로 돌아가기 위해, 총기 회수 캠페인을 벌였다.

국가에 총기를 제출하면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식이어서, 제법 총기 회수율이 높았다.

하지만, 아영은 마카로프 권총과 여분의 탄약과 탄창을 그대로 소지했다.

아마 지금과 같은 시절이 쭉 이어진다면 그녀는 평생 다시 마카로프 권총을 쓸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었다. 서울과 경기를 비롯한 모든 지역에서 푸릇한 싹들이 돋았다.

6년 넘게 얼어붙어 있던 동토였는데 어떻게 식물들이 살아남았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 초여름이 됐을 땐, 범세계적으로 벌어진 이상고온 현상으로 초여름인데도 엄청난 무더위였다.

바다가 보고 싶어진 아영은 동해 바다로 가는 고속버스에 올랐다.

양양에 위치한 근사한 호텔 테라스에서 그녀는 바다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덥고 습한 바닷바람이 불어왔으나 백사장은 아름다웠다.

오랜만에 만끽하는 더위에 그녀는 수영을 즐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얼굴 한편은 늘 그늘져 있었다.

한창 수영에 빠져있던 아영은 바다에서 나와 근처 노천카페에서  산 음료를 들고 파도가 밀려오는 해수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상념에 잠겼다.

자신의 인생은 이렇게 우울하고 질척한 죄책감으로 침잠할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시리아에, 이왕이면 출처 불명의 무기들이 잔뜩 필요하거든.」

그때, 어디선가 러시아말이 들려왔다. 그들은 뭐라 떠들면서 아영의 곁을 지나갔다.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익숙한 목소리라, 그녀의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빨간 비키니를 입은 백인 여성과 마찬가지로 수영복을 입은 남성이 백사장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남자의 손에 쟁반이 들려 있었고, 그 위엔 아이스커피 3잔이 있었다.

그들은 아영이 앉은 반대편, 어두운색 레시가드를 입은 여자가 앉은 테이블로 걸어갔다.

그 여자, 살이 조금 많이 올랐지만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었다.

아영은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내려 그 테이블을 주시했다.

그녀의 옆에 앉은 남자는….

“아니, 어떻게?!”

다시 보니 붉은 비키니를 입고 있던 백인 여성도 아는 얼굴이었다.

「그러니 혜원 씨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을 전부 우리가 인수하게 된다면….」

머리를 밤색으로 염색을 한 알렉산드라는 계산기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려서 석민과 혜원에게 보였고, 혜원은 음료를 마시다가 휘파람을 불었다. 석민 역시 손뼉을 쳤다.

“이게 얼마야?!”

「무려 달러라고.」

“달러라고 하네.”

“그 정도는 나도 알아들어.”

석민의 말에 혜원은 핀잔을 주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어?”

하지만, 혜원은 뭔가 석연찮은지 바로 고개를 끄덕이진 않았다.

“글쎄, 조금은 생각해 봐야지.”

「천천히 생각해 봐. 하지만 이 가격으로 가진 물건들 전부 사줄 수 있는 사람은 나 말고 없을 거야.」

“그렇단 말이지?”

석민은 팔짱을 끼고 있던 손을 풀고는 음료수를 마셨다. 혜원은 서류를 들어 목록과 주요 사항들을 체크했다.

그러다가 석민의 시선이 한곳을 향했다.

알렉산드라가 마치 석민의 시선을 끌고 싶다는 듯이 은근 양팔을 모아 가슴을 강조했지만, 석민의 시선이 향한 곳은 그녀가 아니었다.

아영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음료를 가지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자신들에게 향하는 발소리에 놀란 두 여자의 시선이 자연스레 아영에게 와 닿았고, 곧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어떻게?”

아영이 물었다. 석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짧게 자른 머리를 뒤로 쓸었다.

“할 이야기가 많겠네.”

목소리는 많이 담담했지만, 그 속엔 웃음기가 가득했다.

아영은 빈 의자에 털썩 앉았다.

“흠흠, 생각보다 우리의 신은 익살맞은 것 같더라고. 그냥 나의 각오? 봉사? 사명감? 아무튼, 그걸 시험하려고 한 것 같더라.”

“…그래요? 정말 다행이에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냐면….”

석민의 말을 물꼬로 혜원과 알렉산드라도 적극 대화에 참여했고, 곧 아영까지 모두의 웃음소리가 테이블 위를 가득 채웠다.

중간중간 이야기가 새기도 했으나,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는 그 뒤로도 한동안 끝나지 않았다.

[게이트 오브 서울]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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