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225화 (225/226)

[게이트 오브 서울 225화]

깨어진 꿈

밧줄을 타고 오면서 장갑이 다 까져버렸다. 안에 완충제도 망가진 것 같았다. 너덜거리는 장갑을 석민이 땅에다 아무렇게나 내팽개쳤다.

손바닥이 따끔거렸다. 장갑이 망가지면서 손바닥이 쓸린 것이다.

설핏 까진 피부 사이로 피가 조금 나 있었다. 욱신거리기도 했으나 금세 아물기 시작했다.

그때, 지축이 크게 울리면서 흙먼지가 잔뜩 일어났다.

몸이 붕 뜨는 느낌과 함께 왕십리에 늘어선 건물들의 외벽에 균열이 생기고, 석재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영은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석민을 바라보았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후회했다. 진심으로.

약속했던 군대는 오지 않았고, 내치지 않은 마음으로 어설프게 끌려다니며 했던 행동들은 이도저도 아닌 상황만 초래했다.

그리고 결국, 석민은 목숨을 걸게 되었다.

“뭐, 그래도 너는 네가 원하는 대로 됐네.”

석민의 약간은 씁쓸한, 또 어딘가는 자조적인 목소리 사이로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들이 들려왔다.

어느새 다 나은 손으로 석민은 땅에 떨어진 붉은 돌을 들었다. 드래곤하트가 분명했다.

“이게 왔으니까.”

드래곤하트는 우박처럼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몇몇 개는 석민과 아영의 머리에 부딪히기도 했으나 다행히 헬멧을 쓰고 있어서 큰 충격은 없었다.

석민은 최악으로 치닫는 것 같은 상황에 질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석민이 아영을 바라보았고 아영은 목을 움츠렸다.

끝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어디에서 기인하는 분노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분명 아영의 행동이 옳다고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오롯이 아영의 잘못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시야에 비치는 것만으로도 살의가 치솟았다.

“…후, 그래, 너만 잘못했다 볼 순 없지. 그래도….”

석민이 입 안으로 삼킨 말을 아영은 왠지 알 것 같았다. 이득, 이 갈리는 소리에 아영의 몸이 더 움츠러들었다.

‘그래도 서로 피 보자고 덤비지 않았으니, 그녀에 대한 의리와 예의는 다 한 거지.’

그는 애써 차분하게 생각했다.

“…죄송해요.”

석민은 가늘게 뜬 눈으로 그녀를 살피다가 한숨을 내뱉었다.

뭐라 한마디라도 하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았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결국 이게 운명이란 거겠지.”

그는 눈앞에 계속 숫자가 줄어드는 카운트다운을 보며 중얼거렸다.

별짓을 다하며 결국 벗어나려 했지만, 이게 운명인 듯했다.

상황이 너무 짜증날 정도로 절묘했다.

‘그렇게 날 제물로 삼고 싶었던 건가.’

자신의 희생으로 일을 처리하고 나면, 그 뒤는?

천국의 문 교단? 알아서 자멸하겠지.

방주는 눈앞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고, 진실도 까발려질 것이다.

군대가 오고 있으니, 정부도 빠르게 이 소요를 끝낼 테고.

그들이 바라고 바라던 드래곤하트도 잔뜩 얻을 것이다.

석민은 발밑에 널린 붉은 돌을 발로 찼다.

대통령이 원하던 대로 될 것이다. 비록 사람은 많이 죽었지만.

그리고,

‘아영도 원하는 대로 되겠지.’

석민은 입맛을 다셨다. 담배가 매우 당겼다. 그러나 이 흙먼지 속에서 마지막일지도 모를 담배를 피우고 싶진 않았다.

‘내가 목숨을 건다면 말이야.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내 인생을 끝내고 싶진 않았어.’

뭔가 자신만 부당하고 억울하게 느껴졌다.

자신만 아무런 소득도, 뜻대로 되는 게 없었다.

심지어 그 토대는 자신의 목숨인데 말이다.

그렇게 수많은 생각들이 흘러갈 때, 흙먼지가 점점 가라앉았다.

석민과 아영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누구인지는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오르곤은 매우 지친 모습으로 석민과 아영의 눈앞에 착지했다.

“왜 왔어?”

석민은 지친 눈을 하고서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

“왜? 복수하게? 다 끝났는데?”

그 말에 아영은 몸을 움찔거렸다.

오르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처음 마주쳤을 때와 비교하면 처량할 정도로 상처 가득한 손에 든 도끼를 들어 올렸을 뿐이다.

마지막 힘을 다해 석민을 상대하려는 것이었다.

석민은 천사의 검을 주워서 챙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아악!”

천사를 포효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날개도 거의 다 망가져서 이제 날 수 없어 보였다.

이성도 살짝 놓은 건지, 눈동자도 거의 흰자위만 보였다. 지금 상황에서 상대가 제정신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석민과 아영은 소총을 겨누어서 연발로 쏘았다.

12.7mm 묵직한 탄환들이 천사의 온몸에 박혔다.

해져서인지, 단거리라서인지 갑주도 총탄에 맞아 뻥뻥 뚫렸다.

거대한 신체가 탄두에서 발생하는 저지력으로 발걸음을 멈추고 주춤거렸다.

아영은 재장전을 하는 대신 권총을 꺼냈고, 석민은 상대가 멈칫한 틈을 타 가지고 있던 천사의 검을 던졌다. 칼은 그대로 날아가 오르곤의 흉갑을 뚫고 깊숙하게 들어갔다.

오르곤은 꺼억! 거리면서 몇 발 뒷걸음질 치더니 천천히 고개를 내려서 자신의 가슴에 박힌 검을 내려 보았다. 그리곤 크게 뜬 눈으로 다시 석민과 아영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과 마주친 순간, 석민과 아영은 오르곤이 죽기 위해 자신들을 이용한 사실을 깨달았다.

“마지막까지 더럽네. 시발.”

아영의 권총이 불을 뿜었다. 오르곤의 이마 한가운데에 착탄했고 오르곤의 신체는 뒤로 쓰러졌다.

그렇게 마지막 천사까지 영면에 들었다.

석민은 재장전을 마치고 앞으로 걸어가서 천사의 몸을 노리고 쏘았다.

그렇게 무표정한 얼굴로 남은 탄약 전부를 쏟아낼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총에서 빈 탄창의 소리가 날 때까지 쏜 석민이 뒤돌아섰을 때는 한결 기분은 나아보였으나, 얼굴은 더 가라앉아 있었다.

이것으로 드디어 원흉은 사라졌다.

***

오르곤이 눈을 감은 순간, 교주의 광배가 사라졌다.

그에게 힘을 나눠준 이가 오르곤이었던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였다.

‘뭐, 뭐지? 왜 이런 거냐?’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백은호는 계속해서 권능을 사용하고자 했으나 전혀 효과가 없었다.

그 사이 먼지가 걷히고 낮은 기침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몇몇 건물들이 방주의 추락으로 무너졌으나, 다행히 교단인들이 서 있던 곳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렇게, 백은호의 생생한 모습이 교인들에게 낱낱이 들어났다.

그의 모습은 그저 바짝 마른 감염자와 다를 바 없었다.

이미 썩어 사라진 눈알 때문에 텅 빈 눈구멍, 이도 삭아 내려앉았고 입술은 쪼그라들어 있었다.

듬직해 보이던 어깨도 가녀리고 볼품없었으며, 큰 키도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작을 만큼 줄어있었다.

교인들은 무슨 단체 체면이라도 받은 기분이었다. 이런 자를 이제까지 그렇게 봐 왔었다고?

“이게, 교주라고?”

사도대에서 가장 먼저 교주에 대한 말들이 터져 나왔다.

“완전 등신불이잖아.”

점점 교주에게 다가오며 한마디씩 보태는 사도대 대원과 교인들을 보며 교주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아마 교주가 좀 더 현명했다면, 겁먹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머리를 굴려 권위를 내세우고, 이번 구원은 시기가 좋지 않았다며 다음 기회를 노릴 것이다.

그러나 교주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천사를 찾았다.

“천사이시여? 제 부름에 답해주십시오!”

하늘엔 여전히 방주의 반쪽으로 막힌 문에서 괴상한 소리들이 흘러나왔고, 드래곤하트처럼 생긴 붉은 돌들이 쏟아져 내렸다.

“천사이시여! 신이시여!”

백은호는 양손을 들어 보이며 부르짖었다.

그러나 부름에 답할 천사는 이미 죽고 없었다.

“우리의 주이시여!”

“없어, 없다고, 이 새끼야! 그딴 개소리 그만해!”

교인 중 하나가 욕설을 내뱉으며 백은호에게 다가서자 사도대가 습관적으로 그 앞을 막았다.

“야, 이 새끼야! 정신 못 차려? 다 끝났어! 그 잘난 방주는 부서졌고, 이건 우리를 위한 게 아니야! 방주에 천사 놈들이 잔뜩 타고 있었잖아! 이 보석 같은 것들이 뭔지 아직 모르겠어? 방주는 우리를 위한 게 아니야. 저것들이 넘어오려고! 우리들을!”

그자는 얼굴을 잔뜩 상기시키며 화를 폭발하듯 속에 있던 말을 다 내뱉었다.

“이렇게 우리를 엿 먹이려고 그런 짓을 한 거야? 기적은? 후광은? 다 사라졌지?! 그 잘난 기적으로 우리들을 전부 구원해보던가!”

그 말과 동시에 다른 곳에서 백은호를 향해 땅에 떨어져 있던 붉은 돌, 드래곤하트를 집어 던졌다.

그것은 백은호의 이마에 정확히 맞고 떨어졌다.

감염자와 다를 바 없는 백은호의 머리가 깊게 푹 파였다.

“이 새끼야! 이게, 이게! 진실이야!”

그를 신처럼 숭배하던 무리가 그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저 볼품도 없는 빌어먹을 감염자 놈이 우리를 여태까지 속였어!”

“내가 낸 헌금 다 물어내!”

“내 아들 놈은 이런 놈 때문에 죽었단 말인가!”

분노와 증오가 그를 향했다.

광신적인 믿음이 부정을 당했을 때, 그 미친 믿음만큼의 분노가 되돌아가는 건 당연했다.

백은호는 점점 더욱 뒷걸음질 쳤다.

“…아, 아니야.”

그는 낮게 중얼거렸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못했다.

“아니라고.”

그렇게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던 그는 자신의 발에 걸려 엉덩방아를 찧었다.

사도대 대원들은 경멸 어린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볼품없는 미라가 눈앞에서 쓰러졌다.

이런 자를 숭배했단 말인가?

“저것들이 우리를 속였어!”

분노는 사도대에게도 집중되었다.

교주에게 몰리던 화가 이제 자신들에게 몰리자, 방관자처럼 상황을 보고만 있던 그들이 당황하며 교주 쪽으로 몰렸다.

“아니, 우리한테 왜 이러십니까?”

“몰라서 물어? 너희는 여태까지 사도대라고 저 육표 따까리 짓 하면서 우리 얼마나 못살게 괴롭혔잖아?”

“으스대면서 밀치고 윽박지르고, 그래놓고 이제 와서 피해자 행세를 해!?”

분노한 만큼 한편으론 그들도 당황하고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책임자’는 한두 명으로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교구장들은 다 어디 갔어? 그것들도 끌어내!”

분노가 점점 커져가고, 군중 사이에서 두들겨 맞으며 교구장들이 앞으로 나왔다.

“아니야, 우리도 피해자라고!”

라고 발악하듯 소리치는 인원부터,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돼서 이성을 찾으라고 소리치는 자들까지. 매우 혼돈이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이자들을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중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쳤다.

고함이 더욱 높아지며, 교주 백은호와 사도대, 교구장들이 한쪽을 밀려들었다.

“이러지 마!”

열 받은 사도대 대원들이 그들에게 총을 겨누었다.

그러자 교인들도 무기들을 치켜들었고, 서로 대치 상태가 되었다.

“아직,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백은호가 외쳤으나 사람들은 이미 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백은호의 입이 딱딱 소리를 내며 마치 캐스터네츠마냥 움직였다.

“내 말을 들으라!”

불과 한 시간이라도 전이었다면, 모든 교인들이 그의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였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

교인부터, 충성스러웠던 사도대 대원 그리고 심복인 교구장까지.

“내 말을 들어!”

그의 외침은 그 누구의 귀에도 닿지 못했다.

자신이 노력했던 그 모든 것이 무너지고, 신의를 잃었다. 그의 심정은 산산이 부서져내려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으나, 정작 그의 눈에선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백은호의 몸은 사정없이 떨렸다. 서 있는 게 고작일 정도였다.

대의를 위해 모으고 나눠주었던 탄약도 이젠 자기들끼리 겨눌 무기가 되었다.

교주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분노하고 소리치고 악을 쓰는 교인들과 사도대, 교구장을 그저 응시할 뿐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들 중 교주에게 시선을 주는 이는 없었다.

난폭한 교인들의 행동에 사도대 대원들은 윽박지르거나 자기 변호하기 바빴다.

그러다 결국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은 사도대 대원 중 한 명이 장전되 소총을 조정간 연발로 돌린 순간이었다.

사방에서 방아쇠들이 연달아 당겨지는 소리가 울리더니 누가 먼저인지도 모를 새 양쪽에서 총성들이 터져 나왔다.

처음엔 사도대가 더 우세해 보였다.

그들은 훈련을 받아서 무기를 잘 다뤘고, 연발로 돌린 덕에 총을 쏘기도 수월했다.

하지만 수적 우세는 일반 교인들이 압도적이었다.

분노한 교인들은 앞에서 총알받이로 죽은 시신을 방패로 사도대 대원들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결국 앞뒤 안 가리고 덤벼드는 교인들에게 점차 밀려 총을 맞고 서서히 뒷걸음질 치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그쪽은 건물 밖이었다.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건물 아래로 추락했다.

그리고 그 밑엔 석민과 아영이 있었다.

석민과 아영은 난데없이 머리 위에서 사람들이 추락해 떨어지자 놀라 자리를 피했다.

백은호는 마지막까지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

그제야 다시 교인들의 시선을 받을 수 있었다.

총에 맞아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가슴이 힘없이 부서졌다.

그렇게 마지막을 맞이하게 된 백은호 역시, 다른 이들처럼 뒤로 밀려 밑으로 추락했다.

감염자였던 그의 몸은 바람에 실려 깃털처럼 사뿐히 내려앉았다.

늘 새하얗던, 그의 상징인 백의는 흙먼지로 더러워지고 교인들의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석민과 아영은 눈앞에 떨어진 그 시신을 말없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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