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224화 (224/226)

[게이트 오브 서울 224화]

[문이 불안정해졌습니다.]

[선택받은 자를 희생하여 사명을 완수하라.]

[남은 제한시간 03:00:00]

제한시간이 나오기 무섭게 시간이 02:59:59로 줄었다. 3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석민과 아영은 서로를 보았다. 둘 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옥상에 떨어진 천사는 죽지 않았다. 오르곤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그리곤 악에 바친 얼굴로 석민과 아영을 주시했다.

석민은 현기증을 억누르며 오르곤을 노려보았다.

그 순간 계단에서 숨 헐떡이는 소리와 함께 교인들이 튀어나왔다.

그들이 재빠르게 석민과 아영을 조준했으나, 그 뒤에 자리하고 있는 천사의 모습에 곧 총을 내렸다.

천사의 무시무시한 눈빛과 석민과 아영의 시선이 마주하고 있었기에, 알 수 없는 압박에 억눌려 함부로 총을 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부웅! 뱃고동 비슷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모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제대로 열리지 못한 차원의 문을 통해 방주가 억지로 밖으로 나오기 위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선체에 달라붙었던 드래곤들도 자연스레 떨어져 나갔다.

뒤쪽에 엔진이라도 달렸는지, 좁은 입구를 비집고 조금씩 들어왔다.

결국 문이 점점 열리며 선체의 중간까지 차원 문을 넘어왔고, 그 상태로 멈췄다.

마치 코르크마개처럼 방주가 문을 막아준 것이다.

“뭣들 하는 거야?”

그렇게 석민과 아영이 하늘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다시 계단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올라가란 말이야! 천사께서 다치시면….”

하지만, 앞쪽에서 걸음이 멈춰 입구를 막아버려서 뒤쪽에선 상황도 모른 채 아우성만 쳤다.

그렇게 서서히 옥상도 점차 교단인들로 가득 차 올랐을 때, 스탯을 찍은 석민과 아영의 눈에 방주의 균열이 보였다.

입구가 다시 좁아지면서 방주가 무너지려고 하는 건지, 뭔지. 도대체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 확실한 건 입구가 방주를 점차 강하게 압박하면서 방주의 표면이 세게 눌리고 있단 점이었다.

찰나의 순간이나마 기대를 하고 있던 오르곤의 얼굴이 경악으로 변했다.

“께에아악!”

오르곤은 괴성을 지르더니 하늘로 올랐다.

방주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리곤 온몸에서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무언가 시도하려는 듯한데, 시작도 하기 전에 방주의 균열이 커지더니 선체가 뒤틀리면서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냈다.

그리곤 방주에서 유리조각 같은 것들이 비처럼 떨어지더니 서서히 부서졌다.

조각의 파편들이 석민과 아영이 있던 곳으로도 떨어졌다. 거기에 깔린 교인 몇몇은 즉사했다.

그럼에도, 교인들은 넋을 놓고 하늘만 쳐다봤다. 다들 이 현실을, 목격한 장면을 믿을 수 없단 표정이었다.

전지전능하다는 신께서 보낸 방주가 부서지다니….

아니, 성경에선 분명히….

곳곳에 숨어 있던 의문과, 의심들이 교인들의 마음속에서 튀어나왔다.

“어째서?”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총을 쥔 두 손이 벌벌 떨리는 노인도 있었다.

최후의 승리, 그리고 최후의 심판, 뭐라고 불러도 좋다.

묵시록의 예언서는 승리하는 것이.

방주의 선체가 크게 뒤틀렸다.

마치 조롱이떡 마냥 선체 중간이 꽉 조여졌다.

입구가 다시 좁아진 것이다.

붕! 마치 제트 엔진처럼 강한 모터 소리와 함께 최후의 발악이라도 되는 듯 방주가 다시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절반 쯤 빠져있던 선체가 4분의 3정도 안으로 들어왔다.

많은 이들이 각자 생각하는 이상을 품고 간절하게 빌었다. 그들은 서로 싸우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그때, 방주의 끝에 도착한 오르곤은 방주에 손을 급히 뻗었다.

그리고 이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마치 날카로운 칼에 일도양단 된 것마냥 잘린 방주의 선체가 추락했다.

“아…!”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박재만은 저도 모르게 탄식을 내질렀다.

백은호는 아직 옥상으로 올라오지 못했다.

그러나 천사 오르곤은 포기하지 않았다.

방주의 끝에 몸이 찔려 피를 흘리면서도 무언가 주문을 외웠다.

그 순간, 석민의 어깨를 누군가가 두드렸다. 아영이었다.

아영은 손가락으로 어느 한곳을 가리켰다.

석민의 시야가 그곳을 힐끔 바라보다가 아영과 시선을 마주치고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움직였다.

그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누군가가 소리쳤지만, 대두분의 교인들은 하늘만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가지고 있던 신앙심은 모두 한줌의 재가 되었다.

아니, 신앙심이 그대로라 해도 희망이 산산조각난 상태였다.

그들이 열렬하게 갈망하던, 그게 비록 거짓에 기반한 것이라도, 방주는 부셔졌고 추락했다.

그나마 그들이 일말의 희망이라도 잡고 있는 이유는 오르곤의 주문으로 방주의 낙하 속도가 느려졌기 때문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힘든지 오르곤은 방주의 끝에 몸을 대고 날개를 연신 퍼덕였다.

저 거대한 배를 일개 천사 따위가 막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석민과 아영이 달린 곳은 옥상 뒤쪽에 마련해둔 밧줄이었다.

석민이 드래곤과 싸우는 사이 아영이 마련해 둔 것으로, 바닥에 못을 박은 직후 기다란 밧줄로 연결해 둔 것인데 유사시에 밧줄을 타고 바로 도망치기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방주의 선수가 그들이 있는 건물로 향하고 있어서 그들은 피하려고 한 것이다.

“멈춰라!”

밧줄을 타려던 순간, 누군가 소리쳤다.

그러나 석민과 아영은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밧줄을 타고 몸을 던졌다.

그들이 있던 자리에 몇 발의 총알이 스쳤다.

도망치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박재만이 자신의 아쉬운 권총 실력에 짜증을 냈다.

그는 총을 든 손으로 이마에서 쉴 새 없이 흐르는 땀을 닦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생각했다.

방주가 파괴되었다!

구원은?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

‘기적은? 천사는? 천국은?’

약속된 낙원은 어디로 간단 말인가?

방주의 선수가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걸 확인한 박재만은 이내 얼굴에 당혹감이 깃들었다.

그는 천천히 뒷걸음질 쳐 계단으로 향했으나, 계단의 입구는 교인들로 꽉 차 있었다.

아직 넋을 놓은 그들 사이를 좌우로 밀치며 계단 아래로 내려가다가 교주와 몸을 부딪쳤다.

“무슨 짓이냐?”

백은호가 물었다.

그에겐 여전히 광배가 나오고 있었고, 근엄한 자태였다.

“교구장씩이나 되어서 혼자 도망간단 말인가?”

백은호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듯했다.

박재만은 이를 갈았다.

이자에게 속았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약속된 구원도, 믿음의 대가도 없었다.

“올…라가 보십시오.”

그는 간신히 이성을 유지하며 말했다.

“올라가서 확인해 보십시오!”

“박재만 교구장, 당장 같이 올라가게 교인들을 두고.”

“이미 모든 것이 망했어.”

박재만은 방탄모를 벗으며 말했다.

“올라가서 확인해 보라고.”

백은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게 항상 고개를 조아리고 존대를 하며 쩔쩔 매던 그런 자였다.

그랬던 인간이 갑자기 자신에게 왜이리 무례하게 구는 건가?

교주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교주의 뒤를 따라 올라오던 사도대 대원들이 박재만에게 총구를 겨누었지만, 믿음이 배신을 당한 박재만은 그러거나 말거나 악에 받쳐 속에 있던 말을 내뱉었다.

“우리의 구원은 끝났어!”

그리곤 피곤하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즐길걸. 왜 이런 고생을 했을까?’

“피곤하네. 난 돌아가겠다.”

“감히!”

“이 배교자가!”

사도대 대원들이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백은호가 그들을 막았다.

“놔둬라.”

여전히 상황이 어떤지 모르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가게 둬라. 마지막 순간에 배교자가 된 것을 보니, 저자의 본성이 드러난 것이지.”

그 말에 박재만은 코웃음을 치면서 그들을 좌우로 밀쳤다.

“다 비켜!”

그는 걸음을 더 빠르게 했다.

잔머리 하나만큼은 그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는 그는, 서울에서 안전하게 빠져나가기 위해선 교단에 유일하게 남은 1대의 차량이 꼭 필요하단 걸 떠올렸다. 그래서 앞으로의 혼란으로 교인들이 서로 차에 타려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차량을 빼돌려야한다는 걸 깨달았다.

“다 비키라고!”

계단 가득 꽉 들어찬 교인들의 숨결에 그는 불쾌하단 듯이 인상을 썼다.

이미 한계까지 몸을 쓴 교인들의 입에선 단내가 심했다. 심지어 부대끼면서 체온까지 겹쳐지자, 계단 아래로 내려갈수록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높아지는 듯했다.

“교구장님, 어디를 가십니까?”

나이를 먹은 노파가 그의 걸음을 막고 가는 길을 물었지만, 박재만은 답해주지 않고서 그의 어깨를 거칠게 밀며 앞으로 걸어나갈 뿐이었다.

“비켜!”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교주는 박재만이 왜 저러는지 전혀 모르지 않았다.

무언가 불안한 생각이 엄습하긴 했지만, 그는 주변 교인들을 좌우로 비키게 하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저 어리석은 놈 따윈 신경 쓰면 안 된다.”

교주가 이제 20명도 채 남지 않은 사도대 대원들에게 말했다.

“너무 늦게 전에 방주를 타고 우리는 낙원으로 갈 것이다.”

그의 말에 동의하듯 사도대 대원들의 고개가 끄덕였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 우리는 그렇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당연히 그래야 하기 때문이지.”

그가 출구를 빠져나왔을 때, 옥상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여전히 하늘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자연스레 백은호의 시선도 하늘로 향했다.

방주는 이제 건물 옥상에서 200미터쯤 위에 위치하고 있었다.

오르곤은 여전히 방주를 지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저게… 뭐야?!”

놀란 교주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아니, 어떻게….”

절단된 방주의 부위에서 균열이 더 심해지더니, 무르익은 열매가 터지듯 사방으로 무언가 우수수 튀어 내며 터져나갔다.

사방으로 뻗어나간 것은 붉게 반짝이는 루비처럼 어둠 속에서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크기가 주먹만 한 데다, 무게 또한 제법 나간 그것에 머리를 맞은 몇몇은 뇌진탕으로 쓰러졌다,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퍼졌다.

우박처럼 쏟아지는 것에 교인들은 대책도 없이 당하기만 했다.

교주는 자신의 발 앞에 떨어진 보석 같은 그것을 주웠다. 아무리 봐도 이것은 드래곤하트 같아 보였다.

교주의 행동에 주변에 있던 다른 이들도 바닥에 떨어진 것을 주워서 살펴보았다.

붉고, 안이 훤히 비치는 투명한 보석 안쪽엔 무언가가 있었다.

마치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는 그것엔 날개가 달려있었다. 천사였다.

여자, 남자, 주름이 자글자글한 이도, 어린 아이처럼 보이는 존재도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챈 자들이 놀란 눈으로 방주를, 천사를, 그리고 자신들의 교주를 번갈아 보았다.

몇몇은 눈물을 훌쩍였고, 몇몇은 배신당했단 생각에 악을 지르거나 이를 갈았다. 어느 쪽이든 그들의 두 눈이 빨갛게 변하는 것은 당연했다.

교주 또한 당황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교주에게 향했다. 교주가 행했던 모든 기적이나 약속은 이제 공수표가 되었다. 교주가 억울하건, 사실을 몰랐건, 그런 건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방주는 추락했다.

오르곤의 노력 덕분인진 몰라도 방주는 왕십리역이 아닌 다른 곳에 떨어져 교인들이 살 수 있었다.

커다란 굉음과 함께 거대한 흙먼지가 일었다.

방주의 크기는 주변의 건물을 압도할 만큼 컸다.

차량에 오른 박재만은 주변에 떨어진 붉은 돌들을 흘긋 보고는 시동을 걸었다.

다행이 차량에 열쇠는 그대로 꽂혀 있었다.

그는 몇몇 눈치가 빠른 자들이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며 다가왔지만, 무시하고는 차를 몰아 움직였다.

그는 되도록 군대와 빨리 합류를 하기 위해 자신이 왔던 길로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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