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223화 (223/226)

[게이트 오브 서울 223화]

방주

오르곤은 날개를 퍼덕이며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예광탄을 피했다.

부우욱 거리면서 20mm 기관포탄이 하늘을 수놓았다. 기관포탄을 발사하는 예광탄의 궤적은 두 줄기밖에 없었다.

군부대는 교단의 사람들이 지나갔던 다리를 따라 이동했다. 지나오며 마주친 교인들이 미약하게나마 저항을 하면 쏴 죽이거나, 그 궤도를 밟고 움직였다.

군인들이 잔인하다기보다, 교인들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과 다름없었다.

아무튼 군대가 다리를 건널 쯤, 오르곤이 구름 속에서 왼 주문이 빛줄기가 되어 군대의 행렬을 덮쳤다.

앞서 길을 개척하던 장애물 개척 전차와 전차 5대가 주문을 맞고 그대로 박살이 나버렸다.

이런 식으로 오르곤은 군대가 앞으로 전진하는 걸 방해했다. 전차나 장갑차가 단번에 폭발하도록 만드는 게 아닌, 세심하게 안의 승무원 몇몇은 살아남도록 조정했다. 그러면 군대가 생존자를 구출하기 위해서 시간을 허비하기 때문이었다.

불타는 차량에서 해치가 열리고 몸에 불이 붙은 승무원들이 급히 나와서 땅에 몸을 굴렸다.

언뜻 보면 큰 화상을 입은 것 같지만 방염 처리된 군복에 방염 두건까지 쓰고 있어서, 보기보다 그들의 부상이 경미했다.

그렇게 시간을 충분히 끌었다고 판단한 오르곤은 몸을 돌려 문으로 날아갔다.

오르곤의 시야에 교인들이 왕십리역에 도착한 것이 보였다.

시간이 제법 걸렸지만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지긋지긋한 석민과 아영은 저것들이 충분히 막아주는 듯했지만, 오르곤은 여전히 못 미더운 표정으로 상황을 주시했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고 오르곤은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모든 것을 끝내야 할 때인 것이다.

***

석민과 아영은 동시에 옥상으로 올라갔다.

나팔과 비슷한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고, 그 둘은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쪽으로 올려다보았다.

“이런….”

석민은 시야를 확대했다.

어두운 문의 입구 속에서 유일하게 별처럼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오르곤이었다.

오르곤은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주변에서 환호성과, 찬송가 그리고 방주라고 외치는 교인들의 아우성이 들려왔다.

그들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닌데도 말이다.

석민이 SR-1을 꺼내 들고 조준하자, 기겁한 아영이 총구를 막았다.

“그러시면 안 돼요.”

석민은 고개를 저었다.

“군대가 없잖아. 이게 마지막 기회야.”

문 속에서 차츰 희미한 빛들이 새어 나왔다. 문이 열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지금 그냥 쏴 죽이면 문은 안 열리고 끝나.”

총구를 잡은 아영은 망설였다.

“군대가 없는 이상 방주를 안에 들일 수 없어.”

그는 거칠게 아영의 손에서 총구를 빼낸 직후, 오르곤을 조준했다.

이윽고 총성들이 연달아 울렸다.

아영은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석민의 말이 맞았다. 믿고 있었던 군대는 오지 못했고,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석민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그래도, 이건 아니야.’

내면 한구석에 찜찜함이 자리 잡았음에도, 그녀는 감히 나서지 못했다.

***

“심판의 나팔이다!”

교인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묵시록에 기록된 일곱 천사의 나팔이야!”

그러나 일곱 천사는 보이지 않았고, 나팔 역시 일곱 번 울리지 않았다. 무언가 이상한 부분들이 있었지만, 흥분한 교인들은 기도하거나 환호하기 바빴다.

그러나, 고조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총성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교인들의 입이 다물렸다.

다시 총성이 들리자, 분노 섞인 욕설과 야유가 퍼져 나왔다. 그 총성이 무엇인지 단번에 깨달은 것이다.

“이런, 천벌 받을 놈!”

교주 백은호도 전에 없던 모습으로 크게 소리쳤다.

“교주님.”

그 순간, 박재만이 그를 다급히 불렀다.

“서울 시립대에서 탄약을 구한 자들이 돌아왔습니다.”

교주가 고개를 돌리자, 뒤쪽에서 한 무리의 교인들이 숨을 크게 헐떡이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양손엔 각종 구경의 탄약들이 한 박스씩 들려 있었다. 일부는 소총도 챙겨서 어깨에 둘러메고 있었다.

“당장 탄약을 분배하고 전진하라! 저들을 막아야 한다!”

교주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총을 든 자들이 탄약을 챙긴 이들에게 달려가서 탄약 클립을 한, 두 개씩 분배받았다.

그들은 달리면서 각자 자신의 탄창에 총탄을 넣었다.

탄약 호환이 안 되는 일부는 시립대에서 챙겨온 K-1이나, K-2 소총을 들었다.

격발이 잘 되는지 안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분노한 교인들의 아우성을 뒤로하고, 석민은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석민이 처음 쏜 탄은 오르곤에게 맞지 않았다. 두 번째로 쏜 탄은 오르곤에게 맞긴 했지만, 몸에 박히지 않았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런가? 아니면 고도 때문에?

석민은 짜증이 치솟아 잇몸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러면 반응 보일 때까지 쏘면 되겠지!’

그는 순식간에 1개의 탄창을 비웠다.

비록 제대로 박히진 않았지만 오르곤에게 타격을 주긴 했다.

그럼에도 오르곤은 주문을 외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계속된 방해에 인상을 쓰면서 석민을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석민의 머리가 마치 한 대 맞은 것처럼 징징 울리더니 현기증과 함께 머릿속에서 말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방해하지 마라!

중후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다시금 거대한 나팔 비슷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문에서 나는 소리였다.

문이 반응하고 있었다. 석민은 조급증이 걸렸다.

의식의 일환인지는 모르겠지만, 석민은 오르곤의 고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좋아.”

석민이 총을 쏘자, 오르곤의 몸에서 피가 튀어 올랐다.

아영은 불안한 눈으로 오르곤의 다리를 따라 흘러내리는 피를 보았다.

거리 때문에 탄환이 파편화되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오르곤은 계속해서 주문을 외웠다.

오르곤의 발꿈치에 착탄된 총알이 종아리를 뚫고 나오는 것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끈질긴 놈!”

그럼에도 오르곤은 문을 열어 방주를 들이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

석민이 이로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며 어떻게 막을지에 대해서 잠시 생각했다.

‘머리를 노려야 해, 머리. 아니면 날개라던가.’

석민이 머리를 노리고 총을 쐈으나, 오르곤은 자신의 머리 주변으로 탄환이 날아오자 몸을 쓱 돌려서 어렵지 않게 피했다.

날개를 맞히자니 튼튼하고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깃털이 방해였다.

석민은 계속해서 머리를 노리고 쏘았다.

이내 오르곤의 목에 총탄이 착탄했다.

“좋았어!”

석민이 목을 부여잡는 오르곤에게 이를 보이며 웃었다.

오르곤은 비처럼 흘러내리는 피를 막아냄에도 의식이 흐려지는 것 같았다. 날갯짓 역시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겉보기뿐이었다.

나팔 소리가 다시 울렸다.

“하! 독하다, 독해. 이래도 포기 못 해?”

석민은 새로운 탄창을 끼웠다.

오르곤도 자기 동족들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래, 그 사명은 저놈에게도 처절한 것이었다.

그게 우리한테 큰 민폐를 끼치니까 문제지.

석민이 다시 총을 겨누었다.

오르곤은 하늘에 간신히 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제 한 발만 제대로 먹이면….

“아닌 거 같아요.”

“뭐라고?”

석민은 총을 조준하며 물었다. 아영의 목소리가 너무나 작아서 제대로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충분해요 저건 죽을 겁니다.”

아영이 다시금 위험하게도 총구에 손을 올렸다.

“뭐하는 거야? 위험하게?”

아영의 손엔 장갑이 끼어 있었지만, 총을 계속 쏜 탓에 잔뜩 달아오른 상태여서 매우 위험했다.

“이건 아닌 거 같아요.”

석민의 이성의 끈이 아슬아슬하게 잡아당겨졌다. 오로지 방주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과, 촉박한 시간, 오르곤에 대한 생각에 머리가 가득 찼다.

그가 아영을 무시하고 다시 총을 겨누자, 아영이 손으로 총구를 내리려 했다. 석민은 개머리판으로 거칠게 아영을 밀었다.

“이성을 가지고 행동해! 이건 아니라는 걸 너도 알 텐데?”

“하지만, 그래도….”

“현 상황에서 방주가 안으로 들어오면, 끝장이야.”

“아니에요. 치명상을 입었으니 방주가 들어와도 오르곤은 절대로….”

그는 아영을 발로 차버렸다. 더 이상 그녀의 말을 들어 줄 생각이 없었다.

그녀가 쓰러지고 석민은 바로 총으로 연달아 3번 쏘았다.

한 발은 오르곤의 흉갑에, 다른 한 발은 대퇴부에, 마지막 한 발은 엉덩이에 맞았다.

그 순간 아영이 일어나 석민에게 달려들어 허리를 감싸고 밀어 넘어트렸다.

“무슨 짓이야?!”

아영은 입술을 깨물 뿐 대답하지 않았다.

“이 답답한 여자야!”

석민은 분노와 피곤으로 지쳐 욕할 힘도 없었다. 그저 씩씩거리며 화만 삭일 뿐이었다.

그때, 계단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놈들이 오고 있어. 이거 풀어!”

그 말에 아영이 계단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석민이 힘으로 몸을 얽매고 있던 그녀의 팔을 풀고는 오르곤을 노려 방아쇠를 당겼다.

그와 동시에 나팔 소리가 다시 울렸다.

총알은 오르곤의 겨드랑이에 맞았다. 흉갑에 보호되지 않는 부위였다.

“좋아.”

오르곤의 신체가 천천히 무너지는 것 같더니 하늘에서 천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오르곤의 눈꺼풀이 천천히 감기는 것까지 보였다.

근처까지 다다랐는지 계단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석민은 그쪽을 향해 탄창에 남은 탄을 쏘았다.

반자동이었기 때문에 그는 연신 방아쇠를 당겼다.

“뭐해?”

석민은 아영에게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아영은 잠깐 우물쭈물하더니 자신의 ASH-12.7을 꺼내서 그쪽을 쏘았다.

‘이제야 겨우 정신 차렸네! 빌어먹을!’

석민은 속으로만 투덜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문은 닫혔나?

하늘에, 문에 생겼던 빛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의 가운데를 중심으로 사각뿔의 꼭짓점처럼 보이는 것이 안으로 들어왔다.

구멍이 작아서 방주 본체 전체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구멍은 점점 커지고 있었고, 그것은 안으로 계속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로 무언가 커다란 발톱 같은 것이 잔뜩 보였다.

“아, 씨.”

수많은 눈동자들과 석민은 마주치게 되었다.

전부 드래곤들이었다.

수많은 드래곤들이 마치 시체에 붙은 파리와 구더기마냥 방주에 잔뜩 붙어 있었다.

그것들 말고도 온갖 괴수들이 있었다.

그나마 아직 다행이라면, 좁은 입구를 비집고 방주가 들어오면서, 표면에 붙어있던 괴수들은 뒤로 긁혀 밀려났다.

방주가 들어오고 입구가 안 닫힌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너희들을 저주하노라.

석민과 아영의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너희들의 자식들도, 그리고 그 자식들도 영원히 저주하노라.

‘성공을 했는데 저주를 한다고? 이제 와서 죽기 때문에 그런가?’

그런 의문이 생길 때 오르곤의 신체가 그들이 있는 옥상으로 떨어졌다.

깃털이 바닥에 닿는 것처럼, 매우 살포시 떨어졌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설마, 주문이 실패한 건가?

석민이 기대에 찬 얼굴을, 아영은 절망에 빠진 얼굴로 하늘을 쳐다봤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문이 열렸다. 그러나, 완벽하게 열리진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정해졌던 문은 더더욱 불안정해졌다.

아직 상황 파악을 못한 그들의 눈앞에 새로운 알림글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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