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221화 (221/226)

[게이트 오브 서울 221화]

“더럽게 시끄럽네.”

석민은 투덜거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는 SR-1을 내려놓고 뭉텅뭉텅 박살나는 콘크리트 난간을 바라보았다.

“탄약 상자 2개를 두고 왔으니까 오래 쏘지 못할 것에요.”

중기관총의 총성이 크게 들리는 와중이라 그들은 조금 큰 목소리로 대화를 하였다.

아영은 마지막 탄창에 탄을 넣은 직후 휴대폰을 꺼냈다. 대통령과 통화를 하기 위해서였다.

석민은 탄창을 탄입대에 넣은 직후 ASH-12.7을 들었다. 그러고 나서 아영에게서 택티컬 잠망경을 받아서 저쪽을 살폈다.

교단 사람들은 접근하지 않았고 은․엄폐에 들어갔다.

왜 접근을 하지 않는 거지?

석민이 의문을 가지고 상황을 살피는 동안, 아영은 대통령과 통화를 했다.

“네, 대통령님 지금 군대가….”

-천사가 습격했어. 아니 지금도 교전 중이네.

그 말에 석민이 아영에게 고개를 돌렸다.

“천사가요?”

아영의 목소리에도 당혹감으로 가득했다.

“교단인들은 지금 왕십리에 와 있습니다.”

-시간이 지금 더 걸릴 거야. 어떻게든 시간을 다시 끌어보게.

지금 중기관총의 소리가 안 들리는가? 저거 지금 우리가 쏘는 게 아닌데.

석민은 역시라고 중얼거리면서 혀를 찼다.

천사가 당장 안 보이는 이유가 있었다.

교인들만으로 막기 힘들다고 여긴 그것은 무리를 해서라도 군대를 습격한 것이다.

석민과 아영도 겨우 피한 오르곤의 주문을 군대가 피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상대적으로 큰 표적인 장갑차와 전차이니까.

석민과 아영은 잠시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지금 당장 저것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건 다름이 아니라 탄약이 부족해서가 아닌가?

-지금 가장 가까운 군부대는, 중랑천쪽 다리에 있어.

“차타고도 30분 걸릴 거리 아닙니까?”

거리에 버려진 차량들을 감안해서 하는 말이었다.

-어떻게든 버텨 봐.

무리한 명령인 것을 알기에 대통령의 목소리가 그리 썩 유쾌하지 않았던 터라, 듣고 있던 석민과 아영의 입장에선 얼핏 상대가 오히려 적반하장 하듯, 화내는 꼴처럼 보였다.

석민이 뭐라 한마디 꺼내기 전, 아영이 선수 쳐서 입을 열었다.

“대통령님, 그것 말고도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음?

아영은 바티크와의 대화를 꺼냈다.

그러는 동안 교단인들이 쏟아내던 중기관총의 총성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

멀리서 백은호는 가만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교인들을 투입할까요?”

박재만의 물음에 백은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자를 투입하지. 이제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총알이래 봤자 고작 인당 1, 2발밖에 없잖은가?”

“…네.”

“이때를 대비해서 준비한 거야.”

백은호는 차량의 뒤칸으로 가서 직접 문을 열었다.

“일어나라.”

짐승이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안에서 났다.

“저곳으로 가서 적들을 모두 죽여라.”

차량 안에서 거대한 신체가 튀어나왔다.

***

상황실로 개조된 회의실에서 휴대폰을 내린 대통령 성현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편에 앉은 국무위원들에게 다가가 선호석의 멱살을 붙잡아 일으켰다.

“대통령님?”

선호석은 그대로 대통령에 의해 따귀를 맞아 내동댕이쳐졌다.

“감히 내 명령도 없이 함부로 행동하다니!”

눈에 핏발이 선 대통령은 주먹을 부르르 쥐며 소리쳤다.

“다 우리나라를 위해서였습니다.”

선호석이 소매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

“당신 때문에 일을 그르쳤어! 이제 저들이 우리를 믿겠는가?!”

“이미 믿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선호석의 말에 그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들은 알지 못하는 비밀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대통령과 선호석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 일이 잘못되면 우리 둘 다 옷 벗을 각오는 해야 할 거야!”

“정권이 무너지고 스캔들이 나면 우리나라도 끝장인 거 모르십니까?”

“내가!”

대통령은 말을 바로 잇지 못했다.

“…내가 고작 정권의 안위 때문에 이런 계획을 잡았다고 생각하나? 나는 나라가 이 꼴이 나지 않았으면 이 자리에 오르지도 못할 그릇이었어!”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혹시 1기갑여단에도 수를 써 놓았나? 대답해 보게.”

선호석은 가만히 대통령을 바라볼 뿐 답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한숨을 쉬었다.

“자네 정말 치밀하군.”

“어차피 대통령님이 하려던 일은 무리였습니다.”

선호석이 말했다.

“저는 최악의 최악을 대비했을 뿐입니다.”

“혹시 포병여단도 움직인 것은 아니겠지?”

여전히 그는 답하지 않았다.

5군단 산하 5포병여단과 1기갑여단 산하 자주포대들도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여차하면 막대한 포병 화력이 왕십리역 전체를 포격할 준비를 마쳤다.

대통령은 현기증을 느끼며 자리에 앉았다.

“대통령님, 부디….”

“그만하게!”

그는 의자를 옆으로 돌려 허리를 굽혔다.

그 어느 때보다도 대통령은 나약한 노인네처럼 보였다.

“내 신념은 변하지 않아.”

하지만 말과 다르게 그의 목소리는 매우 초라하고 작게 들렸다. 그는 포대의 철수도 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하지 내 명령이 없이는 절대로 포대는 사격할 수 없어. 그렇지 않는다면 여기에 있는 사람들, 나 포함! 옷 벗을 사람이 많아질 테니까!”

그는 분노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주변에 경고를 했다.

#축복받은 박선우

석민은 차량에서 무언가 튀어 나와 빠르게 왕십리역 쪽으로 달리는 것을 보았다.

“저게 뭐야?”

예전에 구리-암사대교에서 보았던 끔찍한 괴물과 비슷한 형상이었지만 크기는 작았다.

석민이 제대로 관찰하기도 전에 그것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석민은 본능적으로 그게 안으로 들어오면 안 된다는 걸 알아챘다. 석민이 총을 들어 겨누는 순간, 중기관총이 다시 불을 뿜었다.

석민은 몸을 바짝 낮췄다.

“무언가가 안으로 들어왔어!”

석민의 말에 아영은 탄창을 끼우고 준비에 들어갔다.

“뭔데요?”

“몰라, 하지만 구리-암사 대교에서 보았던 놈이랑 비슷해!”

석민이 그렇게 말하며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위에서 싸우면 불리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것 말고도 축복받은 이들이라 불린 치료받은 감염자들도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싸워야해!”

아직 천사가 군대와 싸우고 있다고 하니 그들은 어느 정도 안심을 하고 내려갈 수 있었다.

내부는 정적으로 감돌았다.

드래곤이 내부을 불태운 통에 검은 그을음과 불탄 냄새들로 가득했고, 드문드문 아직 꺼지지 않은 불길과 피어오르는 연기에 그들은 인상을 쓰며 그 무언가가 올라오길 기다렸다.

수류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고 중화기는 전무했기에, 석민는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도록 허리춤에 끼워 두었다.

이윽고 불에 타 막혀버린 에스컬레이터 쪽에서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짐승의 낮은 울부짖음이 들려 왔다.

아영은 수류탄을 한 발 꺼내서 안전핀을 뽑았다.

그들은 천천히 소리가 들린 쪽으로 이동했다. 그 순간, 무언가 날카로운 금속음이 들리면서 불에 타 녹은 바리케이드가 움직였다.

아영이 다급하게 그쪽으로 수류탄을 던졌다.

잠시 후 폭음과 함께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러나 그것은 수류탄에 죽지 않았고, 석민과 아영은 잽싸게 그림자가 드리운 기둥 뒤에 숨어서 상대가 나오길 기다렸다.

이윽고 튀어나온 건 기괴하게 뒤틀리고 부푼 채 언 듯한 사람이었는데, 다른 것들과 다르게 얼굴과 피부가 하얬고 어둠 속에서도 밝게 빛나 보였다.

그리고 그 익숙한 얼굴을 알고 있는 석민의 눈이 커다래졌다.

“…박선우?”

그는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 반응한 상대가 석민이 있던 곳을 노려보았다.

짐승마냥 얼굴에서 푸른 안광이 나왔다.

기괴하게 커진 팔은 3개나 달려 있었고, 길쭉한 손톱이 자라난 손엔 무기들이 쥐여 있었다.

그 무기들이 석민을 향해 조준되는 순간, 아영이 연발로 총을 쏘았다.

총성이 연발로 울리면서 탄환들이 박선우의 온몸에 박혀들었고, 검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으나, 그리 큰 효과는 주지 못한 것 같았다.

10발 정도 쏜 아영이 옆으로 빠지자, 의도를 눈치챈 석민도 연발로 총을 쏘았다.

박선우는 그대로 석민이 있는 곳으로 돌진하며 AK탄환을 마구 쏘아댔다.

석민은 몸을 기둥 뒤로 숨겼다.

재장전을 마치고, 묵직한 발소리가 점점 다가오는 걸 느끼며 기둥 반대로 돌아 달려드는 괴물의 측면으로 연발을 쐈다.

피가 얼굴에까지 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쏜 12.7mm탄환이었다.

대부분 얼굴에 제대로 맞았으나, 얼굴의 형체가 거의 남아있지 않음에도 박선우는 죽지 않은 채 주춤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 순간, 박선우가 나왔던 에스컬레이터에서 총성이 연달아 울리며 석민의 방탄복에 몇 발의 총알이 박혔다.

방탄복을 망치로 치는 것마냥 큰 고통을 느끼며 석민은 뒤로 물러났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박선우를 따라 나온 이들은 대략 3명이었다.

석민은 다시 재장전을 하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야시경도 끼지 않은 것들이 대충 총구 섬광으로 석민의 위치를 가늠하고 쏜 것이었다.

석민은 그들 중 하나를 연발로 쏴서 쓰러트렸다.

그자들이 몸을 엎드리고 진열대 뒤로 숨어들자 아영은 수류탄을 꺼내 그들을 향해 던지고, 뒤로 물러난 박선우에게도 한 발 던졌다.

수류탄 폭음이 연달아 울리면서 진열대 뒤로 도망친 자들이 폭발에 휩싸여 사방으로 육편들이 튀었다.

아영은 현명하게 자신의 위치가 들키지 않는 범위 안에서 행동했다.

아직 살아남은 마지막 생존자가 다시 석민이 있던 곳으로 수류탄을 던지자, 석민은 바로 잡아서 다시 되던졌다.

다시금 폭발이 일어났고, 잔뜩 일어난 흙먼지 속에서 여전히 살아남은 상대가 튕겨 나왔다.

석민은 그 얼굴을 목격하자마자 총을 쏴버렸다.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나갔다.

그 사이 몸을 뒤로 뺀 박선우는 다시 태세를 정비하고 석민 쪽으로 달려들었다.

셋 중 총을 들고 있지 않은 손이 자신을 향해 기다란 손톱을 앞세워 휘두르려 하자, 석민은 재빨리 몸을 굴려 피했다.

“아니, 어떻게?”

어느새 눈 하나가 복구된 박선우의 얼굴을 보았다.

손에 든 박선우의 AK소총들이 석민을 겨누었다.

어둠 속에서도 그것들이 혜원이 교단에게 팔았던 북한제 조잡한 소총이란 걸 단번에 알 정도로 가까웠다.

“그놈들이 너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석민은 그 말과 동시에 몸을 날렸다. 그가 있던 빈자리에 화망이 생기면서 바닥의 타일들이 총에 맞아 박살이 났다.

석민이 숨은 진열대에 총탄 구멍이 났지만, 최대한 몸을 바짝 낮춰서 기적적으로 단 한 발도 맞지 않을 수 있었다.

대신 그가 등에 메고 있던 가방에 총탄이 박혔고 그 영향으로 안에 든 탄약들이 터지면서 요란한 소리와 폭음, 불꽃이 일어났다.

석민은 얼른 가방을 벗어버렸다.

박선우는 그가 가방을 벗으며 움직이자, 그쪽으로 다시 달려들었다.

그 순간, 조용히 숨어있던 아영이 박선우의 측면을 노리고 총을 쐈다.

달려들던 박선우가 기민하게 멈칫거렸다.

그제야 아영의 존재를 파악한 그것은 몸을 잔뜩 움츠리며 괴성을 질렀다.

“끼에엑!”

사람이 내는 소리가 아닌, 감염자의 입에서 나올 법한 갈라진 비명이었다.

석민과 아영은 몸을 움츠렸다.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