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이트 오브 서울 219화 (219/226)

[게이트 오브 서울 219화]

‘질질 끌어봤자 좋을 게 없어.’

바티크는 싸움과 전술에 있어서는 매우 기민한 자였다. 전투 중에도 계속 방법을 바꾸며 이기는 법에 통달한 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시간을 길게 끌수록 석민에게 좋을 리 없었다.

‘이런 식으로 싸우게 되었지만, 어쩔 수 없어.’

상대가 바티크여서 매우 유감스러웠지만, 그렇다고 상대에게 목숨을 내줄 생각은 없었다.

‘그래, 군에 입대를 하고 싶어 했었으니 원하는 바를 위해서 뭐든 하려 했겠지. 그걸 비난하진 않겠어.’

뭔가 대화를 엄청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탄창을 빼내 잔탄 확인을 한 번 더 한 직후 탄창을 끼웠다.

총알도 아껴야 하는데, 시간을 끌 수 없다면 근접전을 치러야 할 것 같았다.

그는 등에 메어 두었던 천사의 검을 꺼내 들었다.

바티크는 그가 인정하는 대단한 전사였다.

자찬하는 꼴이긴 하지만, 프로들끼리의 격돌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

뒤쪽에서 총성이 울림과 동시에 아주 가까운 곳에서 발소리가 들려 석민이 휙 고개를 들었다.

아영이 바티크를 노리고 방어구에 보호되지 않는 곳을 노려 쐈는데 다른 곳에 맞아버린 것이다.

‘젠장!’

이미 석민의 근처에 다가온 바티크는 택티컬 토마호크로 목을 베려 하고 있었다.

그도 근접전을 노리고 있었다. 아마 아영의 엄호를 막을 심상이었을 것이다.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 석민이 당황한 순간, 바티크의 도끼가 자신을 향해 떨어졌고, 석민은 고개를 살짝 돌려 도끼가 헬멧에 맞도록 했다.

머리에 충격이 전달되었지만, 토마호크가 티타늄 헬멧을 뚫진 못했다.

석민이 반격에 나서려 했으나 너무 가까이 있어 검을 휘두를 거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오른손에 들고 있던 소총의 총구를 내려 그대로 바티크 배에 조준했다.

12.7mm 탄환이 배에 착탄하기 무섭게 탄환이 깨지면서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바티크는 연달아 맞으면서도 토마호크를 도끼날 반대쪽인 스파이크 부분으로 고쳐 잡고 다시 휘둘렀다.

저렇게 공격이 들어오면, 아무리 티타늄이라도 구멍 날 게 뻔했다. 그러면 그의 두개골도 뻥 뚫릴 테고.

“아, 좀!”

석민은 상체를 뒤로 빼 피했다. 아영의 엄호 사격을 받으며 칼을 휘두를 수 있도록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그렇게 한 발짝씩 뒤로 갈수록 바티크는 더욱 바짝 붙어서 다가왔다.

석민은 총을 내리고, 자신의 배를 노리고 들어오는 토마호크를 검으로 막았다.

토마호크의 도끼날이 천사의 검에 닿자마자 두부 썰리듯이 깊이 박혀 들었다.

「뭐야?」

방탄 마스크 속에서 놀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황한 바티크가 도끼를 뽑으려 했으나 석민이 먼저 두 손으로 검을 잡아 비틀었다. 결국 도끼날 절반이 그대로 부서져 버렸다.

일반적인 검이 아닌 걸 눈치챈 바티크가 석민이 다시 그 검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더욱 바짝 몸을 붙였다. 때문에 석민은 다시 베기를 시도하지 못하고 배를 노려 힘껏 찔러 넣었다.

바티크가 입고 있는 강화외골격은 일반적인 칼로는 뚫을 수 없으나, 전차의 해치도 자르고 그 드래곤의 비늘도 꿰뚫었던 칼이다.

‘끝내자!’

그러나 이대로 바티크를 이길 수 있으리라 여기던 석민의 생각은 곧 와장창 깨졌다.

바티크가 당황하지 않고 반격에 나선 것이다. 검이 일반적인 능력을 상회한다고 해도, 결국 그걸 피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바티크는 매우 자연스럽게 석민의 칼끝을 자신의 옆구리로 빗나가게 하면서, 석민의 검 가드를 택티컬 토마호크에 걸리도록 쭉 뻗었다가 그대로 다시 당겼다.

석민은 스탯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무력하게 휘두르던 무기를 빼앗길 뻔했다. 빠르게 정신 차린 석민은 총으로 토마호크를 막았다.

그의 소총에 달려있던 조준경이 토마호크의 스파이크에 맞아 경통에 구멍이 생겼다.

바티크는 찍어서 잡아당겼으나 석민이 힘으로 버티자, 왼손으로 석민의 얼굴에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석민이 더 빨랐다. 그는 헬멧을 쓴 머리로 바티크의 안면 마스크에 그대로 박치기했다.

신소재인지 나발인지 알 수 없었지만, 헬멧 쓴 머리로 들이받으니 바티크도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이판사판이야!”

석민은 그렇게 소리치며 토마호크를 든 바티크의 팔목을 붙잡고 꽉 힘을 주었다.

“으아악!”

으드득 소리와 함께 바티크가 비명을 질러댔다. 고통에 힘이 빠진 그는 손에서 토마호크를 놓쳤다.

‘사전에 듣긴 했지만!’

자신의 눈에도 심각하게 뒤틀린 팔목을 보면서 바티크는 뒤로 물러나면서 왼손을 이용해 권총을 꺼내려고 했지만, 권총 손잡이가 오른쪽 허리에 있어서 불가능했다.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석민은 자신이 예전에 알던 때보다 훨씬 더 성장한 상태란 걸 깨달았다.

바티크는 석민이 다시금 접근을 해오자, 꺼내지 못한 권총을 대신해서 수류탄을 꺼내 엄지로 핀을 뽑았다.

“이런, 미친!”

아까와 같은 기세는 사라지고 석민이 놀라 뒤로 물러났다. 바티크는 안전레버를 꽉 쥐고서 천천히 석민에게 접근했다. 그의 오른손은 탈골이 되었는지 달그락거렸다.

“엎드려요!”

“안 돼!”

아영의 고함 소리에 석민이 즉각 답하면서 왼 팔목에서 단검을 뽑았다.

“아, 그건!”

바티크가 어눌한 한국어로 소리쳤다. 마치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를 만난 것처럼 기뻐하는 목소리였다.

“군에 이제 못 들어가겠네?”

바티크는 석민의 도발에 꿈쩍하지 않았다.

방탄 마스크를 통해서 그의 표정 변화를 전혀 볼 수 없었다.

“바티크, 너도 알잖아 그 손, 완전히 망가졌다는 거. 날 죽여도 군에 못 돌아가.”

상황을 주시하고만 있어야 하는 아영은 조바심이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석민이 고개만 조금 더 숙여주면 바로 저자의 머리를 쏠 생각이었다.

초음속탄으로 저 방어구들 중에 가장 약해 보이는 방탄 고글 쪽을 쏘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곧 바티크 손에 쥐여진 수류탄이 아영의 눈에도 띄었다.

석민은 단검을 왼손에 두고 소총을 다시 들었다.

“이만 포기하는 게 어때? 괜히 죽지 말라고.”

석민의 말에 바티크는 잠시 가만히 있었다.

이대로 그가 설득당해 준다면 좋겠지만, 사실 그리 기대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석민은 총구를 바티크에게 겨눈 상태로 시야에 비치는 십자선으로 방탄복 틈새를 조준했다.

「그래도 포기는 못 하지.」

잠시 후 바티크가 대답했다.

「어째서?」

「지금만큼은 난 군인이다.」

그는 상체를 들어서 가슴을 쫙 폈다.

「군복을 입을 순 없지만, 지금만큼은 난 군인이다. 내 조국과 너의 조국은 거래했다. 너와 저 여자를 죽이면 너희 쪽에 잡힌 우리의 요원들을 풀어준다는 조건이었지. 이름 하나 모르는 놈들이지만, 나 같은 놈 보다 그들이 더 가치 있는 자들이니까.」

「그놈의 애국심, 지긋지긋해.」

석민은 넌더리 난다는 듯이 고개를 젓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바티크의 왼쪽 무릎에 총탄이 맞았으나 관통하지 못했다.

바티크는 낮게 신음소리를 내면서 몸을 움츠렸다.

석민은 총을 연속으로 쏘다가 이윽고 탄창이 비자 그대로 소총을 집어 던졌다.

바티크는 그것 막아낸 직후 반격을 가했다. 그자는 몸을 숙여 석민의 허리를 양팔로 감싸면서 밀어 넘어트리려고 했다.

체중이 더 나가는 데다가 장비의 무게까지 더해져서 바티크가 석민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오른손이 작살나도 끌어안는 것쯤은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석민은 미리 충격을 대비한 자세로 힘만을 써서 버텼다. 그는 바티크에게 헤드록을 걸어 고정시키면서 바티크의 목을 노리고 단검을 찌르려 했으나, 바티크는 기어코 석민의 오른발을 수류탄을 쥐고 있던 왼손으로 부여잡아 밀었다. 중심을 잃은 석민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석민은 거칠게 단검을 휘둘렀지만, 단검의 끝은 바티크의 방탄 목 보호대만 살짝 베어내고 말았다.

석민이 넘어지면서 바티크의 모습이 훤히 보이자, 아영은 총을 연달아 쐈다.

이젠 힘이 좀 부치는지 바티크는 총격을 그대로 받으면서 뒷걸음질 치더니, 다시 점프해서 석민이 엎어져 있는 곳으로 발을 찍어 내리려 했다.

군화를 신은 발에 장비까지 착용한 건장한 남성을 그대로 받으면 분명 갈비뼈가 전부 부러질 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석민 또한 방탄복을 입고 있었고 일반인과는 차원이 다른 튼튼한 몸 덕분에 심한 압박감 외에 별다른 상처는 없었다.

석민은 인상을 쓰면서도 바티크의 오른쪽 무릎관절 안쪽을 노리고 단검을 찔렀다. 방어구로 보호되지 않았던 곳이라 칼이 깊게 들어갔다.

바티크는 낮은 신음을 흘렸다. 그리곤 바로 수류탄을 쥐고 있던 주먹으로 석민의 안면을 가격했다.

시야가 까맣게 물들고 석민의 눈앞에서 별이 돌아다녔다. 바이저가 망가진 것 때문이었다.

석민은 본능적으로 오른손에 쥐고 있던 총을 움직여 두 번째 주먹을 막았지만, 충격의 여파로 제대로 방어가 되지 않아서 총이 그의 얼굴을 눌렀다.

저 주먹을 1대 더 맞았으면 분명 자신은 혼절했거나 죽었을 것이라 확신했다. 얼굴 광대뼈가 부서진 기분이었다.

석민이 힘만으로 억지로 일어서려 하자, 이번엔 바티크가 뒤로 넘어졌다. 스탯을 가진 석민의 힘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오른쪽 다리는 오른손만큼 통제를 잃었고, 꽤 길어진 싸움으로 처음처럼 근력이 나오지 않았다.

바티크가 한발 물러나면서 다시 일어서려 했으나, 이젠 이 지리한 싸움을 끝낼 때가 온 것이다.

몸을 일으켜 세운 석민은 상체를 숙인 채 단검을 고쳐 잡고 그에게 다가갔다.

단검으로 찔러 들어간 석민의 왼팔이 바티크의 오른팔에 막히면서 서로의 팔이 반동으로 튕겼다. 심지어 단검은 강화외골격의 방탄재에 막혀 효과를 발휘하지도 못했다.

강화외골격은 무궁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나 그래도 착용자의 근력을 향상시키는 능력은 없어서 점점 석민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바티크는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최후의 수단으로 손에 꼭 쥐고 있던 수류탄을 석민의 가슴을 향해 던졌다.

다시 단검으로 공격하려던 석민은 수류탄이 자신의 가슴에 부딪히고 떨어져 안전레버가 빠진 걸 보고 화들짝 놀랐다.

재빠르게 그것을 집어 멀리 던지자마자 공중에서 터져 사방에 파편을 뿌렸다.

석민과 바티크에게까지 수류탄의 파편이 튀었으나, 방탄복 덕분에 치명상을 입진 않았다.

그러나 전신을 가려주는 바티크와 달리 석민의 방탄복은 부분부분 빈 곳이 있었기에, 팔다리에서 피가 흐르고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바티크는 그 틈을 타 방탄복 오른쪽 쇄골에 달아놓은 군용대검을 뽑았다.

오른손잡이라 왼손엔 익숙하지 않았지만, 아쉬운 대로 석민의 목을 노리고 검을 찔렀다. 하지만, 석민은 가볍게 몇 걸음 뒤로 물러나 피했다.

자세가 흐트러지면서 몸이 기우뚱 기울자, 바티크는 넘어지면서도 석민을 향해 대검을 던졌다.

생각보다 미약한 힘으로 던져진 대검을 석민은 쉽게 옆으로 쳐냈다.

바티크는 다시 총을 꺼내기 위해 발악을 했지만, 석민이 먼저 빨리 다가가서 발로 차 바티크의 몸을 뒤집었다.

석민은 각각 발로 바티크의 양팔을 밟아서 못 움직이게 한 후, 바티크의 허리춤에 차고 있던 권총을 빼냈다.

석민은 권총을 저 멀리 던졌고, 상황을 보고 있던 아영은 총구를 내렸다.

뭔가 추가적인 대화는 없었다.

그는 그대로 강화외골격의 목 보호대를 벌려서 바티크의 목에 단검을 한 번 푹 찌르고 빼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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