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218화]
신념의 고착
-기대 이상의 일을 해주었어.
만족스러운 목소리가 휴대폰을 통해서 나왔다.
-50구경 기관총으로 장판파를 찍다니 정말 대단해.
“그냥, 저들이 보병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대통령의 칭찬을 받아서 그런지 아영은 얼굴은 기쁨과 만족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고작 10분 정도만 고착시킨 것뿐이었다.
그들이 탈출하고 추격을 뿌리치는 데까지 고작 15분 남짓 걸렸기에 석민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그에 따른 파장은 30분, 아니, 1시간은 족히 지연시킨 거라고 대통령이 말했다.
대통령의 흡족한 목소리에 아영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칭찬에 부끄러운 듯 살짝 몸까지 꼬는 아영의 모습에 석민은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마치, 뭐랄까.
‘좋아하는 남자랑 통화하는 여자애 같은데?’
의심 어린 시선이 그녀에게 쏟아졌지만, 아영은 여전히 우물쭈물하면서 대통령의 칭찬에만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이렇게 칭찬을 해주시니….”
‘지랄한다.’
석민은 담배를 물었다.
어차피 이젠 괴수들도 이리로 오지 않으니 그다지 조심해야 할 것도 없었다. 하늘에서 자주 보이던 와이번들도 사방으로 흩어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현재 1기갑여단이 교단의 후위와 교전 중이야.
대통령이 말했다. 교단의 낙오자들로 구성된 무리였지만 군에선 그들을 교단 행렬의 후위로 판단했다.
석민과 아영은 그쪽 사정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대통령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흘렸다.
-그대들은 도착했나?
“대략 5분쯤 후면 도착합니다.”
그녀의 말대로 왕십리역에 거의 다 도착하였다.
-빠르군, 도보로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15분 만에? 그것도 군장이랑 무장을 한 상태로?
대통령은 감탄하면서도 살짝 두려움을 느꼈다.
-왕십리역에 교단 사람들이 오면, 일단은 그들과 교전을 벌여서….
‘이 사람, 말은 정말 쉽게 하네.’
석민은 뒤따라 뜀걸음을 하면서 이맛살을 찌푸렸다.
-1기갑여단이 도착한 직후면 나머진 우리에게 맡기게. 군에는 사전에 그대들 인적 사항을 말해두었으니까. 그들과 접촉하면, 손전등을 두 번 껐다 켜게.
‘그게 암호인가?’
“잘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아영이 통신을 마치고 몸을 돌리자, 석민은 심각했던 표정을 싹 지우고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의심이라곤 티끌 하나 없는 것처럼 순수한 믿음을 담은 얼굴이었다. 그 얼굴에 절대로 반론은 있을 수 없었다.
“봐 봐요. 잘됐죠?”
언제부터 저렇게 낙관적인 인간이었지?
석민은 속으로 코웃음 치면서도 딱히 뭐라고 말하진 않았다.
“그래, 잘됐네.”
반응이 생각하는 것만큼 나오지 않자 아영은 걱정이 들었다. 석민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나아지긴 했지만, 확실히 차가운 사람이었다.
‘대통령님은 석민 씨가 자기 목숨을 걸어서 문을 닫아버릴 거라고 했었지.’
석민도 사람인지라 자기 목숨 중해서 아영의 의견을 따르긴 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정말 그가 스스로 희생해서 문을 닫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의 성격상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기 때문이었다.
‘것 때문에 혜원 씨와 통화를 안 하려는 것일지도 몰라.’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모순되게도 그가 절대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인류와 국가를 위해서 제 몸을 바칠 위인은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자 아영의 편견이었다.
예전부터 그가 아영에게 말했듯이, 그는 사명을 부여받기 전까지는 삶의 이유를 잃고 방황하던 사람이었다.
즉, 사명을 통해 자신을 다시 되찾은 존재이기 때문에 사명을 위해 목숨을 던질 수도 있단 말이었다.
그 목적만이 자신의 존재 이유로 본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믿고 좀 과하게 막무가내로 일 처리한 것도 있지만, 어쨌든 석민이 하던 일들은 전부 목숨을 걸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스스로 각오도 하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란 것도 잘 알았다.
혜원을 만났고 금전적인 여유도 생겼지만, 그 생각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약간의 미련이 생긴 지금, 내심 그도 죽고 싶지 않았기에 아영의 뜻에 따른 것이지, 완전히 그 뜻에 동조한 건 아니었다.
계획이 비틀어지면 자기가 생각하던 대로 행동할 예정이었다.
‘가능하다면 말이지.’
그들이 왕십리역 쪽 광장에 도착할 무렵, 아영의 휴대폰이 울렸다.
“네, 대통령….”
-무언가가 그쪽으로 가고 있어.
“네?”
당황한 목소리였다.
-초저공으로 드론처럼 보이는데, 사람 같은 것이 매달려 있다는군.
“네?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미확인 비행물체는….”
-지금 방공 부대가 바쁘다 보니 요격을 하지 못했어. 미안하네. 아무튼 대비….
석민은 위잉 거리면서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너무 늦게 알렸잖아.’
석민이 인상을 쓰며 소리 나는 곳을 보자, 중형 드론으로 보이는 게 하늘을 떠다니고 있었다.
그 밑엔 고리에 강철 와이어를 달아서 지탱한 줄에 매달린 무장한 인간이 있었다.
‘아니, 저게 가능해?’
인간은 덩치가 커 보였고, 요상한 것들을 착용한 상태였다.
석민은 SR-1을 꺼내서 조준한 뒤 쐈다.
그자의 팔다리와 어깨에 총탄이 박혔지만, 작은 불꽃과 함께 탄두가 깨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게 뭐야?”
드론이 그들을 향해 기수를 내리자 그자는 드론에 결속된 고리를 풀고 무언가를 잡아당겼다.
석민과 아영은 드론은 피하기 위해 좌우로 흩어졌다.
상대가 드론에서 떨어지자 후방에서 낙하산이 펴졌다. 그러는 사이 아영과 석민이 있던 자리에 드론이 추락하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자가 뭐라뭐라 욕지거리를 퍼붓는 게 그대로 들려왔다. 낙하산도 있었고, 떨어질 때 낙법까지 썼음에도 착지할 때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빌어먹을! 이거 위험하잖아! 어떻게 이렇게 침투할 생각을 한 거지? 술이라도 마시고 작전을 짠 거야?」
‘아는 목소리야.’
그는 인상을 썼다.
덩치를 보건데 그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맞았다.
‘어째서?’
“뒤로!”
석민의 외침에 아영이 몸을 돌려 역사 쪽으로 몸을 달렸다.
겨우 몸을 추스르고 일으켜 세운 상대는 아영을 노리고 조준에 들어갔다. 가로수 뒤에 몸을 숨겼던 석민이 기민하게 눈치채고 그자를 겨눠 방아쇠를 당겼다.
한 탄창이나 비웠는데도 아까처럼 총탄이 튕겨 나갈 뿐, 착탄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저건 뭐야?’
가슴을 비롯해서 어깨, 팔 상박과 하박, 허벅지와 종아리에 금속인지 플라스틱인지 모를 회색의 장갑으로 전부 무장되어 있었다.
머리도 헬멧을 비롯해서 방탄되는 안면 보호대를 착용한 듯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대가리에 총알을 2발이나 맞혔는데도 살아남을 리 없었다.
석민은 상대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자 몸을 굴려서 화단 뒤로 숨었다. 화단 주변으로 총탄이 박히면서 흙이 피처럼 튀어댔다.
총소리가 익숙한 9X39mm 탄환이었다.
불펍식 총이니 아마도 저 총은 OTs-14, 속칭 그로자라 불리는 총일 것이다. 소음기가 달려있지 않아서 평소보다 사거리가 길었다.
“바티크!”
석민이 소리에 그자, 바티크는 움찔거렸다.
「바티크 페트로비치 김, 너냐?!」
석민은 ASH-12.7을 들었다.
5.56mm론 이빨도 안 먹힌단 사실을 알았으니 이걸 쓸 필요는 없었다.
「석민! 미안하게 되었다.」
바티크는 몸을 움직여 맞은편으로 몸을 숨겼다.
「내가 군의 복직을 하기 위해서 네 여친과 함께 죽어줘야겠어!」
그 말에 석민은 아영이 있는 곳을 잠시 보았다가 소리쳤다.
「저 여자는 내 애인이 아니야!」
좀 엉뚱한 대꾸긴 했지만 오해받긴 싫었다. 석민은 바로 바티크를 조준했다. 그러나 바티크가 바로 몸을 숙여 피하자 석민은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뭐라고 하는 거야?’
역사 안에서 숨어있던 아영은 인상을 찌푸리며 바티크 쪽을 조준했다. 바티크는 고개를 내밀지도 않았다.
「샤샤가 보냈지?」
석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샤샤?」
「아닌 척하지 마.」
전에 그녀가 자신에게 보낸 문자의 의미가 바로 이걸 뜻했단 걸 깨달았다. 그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는데, 덕분에 뒤통수에 망치로 세게 한 대 맞은 꼴이 됐다.
‘여기서 탄약 낭비를 더 해선 안 되는데.’
12.7×55mm도 아낌없이 쓰다 보니까 많이 줄어들었고, 후에 교단인들과 벌일 접전까지 생각하면 총알을 아낄 필요성이 있었다.
그들이 가진 무기나 총알은 여전히 석민과 아영보다 많았다.
「좋지 못할 때 왔어. 왜? 러시아 놈들이 이제 거래하기 싫데?」
「정확하겐 한국 정부의 사주다.」
“뭐라고?”
석민은 인상을 썼다.
“한국 정부가?”
“그래.”
아영은 석민이 갑자기 놀란 것도 그렇고, 마지막에 한국어로 이루어진 짧은 대화를 듣고 대충 둘 사이에서 어떤 대화가 오고갔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아뇨, 아니에요!”
그녀는 부정을 하듯이 고개를 저었다.
석민은 짜증이 난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럴 리가 없어요.”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바티크가 대답을 마치기도 전에 석민은 바티크를 향해 총을 쏘았다.
“말이 너무 많아졌어, 바티크.”
적이 된 이상 경어는 쓸 필요가 없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지.」
그러더니 바티크는 그대로 일어나 석민을 향해 달려들었다. 석민과 아영은 그를 노리고 연발로 총을 쏘았다.
바티크는 둘의 총격에도 도망치지 않고 빠르게 다가왔다. 그가 입은 갑주가 모든 부위를 총알에서 막아주진 못했기에, 그는 최대한 총의 반경 범위를 피해 측면을 향해 달려들었다.
“강화외골격?”
아영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것도 동력식이었다.
순식간에 20발의 탄창을 비운 석민은 재장전을 마친 후 몸을 웅크렸다.
바티크는 파우치에서 수류탄을 한 발 꺼낸 직후 석민이 있던 곳을 향해 던졌다.
날아오는 수류탄을 확인한 석민은 그걸 잽싸게 낚아채 다시 바티크가 있던 곳을 향해 던졌다. 아쉽게도 수류탄은 허공에서 폭발해 버렸다.
폭발을 피해 화단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바티크는 폭음이 멈추자 화단에서 몸을 내밀어 석민을 조준했다.
아영도 엄폐를 하고 바티크를 노렸지만 바티크는 침착하게 반격만 할 뿐, 전혀 움찔거리지 않았다. 아무리 몸에 방어구를 둘렀다고 하지만 너무나 대답했다.
바티크는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었다.
유리한 위치로 이동해서 석민의 측면을 칠 수 있는데도 그는 수류탄 한 발을 던진 거 말고는 달려들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석민은 이를 갈면서 잠시 생각에 빠졌다.
하필 광장인지라 아영이 있는 쪽으로 합류하는 것도 무리였다. 광장을 달리다간 그의 방탄복이 걸레짝이 될 만큼 집중사격을 받을 것이다.
솔직히 바티크가 이 자리에 있는 게 너무나 당황스러워서, 석민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가 자신에게 여러 가지 기술을 알려주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고, 존경하던 존재였다.
자신이 자랑스럽게 여기던 군에서 쫓겨나면서 신세 한탄이 좀 심하고 후회로 점철된 자여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뭐? 군에 다시 들어가는 조건으로 누구를? 나를?
총을 쥔 석민의 손에 낀 장갑에서 우드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래, 그것 말고도 한국 정부와 러시아 놈들이 거래했을 거야.’
알렉산드라처럼 교활하고 약은 수준의 인간을 키워내는 나라라면 그 수준도 알 만했다.
석민은 그렇게 이를 갈며 그들을 폄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