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213화]
회의실에 대통령 성현제를 비롯해 국방부장관, 행정안전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각 군 참모총장, 기타 국무위원들 그리고 화상을 통해 일선 부대의 장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1기갑여단은 서울 진입 준비가 되었습니다.
화면 속 장성인 5군 단장 조청래 중장이 보고했다.
-사이비 교단들이 무단 점거 중인 제 7게이트는 도로 탈환했고, 포로로 잡혀 있던 장병 113명도 구했습니다. 126명의 사이비들을 제압, 그 와중에 5명이 사망하였고, 우리 군 장병들은 아무런 희생을 입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경찰에게 2시간 내에 신병을 넘길 예정입니다.
고무적인 보고에 회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작게 탄성을 내지르거나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아무리 광신도들이고 무기를 가졌다 해도 대부분 소병기뿐이어서, 장갑차와 전차를 밀고 들어가니 쉽게 겁먹고 항복했다.
“잘했습니다. 조청래 중장.”
대통령이 만족스럽게 대답했다.
-다만, 1기갑여단만 투입하는 것이 괜찮을지 염려됩니다.
조청래 중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1기갑여단은 사태 이후에 재편성을 마쳤지만 경전차와 보병전투차 위주인 데다가, 예전과 다르게 규모도 줄어서 고작 2개의 전차대대, 1개의 기계화보병대대, 1개의 포병대대뿐입니다. 현재 5공병여단과 5포병여단이 주둔지에서 대기 중입니다. 1기갑은 진입 명령만 내리시면 바로 서울에 투입될 것이지만, 이들만으로는 괴수와 감염자들을 뚫고서 사이비들을 제압해 서울 밖으로 이송하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 듭니다.
그 말에 동의하듯 다른 화면에 있는 원스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705특공연대를 추가적으로 파견하는 것이….
“군단장님, 우리는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울의 현 상황상 헬기로 이동하는 특공연대를 파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성현제 대통령의 말에 군인인 장군들은 얼굴에 감정을 배제한 채 그를 가만히 노려만 보았다. 언뜻 보면 마치 대통령의 말을 경청하는 것처럼 보였다.
군인들은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복종하지만, 지금 그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르면, 투입되는 부대의 규모가 너무 작아서 병력은 병력대로 희생되고 작전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기에 소극적인 항의의 의미로 대통령을 노려본 것이었다.
대통령도 그걸 모르진 않았기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확실히 1기갑여단만으로 부족해 보였다.
“5공병여단이 수송차량이 많지요?”
-그렇습니다.
조청래 중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술술 말하기 시작했다.
-그 차량들을 이용해 신속하게 사이비들을 제압하면 수송차량을 통해 데리고 나올 수 있습니다. 게다가 서울은 사태 이후로 도로 사정이 매우 좋지 않기 때문에 장애물 개척전차와 교량전차가 필요합니다. 전투 공병들은 그 임무 특성상 방어무장이 일반보병보다 더….
“군단장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제5공병여단과 군단 산하에 방공단이….”
대통령은 단대호가 생각나지 않아 말끝을 흐렸다.
-15방공단입니다. 산하 발칸중대가 20mm 자주발칸포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밝았다.
구경에 상관없이 대공포들은 괴수들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고, 당연히 고각사격이 가능했기에 와이번 격추도 가능했다.
1기갑여단에도 여단 직할대로 자주대공포들이 있었지만, 그 수가 부족했기에 추가적으로 투입하고자 한 것이다.
“그들도 투입하죠. 단, 5포병여단은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우린 그들과 전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5공병여단과 15방공단에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일전에 말한 대로 이번 진압 작전은 군단장님이 지휘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말했다.
“통수권자로서 명령합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서울에 진입한, 비록 그들이 사이비이긴 하지만 우리 국민들을 데리고 나오세요. 그리고 만약 그들이 저항한다면 우리 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중점을 두세요.”
대통령은 목소리에 약간 힘을 주었다.
천국의 문 교단 인간들도 우리 국민이라지만, 무장한 데다 국가를 전복시키려던 자들이다. 국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화적으로 나갈 필요는 없었다.
괜히 애꿎은 장병들만 희생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5군단장 조청래 중장은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그가 생각한 것만큼 완벽하진 않았지만 대통령이 저렇게 확실하게 말해주니 그로서도 소극적으로 나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시. 그러니까 예시로 그들의 제압이 힘들다면, 모든 불상사의 책임은 내가 집니다. 아시겠습니까? 내가 책임집니다. 재량껏 행동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대통령이 다시금 강조를 하니 군단장과 여단장들의 얼굴에서 안심의 기색이 스며 나왔다.
“상황을 일일이 유기적으로 알려주십시오. 호송경찰 쪽은 미리 이야기해 두겠습니다. 준비되는 즉시 실행하세요.”
-네.
대통령은 내심 이참에 서울시립대에 잠들어 있을 대량의 드래곤하트들도 가지고 나오길 바랐었다. 그러나 그러면 작전이 늘어질 것은 분명했고, 그것들을 옮길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들이 고립될 수도 있어서 일단 나중으로 미루기로 판단했다.
화상 통화가 끝난 직후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계엄사령부는 통제를 회복했습니까?”
“아직은 아닙니다만, 계엄사령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회복이 되었습니다.”
잠깐 혼란이 있긴 했지만 정부는 빠르게 기능을 회복했다.
긍정적인 보고들이 오갔지만 결국 많은 수의 국민들이 죽거나 다쳤기 때문에 대통령의 얼굴은 무척 수척했다.
“그러면 회의는 마치지요. 무슨 일 있으면….”
그 순간, 선호석 그리고 국정원장은 대통령의 눈과 마주쳤다.
회의가 끝나고 다른 사람들이 나가는 동안 그들은 자리에 끝까지 남아있었다.
대통령은 그들을 빤히 보았다.
“설득할 생각 말게.”
“대통령님.”
선호석이 그를 불렀지만 대통령은 의자를 돌려 그들과의 대화를 차단했다.
“그들도 나름 나라를 생각해서 한 행동이야.”
“다른 게 아닙니다. 그냥 문을 닫아버리고 천사라고 사칭하는 이계인을 사살하자는 것입니다. 시립대에 있는 드래곤하트만 있어도 대통령님이 생각하시는….”
성현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회일 수 있잖은가!”
기가 찬 나머지 선호석은 헛웃음을 칠 뻔했다.
조금 전까지 군인들에게 합리적이고 명확한 명령을 내리던 멋진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제 아집을 굽히지 않는 중년 꼰대가 눈앞에 있었다.
“이계인은 미지의 영역입니다.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공한 것과 다름이 없는데, 그들의 자원을 이용하고 기술이나 빼앗자고요? 그게 가능할까요? 아니, 가능하다고 해도 실패하면 그 결과를 우리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겨우 그런 놈들로 이 나라는 무너지지 않아.”
대통령의 반박은 논거 없이 그저 말뿐이었다.
“아, 그래요? 눈앞에서 기적을 펼치고, 감염자들도 치료하고, 광신자까지 너무 쉽게 만들어 냈는데도요? 게다가 그 침투 방식이 이 세상에 있는 유일신 종교를 이용하는 영악함도 보이고요.”
대통령이 거칠게 다시 의자를 돌렸다. 얼굴엔 짜증이 한가득이었다.
그는 선호석을 노려보며 말했다.
“아영 대위와 최석민이 지금 왕십리에 있어. 자네들도 알겠지만 그들이 가진 능력은….”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은 이미 조국을 한번 배신했습니다.”
국가정보원장이 대답했다.
“아니, 아니야.”
대통령은 고개를 저었다.
“자기들도 감당이 안 되니 전화한 거 아닙니까?”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그러니까 더욱 매듭을 묶어야지요!”
선호석의 말에 대통령은 노려보며 의자 팔걸이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만하게. 내 결심은 변하지 않아.”
“대통령님.”
“그만하라니까!”
선호석과 국정원장은 서로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잘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인사를 하고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문이 닫히기 무섭게 두 사람은 복도 구석으로 갔다.
“어떻게 하시렵니까?”
국정원장이 물었다.
“러시아 놈들과 한 거래는….”
“그냥 둡시다.”
선호석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복도에 경호원들과 경호실장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통령님의 말씀대로 되겠습니까? 이 사실을 알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뻔하지 않습니까?”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선호석은 주변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아마 안 될 것입니다.”
“‘아마’ 라고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에게 그 단어는 절대로 해선 안 되는 말이었기에, 선호석은 얼른 변명을 덧붙였다.
“현 상황에서 확신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은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한숨을 쉬며 커피를 홀짝였다.
“두 사람의 의견은 갈리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보기엔 대통령님의 생각대로 안 될 것입니다. 게다가 러시아 놈들도 노출이 된 자기네 사람들 국외로 빼낸다고 애쓰는 마당이니, 당장 그들을 죽이러 사람을 보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실제 그의 예상은 빗나갔지만, 상식적으로 그의 말은 타당하게 들렸다.
“의견이 갈리니 결국 갈등할 테고, 갈등은 결국 극단적인 대립으로 이어질 겁니다. 적어도 둘 중 하나는 죽겠지요. 그때 러시아 쪽에서 보낸 사람이 그들을 처리하게 될 겁니다. 아니면 둘 다 죽거나요.”
“둘 다 죽으면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
“뭐, 둘 다 죽더라도 어차피 우리에게 별다른 손해는 없습니다. 들어온 정보대로라면 문이 닫히고 있다 하니 우리는 언젠가 서울을 수복할 수 있을 겁니다. 아영 대위와 대통령의 생각은 지나치게 모험적입니다. 우리는 그것만 막으면 됩니다.”
“그리고 사이비 교단 쪽은 어찌합니까?”
“그놈들이 아무리 신을 위해 몸을 불사를 정도로 광신도들이라 해도, 군대를 이길 수는 없으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그 이계인 천사 놈도 절대로 성공 못합니다. 하, 씨…. 그놈의 와이번들만 아니면 그냥 공격 헬기나 전폭기로 다 쓸어버리면 그만인데.”
그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남은 커피 모두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불씨
“진심이야?”
석민은 놀라 물었다.
그는 아영이 대통령에게 전화를 했다는 사실보다도 대통령의 생각, 그러니까 천사를 이용해 의도적으로 방주를 안으로 들이고, 그들의 기술력은 흡수하고 그들은 자원으로 사용하고자 한다는 생각에 놀란 것이었다.
“300만이나 되는 놈들을 자원으로 활용한다고?”
“그놈들 때문에 나라가 이 꼴이 났잖아요?”
아영은 마치 억지로 자기 합리화를 하는 사람처럼 사정없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푸념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시종일관 아래를 향해 있었다.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말에 떳떳하지 못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얼마나 많은 재산을 잃었습니까? 그들에게 당연한….”
“그걸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야.”
석민의 목소리는 격앙되지 않았다. 어떻게 들으면 오히려 위로하는 듯, 따스함이 느껴졌다.
그 또한 윤리 의식이 없진 않지만, 아영의 말에 동의했다. 자신 또한 이 꼴이 난 것도 그들, 천사들 때문이었다.
과거엔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의 석민은 관대하지도 인권이나 동물의 생명 중시 같은 걸 주장할 만큼 박애주의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이런 세상에서 그런 꿈만 꾸는 몽상가 같은 소리를 매우 싫어했다.
게다가 그들이 고등생물이자 자신들과 대화가 통하는 존재이긴 했으나 인간의 범주에 넣어도 되는지는 알 수 없는 생명체이기도 했다. 심지어 자신들이 사는 세상을 침략하기 위해 온 놈들이기도 했고.
그는 속으로 여러 가지 떠올리며 그녀와 의견이 같음을 피력하려 했으나, 말재주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이상한 오해만 받을까봐 그 부분은 넘기기로 했다.
그가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말은 그런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