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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212화 (212/226)

[게이트 오브 서울 212화]

가평과 춘천시 사이의 어느 안전가옥에 당도한 알렉산드라는 가지고 있던 장비를 모두 풀고 외투를 벗어서 옷걸이에 걸었다.

얼굴을 답답하게 조이고 있는 실리콘 가면을 벗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아직 한국을 떠난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땀나고 가려웠던 그녀는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어때? 그놈은?”

“잘 묶어 두었습니다.”

안전가옥을 지키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했다.

“그래?”

그들은 특별하게 방음 처리가 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들어가자마자 알렉산드라는 권총을 뽑아 안에 앉아 있는 남자를 조준했다.

“손을 뒤로 해서 케이블타이로 묶었어야지.”

바딤 페트로비치 김, 바티크라 불리는 남자는 인상을 쓰며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단순히 어두운 곳에 들어온 빛 때문에 눈부셔서가 아니라, 자신이 묶여있던 척 연기한 게 바로 들통 나서였다.

그는 천천히 양손을 들어 보였다.

“이제야 진짜 제대로 된 요원을 만났군.”

그의 손목을 억압했던 케이블타이는 깔끔하게 끊어져 있었다.

손을 앞으로 두고 묶은 케이블타이는 팔과 손목의 힘으로 순식간에 끊을 수 있었기에 그것을 막기 위해선 뒤로 묶었어야 했는데, 어리숙한 자들이 앞으로 묶어두었다.

“그것도 실리콘 가면을 쓴 사람이라니.”

알렉산드라는 대답하지 않은 채 그저 노려만 봤다.

“뭐 어쨌든 남의 나라긴 하지만, 이렇게 같은 동족을 만나니….”

“입 다물어.”

알렉산드라가 그의 말을 잘랐다.

대화의 주도권을 그에게 줄 수 없었다.

“그래, 이용하고 대가를 주고자 여기에 둔 거지.”

그녀는 구석에 놓인 접이식 의자를 펴고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는 권총을 치우고는 기관단총을 조준하고 있던 경비에게 손짓으로 밖으로 나가라 표했다.

“그렇지만….”

“괜찮아.”

그녀의 단호함에 머뭇거리던 경비가 나가자 알렉산드라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하나 줘? 555인데.”

바딤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새 담배였다.

“고맙군.”

그는 알렉산드라가 협상하려는 의지를 보이자, 순순하게 담배를 받아 그녀가 붙여주는 불을 허리를 숙여 받았다.

“바딤 페트로비치 김.”

“바티크라고 불러도 좋아.”

바티크가 편하게 대답했다.

“샤샤라 불러.”

잠깐 동안의 통성명이 끝난 직후 그들은 연기를 뿜었다.

“상황이 별로 좋지 않으니 바로 본론에 들어가지.”

“사법 거래 같은 것은….”

“우리 러시아 정부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어.”

알렉산드라는 다시금 그의 말을 잘랐다.

“우리가 당신 같은 인재를 몰라봤다는 거지. 아주 짧게나마 조사를 좀 했는데, 경력이 화려하네?”

“별말씀을.”

“그래서, 정부에서 너를 다시 군에 채용하고 싶어 해.”

그 말에 바티크는 멈칫 몸을 떨었다.

“대위가 아니라 소령의 신분으로. 원래 있던 공수부대로 돌아가진 못하겠지만 국가근위대(러시아 내무군) 산하 특수부대로, 한 계급 진급시켜서 말이야.”

바티크는 고개를 저었다.

군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던 열망이 대단하던 그이지만, 갑작스러운 데다가 조건까지 좋은 제안은 바보라도 의심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이해할 수 없군. 어째서지? 조건 없이?”

“당연히 있지. 두 명만 처리하면 돼.”

바티크는 역시라고 생각하며 되물었다.

“두 명?”

알렉산드라는 2명의 사진을 내밀었다.

그 중 하나가 아는 얼굴임을 확인한 바티크는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어째서? 이 남자는?”

“우리와 거래를 하던 남자인데, 상황이 변했어. 우리는 이 자와의 모든 연계를 끊어야 해. 이해됐나?”

바티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자는 그렇다 치고 남자는? 이 남자와 나의 사이는 알 텐데?”

“그래, 알아.”

그 말에 바티크는 실소를 터트렸다.

“나보고 옛 전우를 죽이라고?”

“그 남자는 러시아인이 아니야.”

알렉산드라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들로 인해 조국의 이익에 반하게 되었으니….”

“그 조국이 날 버렸어.”

바티크는 한 번 더 깊게 연기를 삼키고는 다 피운 궐련의 필터를 구석에 던졌다.

“어떻게 믿고? 이 친구 지금 서울에 있잖아. 서울에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 텐데? 나도 버리는 말로 쓰려는 거 아냐?”

“그건 버림받은 게 아니잖아. 너도 모르진 않을 텐데? 작전을 하면서 너의 정신은 문제가 많았잖아? 부상도 심했었지.”

맞는 말이었기 때문에 바티크는 반박을 못했다.

“그걸로 신뢰를 줄 수는 없지.”

알렉산드라도 다 핀 궐련을 던졌다.

“상황이 매우 촉박하기에 제안을 하는 거야. 원래 같았으면 국가의 재산을 함부로 파는 밀수꾼 따위와 거래하지 않아.”

그녀는 일부러 바티크의 위치를 강조했다. 효과는 통했는지 바티크에게서 회의의 심정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수중에 있는 훈련받은 자가 단 한 명만 있기 때문이지. 우리는 우리의 요원을 버리지 않아. 이 일은 한국 정부도 알고 있어. 정확하게 한국 정부와 우리는 거래했다. 한국 측에 잡힌 우리 요원들을 무사히 조국의 품에 돌아가게 하는 조건이지.”

요원이라는 말에 바티크는 몸을 살짝 흔들렸다.

그는 자신을 강제로 제대시킨 군과 나라를 원망했지만, 여전히 애국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라를 위해 활동하다 타국에 잡힌 요원들에게 부러움과 동시에 측은함을 가졌다.

“한국 정부에게도 그 둘은 배신자인 건가….”

알렉산드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시간은 많지 않아. 선택해라. 임무를 완수하면 너는 다시 광명을 찾을 거야. 물론 너의 범죄 기록은 말소되고 그토록 원하던 군복무도 다시 할 수 있다.”

“서류는? 있겠지?”

“있어.”

그녀는 서류를 꺼내서 내밀면서 흔들었다.

“대통령의 서명이 담겨있지.”

그 말에 바티크는 약간은 야비해 보이는 웃음을 터트리면서 탐욕스러운 눈으로 그것을 보았다.

“원한다면 원본을 주지. 나는 복사본을 가지고.”

“내가 거절하면?”

“러시아로 입국할 거야. 범죄자의 신분으로. 아, 물론 비밀 입국이고. 너를 체포하는 건 이 나라의 주권을 무시한 절차가 되기 때문에, 너는 공식 재판도 받지 못하고 흑 돌고래 석상이 있는 곳으로 가겠지.”

흑 돌고래라는 말에 바티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동요했다. 거긴 전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죽는 것이 더 났다고 여겨지는 교도소였다.

“굳이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묻기에 대답한 것뿐이야.”

알렉산드라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어떡할래? 바로 대답해줘.”

잠깐의 시간이 지난 직후 고심하던 바티크가 입을 열었다.

“…장비는?”

“최상으로 준비했어. 아직 실험 단계이긴 한 무기인데… 나도 이게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딱 한 세트 있더라.”

그녀는 자신의 스마트폰에 담긴 장비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확실한 건 우리에게 이건 아직 최신 장비라 타국에 알려지면 안 되는 건데, 네게 믿음을 주기 위해 건네는 거나 다름없어. 한 번 충전하면 고작 6시간밖에 안 가지만, 네가 단기간 동안 서울에서 활동하기엔 딱 좋지.”

“탈출은? 어디로 퇴각할지 정했겠지?”

“그건 장비에 담긴 임무컴퓨터에 있을 거야. 한 가지 확실한 건, 난 네가 탈출할 때 같이 복귀할 거야. 믿음이 안 가겠지만 믿고 안 믿고는….”

“믿어야겠지.”

바티크가 이번엔 그녀의 말을 잘랐다.

“할 수밖에 없잖아.”

그 말에 알렉산드라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내건 조건들이 전부 진짜였으면 좋겠군, 샤샤.”

“진짜야. 진짜일 수밖에 없지.”

알렉산드라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나가면 장비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휴대폰을 주지. 뭔 일이 있으면 저장된 전화번호로 연락해.”

그녀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밖으로 나갔다. 안전가옥에서 볼일은 전부 끝났다.

그녀는 벗어 둔 외투를 다시 입었다.

‘불쌍한 놈, 아직 군대에 미련을 못 버렸어.’

그녀는 안전가옥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알렉산드라가 보기엔 정말 쓸데없는 미련이었다. 결심한 의지를 보건데 진심으로 일을 할 생각인 듯했다.

아마 그녀의 경험상 상부에서는 진짜로 바티크가 성공한다면 보상을 할 것이라곤 생각했다.

하지만, 정부도 그가 진짜로 성공하리라 판단하고 일을 맡긴다고 생각진 않았다.

강박증이 심했고 잠깐 보고 대화한 것만으로도 우울증에 심적 불안 증세가 보였다.

하지만 다시 군에 복귀하려는 열망이 대단했고, 의외였지만 상부에서 지원해준 장비가 생각보다 아주 좋았기 때문에 석민이 아마 고생깨나 할 것 같았다.

알렉산드라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길을 확인했다.

한국을 빠져나가려면 아직 넘어야 할 것이 많았다.

***

선호석은 답답하게도 대통령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자 짜증이 난 나머지 탕비실에서 믹스커피를 대량을 타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기분이 안 좋을 때 다량의 믹스커피를 이용해 진하게 탄 커피를 음용하곤 했다.

‘아영 대위를 믿을 수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는 이미 대통령 몰래 러시아와 거래를 했다.

대통령을 통해서 계획에 대해 들었을 때, 그는 매우 허무맹랑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작정하고 넘어오는 그들은 미지의 영역이었고, 그것은 불확실성이 너무 강했다.

국방, 치안, 외교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국기안보실의 총 책임자인 그로서는 이런 불확실성이 달갑지 않았다. 그런 불확실성을 안고 가기보다 차라리 그냥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 더 나아 보였다.

다만, 석민의 목적을 대통령의 입을 통해 들었을 땐 그는 약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기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그는 석민이 진짜로 그럴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그렇다고 하면 대통령의 의중과 상관없이 그냥 두어도 문이 닫히는 게 아닌가?

그러나 석민과 아영은 정권의 아킬레스건을 가진 증거이기도 했기에 존재 자체가 문제였다.

‘만약 최석민이 스스로 목숨을 희생한다면, 혼자 남은 아영 대위만 처리하면 될 테니 일이 쉬워지겠지.’

하지만 대통령과 아영 대위의 의도가 문제였다.

‘아영 대위는 대통령님처럼 국익을 생각한답시고 방주가 들어오길 바라지만, 그 석민이라는 놈은 분명 나와 비슷한 놈일 거야. 불확실성이 강하니 분명 방주가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겠지.’

이미 대통령을 통해 두 사람의 의견이 갈리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걸 극대화한다면?

아마 두 사람은 대립을 통해 자멸할지도 모를 것이다.

‘그러면 극대화할 방법이 있나?’

그는 커피를 빈 티백으로 저으며 두 사람을 이간질할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어쭙잖게 개입했다가 반동으로 자신이 잘려나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차피 두 사람이 알아서 부딪힐 것이야.’

그는 커피를 홀짝이며 상념에 잠겼다.

“그냥 두면 되려나.”

결론에 도달할 쯤,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행정관이 들어왔다.

“다시 시작합니다. 실장님.”

“알았어.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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