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210화]
석민이 올라타 있던 장갑차 안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곧 후방 도어가 열리고 누군가가 권총을 든 손만 꺼내서 석민이 있는 방향으로 총을 쏘아댔다. 그러나 위협만 될 뿐, 석민은 단 한발도 안 맞았다.
아마 저들이 겁먹어서 그런 듯했다.
“빨리 저 자식을 죽여 버려!”
전차의 포탑이 석민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포신이 걸렸습니다! 쏠 수 없습니다!”
“이런!”
석민과 전차 사이에 장갑차가 2대나 더 있는 데다가 석민이 기관총탑에 가려져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아무렇게나 난사해대는 총질이 끝나기 무섭게 석민은 몸을 움직여 손을 잡아채 그대로 쭉 당겼다.
손목의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문틈 사이로 끌려나온 대원이 비명을 질러댔다. 석민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얼굴을 향해 칼을 찔러 넣었다.
그리곤 대원의 방탄조끼 가슴주머니에 있던 수류탄 2발을 꺼내, 한 발은 챙기고, 나머지는 안전핀과 레버를 탈락시킨 뒤 약간의 시간을 두고서 해치 안으로 던졌다.
다급한 비명은 폭발에 묻혔고, 해치를 통해서 불꽃과 연기가 크게 피어올랐다.
곧 전차의 기관총이 사격을 가하기 시작하자 석민은 얼른 몸을 숙였다. 전차가 움직이면서 석민이 있는 방향으로 돌았다.
석민은 후방 도어 쪽으로 몸을 피했다.
안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와중에 기어서 밖으로 빠져나오는 자들이 있었다. 석민은 자비 없이 그들의 머리를 노리고 한 발씩 쏘았다.
덕분에 9A-91의 탄약이 이젠 하나도 남지 않았다.
석민은 그것을 SMG홀스터에 미련 없이 넣고 대신 죽은 교단 놈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를 찾아보았다.
[ak-102]
내구도: 67%
품질: 하중
탄약: 5.56×45mm NATO
칼라시니코프(Калашников)사에서 생산한 소총, 지근거리에서 폭발로 인해 총열이 휘어지고 가늠쇠가 비틀어진 상태.
오청은….
석민은 알람글을 다 읽지 않은 채 소총을 던지고 다른 멀쩡한 것을 찾아냈다. 그 옆에 있던 탄창 3개도 함께 챙겼다.
그때, 그의 눈에 새로운 무기가 들어왔다.
“M72 LAW?”
정확힌, RPG-22라 불리는 1회용 로켓발사기였다.
그러나 석민은 이런 무기를 써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발사관에 로켓 설명서도 전부 떼어져 있어서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래도 일단 챙기기로 했다. 전차 기동하는 소리에 더 생각할 시간도 없었고, 없는 것보단 나을 거란 판단이었다.
“좋아.”
전차의 반대편으로 간 그는 전차의 포탑이 돌아가 포신이 장갑차에 걸린 것을 확인한 뒤 몸을 움직였다.
“저거 대전차무기잖아!”
석민을 발견한 전차장이 놀라 소리쳤다. 그가 RPG-22를 들고 있는 걸 목격했기 때문이다.
포신이 자꾸 장갑차에 걸리자, 운전수가 포신이 움직일 수 있도록 차량을 조정했으나, 이미 그땐 폐허 속으로 석민이 사라진 뒤였다.
살아남은 사람들을 확인했지만 대부분 다 죽었고, 전차 승무원을 제외하고는 장갑차 승무원을 포함해서 겨우 10명만 남은 상태였다.
부상자들까지 빼면 보병이 고작 4명밖에 없는 꼴이었다.
“빌어먹을 놈.”
전차장은 혀를 낮게 찼다.
“성도님,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전차장은 마치 요상한 요술에 빠졌다 나온 기분이었다.
고작 한 명이었다. 작은 총기와 유탄이 있었다곤 하나, 겨우 그걸로 전차와 장갑차로 무장한 병력을 이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놈이 달리기가 빠르다곤 해도, 그게 전부였다.
‘괴수들이 슬금슬금 피하는 것도 그렇고 역시 수상해. 뭔가 있어. 거기다 너무 강해.’
“일단은 장갑차의 궤도를 빨리 고치고, 원래 목적지로 이동하는 것으로 하지요. 아직 이쪽에 전차가 있으니까.”
“괜찮겠습니까? 놈이 바로 올 텐데요?”
“장갑차가 없으면 어떻게 이동하겠습니까? 게다가 놈은 지연전을 펼쳤습니다.”
그의 말에 따라 석민이 사라지니 가까운 곳에서 괴수의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망할 자식에게 무슨 신묘한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괴수들이 녀석을 피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도대 대원들이 두려움에 떨려고 하자, 얼른 말을 덧붙였다.
“즉, 반대로 보자면 우리 주변에 괴수가 사라지기 시작한다면 놈이 접근했단 소리겠지요. 지금 당장은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성도님, 장갑차와 전차의 기관총을 다 합치면 5자루입니다. 충분히 엄호해 드릴 수 있으니 작업해 주시죠.”
전차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의 해치에 있는 K-6 중기관총을 장전했다.
그는 석민이 얼마나 위험한 놈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수많은 정예 성도님들이 놈을 죽이려고 했지만, 실패했지. 천사께서도 위협을 알리셨고 말이야.’
대전차 병기도 없는데 장갑차와 전차를 노리고 공격하는 대담함을 비롯해서 40mm 철갑유탄으로 장갑차를 잡는 것까지.
심지어 1개 분대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들을 순식간에 제압한 걸로 봐선 정말로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전차가 있는데도 공격했어. 보병 하나 따위가….’
그는 드래곤과 석민이 같이 추락한 것은 보지 못했는데, 아마 그 사실까지 알았다면 그는 전투의지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저놈이 가지고 튄 대전차병기가 분명 RPG-22였지?”
“네.”
대답을 들은 전차장은 낮게 혀를 찼다. 그러나 그도 RPG-22에 대해선 자세히 알지 못했다.
“어디 보자, RPG-22라.”
그는 일단 상대의 전력을 알아야 승산도 있다고 생각해 휴대폰을 들고서 RPG-22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국내 사이트보다는 외국사이트에 정보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는 외국사이트 위주로 검색하기 시작했다.
***
“하, 씨. 이거 뭔지 모르겠네.”
석민은 스마트폰으로 사진들을 빠르게 넘겼다.
“일단 미제는 아닌 거 같은데….”
글자가 있는 부분들은 다 훼손되어 있어서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그는 스마트폰의 불빛이 새어 나오지 않게 몸을 웅크린 채 외투를 덮어서 빛을 가렸다.
시간이 좀 흐른 뒤에야 석민은 이 로켓탄의 제식명을 알아냈다.
“RPG-22라….”
비교적 최신식 1회용 대전차로켓이었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성능을 확인했다.
‘이걸로 전차 측면을 관통할 수 있나?’
그는 한국 육군이 운용하는 전차의 장갑을 몰랐다.
사태 이전에는 군이나 무기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고, 군대도 해군을 나왔기 때문에 전차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게다가 전차의 장갑은 보통 기밀이니까, 석민이 그때 관심이 있었다 한들 알 수도 없었다.
‘그래도 그 전차는 기존에 쓰던 주력전차가 아니었어.’
분명 아까 상대하던 전차들의 외형이, 알렉산드라에게 찾아갔을 때 길을 개척하던 공병전차를 호위하던 신형전차와 같았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주력전차의 모습이 아니라 장갑차에 105mm 포가 달리는 녀석이었다.
‘검색 좀 해볼까?’
검색어를 치자 바로 상단에 결과가 떴다.
“K22?”
K21 보병전투차에 105mm 저반동포를 달 수 있게 한 것이었다. 원래는 K21-105라는 제식 채용되지 못한 파생형 경전차를 수출하기 위해 해외 업체와 협력해서 만든 물건이었다.
그러나 사태 이후로 적지 않은 수량의 기갑차량을 잃게 되었고, 기존의 주력전차는 괴수들을 처리하는데 너무 과잉 화력이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저렴하게 만든 녀석이었다.
석민이 읽고 있던 기사를 쓴 기자는, 정부가 K22의 양산 가격을 낮추기 위해 자동장전장치를 삭제하고 수동장전을 하도록 생산했으나, 차라리 그럴 필요 없이 기존에 양산된 K21의 40mm 기관포를 사용하거나, 12.7mm 중기관총이 달린 무인포탑을 이용해도 충분히 괴수들을 처리하는데 충분한 화력인데도 쓸데없이 수입산 105mm 포를 사용하는 건 외화의 낭비라고 주장했다.
그 뒤로 국방부에 대한 반박이 이어졌으나, 석민은 기사 화면을 껐다. 그 이상 알 필요가 없었다.
대신 유투브를 켜서 RPG-22를 검색한 뒤 영상을 통해 대략적인 사용법을 알아냈고, 영상을 따라 해보았다.
석민을 괴롭히던 전차는 장갑차를 개조해서 만든 경전차이니 RPG-22로 충분히 관통 가능할 것 같았다.
“정면도 될 것 같기는 한데.”
한 발로 확실하게 유폭이 되게 하려면 연료탱크나 탄약저장고에 맞춰야 할 것이다.
‘대충 차체를 쏘면 되겠지.’
생각을 마쳤지만, 석민은 아직 APS를 극복할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다.
유탄에도 반응해서 요격을 하고 있는데, 원래 목적이던 대전차로켓 요격도 가능할 것이다.
‘성능 하나 확실하구만.’
석민은 혀를 찼다. 전에 이런 일을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딱히 좋은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석민은 저 전차를 잡을 수 있을 법한 무기들을 나열해 보았다.
철갑유탄 1발, 수류탄 1발, 그리고 천사의 검.
‘아마, 자르고도 남을 거야.’
하지만, 석민은 전차를 향해 총을 들고 돌격하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했다가 현실성 없다고 부정해버렸다.
‘모든 총탄을 튕길 수 있는 갑주 같은 거라도 있으면 가능하겠지.’
그는 잠깐 그런 상상을 하다가 집어치우고 아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쯤이야?”
-그러는 석민 씨는 어디죠?
아영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찬 공기를 빠르게 들이쉬어서 그런지 기침 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잠시 아영이 진정한 것 같자, 두 사람은 정보 공유에 들어갔다.
아영은 석민이 장갑차 3대를 파괴하고 사도대 대원들을 죽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정말 무모한 일이었는데, 그래도 잘 처리하셨네요. 가끔가다 말씀하시는 거 보면 지나치게 겸손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어디인데?”
-겸재교의 서쪽 방향에 있어요. 전차와 장갑차들이 오려면 가장 이쪽이 빠르니까요.
그녀는 겸재교 전체 관측이 가능한 아파트 단지에 있었다.
석민은 자신이 있는 곳과 아영이 있는 곳의 위치를 가늠했다.
‘대충 5분이면 도착할 거리네.’
석민은 노획했던 소총들을 버렸다.
“내 총은 챙겨왔지? 다리 쪽에 ASH-12.7을 놔줄 수 있어?”
-뭐, 가능합니다.
“그리고 지금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어.”
-작전은 뭐죠?
석민은 그녀에게 설명을 이어나갔고 아영은 한숨을 쉬었다.
-역시 석민 씨는 너무 무모해요.
***
전차 1대와 장갑차 1대만 남은 사도대의 정예부대들이 다시 움직였다.
그들은 전차를 앞세웠고, 장갑차에 있던 인원들은 보병용 해치를 열고 사주경계에 들어갔다.
이윽고 겸재교에 도착하자, 전차와 장갑차를 멈춘 채 열상 화면이 달린 전차장 조준경으로 사방을 살폈다.
“보이는 게 있나?”
전차장의 물음에 포수 또한 자신의 조준경을 돌렸다. 포탑이 계속 좌우로 연속해서 움직였지만 열상에 하얗게 잡히는 건 없었다.
“없습니다.”
“매복을 한다면, 저기 제일 가까운 아파트 단지에서 하겠지.”
“놈이 정말 기다리고 있을까요?”
“그러고도 남을 놈이야. 주의해. 장전수, 대탄 장전해.”
철컥거리며 포미가 닫혔다.
“장전!”
“1호차, 위력 수색을 하지. 11시 방향에서 가장 가까운 아파트에다 사격, 개시.”
장갑차에 장착된 K-6 중기관총과 M60기관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