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209화]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아영이 궤도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드래곤의 주문에서 풀려난 괴수들과 감염자들이 거미떼마냥 사방으로 흩어진 덕분에 그녀가 움직이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그녀는 중앙선의 철로를 따라 움직였다. 그대로 철로를 따라서 회기역 방향으로 갈 생각이었다.
지구력 스탯이 석민보다 하나 더 높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녀는 별로 지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기관총과 포성이 그녀가 향하던 방향이 아닌 남동쪽에서 들려오자 당황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휴대폰을 들고 적의 장갑차량들이 어디에서 오는지 확인했다.
‘겸재교 방향인가?’
그녀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하긴 중랑천의 다리가 무너졌으니 가장 가까운 다리는 그쪽에 있었다.
아영은 석민의 연락을 기다리다가 결국 그에게 전화까지 걸었지만, 석민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무래도 저 총성과 포성은 교전하는 중인 것처럼 보였다.
‘무기가 부족할 거야.’
되도록 많이 챙기긴 했지만 드래곤이 얼마나 크던가? 그걸 다 쏘더라도 잡기 힘들어 보였는데, 괴수와 감염자를 상대로까지 교전을 벌인다면 더 부족할 것이다.
‘늦지 않아야 할 텐데….’
그녀는 엄청난 무게의 가방을 지고도 육상선수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
석민은 바보같이 장갑 차량의 행렬을 그대로 뒤따라 추격하지 않았다.
그는 바로 옆 블록의 무너진 건물 사이를 계속 뛰어넘었다.
일반 도로라면 장갑차가 더욱 빠르겠지만, 거리에 버려진 차들과 괴수, 감염자들 때문에 전진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괴수들은 드래곤 피를 뒤집어쓴 석민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덕분에 일신의 자유를 얻었다.
‘고생한 보람은 있네.’
석민은 자신을 보며 꼬리를 말고 슬금슬금 피하는 괴수들 틈으로, 도로를 뚫어가며 지나가는 전차와 장갑차들을 보았다.
전차 1대는 여전히 무시무시한 디젤엔진 소리를 내며 선두로 전진했고, 그 뒤로 장갑차들이 1열로 간격을 좁힌 채 전진했다.
장갑차와 전차의 차체엔 괴수들의 발톱에 의해서 엄청난 양의 스크래치가 보였다.
석민은 남은 탄약을 확인했다.
9x39mm 탄약은 이제 겨우 1탄창뿐이었고, 유탄은 철갑유탄이 2발, 일반유탄이 2발 남아 있었다.
‘언제 이걸 다 썼지?’
석민은 허전해진 유탄용 탄띠를 바라보았다.
장갑차 상부 노리고 2발을 쏜다면 2대는 격파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장갑차 1대와 전차는?
천사의 검이 있긴 하지만 이것은 엄연히 냉병기였고, 자신이 아무리 강해졌다 해도 여전히 총 한 방 맞으면 죽는 건 변함이 없었다.
‘결국, 접근해야 한다는 건데.’
장갑차들은 사주경계가 안 되는 것 같지만, 전차의 전차장 관측용 조준경은 계속해서 돌고 있었다.
석민이 재빠르게 몸을 낮췄으나 전차장의 열상화면에서는, 특히 이런 어둠 속에선 또렷하게 보였다.
“적이다!”
전차장은 그렇게 외치고는 자신이 보는 방향으로 직접 포탑을 돌렸다.
“대탄1)장전해!”
그는 속으로 석민이 어떻게 살아있는지 궁금해했지만, 그것보다 일단은 석민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다.
“공축기관총은 안 씁니까?”
포수의 물음에 전차장은 고개를 저었다.
“기관총탄을 너무 많이 사용했어. 탄약을 아껴. 한 방에 끝내.”
“장전 끝!”
장전수가 소리치기 무섭게 전차장이 사격 명령을 내렸다.
그와 동시에 화면 속에서 석민이 움직였다. 포탄이 그가 있던 자리의 허공을 그대로 지나서 날아가 버렸다.
“피했어?”
놀란 포수가 저도 모르게 크게 소리쳤다.
“정조준을 하지 말았어야지!”
하지만 전차장도 석민이 포탄을 피하리라 생각지 못했다. 그저 우연의 산물이라 판단했다.
몸을 옆으로 피한 석민은 전차의 후방에 위치한 장갑차들이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괴수들이 그런 그의 모습을 보더니 꼬리를 말고 몸을 뒤로 내빼는 것이 전차장의 눈에 들어왔다.
“신이시여.”
그것을 본 전차장이 낮게 탄식을 흘렸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기관총, 쏩니까?”
기다리다 못한 포수가 물었다.
“그래, 쏴!”
기관 총성이 연달아 울리기 무섭게 석민은 몸을 숙였다. 10센티도 안 되는 머리 위로 예광탄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석민의 등장은 장갑차를 둘러싸고 덮치려던 다른 괴수들을 피하게 했고, 해치를 열지 않으려 하던 교단인들이 직접 행동하게끔 만들었다.
장갑차의 측면 총안구의 덮개가 열리고 K-6 중기관총이 달린 부조종수 포탑의 해치가 열렸다.
요란한 총성을 들으면서 석민은 옆으로 기울어진 건물의 외벽을 따라 뛰었다.
“아니, 씨…. 뭐가 저렇게 빨라?”
그들의 눈에는 마치 육상 선수가 전력 질주하는 것마냥 너무 빨라서 제대로 조준하고 쏘질 못했다.
전차의 포탑이 돌아가는 속도가 석민의 달리기를 추격할 수 있다 한들, 석민이 폐허 속에서 달리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연발로 쏘지 말고, 점사로. 침착해, 침착해!”
석민에게 연달아 기관총의 예광탄이 지나쳤지만 대부분은 구조물에 막혔고, 석민의 모습은 행렬의 뒤쪽으로 사라졌다.
“더럽게 빠르네.”
기가 질린 포수도 혀를 차면서 포수 조준경으로 석민을 바라보았다.
밤이라서 제한된 시야와 사격 각도 때문에 장갑차들에서 쏘는 건 전부 쓸데없는 총알 낭비였다.
“각 차량, 사격 중지. 2호 차, 선두로 나서라. 위치이동을 한다.”
전차장이 말했다.
그가 보기에 석민의 행동은, 그들이 왕십리에 도착하지 못 하도록 지연전을 펼치는 것으로 판단됐다.
그래서 그는 장갑차들을 선두로 전진시키고 전차가 후방에서 엄호하는 것으로 그 행동을 막을 생각이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만, 석민 덕분에 교통에 방해되던 괴수들도 잔뜩 사라진 덕분에 이동이 편리해졌다.
“포수, 포탑 4시 방향으로.”
전차장은 전차의 포탑을 4시 방향으로 돌린 뒤, 전차장 조준경을 8시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후방에서 추격해오는 석민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이쪽은 전진하는 속도가 느렸고, 석민의 발은 매우 빨랐다.
‘설마 그 달리기 속도로 지구력까지 있지는 않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열상 모니터에 눈을 고정시켰다.
하지만 석민은 그보다 한 발 더 앞서 판단하고 행동하고 있었다.
그는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다시 몸을 돌려 행렬의 맨 앞, 바로 옆 건물로 도착한 직후였다.
그가 들어선 건물은 살짝 기울어져 있을 뿐 무너진 상태는 아니었지만, 고작 1층짜리 건물이라서 장갑차의 상부를 노릴 순 없었다.
석민은 유탄을 장전했다. 철갑유탄이 아니라 고폭탄이었다. 장갑을 뚫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궤도 정도는 확실하게 박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가장 선두의 차량에 유탄을 조준했고 발사했다.
유탄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고, 의도했던 대로 선두 장갑차의 바퀴에 맞으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궤도가 끊어지면서 앞으로 나가던 장갑차가 멈춰 섰다.
“빌어먹을!”
기관총탄 사람의 욕설이 그대로 석민의 귀에 들렸다.
그의 등 뒤로 중기관총탄이 박혔다. 야시경이 없어서 대충 석민이 있을 법한 위치를 향해 마구잡이로 쏜 것이었다.
곧 장갑차의 문과 보병용 해치가 열리더니 사도대 병력들이 나왔다. 9명이 탄다고 알고 있었는데, 몇 명 더 있었다.
아무래도 차량이 몇 대 파괴되면서 설계 이상으로 병력들이 탄 듯싶었다.
“쫓아!”
화가 난 그들의 분노 섞인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석민의 눈에 그들이 야시경과 레이저 포인트를 켜는 것이 보였다.
저놈들에게 구난전차가 있을 리 만무했고, 서울에서 한가하게 수리하는 것 또한 불가능할 것이다.
후위에 있던 전차가 망가진 장갑차의 옆에 멈추고 포탑을 건물 쪽으로 돌렸다.
사도대 대원들은 그대로 건물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분노한 총성들이 요란하게 울리고, 무전을 통해서 고함과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무전기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전차장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저쪽이야, 저쪽
-억!
현역 장병 출신인 그로서는 이 사도대들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무전기의 주파수를 바꾸었다.
총성은 점점 줄어들어 갔고, 건물 안에서 보이는 총구의 섬광이 사라졌다. 어둠 사이로 큰 칼을 든 자가 사도대 대원들에게 달려드는 것이 그대로 보였다.
“저 자식, 살아 있잖아!”
석민의 쏜 총에 오른쪽 어깨에 총을 맞은 사도대 대원이 다급하게 총을 횡으로 휘두르면서 방아쇠를 눌렸다. 그러나 석민이 먼저 칼로 그것을 옆으로 쳐내더니, 총을 든 반대 손으로 머리를 치고는 다시 칼로 찔렀다.
“나머지 다 어디 갔어?”
전차장의 열상 조준경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략 3초쯤 시간이 지난 후 다시 그가 소리쳤다.
“보병들이 당했다!”
포수의 조준경에서 석민의 모습이 사라졌다. 자신을 발견했단 걸 눈치챘는지 바로 황급히 숨은 것 같았다.
“장전수, 대탄 장전! 건물째로 무너트린다. 3점사. 조준 좋으면 바로 발사!”
“장전 끝!”
“쏩니다!”
장전수는 대략 2초에 1발씩 포탄을 장전해나갔다.
105mm 전차 포탄이 연속으로 발사되자, 석민이 있던 그리 크지 않았던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흙먼지가 사방을 뒤덮고 지붕이 무너져 앉았기에, 전차장은 석민이 반드시 죽었으리라 여겼다.
“해치웠나?”
“야.”
포수의 말에 전차장이 그의 헬멧에 꿀밤을 먹였다. 장전수도 그 소리를 듣고 낄낄거리면서 웃었다.
그들은 석민이 죽었다고 이번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긴장이 풀리면서 모두의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편안하게 등을 기대고 잠깐이라도 쉬려던 찰라, 포수의 조준경에서 사람의 모습이 잡혔다.
“어? 열원 감지!”
“이런 씨!”
석민이 폐허 속에서 상체를 내밀고는 전차를 향해 유탄을 쏘았다.
“저게 어떻게 살아 있….”
전차장은 폭음에 말을 잇지 못했다.
즉시 APS가 작동되어 그딴 알량한 유탄은 바로 요격되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석민과 전차 사이에 폭발이 일어나면서 열상 조준경의 시야가 일시적으로 흐려지게 되었다.
석민은 몸을 내달려 가장 뒤에 있던 장갑차에 달려들었다.
야시경을 끼고서 사주경계 중이었지만, 야시경 특유의 좁은 시야 때문에 석민을 빨리 발견하지 못한 중기관총탑의 부조종수가 놀라 소리쳤다.
석민이 가진 9A-91에 남은 탄약이 이제 고작 8발이었다. 석민이 2발을 쏘자, 중기관총탑의 부조종수가 피를 뿜으며 해치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석민은 부조종수가 중기관총을 쏘기 전에 빠르게 팔심으로 해치를 움직여 K-6 중기관총을 앞에 있는 장갑차 쪽으로 조준했다.
그쪽에 있는 기관총탑도 급히 총탑을 돌렸지만, 석민의 손이 더 빨랐다.
강력한 중기관총이 보병 수송 장갑차에 쏟아졌다.
총탑에 있던 사도대 대원의 얼굴에 총알이 박혀 피 안개를 뿌리고는 사라졌고, 장갑차 곳곳은 스위스 치즈처럼 구멍이 뻥뻥 뚫렸다.
장갑차 안에서 끔찍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군가 보병용 해치를 열었지만, 다급히 나오던 팔이 중기관총에 맞아 떨어져 나갔다.
아무도 장갑차에서 나오지 못했고, 차량에선 연기와 불꽃이 피어올랐다.
1) 대전차고폭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