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208화]
방금 전까지 석민이 있던 자리에서 작은 불꽃과 총탄의 파편들이 요란하게 튀었다.
석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달렸다. 그리곤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아영에게 통화하기 위해서였다.
통화 연결음이 끊기자마자 석민은 봐두었던 창문을 향해 그대로 뛰어서 넘었다.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석민의 등 뒤에서 요란하게 울렸다.
“알림글 확인했지? 재수 없게도 교단 놈들 장갑차량이랑 마주쳤어. 이쪽으로 와줄 수 있어? 위치는….”
주변을 빠르게 살폈지만 지형을 알 만한 표식이 눈에 띄지 않았다.
“확실한 건 중랑천 밖이라는 거야. 그리고 철교 쪽이랑은 가까워.”
-알았어요. 얼른 갈게요.
약간 체념이 섞인 듯, 한숨이 스며있는 대답이었다.
석민이 통화하는 사이, 사도대 대원들은 몸을 날렵하게 움직이며 추격에 들어갔다. 그 모습은 가히 최정예 병력이란 말이 어울릴 법했다.
일체의 대화도 없이, 대형을 이루고 사주경계를 하며 빠른 속도로 석민이 있던 자리까지 당도했다. 그리고 석민이 빠져나왔던 유리창도 확인했다.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사도대 대원들 또한 충분하게 넘어올 수 있었다.
석민은 약간의 긴장으로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며, 9A-91을 창가에 조준하고 기다렸다.
하지만, 기대했던 추격병 대신 넘어 온 것은 수류탄이었다.
“흡!”
놀란 석민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방에서 빠져나와 벽 뒤로 몸을 숨겼다. 이내 커다란 폭발과 함께 흙먼지가 휘날렸다.
폭음으로 석민의 귀가 일시적으로 멀었을 때, 누군가가 창문을 통해 넘어왔다.
석민은 문가에 총구가 보이기 무섭게 총을 잡아 올렸다. 곧 총성 여러 발이 울렸다.
스탯의 영향으로 상대는 석민에게 쉽게 총을 빼앗겼다. 상대는 대신 가슴에 걸어두었던 대검을 뽑으려 했으나 석민의 오른손이 더 빨랐다.
플레이트 캐리어에 보호되지 않는 하복부에 총구가 디밀어지고 곧 총알이 발사됐다.
총구 섬광이 그들 사이에서 번쩍였고,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쓰러지는 상대의 어깨 너머로 다른 자들이 보였다. 석민은 빠르게 손을 들어 총을 쐈다. 그리고는 자신을 향해 쓰러진 상대를 방패막이로 쓰면서 뒤로 움직였다. 순식간에 십수 발의 총탄들이 자신을 가려주던 시체에게로 쏟아졌다.
석민은 시신을 버리고 재빠르게 물러섰다.
“죽어라!”
벽 너머로 짧은 외침과 함께 석민이 지난 길을 따라서 총탄들이 벽을 뚫으며 날아가 반대편에 박혔다.
석민은 상체를 뒤로 돌려서 다리의 힘을 뺀 채 뒤따라오는 자를 쏘았다. 이번에도 탄환이 방탄복을 쉽게 관통했다.
“이거 뭐야?”
방탄복을 입었는데도 너무나도 쉽게 관통이 되자 당황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게다가 9mm의 묵직한 탄두인 덕분에 저지력도 뛰어났다.
석민이 어떤 탄약을 즐겨 쓰는지 잘 알고 있던 교단인들은 방탄복을 쉽게 뚫은 원인이 무엇인지 금세 눈치챘다.
“9mm 아음속 철갑탄이다! 거리를 벌여!”
‘실내전에서 그게 가능하겠냐?’
석민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렸다.
그 외침 덕분인지는 몰라도 추격을 해오는 자들이 더 이상 따라오진 않은 채 거리를 벌리고서는 석민을 향해 총만 쏴댔다.
석민은 등에서 느껴지는 큰 충격에 상체가 앞으로 기울었다. 방탄조끼 덕분에 총알이 박히진 않았다.
“익!”
석민이 몸을 바로 세우고는 뒤돌아서서 유탄을 쏘자 사도대 대원이 기겁하며 물러나는 모습이 보였다.
짧은 거리 때문에 안전거리 제약으로 신관이 바로 작동되지 않았고, 유탄은 바닥에 부딪혀 물수제비마냥 튕겨 다니다가 폭발했다.
건물을 지탱하는 콘크리트가 무너지는 소리와 사도대 대원들의 비명을 뒤로 하고 석민은 계단을 따라 급히 내려갔다.
어디선가 괴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안색이 급속도로 창백해져 갔다.
‘너무 가까워!’
이대로 이곳에 오래 머물렀다가는 자칫 괴수의 무리에 둘러싸일 수 있었다.
‘일단 건물 밖으로.’
계단의 마지막을 밟고 난 뒤 건물 밖으로 나오기 무섭게 드레이크의 눈과 마주치게 되었다.
크기가 거의 예전에 동물원에서 본 시베리아 호랑이만큼 큰 녀석이었다.
석민은 너무 놀라서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야, 이…!”
순식간에 드레이크가 입을 쩍 벌리고는 그대로 석민을 덮쳐왔다. 당황한 석민은 제대로 반격하지 못한 채 그대로 상체를 전부 삼킬 듯이 다가오는 드레이크의 주둥아리를 양손으로 겨우 붙잡아 막아냈다.
‘망했어!’
이대로 버티다가는 결국 이 녀석의 밥이나 되겠지. 그렇게 생각한 석민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괴수의 악력이 생각보다 약했다.
“어?”
석민은 드레이크의 입을 막아내던 손에 힘을 주다가 인상을 찡그렸다. 드레이크 목구멍 깊숙이에서부터 역겨운 냄새가 풍겨왔다.
그러나 손아귀에 잡힌 드레이크의 가죽이 쉽게 짓이겨지고 막아내는 데도 힘들지 않았다.
“뭐지? 이거?”
그가 있는 힘껏 주둥아리를 좌우로 잡아당기자,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드레이크의 살가죽이 찢어지면서 턱이 뽑혀 나왔다. 체력 스탯 1의 위력이라 할 수 있었다.
힘이 말도 안 될 만큼 강력해졌으나 놀라고 있을 시간이 그에겐 없었다. 지축이 울리고 다급한 음성과 총성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괴수 무리들이 근처까지 온 게 분명했다.
곧 고통과 겁에 질린 괴로운 소리들과 함께 나중에는 포성까지 들려왔다.
석민은 계속 몸을 움직였다.
***
석민을 추격하던 사도대 대원들은 급히 장갑차 안으로 몸을 피신하려고 했지만, 괴수들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도망치던 사도대 대원들의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지면서 결국 괴수들에게 등 뒤를 허용하게 되었다. 아비규환이 펼쳐지고, 비명이 울리고 피가 튀겼다.
장갑차와 전차에 있던 승무원들이 급히 그들을 위해 지원 사격을 가했다.
“벌집탄 장전!”
전차장의 말에 장전수가 급히 탄약을 꺼내서 포미에 밀어 넣었다.
“장전 끝!”
“조준, 끝!”
“쏴!”
포탄이 발사되면서 수백 발의 자탄들이 날아가 무리 지어 달려오던 괴수들을 단번에 쓸어버렸다.
국군에서 괴수들을 손쉽게 처리하려고 도입한 신형 탄약이었다.
포탄 안에 든 수많은 자탄 덕분에 한 번에 십수 마리가 문자 그대로 도륙되었다. 볼 만한 장관이었지만 그 모습만 계속 보고 있을 수 없었던 전차장은 상황을 살피기 위해 조준경을 돌렸다.
그의 눈에 대형 개처럼 보이는 드레이크들이 사도대 대원의 옷을 물어 어디론가 끌고 가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도대 대원은 손톱이 빠져나가는 데도 살고자 바닥을 박박 긁어대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전차장은 직접 포탑을 돌렸고, 포수가 그 장면을 보게 했다.
“동축기관총으로. 주의해.”
“네.”
포수는 세심하게 조종기를 조정해서 그쪽으로 조준하고 7.62mm 기관총을 발사했다. 사도대 대원의 주위에 있던 드레이크들이 기관총에 맞아 쓰러지거나 놀라 도망쳤다.
드레이크들이 도망치자 사도대 대원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전차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얼른 장갑차 쪽으로 달렸다.
장갑차의 후방도어가 열리고 그가 들어가려는 순간, 그것을 노리고 드레이크들이 달려들었지만 전차의 기관총이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장갑차의 문은 안전하게 닫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한편으론 전차병들의 숙련도를 볼 수 있었다.
방금 하나의 목숨을 구했지만, 전차장의 얼굴은 그리 좋지 못했다.
‘빌어먹을.’
대부분의 대원들이 안전하게 복귀한 것으로 판단한 그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원래의 목표는 왕십리역으로 가서 거기를 먼저 확보하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많은 괴수들이 나타나 버려서 생각 이상으로 탄약을 낭비하게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탄약을 최대한 아껴보자.”
전차장이 말했다.
“김 상병, 앞으로 전진. 각 차량, 전차를 따라 이동한다. 원래 목표를 상기하고 행동하자.”
전차가 움직이자 괴수들이 달려들었다. 어떤 노력을 해도 전차와 장갑차를 잡기 어려울 텐데, 그걸 모르는 괴수들은 일단 달려들고 봤다.
궤도에 깔리고 전차에 치여 튕겨 나가는 괴수들의 모습은 매우 기괴했다. 전차 밑에서 뼈가 꺾이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장병들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고, 혹시나 해치가 제대로 잠겼는지 잠금장치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우리한테 유탄을 먹인 그놈도 지금쯤이면 괴수 밥이 됐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전차장은 괴수의 발톱이 장갑차를 긁는 소리를 들었다. 곧 도가 지나친 괴수들의 수에, 육편에 궤도가 걸리는 건 아닐지 걱정이 들었다.
사태 때 괴수에 의해 전차를 잃은 적은 없었지만, 이런 방식으로 버려지거나 기동 불능이 되어 고립되는 일은 많이 보았다.
그는 조종수에게 전차를 세심하게 몰라고 계속 주의를 주었다.
전차가 움직이는 곳마다 괴수들이 그 소리에 이끌려 따라 움직였다. 그리곤 곧 그 자리엔 정적만이 감돌았다.
잠시 후, 폐허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움직였다. 석민이었다.
몸에 잔뜩 묻은 크라케르의 피 덕분인지는 몰라도, 겨우 찾은 토굴 같은 곳에 숨은 그를 괴수들이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피 주제에 그래도 드래곤의 피라고 괴수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 일부러 기피하게 만들었다.
그는 죽은 크라케르의 몸뚱이에 다가갔다. 천사한테서 빼앗은 칼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폭발물과 가까운 곳에 박혀있었지만, 여전히 멀쩡하게 남아있었다.
석민은 그것을 뽑아 들었다.
“힘이 엄청나게 강해졌어.”
석민은 칼을 한번 휘둘러보았다 이 정도로는 힘이 얼마나 세졌는지, 별다른.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몸을 많이 움직였는데도 어느 때보다 힘이 넘쳐났다.
그때, 마침 그에게 한 번 실험해보라는 것처럼 낮게 그르렁거리며 접근하는 드레이크가 보였다.
예전에 보았던 털이 많은 드레이크였다.
석민은 콧바람을 길게 뿜으며 오른손엔 9A-91을 쥐고 왼손에는 천사의 칼을 들었다.
양손잡이여서 어색하진 않았다. 방금 전 드레이크를 산 채로 찢어본 덕분인지 몰라도 매우 차분한 눈으로 드레이크를 마주 볼 수 있었다.
분명 드래곤의 피가 묻은 자신을 무서워해야 하는데, 마치 절대자의 농간처럼 드레이크는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위협적으로 휘두르는 칼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낮게 으르렁거리던 괴수가 괴성과 함께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석민도 팔을 쭉 뻗은 자세로 총을 쏘면서 마주 달렸다.
총성이 연달아 울렸지만 총구를 비롯해서 총을 쥔 손이 반동으로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연달아 날아가는 총탄은 몸이 푹신한 털로 뒤덮여있고 단단한 비늘을 가진 드레이크에게 효과적인 타격을 주지 못했다.
드레이크가 주둥이를 벌리고 앞발의 기다란 발톱을 드러내며 몸을 던졌다.
이상하게도 자각하게 된 석민의 눈에는 그 모습이 매우 느리게 보였고, 상체를 숙이면서 칼을 위아래로 크게 휘둘렀다.
석민의 상체 위로 드레이크의 커다란 몸이 지나가면서 턱과 가슴, 배가 기다랗게 베였다.
내장이 쏟아져 나온 드레이크가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서 몸부림쳤다.
이것으로 자신감을 얻은 석민은 드레이크를 죽이지 않은 채 그대로 전차와 장갑차들이 지나간 방향으로 달렸다. 어차피 이제 와서 드레이크가 자신에게 방해물이 되리라 생각지 않았고,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교단 놈들이 왕십리로 당도하게 둘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