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207화]
지상전의 왕자
석민은 넘어진 상태에서 팔다리로 기어 움직였다.
당장 움직여야 했다.
방금 전 울린 포성은 분명 전차포였다. 서울에서 교단의 전차와 장갑차 말고는 그런 걸 쏠 만한 상대가 없었다.
전차에는 열상조준경이 달려 있기 때문에, 어중간하게 숨었다가는 바로 들켜서 저항도 못하고 죽을 게 분명했다.
석민은 매우 신속하게 움직였다. 몸을 낮춘 채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서 크라케르를 살폈다.
놈은 아직 죽지 않았다. 고통과 분노로 작게 그르렁거리는 숨소리가 귓가에 와 닿았다.
그때, 강한 디젤 엔진의 궤도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라케르의 크기에 비하면 참으로 초라했으나, 그것은 강력한 전차포가 달린 전차였다.
그라케르는 고개도 돌리지 못한 채 가쁜 숨을 내쉬는 게 고작인 상태였다.
2번째로 맞은 날탄1)이 목을 정확하게 관통해 대동맥이 잘렸는지, 분수처럼 피를 쏟고 있었다.
가만히 두어도 죽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막타를 빼앗기는 기분이 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본인은 생존했고, 지금은 교단의 눈을 피해 다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했다.
‘마지막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난 죽어선 안 돼.’
석민의 몸이 반쯤 무너져 기울어진 건물의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궤도와 엔진의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
“명중했어!”
교단소속의 유일한 전차인 K1 전차의 전차장이 자신의 조준경을 통해 목이 반쯤 잘린 드래곤을 보며 소리쳤다.
“드래곤한테 전차포가 통하다니, 이런 경우는 처음이야. 주께서 굽어살피시는 건가?”
그는 그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사태 땐 미사일이고 포고, 단 하나도 안 통했다는데.”
“거짓말이었나 보죠.”
포수가 전차장에게 대답했다.
“다시 한 방 먹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녀석이 살아있습니다.”
그 말에 전차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을 내렸다.
“좋아, 몸체에 한방 더 놓지. 장전수, 날탄 장전.”
장전수가 탄약을 꺼내서 포미에 밀어 넣었다.
“장전 끝!”
크라케르는 고개를 간신히 돌려서 전차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예전에 비해 미약하지만 소름끼치는 울음소리를 냈다. 마치 마지막 발악처럼.
“조준 끝!”
“쏴.”
“쏴!”
드래곤의 몸에서 무언가 변화가 생기기 전에 전차포가 발사되었다.
날탄이 초고속으로 날아가 드래곤의 비늘을 뚫고선 등뼈를 지나 밖으로 나왔다.
드래곤의 입이 쩍 벌어졌다. 하지만 입 안에선 화염 대신 검은 연기만 피어나왔다. 그리곤 신체가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곧 붉은색 암반같이 굳어져 버렸다.
건물 안에 진 그림자에 몸을 숨긴 석민의 눈앞에 알림글이 나왔다.
[드래곤 크라케르를 처치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상태창.”
[최석민, 선택받는 자.]
레벨:21
지구력:5
체력:2
활력:6
시력:4
스탯:2
석민은 지체 없이 바로 스탯을 올리기로 했다. 지금 상황으로 보자면, 곧 교단인들과 교전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차를 상대로 어느 정도 승산을 갖추기 위해선 체력과 지구력을 올려야 할 것 같았다.
[최석민, 선택받는 자.]
레벨:21
지구력:4
체력:1
활력:6
시력:4
체력이 이제 1이 되었다.
석민은 주변에 뒹굴던 콘크리트 파편을 들고서 살짝 힘을 주었다. 모래성처럼 쉽게 부서져 내렸다. 썩 흡족해할 무렵, 사방에서 괴수의 울음소리와 감염자로 추정되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석민은 빠르게 눈치챘다. 아마 드래곤이 마지막으로 내질렀던 비명은 주문을 푸는 소리였을 것이다. 주문에 엮여 있던 괴수와 감염자들이 풀려나 교단인들을 덮치기 위해 이곳으로 오는 중이었다.
석민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곳에 있으면 안 된다.
이젠 그것들을 지휘할 드래곤조차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꾀를 내서 그들을 따돌릴 수도 없었다.
괴수만 해도 감염자까지 먹이로 포함시키는 녀석이 있는 반면, 신선한 인육만을 취하는 존재가 있었고, 감염자들 또한 무리를 이루어 움직이거나 혹은 방향성조차 없이 아무렇게나 움직이는 놈들이 있었다.
그런 존재들이 수천, 수만 명 이곳으로 오고 있는 것이었다.
***
아영은 멍한 눈으로 포성이 난 방향을 보았다.
드래곤 크라케르가 석민을 데리고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구름 속에서 화염이 뿜어지고 드래곤의 그림자가 나타나면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석민의 모습이 보였다.
“미쳤어. 저러다가 죽으면 어쩌려고.”
생각보다 높이 올라간다고 여겼지만,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에게도 새로운 알림글이 떠올랐다. ‘크라케르를 처지’했다는.
“드래곤을 잡았어.”
‘이게 정말 될 줄 몰랐는데.’
그녀는 옥상에 올라가 감염자들을 내려다보았다.
감염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건물 안까지 들어왔던 감염자들이 드래곤의 화염에 휩쓸린 덕분에 수가 많이 줄었고, 여전히 불은 타오르고 있었지만 그녀가 탈출하기엔 문제가 없었다.
이번에도 석민이 떨어진 장소는 아영과 매우 멀었다.
잠도 못 자고 강행군을 하고 있던 터라 스탯에 겨우 의지해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피곤해서 쉬고 싶었지만, 감염자들과 괴수가 흩어지고 있으니 혹시 성민이랑 마주칠까 걱정이었다. 탄약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알 수 없었고.
아영은 피로로 축축 처지는 몸을 추스르고 짐을 챙겼다. 마지막에 들려왔던 포탄 소리 때문에 더 조급했다.
“105mm 전차포 소리 같았어.”
그녀는 석민이 두고 간 물건도 챙겼다. 덕분에 짐이 많이 무거웠다.
포 소리가 날 만한 곳은 추측 상 한 군데뿐이었다. 하필, 드래곤의 주문이 없는 데다가 교단 군인들이 있는 곳으로 떨어지다니.
그녀는 석민에게서 받은 유탄들을 확인했다.
“철갑유탄.”
그녀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석민이 가지고 있는 유탄들도 철갑유탄이었다.
“아무리 철갑유탄이라도 APC(병력수송장갑차)를 뚫지 못할 텐데.”
정신적으로 피곤했지만 몸은 아직 괜찮았다.
‘전차를 어떻게 잡지?’
전차를 몰고 온 교단 놈들은 이곳으로 올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교전을 벌여야 할 것이다.
짐을 다 챙긴 그녀는 발을 움직였다.
***
석민은 살짝 고개를 들어 전차와 뒤의 병력수송 장갑차들을 보았다.
전차가 1대, 그리고 장갑차 4대.
다리를 건너려다가 무너졌을 때 같이 깔렸던 1대는 결국 구하지 못한 듯했다.
전차의 포탑에 달린 전차장 조준경이 이리저리 사방으로 움직이며 주변을 관측했다.
장갑차 상부의 뚜껑이 열리고, 무장한 인원들이 나와서 무기를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사도대인가?’
들고 있는 무기며 착용한 방탄복들이 매우 좋은 상태여서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석민은 몸을 움직였다.
저것들은 왕십리로 가려는 놈들이었다. 지금 그들을 그곳으로 보낼 수 없었다.
그는 무너진 건물의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대충 4층까지 올라가자 차량에서 내려서 죽은 드래곤의 시신을 바라보는 이들이 보였다.
전차 쪽도 포탑 상부의 해치들이 열려 있었고, 각 해치마다 전차 승무원들이 나와 있었다.
지금이 기회였다.
석민은 전차를 처리하기로 마음먹고는 유탄의 약실을 열어서 안에 든 철갑유탄을 빼낸 뒤 일반유탄을 꺼내 끼웠다.
그는 전차의 해치 안으로 유탄을 넣을 생각이었다. 밤이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볼 수 없었다.
전차에 있는 열상조준경만 없다면, 야간전은 그에게 매우 유리해진다. 나머지 보병수송 장갑차들은 열상조준경이 없었다.
사도대들은 야시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스탯을 가진 석민의 눈만큼 좋진 않을 터였다.
석민은 그렇게 생각을 마치고 바로 조준에 들어갔다. 때마침 장전수석 해치에 있던 인원이 전차 밖으로 나와 드래곤에게 다가갔다.
‘좋아, 정말 좋아.’
석민은 흡족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방아쇠를 당기기 무섭게 퐁! 하는 소리와 함께 유탄이 포물선으로 날아가는 순간, 갑자기 전차에 달린 다연장 파이프같이 생긴 것이 획 돌아가더니 유탄을 향해 무언가 발사했다.
공중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주변에 있던 인원들이 폭발에 휩쓸리거나 파편을 맞고 쓰러졌다.
“뭐야?”
비명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고, 전차장은 얼른 해치를 내리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APC(Active Protection System: 능동방어체계)를 켜놓고 있었어.”
그는 버튼을 눌러 그것을 꺼두었다.
“방금 누가 공격한 거야.”
포수가 컨트롤러를 돌려 포탑을 회전시켰고, 전차장은 전차장용 조준경을 돌려 주변을 확인했다. 그러나 폭발의 충격으로 주변은 아수라장이었고, 석민은 이미 숨은 뒤라서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찾을 수 없습니다.”
포수조준경을 통해 주변을 살피던 포수가 보고했다.
“아지랑이도 안 보이나?”
전차장도 조급하게 계속 전차장 조준경을 돌리며 물었다.
“저, 들어왔습니다!”
밖에 나갔던 장전수가 소리치며 상체부터 해치에 밀어 넣고 들어왔다.
낮은 신음소리와 함께 그자는 몸을 똑바로 세우려고 노력했다.
“각 차량, 사상자보고."
잠시 후 사상자가 무려 7명이나 나왔고, 부상자들은 신속한 응급 처치와 함께 차량 안으로 들여보내졌다는 보고가 전달됐다.
“대원들 하차시키고 공격한 자를 찾아. 방금 것은 대전차병기가 아니야. 유탄이었어.”
그들은 드래곤이 죽고 감염자들과 괴수들이 대량으로 풀린 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하차하는 걸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때, 재빠르게 몸을 숨긴 석민은 입맛을 다시며 APC가 달린 것을 확인했다.
‘저거 비싸서 못 단다고 들었는데, 돈이 어디서 나서 단 거지?’
확실한 건 장갑차들이 다시 보병들을 하차시키고 있으니 APC가 켜져 있지 않을 거란 점이다.
그는 가지고 있는 9A-91에 소음기가 달리지 않아서 아쉬웠다.
차량의 후방도어에서 나온 사도대 대원들이 사주경계에 들어가면서 야시경으로 주변을 살폈기 때문에 석민은 신중하게 폐허들 속에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무너진 건물 뒤쪽으로 다른 건물의 유리창이 보였다.
퇴로는 저쪽이면 될 것이다.
석민은 이번엔 철갑유탄을 꺼내서 약실에 장전했다.
그도 보병수송차량을 이 철갑유탄으로 작살낼 수 없다는 것 정돈 알고 있었다. 공간장갑도 있었고, 이 40mm 유탄의 관통력이 그렇게 좋지 않단 것도 알았다.
하지만 장갑차의 상부장갑은 가능성이 있었다.
그가 일부러 4층을 골라서 장갑차의 상부가 보이는 곳에 온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그는 신중하게 유탄을 조준했다.
눈앞에 포물선이 나타났고 착탄 지점이 생기자, 그는 바로 총을 쐈다.
발사음이 들리기 무섭게 장갑차의 상부가 폭발했다. 내부로 메탈제트가 관통해서 바닥을, 하필 연료탱크를 건드렸다.
메탈제트의 온도는 안에 든 경유를 발화시키는 데 충분했다.
장갑차의 운전수석 해치가 급히 열리고 기관총을 잡은 차장도 급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안에 누워있던 부상자도 급히 밖으로 나왔다.
그들이 장갑차와 떨어지기 무섭게 차량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저기다!”
그 외침과 함께 석민이 유탄을 쏜 방향으로 수많은 총성이 울려 퍼졌고, 엄청난 양의 총구 화염들이 번쩍거렸다.
1) 날개안정분리철갑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