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206화]
아영이 짜증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석민이 이미 행동하겠다 마음먹은 상태에서 자신이 발을 뺄 순 없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벽을 은폐물로 삼고서 옥상으로 이어지는 계단 통로를 살폈다. 여전히 화끈거리는 열기가 피부로 와 닿았다.
불쾌함에 인상을 찌푸리던 그녀가 천장 구멍을 통해 여전히 들어와 있는 드래곤의 주둥이를 보았다. 그녀는 이빨을 노리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마침 약실에 든 총탄은 혜원이 만든 철갑고폭소이탄이었다.
12.7의 묵직한 탄두가 폭발하면서 드래곤의 이빨을 부러뜨렸다. 파편들이 잇몸에 박혀 들면서 드래곤의 피가 흘러내렸다.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이빨이 박살나는 고통은 참을 수 없었는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댔다. 그리고는 다시 화염을 뿜었다.
“이런 씨….”
깜짝 놀란 아영은 비명을 지르며 문을 닫았다. 화염이 문에 직접적으로 닿으면서 옥상의 문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됐어요!”
아영의 목소리가 석민에게 닿는 순간 뛰기 시작했다.
그는 녹아내리거나 검게 불타 이글거리는 옥상 문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계단을 한번에 3칸씩 뛰어넘으며 달렸다.
드래곤이 머리를 구멍 사이로 주둥이만 들이민 상태기 때문에 눈은 구멍 밖에 나와 있었다. 하지만 분노에 가득 찬 드래곤은 눈동자를 아래로 고정시킨 채여서 석민은 지금이 기회라고 여겼다.
그의 움직임은 매우 가벼웠으나, 두려움으로 다리가 떨렸다.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상태였다.
‘천사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예리하니까 드래곤의 비늘쯤은 가볍게 뚫을 수 있겠지!’
드래곤과의 거리가 이제 10미터도 채 안 남았을 무렵, 석민의 발소리를 들은 드래곤이 눈동자를 돌렸다.
순간, 석민의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떻게 걸린 거지? 발소리? 아니면 절그럭거리던 방탄복?
심장이 얼어버린 것처럼 가슴이 차갑게 굳으며 다리는 힘이 풀릴 듯이 후들거렸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언뜻 피맛도 나는 것 같았다.
들킨 이상 이대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천사에게서 뺏은 단검이 아무리 날카롭다 한들 사거리에 닿지 않으면 소용없었다.
1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어떻게 공격을 해야 할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가라앉길 반복했다.
칼을 던질까?
그렇게 생각하던 때, 드래곤의 머리가 움직였다.
석민은 머리가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오른손에 쥐고 있던 보조무기 총을 드래곤의 눈에 조준하고서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 섬광이 눈앞에서 번쩍였다.
날아간 하나의 총알은 그대로 드래곤의 눈에 박히며 피가 튀겼다.
한쪽 눈을 먼 드래곤이 급하게 고개를 돌리며 우레와 같은 괴성을 질렀다.
석민은 그대로 달려나갔다. 목 안쪽 무수한 비늘 사이에 총탄 자국으로 비늘이 빠진 곳을 발견하고는 체중을 실어 칼을 있는 힘껏 찔러 넣었다.
칼의 도신이 안 보일 정도로 깊숙하게 박힌 칼을 석민이 잠깐 잡아당겨 살짝 뽑은 뒤 다시 비틀면서 쑤셨다.
‘이걸로 좀 죽어라!’
드래곤의 비명은 더욱 커졌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 드래곤이 활짝 날개를 폈다.
“어? 어?”
드래곤, 크라케르의 몸이 올라가자 석민의 몸 또한 따라 떠올랐다.
그는 칼을 놓치지 않기 위해 칼의 손잡이를 잡고 있던 왼손에 힘을 주었다.
빠르게 지상과 멀어졌다. 크라케르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려는 듯했다.
석민이 아래를 보던 시선을 돌리자 자신의 목에 매달린 석민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린 드래곤의 머리가 보였다. 다행히 골격 구조상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물론, 칼이 꽂힌 곳을 느낌상으로 알 순 있었지만 말이다.
드래곤은 석민을 뿌리치기 위해 화염을 뿜어냈다.
엄청난 길이의 불의 기둥은 주변의 모든 곳을 환히 밝혔다. 그러나 정작 석민에겐 닿지 못했다.
석민은 등을 스치고 간 뜨끈한 열기를 느끼며 오른손으로 보조무기인 총을 꺼내 비늘이 빠진 곳에 박아 넣고는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총 19발의 총탄이 드래곤의 몸 속으로 파고들며 피가 튀고 비늘들이 떨어져 나갔다.
뿜어내던 화염을 멈추고 드래곤이 고통에 몸부림을 치자 석민의 몸도 같이 세차게 흔들렸다. 몸 속 깊이 파고든 탄두의 파편들이 근육 사이사이를 파고들어 헤집을 때마다 더 세게 요동쳤다. 그리고 그럴수록 드래곤의 고통도 가중되었다.
결국 크라케르는 자신의 몸에 붙은 하등생물을 떼어내 버리기 위해 하늘 높이 올랐다가 스핀을 돌며 하강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석민은 드래곤의 몸통에 자신의 몸을 수없이 부딪치며, 버티기 위해 힘을 준 외손 손목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을 느꼈지만 절대로 놓지 않았다.
그러나 그 흔들림 때문에 칼이 점점 드래곤의 몸에서 빠져나오는 게 느껴졌다.
“이런 시발!”
기겁한 석민이 오른손의 방아쇠를 연달아 당겨댔다.
그는 칼 대신 어떻게든 다른 잡을 것을 찾으려 했으나, 있을 리 만무했다.
칼을 다시 박아 넣기 위해 총을 홀스터에 넣으려 했으나 그 시도조차도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건슬링을 손목에 감은 다음에 칼을 잡은 왼쪽 손목에 손을 넣어 단검을 꺼냈다.
칼이 반쯤 빠졌을 무렵, 그는 단검을 뽑아내며 튕기는 반동을 이용해서 다른 단검을 박아 넣었다.
천사의 칼이 빠지면서 붉은 피가 비처럼 쏟아졌다. 석민의 얼굴에도 마치 붉은 물감을 뒤덮어 쓴 듯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는 피가 들어가 따가운 눈을 소매로 닦아내며 시야를 확보했다.
‘가지가지 하네!’
단검이 새로 받힌 곳은 목의 오른쪽이었다.
길이가 짧은 단검이라 자신의 체중으로 오래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는 천사의 칼을 다시 들어 옆에다 박았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제대로 힘을 실지 못하기 때문에 오로지 팔심만으로 드래곤의 단단한 생살을 뚫어야 했다.
천사의 칼이라 그런지, 다행히 깊이 박혀 들어갔다.
석민은 그대로 빙벽 타는 사람처럼 칼을 옮겨서 찔러 넣으며 드래곤의 목등 위로 올라가려 했다.
무슨 수를 써도 석민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기는커녕 칼까지 찔러 넣어가며 자신의 몸을 기어오르는 석민의 행동에 드래곤은 몸을 흔들면서 하늘로 올라가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곧 석민의 눈앞이 어두운 안개가 낀 것처럼 시야가 좁아 들었고, 몸은 젖어갔으면 급격한 추위가 들이닥쳤다.
그럼에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서 계속 드래곤의 몸을 올랐다. 오히려 이대로 멈추면 영락없이 죽을 목숨이었다.
이윽고 검은 하늘이 석민의 눈앞에 펼쳐졌다.
수많은 별들과 새하얀 달이 수놓듯 그려진 하늘.
석민은 추위에 몸을 떨면서도 하늘을 멍하게 쳐다봤다.
이렇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심지어 별이 총총 떠 있는 모습을 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
그러는 사이 드디어 목등에 도착했다.
드래곤은 좀 더 위로 올라가는 듯하더니 몸을 돌려 급하강을 시도했다.
석민은 눈을 질끈 감고서 자신의 생명줄인 단검을 꾹 쥐었다.
붕 떠오르는 몸을 느끼며 다리를 이용해 드래곤과 밀착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더 세찬 바람과 추위로 석민의 온몸이 굳어갔다.
방풍 안경도 없어서 바람과 맞닿은 눈엔 눈물이 흘렀고, 시림을 지나쳐 고통이 느껴졌다.
석민이 다시 눈을 뜰 수 있었던 건 지면에 거의 다 도착한 크라케르가 다시 상승을 시도할 때였다.
약간의 틈을 타 석민은 보조무기를 꺼내 새로운 탄창으로 갈아 끼우고는 장전을 마쳤다.
천사의 칼이 잘 들긴 해도, 치명상을 줄 정도의 무기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잡아야 하지?
석민은 머리를 굴리면서도 총구를 비늘 빠진 곳에다 대고서 연발로 쐈다.
총구 화염과 피로 이미 검붉어진 석민의 팔이 다시 새빨갛게 물들었다. 드래곤의 피가 닿을 때에만 약간의 온기가 석민에게 전해졌다.
드래곤이 고통을 느끼나, 치명상을 입히기엔 무리인 듯했다.
거대한 몸집에다가 질긴 가죽 때문인지 30센티는 족히 넘을 도신이 계속 박히는 데도 드래곤에게 치명상을 주지 못했고 그 움직임은 전혀 둔해지지 않았다.
뭔가 새로운 공격이 필요했다.
“아!”
그 순간, 번뜩이듯 석민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덤프파우치에 넣어두었던 폭약이었다.
파편 없이 단순한 폭약덩어리인지라 제대로 된 치명상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지금 자신이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위력이 강한 무기임은 분명했다.
석민은 바로 행동에 나섰다.
그는 천사의 칼을 뽑아 다시금 비늘이 빠진 부분에 비스듬한 각도로 찔러 넣으면서 드래곤의 가죽을 베어냈다.
이미 수없이 칼을 찔러댄 석민 때문에 고통에 어느 정도 무감해졌는지, 드래곤은 비명을 지르지도 난동을 부리지도 않았다. 그저 콧바람만 뿜어대며 지상에 착지했다.
세게 내려앉은 충격으로 석민이 드래곤의 몸에서 튕겼으나, 그 사이 칼을 더욱 깊숙이 찌르면서 옆으로 길게 쳐냈다. 드래곤의 겉 가죽이 벗겨지듯이 크게 벌어졌다.
그러나 타격을 입힌 석민이 오히려 기가 질려버렸다. 살 가죽 아래엔 피하지방이 가득했다. 그곳을 쑤신다 한들, 드래곤에게 큰 충격이 가진 않을 것 같았다.
그때, 드래곤이 두 발로 몸이 재빠르게 세웠다.
“이런, 설마?”
도저히 털어낼 수 없는 석민 때문에 크라케르는 최후의 발악으로 자신의 등을 바닥에 찍어 석민을 깔아뭉갤 생각이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음을 깨달은 석민은 베어낸 자리에다가 폭약을 박아넣고는 핀을 뽑아 뇌관을 활성화시켰다. 그리고 용의 몸에 박힌 천사의 칼을 그대로 둔 채 몸을 던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근처 버려진 폐차에 부딪혀, 방탄복과 차 천장이 충격을 완화해준 덕분에 큰 상처는 입지 않았다.
석민은 몸을 일으켜 세우고 드래곤을 보았다.
드래곤이 자신의 고개를 돌려 석민이 떨어진 곳을 본 순간, 폭발과 함께 드래곤의 몸이 크게 꺾였다.
조잡한 폭약덩어리이긴 했지만, 많은 양이어서 그런지 크라케르의 목 살덩이가 크게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치명상은 아닌지 녀석은 죽지 않았다.
크라케르는 하나 남은 눈으로 석민을 노려보았다.
석민은 크라케르의 죽음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걸 눈치채고는 여유롭게 9A-91에 새 탄창을 끼웠고 고이 모셔두었던 유탄도 꺼냈다.
비늘이 잔뜩 있었을 땐 이딴 것은 통하지도 않았겠지만, 이젠 아니었다.
저것의 비늘은 많이 벗겨졌고 자잘한 상처가 많아 약점이 있었다.
석민이 여유롭게 유탄을 장전하고 있자 크라케르의 몸이 살짝 달아오르나 싶더니 주둥이가 아닌 터져버린 목 구멍 사이로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자신의 화염에 오히려 자신의 살이 지져지자 드래곤은 급히 화염을 거두었다.
“적어도 이제 화염을 못 뿜겠구나.”
석민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총구를 조준했다.
그러나 아직 드래곤에겐 압도적으로 거대한 신체와 날카로운 발톱, 그리고 주문이 남아있었다.
드래곤이 몸을 납작하게 엎드리고 입을 크게 벌리며 괴성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석민도 총과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그 순간, 드래곤의 목에서 다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은 컸고, 그 충격으로 석민도 뒤로 자빠졌다.
“뭐야?”
갑작스레 받은 공격에 드래곤도 정신을 못 차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드래곤의 몸에서 푸르스름한 막 같은 게 생성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큰 포성과 함께 드래곤의 목으로 무언가가 관통되더니 드래곤의 목이 반쯤 잘려나갔다.
드래곤의 괴성은 입으로 통과되지도 못한 채 허공에 흩어졌다. 그렇게 남은 눈의 안광이 서서히 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