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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205화 (205/226)

[게이트 오브 서울 205화]

“내 잘못이야.”

석민은 자신의 소총을 꺼내서 감염자들을 쏘았다. 감염자들의 숫자는 그들이 가진 탄환의 숫자보다 더 많아 보였다.

“미안하지만, 농성을 해야 해. 아니면 드래곤이 여기에 오게 한다던가. 아무튼 일단 막아봐, 빨리 움직여!”

“제길!”

아영은 짜증을 뱉어내듯 말을 내뱉고는 재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그녀는 우선 상가 건물의 지도를 확인했다.

비상용 계단이 2개, 에스컬레이터는 1개.

엘리베이터는 어차피 감염자들이 못 탈 테니 상관없었다. 게다가 계단 쪽은 생각보다 좁으니까 막는 덴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아영은 주변에 잔뜩 널려있는 쇼핑 카트들을 끌고 와 그쪽으로 집어 던졌다. 탄탄한 철사로 이루어진 카트들을 마구잡이로 던지니 순식간에 계단이 막혀버렸다.

문제는 에스컬레이터였다. 계단보다 폭도 높이도 큰 이곳을 어떻게 막아야 할지 도무지 감이 안 잡혔다. 아영은 상점 진열대와 가구들을 끌어와 에스컬레이터의 앞에다 쌓거나 아래로 밀어서 바리케이드를 만들었다. 그러고도 아영은 불안했는지 진열대 자체를 끌고 와 바리케이드 아래로 굴렸다.

진열대에 남아있던 보석들이 어둠속에서도 별처럼 반짝거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길을 막았으나, 이것만으로 감염자 전부를 막을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부지런히 길을 막은 덕분에 온갖 잡동사니들이 전부 쌓여서 아래층이 안 보일 정도였다.

아영이 추가적으로 더 할 수 있는 게 없을지 고민하던 그때, 아래쪽에서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나는 듯 수없이 들려오는 발소리와 함께 낮은 신음이 들려왔다.

에스컬레이터에 설치되어있던 셔터까지 내린 아영은 옷걸이 하나를 뜯어서 자물쇠 채우는 곳에다 감아 고정했다.

총을 들어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겨누면서도 아영의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렸다.

계단 통로에서 손톱으로 쇠를 긁는 기괴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감염자들의 검은 눈구멍들이 일제히 아영을 향했다. 언제나 몸에 흐르는 피까지 얼음처럼 차갑게 만드는 그런 것들이었다.

바리케이드 너머로 불안한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곧 바리케이드가 흔들리기까지 했다.

위에 쌓여있던 물건들이 진동에 의해 아래로 떨어졌고, 그 사이 틈새로 썩은 손이나 팔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아영은 총을 쏘지 않았다. 그저 상황을 주시하며 신중을 기했다. 입 안이 바짝 마르고, 손엔 반대로 땀이 가득 찼다.

다행히 바리케이드는 그녀가 의도한 대로 감염자들을 제대로 막아 주었다.

“좋아, 된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쉰 그녀는 천천히 뒷걸음질치면서 물러났고, 계단 쪽 확인도 끝낸 뒤 위로 올랐다.

***

석민은 ASH-12.7을 쏘았다.

쏠 때마다 묵직한 반동이 전달되었고, 총성이 울릴 때마다 감염자들이 쓰러졌다.

곧 썩은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총을 맞은 감염자들의 허리가 그대로 반으로 잘려나가거나 머리가 박살났고, 총알 하나가 관통하여 두셋씩 쓰러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사격은 멈추고 말았다.

감염자들의 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씩 조준해봤자 끝없는 감염자의 물결을 막을 순 없었다.

심지어 가지고 있던 탄창의 탄약들이 동나고 말았다.

‘이건 그냥 총알낭비야.’

석민이 그렇게 판단할 무렵 때마침 아영이 옥상으로 올라왔다. 석민은 몸을 숙이고 소총의 탄창을 빼냈다.

“전부 막았어요.”

“잘했어.”

쳐다도 보지 않은 채 말하던 석민은 잠시 움직임을 멈추더니 아영을 바라보며 사과했다.

“미안해.”

“사과는 다음에 하세요.”

아영은 제법 마음이 상했는지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거… 담배 줘 봐요.”

계단 통로를 바라보던 아영이 석민은 쳐다보지 않은 채 손을 까딱거렸다. 짜증이 섞인 강요였다. 석민은 잘못한 바가 있어서 말없이 궐련을 내밀었다.

아영이 담배를 입에 물자 석민은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주었다.

아영이 한숨을 삼키듯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곧 하얀 연기를 내뿜었다.

첫 담배여서 다행이라 해야 할지, 아영은 깊게까지 연기를 삼킨 건 아니어서 기침을 하진 않았지만, 담배의 참맛을 못 안 채 인상만 쓰고는 침을 뱉어댔다.

“이게 도대체 뭐가 좋다고.”

아영은 반도 안 피운 담배를 옥상 밖으로 던졌다. 꽁초는 아래에 우글우글 몰려있던 감염자 중 하나의 이마에 부딪히고는 땅으로 떨어졌다.

아영은 이어서 수류탄의 안전핀을 빼서 담배를 던지듯 아래로 던져버렸다.

수류탄은 감염자들 사이로 떨어져 폭발했다. 7명 정도가 튕겨나가고 사방으로 사지가 날아갔다.

제법 속 시원한 광경에 아영이 낮은 휘파람을 불었다.

최소 20명 이상은 처리한 거 같았다. 물론 아예 죽은 게 아니기에 곧 다시 움직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다 막기는 했어요. 하지만, 여기서 평생 지낼 수는 없어요.”

그녀의 말에 석민은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은 있죠?”

“그야, 있기는 하지.”

석민은 알피지 탄두를 꺼내 들었다.

“드래곤을 잡을 거야.”

“어떻게요?”

“놈이 오게 만들어야지.”

아영은 고개를 돌려 드래곤을 바라보았다.

드래곤은 석민과 아영이 있는 쪽이 아닌 남쪽을 향해 대가리를 돌린 채였다. 관심이 다른 곳에 간 듯했다.

“저 빌어먹을 짐승은 자존심이 세잖아. 그걸 이용할 거야. 나 잠깐 내려갈게.”

“뭐 하시려고요?”

“화낼 거.”

잠시 후 석민이 가져온 건 부러트린 나무판자들이었다.

“모닥불 좀 피우자.”

화약과 종이들로 불쏘시개를 만들고 모닥불을 피웠다. 두 사람은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먹을 거라도 가지고 올 걸 그랬나?”

석민은 초코바를 꺼내 그녀를 주며 말했다. 나무가 타면서 숯이 되는 냄새가 풍기가 고기구이가 마구 떠올랐다.

‘고기구이라!’

석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탄두들을 분해했다.

“뭘 만드시려고요?”

“별거 없어.”

발사관이 망가진 이상 탄두는 쓸모가 없으니 안에 있는 폭약을 꺼내서 1개로 합쳤다.

석민은 빠르고 익숙하게 손을 움직였다.

“수류탄 1개 줄 수 있어?”

석민의 물음에 아영이 수류탄 한 발을 꺼냈다.

그는 수류탄의 신관 부분을 뜯어서 폭약에다 붙이고는 전체를 수류탄 몸체에다가 쑤셔 넣었다. 대충 터지긴 터질 것이다.

“이걸 드래곤한테 쓰려고요?”

“아니.”

상당히 괜찮은 폭발물이 되겠지만, 드래곤의 입속에 직접 넣지 않는 이상 제대로 된 타격은 줄 수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뭐, 일단 준비는 이 정도로 하고, 배나 좀 채울까”

두 사람이 초코바를 뜯어서 먹었고 그 순간, 드래곤의 분노한 괴성이 울려 퍼졌다.

그 둘이 다시 남산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붉은 드래곤이 그대로 석민과 아영이 있는 방향을 향해 날개를 활짝 펴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반응 한 번 참 빠르네.”

석민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

석민의 예상대로 드래곤 크라케르는 석민과 아영이 건물 옥상에서 여유롭게 모닥불을 피워놓고 무언가를 먹고 있는 것을 그대로 보았다.

아직 밤이었기에 그들이 피워놓은 불빛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는 등대와 같았고, 잠깐 남쪽을 바라보고 있던 크라케르의 주의를 끄는 데 충분했다.

크라케르는 그들이 자신을 두려워하기는커녕 만만하게 보고 여유롭게 휴식을 즐기는 것에 자존심이 박살나는 것 같았다.

감염자들을 이용해 그들의 무기와 힘을 소모하게 만들려 했는데, 오히려 편안한 모습을 보이니 드래곤의 분노는 이성을 뛰어넘을 정도였다.

드래곤은 자신의 부상도 잊은 채 저 두 놈만큼은 지금 당장 처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드래곤은 세차게 날개를 펼치곤 하늘로 날아올랐다.

***

“아래층으로 내려가!”

석민은 자신이 만든 폭약을 덤프파우치1)에 넣어서 챙긴 뒤 몸을 움직였다.

석민과 아영이 계단 쪽으로 달려가 문을 닫기 무섭게 드래곤의 화염이 건물의 옥상을 불태웠다.

화염으로 인해 달궈진 옥상의 철문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석민은 철문 틈새나 손잡이가 녹는 사탕처럼 흐물거리는 걸 보고 기겁하며 물러섰다.

이쪽 지역은 서울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따뜻한 편이라 그런지, 열기가 더 거셌다.

석민과 아영은 빠르게 아래로 내려갔다.

그때, 천장에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균열이 생겼다.

드래곤이 건물이 무너지도록 발을 굴리는 것 같았다.

석민의 표정이 썩어갔다.

드래곤은 자신의 부상은 생각도 않은 채 발톱을 세워 옥상 바닥을 긁어댔다. 한 번 긁을 때마다 철근 콘크리트가 깊게 파이면서 부서져 파편들이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자신의 뜻만큼 시원하게 건물이 부서지지 않자 발을 들어 연속으로 찍어댔다.

불안한 얼굴로 그들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드래곤이 건물의 구조를 몰라 그들이 있던 계단 부분을 내리치지 않아서 무사할 수 있었단 점뿐이었다.

이윽고 구멍이 뚫리고 그 사이로 드래곤의 주둥이가 들어왔다.

“이런 미친!”

석민과 아영이 기겁하며 아래로 내려가 계단 통로의 문을 닫는 순간 뜨거운 열기가 들이닥쳤다. 입으로 불을 뿜은 것이다.

옥상에서 내려온 화염이 건물 전체를 순식간에 감쌌다. 심지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 바리케이드에 막혀있던 감염자들조차 감싸 불태웠다. 화염의 불길 속에서 수백의 감염자들이 몸부림쳤다.

석민과 아영은 겨우 불길을 피하고 숨을 수 있었다.

아까보단 열기가 약했는지 손잡이 등이 흐물거리진 않았다. 석민은 방한 장갑을 낀 손으로 손잡이를 살짝 잡았다 놓았다. 뜨거움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숨을 마실 때에도 코끝이 점점 달아올랐다. 그들은 손으로 코를 막았다. 입고 있던 방한복 덕분에 그나마 열기가 직접 전달되진 않았으나, 옷에선 연기가 피어올랐다. 옷 안도 마치 한증막에 들어온 것처럼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다.

아영은 코를 막던 손을 내리고 물통을 찾아 급하게 들이켰다. 석민 또한 손을 내밀었다.

“이제 어쩔 생각이죠?”

“기다려 봐.”

석민은 물을 삼키고는 소총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짐가방에서 전에 천사에게서 빼앗았던 검과 SMG 홀스터에 넣어두었던 보조무기도 꺼냈다.

“아니, 그걸 어쩌시려고요?”

무기를 보고 너무 단출함에 놀란 아영의 되물음에 석민은 그저 어느새 잠잠해진 옥상 통로의 문을 조심스레 열고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서 옥상 문을 확인했다.

경첩이 열기에 녹아 떨어져서 문이 주저앉아 있었다.

지금이 기회일지도 몰랐다.

다시 내려온 그가 아영에게 말했다.

“시선을 한번 끌어봐.”

“뭐라고요?”

아영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석민은 그대로 다시 위로 올라갔다.

아영이 기가 막힌 얼굴로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이내 체념했을 때, 다시 석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든 해봐, 빨리!”

1) 빈 탄창 등 잡다한 것 넣어두는 일종의 대형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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