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오브 서울 203화]
감염자들의 행진
석민과 아영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혹여라도 오르곤이 문을 열까봐 걱정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영과 석민이 지친 얼굴로 왕십리 건물 밖으로 나왔다.
밖은 여전히 회색빛에, 하늘엔 태풍이라도 올 것처럼 가득 낀 구름과 그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검은 빛. 그대로였다.
“왜 문을 열지 않은 거지?”
“혹시 부상이 너무 심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석민의 의문에 아영이 자신의 추측을 말했다.
모든 동료를 잃은 오르곤은 혼자였다. 심지어 부상 또한 심했다. 그런 상태에서 드래곤의 견제까지 받게 된다면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생각해보니 꽤 길게 들려오던 총성과 포성도 들리지 않았다.
드래곤과 교단의 싸움이 끝난 게 분명했다.
“시간이 늦었네요.”
아영의 말에 석민은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2시라….”
석민은 자신의 예상보다 시간이 훨씬 흘렀단 사실에 조금 놀랐다.
“주변 좀 살펴봐야겠어.”
그들은 역의 옥상에 올라 주변을 관찰했다.
“남산 쪽에, 보여요?”
남산에 드래곤은 똬리를 틀고 누워 있었다. 자신의 둥지로 돌아간 것이다.
그는 시야를 확대해보았다. 드래곤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날개 하나가 걸레짝마냥 해져 있었다.
‘뭐야? 미사일이라도 맞았나? 왜 저렇게 됐어?’
무슨 일을 겪었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신들에겐 좋은 기회임이 분명했다.
석민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의도했던 것보다 교단 놈들이 단단히 준비했다보다. 드래곤이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큰 부상을 입었다.
그때, 산발적인 총성이 들렸다.
석민의 고개가 교단이 있던 방향으로 돌아갔다.
불빛이 줄긴 했으나 아직 살아있는 인원이 있었는지,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인영이 보였다.
“석민 씨.”
아영이 그를 불렀다.
“중랑천 쪽에….”
석민은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건?”
그곳엔 무너진 다리가 있었다. 그 위엔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왔다. 무너진 다리 때문에 멈춰버린 장갑차와 전차에서 나오는 등화관제등의 빛이었다.
“군대인가?”
전차와 장갑차의 모습에 석민과 아영은 바짝 긴장한 채 그것들을 보았다. 그들은 대전차병기가 하나도 없었다.
“아뇨, 아닌 것 같습니다.”
잠시 후 아영이 대답했다.
“교단 사람인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판단해?”
“만약 군부대가 온 것이라면, 아무리 분견대라도 전차를 고작 1대만 보내진 않았겠죠.”
“아, 그렇군.”
아무래도 다리를 건너려고 한 것 같은데, 드래곤의 주문 때문에 장갑차 하나가 무너진 다리에 깔린 모양이었다.
나머지들을 합쳐도 대충 6대는 돼 보였다.
석민은 불쾌한 기분을 억눌렀다.
“별동대를 보낼 줄 몰랐어.”
RPG은 추락했을 때 망가져서 정말로 사용 가능한 대전차무기는 없었다 즉, 전차가 그들과 맞닥뜨리게 된다면 감당이 불가능하단 소리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당장 중랑천 다리를 건너 이곳으로 올 수 없단 점이다.
종합적으로 판단한 석민은 생각보다 불리한 상황은 아니란 결론을 내렸다.
‘드래곤만 없으면 딱 좋았을 텐데 말이야.’
원래는 드래곤한테 한방 먹이려고 준비한 RPG를 이젠 쓸 수 없지만, 유탄은 잔뜩 챙긴 데다 드래곤이 많이 다친 상태이니 제법 승산 있어 보였다.
“전장만 좋은 곳을 선택하면 우리가 이길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아영은 그다지 좋은 표정이 아니었다.
“…그래, 문제가 없진 않지.”
석민은 한숨을 쉬었다.
“베르가 죽었으니까. 문은 어떻게 닫지?”
아영은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무언가 말을 하려하다가도 곧 땅을 쳐다보는 그녀의 모습에 석민은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다고 생각했다.
“뭔가 있지?”
아영은 고개를 들어 석민을 잠시 쳐다보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랜만에 ‘전달하는 자’로서 석민 씨에게 알려드릴 게 있어요.”
“문을 닫는 방법이 나왔나보지?”
“…네.”
뭔가 이상했다.
아영은 석민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숙이다가 이내 슬픈 얼굴로 석민을 쳐다보았다.
“왜 그래?”
아영은 퀘스트창을 띄워서 읽어주었다.
[선택받은 자를 희생하여 사명을 완수하라.]
“…뭐?”
석민은 자신이 잘못들은 줄 알았다.
“다시 한번 말해봐.”
“‘선택받은 자를 희생하여 사명을 완수하라.’ …이게 제가 받은 퀘스트입니다.”
살짝 현기증이 일었다. 아니, 어이가 없는 것도 같았다.
석민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발라크라바를 쓰고 있음에도 입을 딱 벌린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석민은 자신이 쓰고 있던 티타늄 헬멧을 벗고는 경직된 목 근육을 풀며 말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나보고 죽으라고? 어떻게 그런….”
그는 목이 메여 뒷말을 잇지 못했다.
“다른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아영이 얼른 말을 덧붙였다.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있을까?”
그의 목소리가 냉정해져 갔다. 자조 섞인, 그리고 체념에 가까운 힘없는 목소리였다.
“정말… 그런 게 있을까? 베르가 살아있었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이제 있어?”
처음부터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석민의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처음부터 이러려고 날 찾은 거야?”
“아니에요!”
아영은 놀라 손사래를 치며 반박했다.
“절 아시잖아요, 제가 어째서 그런 짓을 하겠어요?”
“그래, 그렇지.”
만약 진짜 그럴 속셈이면 이렇게 말해주지도 않았을 터다.
석민은 순순히 인정했다.
“미안해.”
이성을 뛰어넘는 화 때문에 괜히 아영에게 화풀이한 꼴이었다. 자신도 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일단 이건 다음에 이야기하지. 잠깐만 나 혼자 있고 싶은데.”
“석민 씨, 괜한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아영은 석민을 위로해 줄 말을 찾았으나 자신 또한 말주변이 없는 인간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자신이 생각한 최선의 수라도 입 밖으로 내는 수밖엔.
“다른 방법이 있어요.”
“그래? 뭐가 있는데? 오르곤을 이용하자고? 그러면 방주가 들어오게 되잖아? 그래, 오르곤은 방주를 안으로 들이려고 문을 열겠지. 문을 열 때쯤에 없애버리면 그만이야. 그렇지?”
그 말에 아영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하지만, 자신 없어.”
여태껏 도박처럼 도전한 일이 없던 건 아니다. 무모했고 목숨이 위험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나 그건 나름 자신의 실력과 경험에 의한 믿음이 존재했다.
석민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꺼먼 구멍이 자신의 목을 조이는 것 같았다.
“여태까지 하던 일들이 위험하다곤 해도 진짜 죽으리라 생각진 않았어. 하지만 이번 일은 달라. 내 실력은 위험에 비해 부족하고 대안은 없어. 만약 방주가 들어오게 된다면? 그리고 방주에 있는 이들이 깬다면? 그 뒤엔 어떻게 되는 거지? 감당할 수 있을까? 비난을 피할 수 있을까?”
아영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태 때보다 더 지옥이 찾아오면?”
고개를 푹 숙인 아영을 보며 석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 혼자 있고 싶어. 그래도 되지?”
아영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더 좋은 방안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석민은 흡연이 고팠다.
그러나 서울 안에서 그것도 밤중에 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게 하늘을 보며 하얗게 뿜어져 나오는 자신의 입김을 보다가 일탈을 마음먹었다.
어차피 주변에 괴수도 없었고, 혹은 이렇게 된 상황에 오면 또 어떠랴 싶기도 했다. 그래 죽으나, 이래 죽으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주머니에서 파이프를 꺼냈다.
오래 태우기엔 이만한 게 없었다. 게다가 담뱃불을 가릴 수 있는 덮개도 있어서 주변에도 덜 띌 것이다.
그는 보울에 세심히 담뱃잎을 넣은 뒤 건물 난간에 몸을 숙여 은폐하고는 불을 붙였다. 그나마 이곳은 그리 춥지 않았기에 그대로 바닥에 엉덩이를 걸터 앉았다.
근래 흡연 양이 줄어서 그런지 몽롱한 감각이 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목숨을 바쳐야 한단 소리에 별다른 건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은 이미 삶에 미련이 크지 않은 인간이었다. 다만 혜원의 얼굴만이 어른거렸다.
그녀에게 선물했던 커플 시계도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차고 오지 못했다.
그도 얼마 전까진 사는 것보다 죽음이 안식이라 생각했었다.
친구들의 소식은 모두 끊겼고, 어머니와 아버지, 여동생도 없이 추운 길바닥에.
얼어 죽는 이보다 삶을 비관해 자살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자신 또한 처음엔 두려워하던 일들이 점점 무감각해졌다. 생존을 위해 하던 살인도 마찬가지.
의미 없고 목표도 없던 삶.
가끔 총을 정비하면서도 이걸로 자신의 삶을 마감하고 싶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사랑하던 사람이 생겼다. 사명이 내려오며 이 지옥 같던 상황을 바꿀 수 있단 희망도 생겼다. 그래서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와 죽으라고? 내 목숨을 바쳐서?
마치 인신공양처럼 나를 희생하라니.
‘이해할 수가 없어.’
석민은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억울하고 화나면서도 이해는 되지 않고, 현실성도 느껴지지 않았다.
‘에이!’
석민은 깊게 들이마셨던 연기를 신경질적으로 뱉다가 기침을 했다.
잘못 연기를 빨아서 궐련을 피듯이 속담배를 한 것이다.
가슴에 엄청난 고통과 함꼐 눈앞이 핑 돌았다. 겨우 기침을 진정시킨 그는 머릿속을 가득 메웠던 일들을 털고는 당장 눈앞에 닥친 일부터 생각하기로 했다. 자신은 어차피 지금 죽을 생각이 없고, 깊게 생각해봤자 우울하기만 하고 별로 도움은 되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 지금 당장은 남산에 터 잡은 저 드래곤이 중요했다.
그는 담배 연기 너머로 드래곤을 주시했다.
드래곤은 겉으로 봐도 큰 부상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
베르만 있었다면, 오르곤도 다쳤고 드래곤을 칠 좋은 시기였을 터였다.
그러나 이제 베르는 없었다. 자신과 아영이 그 순진한 놈을 속이고 이용해 먹긴 했으나, 좋은 전력이자 동료였다.
아영과 둘이서 저걸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원래 아영과 의논하고자 했던 건 우리가 불리하니 가장 유리한 전장에서 처리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면 다른 의문이 생긴다. 원하는 전장은 도대체 어디인가?
석민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왕십리역 앞에 있는 광장은 넓지만, 이는 오히려 드래곤이 활동을 할 수 있는 영역을 확보해 주는 것이었다.
광장뿐 아니라 도로에도 폐차량이 별로 없었고, 그 흔한 시신도 없었다.
왕십리역은 처음으로 서울 사태가 벌어진 지역이었다. 사태 초기엔 괴수가 그렇게 많지 않았으나, 여기에 있었던 사람들 대부분은 드래곤의 영향으로 감염자가 되었다.
‘녀석을 끌어들여서 역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놈이 억지로 지상 역 건물 안으로 들어 올 테고, 그러면….’
그러나 곧 생각이 멈췄다.
드래곤의 지능은 뛰어나다. 이런 얕은 수에 걸려들지 않을 것 같았다. 오르곤 또한 마찬가지.
아니, 어쩜 건물 전체를 불태우거나 박살내려고 할지도 모른다.
석민의 눈이 좁아들었다. 주름이 깊어지며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담배를 빨았다. 파이프 보울 덮개 틈새 사이로 불빛과 연기가 새어나왔다.
그는 이참에 혜원에게 전화나 할까 하고 휴대폰의 전원을 켰다. 그리곤 알렉산드라가 보낸 문자를 확인하게 되었다.
“내가 위험해진다고?”
그는 자조 섞인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다 한들 지금 상황보다 더 최악일까.
그는 알렉산드라의 경고를 코웃음치며 넘겼다.
***
아영은 자신의 휴대폰에 걸려온 부재중 전화 목록에 멈칫했다. 대통령에게 전화가 와 있었다.
지독한 죄책감이 몸을 옥죄는 것 같아 그녀는 크게 떨었다.
‘전화를 해야 하는 건가?’
베르도 죽었고, 둘이서 드래곤과 싸우는 건 불가능했다. 심지어 오르곤을 막기엔 부족해 보이는 상태에서 석민 또한 자신감을 잃은 채 부정적인 결과를 말했다.
그녀는 불안했다.
심지어 퀘스트는 어떻게 보면 불합리할 정도였다. 그래서 석민의 반응 또한 이해가 갔다. 그런 걸 안다고 해서 불안감이 감소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근래 그에게 부정적인 부분이나 열등감 또한 느꼈으나 그의 실력은 여전히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 석민의 나약한 모습은 아영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지금이라도 용서를 구하고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라 생각됐다.
석민이 두려워하는 것처럼 아영도 만약 오르곤을 이용하다 실패했을 때 따를 여파가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다. 세계가 망하진 않더라도, 최소 한국은 망할 게 분명했다.
애국심과 충성심이 강한 아영은 생각의 정리가 끝나자 망설임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발신음은 짧았고, 곧 대통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