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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202화 (202/226)

[게이트 오브 서울 202화]

석민은 잠깐 이게 무슨 일인지 생각하다가 화들짝 놀라며 얼른 계단 위로 올랐다. 너무 안일하게 오르곤이 자신을 추격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오르곤이 보기에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의 집만큼 작은 이 건물에 굳이 들어올 이유가 없었다. 석민이 이곳에 들어와서 농성을 하면 불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오르곤은 석민이 있는 건물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석민을 비롯해서 건물 전체를 무너트릴 만큼 강력한 주문이었다.

석민의 발걸음이 더 빨라졌다. 자신의 목숨도 목숨이지만 이곳에 구비된 탄약과 드래곤하트의 안전을 생각하면 더 다급했다.

게다가 유폭이라도 난다면 다른 것은 몰라도 그는 확실하게 죽을 가능성이 높았다.

오르곤의 주변에 빨간 화구 2개가 생겨날 무렵, 다행히 석민은 건물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것을 본 오르곤이 바로 석민을 노리고 주문으로 만든 구체를 냅다 쏘았다.

석민은 숨 고를 여유도 없이 운동장 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석민이 몸을 피하자마자 화구 하나가 석민이 있던 자리에 작렬했다.

마치 수류탄 여러 다발이 터진 것처럼 강렬한 폭발이 일었다. 석민의 몸은 폭발의 충격에 휩쓸려 크게 내동댕이쳐졌다.

이것들이 쓰는 주문은 군에서 쓰는 폭발물마냥 파편이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석민은 간신히 몸을 추슬러 오르곤에게 반격을 하기 위해 소총을 꺼내 조준했다. 여태껏 쏘았던 아음속탄환과 차원이 다른 초음속 소총탄들이 시원스럽게 날아갔다.

갑작스러운 총격에 오르곤이 피하기 위해 날갯짓을 했으나, 완벽하게 조준을 마친 석민의 총알을 피하긴 어려웠다. 오른쪽 허벅지에 총알이 박혀 들어갔다.

같은 자리와 비슷한 곳에 또 맞았다.

천사의 아름다운 얼굴이 일그러졌다. 오르곤은 창을 석민을 향해 내던졌고, 석민은 살짝 몸을 돌려 피했다.

분명 얼어있는 땅인데도 창대가 겨우 절반만 남을 만큼 깊게 박혔다.

석민은 새 탄창을 꺼내 다시 오르곤을 쐈다.

오르곤은 피하는 대신 자신의 4쌍의 날개 중 2개로 몸을 감싸 막으며 석민을 향해 급하강을 시전했다.

석민은 마주 보며 사격을 가하다가 코앞까지 다가운 순간 몸을 던져서 피했다.

“미친놈 같으니!”

마구 땅을 구르던 석민이 자세를 바로잡고 총을 쏘려던 때, 총구가 오르곤의 손에 잡혔다.

“어?”

총탄이 오르곤의 왼손 가운데를 총탄이 뚫고 지나간 바람에 인상을 쓰긴 했으나 총을 놓지 않았다. 결국 자신의 스탯보다 더 강한 힘에 의해 석민은 총을 놓치고 말았다.

총을 빼앗긴 석민은 SMG 홀스터에서 보조 무기를 꺼내려는 순간, 오르곤이 1미터 정도 길이의 칼을 꺼내서 석민을 향해 휘둘렀다. 석민은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석민이 그것을 피하자, 오르곤은 다시 몸을 움직여서 접근을 시도했다. 석민이 총을 꺼낼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보다 못한 석민이 뒤로 크게 물러나자 오르곤이 몸을 앞으로 굽히며 석민의 양다리를 노리고 칼을 휘둘렀다. 압도적인 키 차이를 이용한 공격이었다.

석민은 한걸음 더욱 뒤로 물러나 그것을 피했다.

오르곤은 다리를 절뚝거림에도 석민보다 기민했다. 오르곤은 공격이 실패하자 재빠르게 물러나 날개로 몸의 절반을 가렸다. 석민은 어느새 소총 대신 유탄발사기를 장전해 쐈다.

“좀 죽어라!”

그의 바람이 담긴 외침은 다시 퐁! 하고 날아가는 유탄에 실려 천사의 머리 위에서 터졌다.

폭발의 충격으로, 날개로 몸을 가리던 오르곤이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석민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돌격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심한 기침과 함께 잠깐 동안 시야가 검게 물들고 오한과 가슴의 통증이 느껴졌다.

아직 다 낫지 않았는데도 격렬하게 움직여서 내상이 덧난 것이다.

“제기랄.”

이 좋은 빈틈을 오르곤이 놓칠 리 없었다. 태세를 정비한 오르곤이 접근해 칼을 휘둘렀다.

석민은 유탄발사기로라도 칼을 막으려 했으나, 오히려 유탄발사기의 총열만 깨끗하게 절단되고 말았다.

“이런!”

석민이 총열을 거꾸로 잡은 채 가까워질 대로 가까워진 오르곤의 얼굴을 노리고 머리판을 휘둘렀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오르곤의 턱이 휙 돌아가 버렸다. 그러나 오르곤의 머리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고, 시선은 석민에게만 박혀있었다.

효과적인 유효타를 못 준 듯했다.

이까지 오자 슬슬 석민도 두려움과 함께 기가 질려갔다.

동생을 잃은 형의 분노는 절대 만만한 것이 아님을 몸소 알게 된 것이다.

턱뼈가 박살났고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석민을 죽인다는 목표만 바라보느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총을 맞은 손으로 석민의 다리를 붙잡으려 했다. 기겁하며 피할 때 보니, 손만 봐도 크기가 거의 5배 이상은 차이가 나는 거 같았다.

지금 이 천사에게 이대로 붙잡히면 제대로 된 저항도 못 한 채 그대로 난도질당할 게 뻔했다.

석민은 오르곤이 손을 뻗어올 때마다 점프를 해 피한 다음, 총에 맞은 오르곤의 오른쪽 무릎을 향해 유탄의 개머리판을 찍었다.

“크아!”

간신히 참고 있던 고통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는 짐승 같은 울음소리를 내던 천사의 신체가 반쯤 무너졌다.

개머리판도 부서졌다. 세게 내리쳤던 탓도 있겠지만 아마 치장물자로 보관하면서 오래될 대로 오래되어 그렇게 된 듯싶었다.

그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오르곤의 다리 사이로 기어지나가 유탄발사기에 다시 이중목적탄을 넣었다. 이것은 경장갑 차량을 파괴하는 목적으로 만든 유탄이었다.

오르곤이 상체를 돌려서 낮게 으르렁거리는 순간, 석민은 다시 유탄을 쏘았다. 가까워서 조준을 할 필요도 없었다.

의도치 않게 총열이 잘려버려서 큰 소리가 났지만, 유탄은 그대로 날개가 오르곤의 흉갑에 망치로 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박혔다.

흉갑이 탄착된 자리를 기준으로 크게 일그러졌고 유탄은 격발이 되지 않았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안전신관이 격발을 막은 듯했다.

하지만 충분한 타격은 되었다.

오르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의 흉갑에 박힌 유탄을 보았다. 흉갑이 완전히 방어해 주지 못했는지 그곳을 중심으로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석민은 다시금 입에 고인 피를 마셨다.

오르곤은 발악하듯 주문을 외우려 했다.

석민은 완전이 절단 나 버린 유탄을 땅에 두고 보조 무기를 꺼내서 쏘았다.

그러나 오르곤의 날개에 막혀 큰 타격을 주진 못했다.

“빌머먹을! 저거 진짜 사기템이야!”

석민은 보조 무기로 쓰는 소총의 탄이 바닥나자 다시 권총을 빠르게 꺼내서 쏘았다.

오르곤이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칼을 고쳐 잡았다. 석민이 권총을 탄창이 비어 슬라이드가 후퇴 고정되자, 오르곤의 칼이 크게 빛나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시야가 막히자 석민은 급히 뒤로 물러갔다. 오르곤이 그의 시야를 빼앗고 반격을 할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석민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몸을 웅크리고 오르곤이 있을 법한 곳에 보조 무기들을 쏘았다.

그러나 총탄이 명중한 소리는 어디에도 들리지 않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잠시 후 시야를 확보한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이미 저 높은 하늘로 날아오른 오르곤의 뒷모습이었다.

엄청 급했는지, 오르곤의 4쌍의 날개가 볼썽사납게 파닥거렸다.

“야이 새끼야! 돌아와! 어디로 도망치는 거냐?!”

허망하게 끝나버린 전투에 석민은 기가 막혀 하늘을 향해 주먹질하며 소리쳤다.

그러나 이미 오르곤의 모습은 흔적조차 없었다.

싸움은 그렇게 끝이 났다.

지난번처럼 결국 결말을 짓지 못했다.

***

석민은 다시 총을 주우면서 알림글들을 확인했다.

다행히 총들은 전부 무사했다.

유탄발사기의 총열이 잘려 나가고 개머리판도 부서졌지만, 어쨌든 쓸 만했다.

‘괜찮네.’

단면이 잘렸다 한들 40mm의 위력이 어디에 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는 이것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차라리 잘됐다고 해야 할지, 총열이 잘린 덕분에 매우 콤팩트해졌다.

그는 공구 상자를 찾아서 톱을 꺼냈다.

석민은 지저분하게 남은 개머리판을 톱으로 잘랐다.

작업이 끝나자 m79는 해적들이나 쓸 법한 권총의 크기 정도로 작아졌다.

말 그대로 짧게 잘라낸(Sawed-off) 유탄발사기가 되었다.

그러나 무기들을 보며 제법 흡족했던 석민의 마음은 이내 다시 마음이 착잡해졌다.

오르곤과의 악연을 결국 종결짓지 못했다.

‘빌어먹을 자식, 목숨 한번 끈질기네.’

그는 건물로 돌아가서 유탄 탄약을 더 챙기기 위해 움직였다. 벨트 탄띠를 구해 유탄들을 가득 담고선 허리에 둘렀다.

그런 직후 그는 쓸쓸하게 버려진 베르의 시신에게 다가갔다.

상황이 너무 급박해서 베르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몸집이 아주 큰 베르의 시신을 어떻게 수습할 수 없었다. 거기다 뭉게진 베르의 얼굴을 마주볼 자신이 없었다.

베르의 기다란 머리카락이 찬바람에 나부꼈다.

‘불쌍한 놈.’

석민은 고개를 숙이고 묵례를 하는 것으로 그의 죽음에 조의를 표했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여태까지 이용당하다가 버려진 것과 다름이 없었다.

어쨌든 자신이 죽여야 했을 수도 있는데, 차라리 이렇게 일이 풀려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안 그랬으면 짧은 시간이나마 동료로 지냈던 그를 자기 손으로 죽였단 생각에 작은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꼈을 테니까.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베르가 없는 지금 누가 저 문을 열고 닫을 것인가?

오르곤이 석민과 아영을 도와줄 리 만무했다.

베르의 부재 이후의 상황을 상정하자, 석민과 아영에게 매우 불리했다.

사실 드래곤이 교단과 싸우고 있으니 지금 문을 여닫을 최적의 기회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게 불가능하니 오르곤이 마음대로 행동할 가능성이 있었다.

베르의 말대로라면 문은 불안정해진 나머지 계속 천천히 닫히고 있다고 했다.

시간을 끌면 문은 완전히 닫히겠지만, 오르곤이고 교단이고 이것들이 가만히 두질 않을 것이다.

‘내가 오르곤이라면 지금 문으로 가서 문을 열고 방주를 꺼낼 거야.’

그렇지만 아영이 지금 그곳에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으리라.

아영의 실력은 매우 확실한데다가 사격술만큼은 자신보다 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석민보다 더 전문적인 저격 훈련을 받은 저격수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대략 1시간쯤 지나기 무섭게 보기 좋기 빗나가고 말았다.

정비를 마치고 다시 아영에게 합류를 하기 위해 움직이던 석민의 눈에 멀리서 아영이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어지간히 급하게도 왔는지 그녀는 강추위 속에서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무사하셨군요!”

여태까지 아영이 이렇게 반갑지 않은 적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이쁘게 활짝 웃고 있었던지라 뭐라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을 위해서 그 먼 곳에서 여기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었다.

새삼 그녀가 자신의 진정한 동료이고, 자신 혼자 이 황량한 서울에 고립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제 그녀와 합류를 했으니 오르곤이 다시 나타난다 해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두 사람은 같이 다시 왕십리역으로 걸었다.

“아, 그러고 보니 휴대폰 챙겨왔어.”

석민은 휴대폰을 꺼내 아영에게 주었다.

“막상 휴대폰이 없으니까 서로 연락도 못 하고  좀 불편하잖아.”

그들이 가진 무전기의 통신 범위도 그렇게 넓은 게 아니라서, 시립대에서 왕십리까지 먼 거리로 떨어져 있으면 연락이 불가능했다.

“네 거 비화폰은 못 찾았어.”

아영은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저런, 돌 침대 아래에 두었는데.”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찾자고.”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안 좋았는지 그녀는 화젯거리를 돌렸다.

“베르는 결국….”

“어쩔 수 없었어.”

석민이 씁쓸하게 대답했다.

“베르가 없었다면 내가 죽었을 거야. 그런데, 이제 어쩌지?”

아영은 딱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대안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영은 그걸 함부로 말하지 못했다.

“일단 왕십리역으로 돌아가죠.”

아영이 말했다.

“그러고 나서 결정해요. 아직 드래곤이 남았고, 교단인들도 남았어요. 그리고 이제 정부도 움직일 거예요.”

석민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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