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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오브 서울 199화 (199/226)

[게이트 오브 서울 199화]

“그렇게 하지.”

상황이 일단락되면서 전차를 앞세운 5대의 장갑차가 출발했다.

박재만은 아예 멈춰버린 지휘 트럭에서 나왔다.

도로는 차량들로 가득했다.

길게 늘어진 차량의 행렬에서 내린 교인들이 무기를 들고 내려 사방을 경계했다.

드레이크 한 마리가 폐허 속에서 튀어나와 크게 울부짖더니 그대로 달려들었다. 수십 명의 교인들이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이내 완전히 곤죽이 된 드레이크 시체만이 바닥에 남았다.

박재만은 긴장으로 가득 머금었던 한숨을 내뱉었다.

철갑탄을 보급한 덕분에 드레이크의 비늘도 쉽게 뚫을 수 있었으나, 무기의 종류를 통일할 수 없어서 단기에 치지 못하면 탄약이 부족해, 자신들이 불리했다.

‘빨리 가야 해, 빨리.’

그는 심각한 얼굴로 검은 연기를 뿜고 있는 강동역 방향을 보았다.

‘빌어먹을.’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계획상 그곳에 지휘 본부를 둘 생각이었다.

이동식 버스의 이동 성능은 나쁘지 않았지만, 서울에서 끌고 다니는 건 무리였다.

거기에 교주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을 계속해서 진두지휘하게 둘 순 없었다.

군대가 길을 개척해 놓았다고 하지만 강동역으로 진입하는 대로는 여전히 폐차로 가득했고 소수의 차량들만 지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강동역은 지하라 나중에 있을 군 반격으로부터 안전했고, 방어에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검은 연기가 끝없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대로 화재를 진압하고 연기가 빠지길 기다릴 순 없었다.

‘어떻게 낌새를 눈치챈 거지?’

긴장이 조금 사라지자 이젠 추위가 박재만을 엄습했다. 방한복 위에 방탄복까지 착용했는데도 그의 몸은 떨렸다.

그래, 적어도 지하는 따뜻할 것이다.

호텔 말리나는 히터도 많았고 단열이 잘되어서 아늑했으니까.

그렇게 상황을 파악하는 사이, 어디선가 큰 괴성이 들려왔다.

와이번의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인데도 곁에서 울리는 것처럼 컸고, 사람의 마음속 깊이 숨겨두었던 두려움을 꺼내올 만큼 무시무시했다.

“뭐야?”

설마, 드래곤인가?

박재만은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방향을 보았다. 왠지 울음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대비해 두는 게 좋겠지.’

그는 무전기를 꺼냈다.

“각 부대 대대장급 성도님들, 필수 인력을 제외하고 전원 하차해서 산개한 뒤 사주 경계 및 대공 감시를 부탁합니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구소련제 대공포가 얹어진 트럭이 앞으로 나와 최대한 고지 쪽으로 움직였다. 대공포들 덮개는 이미 열려 있었다.

차량 안에 남아있던 이들도 밖으로 나와 4, 5명씩 뭉쳐서 산개했다.

한창 바짝 긴장할 무렵, 서쪽에서 흰 날개를 가진 이가 그들 쪽으로 날아왔다.

“오오!”

몇몇 이들이 환호성을 터트리며 손가락질을 했다. 대공포 운영 인원들은 적이 다가오는 줄 알고 처음엔 포구를 돌렸다가 날개를 확인하고 낮게 탄성을 질렀다.

“천사다. 천사야!”

대부분의 교인들은 천사를 처음 본 것이었다. 일부 교인들은 엎드려 절하며 눈물까지 보였다.

“천사가 우리와 함께하신다.”

박재만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천사의 등 뒤에 뭔가 매달려 있는 데다가, 천사의 행태가 마치 도망치는 것처럼….

등 뒤에 매달린 것이 사람의 형상이었다.

“이런 미친!”

박재만은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호신용으로 가지고 있던 카빈총의 개머리판을 펼치고 조준에 들어갔다. 그러나 베르는 눈 깜짝할 새 이미 그들을 지나쳐 있었다.

그와 동시에 차량 행렬 위로 어두운 그림자가 엄습했다.

6차선 도로 전부가 그림자로 뒤덮일 정도로 거대한 날개와 몸집을 가진 드래곤이 그들의 머리 위 허공에 나타난 것이다.

“안 돼.”

용과 눈이 마주친 박재만은 두 다리를 떨었다.

용을 발견한 몇몇 이들은 두려움에 다리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죽을 순 없었다.

박재만은 얼른 바로 옆 차량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것은 일말의 마지막 발악이었지만, 그게 도움 될 거라고는 그도 기대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린 교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각자의 무기로 사격을 가했다. 대공포와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몇몇 이들은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강동역 역사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붉은 용이 입을 쩍 벌렸다.

목구멍 안쪽으로 화점이 보였다. 곧 엄청난 양의 불이 사방을 뒤덮었다.

4연장 대공기관총을 붙잡고 있던 교인들이 서둘러 빠져나오다가 화염 속에 삼켜졌다.

비명도 들리지 않았다.

드래곤의 화염은 차량 행렬을 따라 길게 덮쳤다. 화염을 뒤집어쓴 교인들이 불길 속에서 몸부림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차량들이 순식간에 불타거나 녹아내렸다.

차 안에 타고 있던 운전자는 온몸이 불에 감싸인 채로 차 문을 열고 기어 나왔다. 그러나 드래곤의 불길이 지나간 밖도 온전치는 않았다.

뜨거운 열기에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아스팔트 위에서 몸부림을 치던 그자는 결국 숨을 거뒀다.

방한복 덕분에 당장 죽진 않더라도 화염에 식도와 폐가 타들어가 죽은 자도 숱했다.

차량 밑에 숨어있던 박재만은 눈을 떴다.

이상하게도 그는 어떠한 열기도 느끼지 못했다. 화염이 자신을 엄습하지 않은 것이다.

의아함을 느낀 그는 차량 밑에서 기어 나왔다.

어느새 차량 밖으로 나온 교주가 손을 뻗고 있었다.

교주의 앞뒤로 커다란 장막이 펼쳐진 덕분에, 그의 주변에서는 어떠한 열기도 느껴지지 않았고 불에 탄 자들도 없었다.

“세상에…!”

박재만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낮게 탄성을 질렀다.

“겁먹지 말고 공격하라!”

교주가 당당하게 소리치자 기적을 통해 크게 감동을 받은 교인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반격을 하기 시작했다.

예광탄이 하늘을 수놓고 로켓탄들이 날아가 드래곤의 몸에 착탄했다.

드래곤은 결국 머리끝까지 화가 난 나머지 베르와 석민을 잊고 교단인들을 죽이기 위해 몸을 틀었다.

분노에 휩싸인 드래곤은 주문을 사용하지 않은 채 화염을 뿜고 앞발과 꼬리를 이용해 교단인들을 덮쳤다.

하지만 교인들은 이미 산개한 상태였고, 화염은 교주에 의해 막혀 있었다. 드래곤은 일일이 한 번에 한 명씩 공격해야 했다.

안 그래도 갑작스레 석민과 베르에게 공격을 당해 기분이 좋지 못했던 크라케르는 화풀이 삼아 공격했던 인간이 되려 반격하자 더욱 화가 났다.

크라케르가 지면에 안착하자 군에서 탈취한 20mm 발칸이 달린 장갑차가 크라케르 배를 향해 총열이 달아오르도록 기관포를 발사했다. 거리가 가까운 데다 한곳에 집중적으로 사격을 받자 단단하던 크라케르의 비늘이 조금씩 박살났다. 그곳으로 수십 발의 탄환이 박혀 들어갔다.

크라케르는 비명을 질렀다.

크라케르의 주둥이가 아래를 향했다. 장갑차에 있던 인원들이 기미를 알아채고 해치를 재빠르게 닫았다. 순식간에 화염이 장갑차에 닿았다.

화염 폭풍이 사방을 감싸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화염 속에서 재가 되었다. 직격으로 맞은 장갑차 또한 순식간에 녹아내려 붉은 용암 같은 흔적만 남았다.

교주 백은호가 아까처럼 방어막을 만들어 화염을 막아냈다. 정예라 딱지 붙은 이들은 남녀노소 뒤섞여 있었는데, 총을 들고 교주를 향하던 아줌마은 그대로 새까맣게 타서 굳어버렸다.

사람들이 슬금슬금 교주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의 곁에 있는 이들만 무사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교주가 만든 방어막이 넓어서 죽은 자보다 산 자들이 더 많았다. 굳은 신의와 믿음으로 가득한 눈들이 단 한 사람만 바라보고 있었다. 교주가 입은 옷자락을 만지며 낮게 기도문을 외우는 자들도 있었다.

모든 것이 잘 되고 또 문제가 없어 보였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크라케르의 눈동자가 백은호에게 꽂혔다.

그에 마주친 몇몇 이들은 실신하거나 실금을 하기까지 했다.

그 순간, 하늘을 빙빙 돌며 상황을 주시하던 천사가 수직으로 급하강하더니 무언갈 던졌다. 그것이 드래곤에 닿기 무섭게 폭음이 울리고, 크라케르가 굉음을 질렀다.

천사가 보이자 교인들은 환호성을 터트렸으나, 교주와 박재만은 그저 조용히 그들을 주시할 뿐이었다. 교인들의 눈엔 천사가 도와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교주와 박재만은 천사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에서 저들을 적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교인들의 사기를 떨어트릴 수 없었다.

‘열불 좀 나겠네.’

석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땅을 바라보며 말했다. 높은 데서 보기엔 저들이 아주 큰 피해를 받은 것처럼 보였다.

***

정부 시설 중 공격받지 않은 세종 시청에 임시로 자리를 옮긴 대통령 성현제는 전국적으로 있었던 소요에 대해 보고를 받았고, 각오했던 것보다 통제가 잘돼서 피해가 적은 것에 안도했다.

사상자가 3자릿수이긴 해도 말이다.

“…그렇긴 하지만, 그 사이비 놈들이 서울로 진입했고, 그쪽 게이트에 있는 병력들과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운 부대에서 출동을 해야 하는데 지금 당장 보낼 수 있는 부대가 없습니다.”

“1기갑 여단은?”

보고를 하는 장성의 말에 대통령이 물었다.

“재편성을 마치고 대기하라 명령을 내리지 않았었나?”

“그렇습니다.”

“거기서도 소요가 있었나?”

“없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도록 대기시켜 놓긴 했었지만, 사이비들의 진압을 위해 기갑여단을 보내는 것은….”

“너무 과하단 말은 아니겠지요, 장군?”

대통령의 물음에 장군은 입을 다물었다.

“다른 데는 몰라도 군에서 무기가 유출되었는데, 기무는 뭐하고 헌병은 뭐했던가? 전차 1대와 장갑차 5대, 대공전차 2대를 빼앗겨?”

그 말에 동석을 하고 있던 육군 장군들은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했다.

“그들을 진압하세요. 무장하고 군수품을 탈취했습니다. 저항을 하면 사살하고, 제압하세요. 대전차화기도 가지고 있다지만, 기갑부대를 이끌면 바로 제압할 수 있겠지. 수뇌부부터 제압하면 피를 많이 볼 필요도 없을 거라고 보는데.”

“그렇게 하겠습니다.”

교단 쪽 일은 마무리된 것으로 친 대통령은 다른 질문을 했다.

“서울을 제외한 다른 쪽은?”

“다 진압했습니다.”

“언제쯤 다시 대전에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건….”

회의실 문이 열리면서 선호석 국가안보실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늦었습니다.”

선호석이 대통령을 향해 몸을 숙이며 말했다.

“아니, 괜찮아.”

성현제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많이 거칠어져 있었다.

“아직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확인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적어도 내일까진 돌아가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경호실장이 답했다.

“그러면 내일 아침에 돌아가도록 하지. 그전까지 무슨 일을 해서든 말끔히 정리해 두도록.”

성형제가 답했다.

“그러면 이제 해산합시다.”

사람들이 물러난 이후 성현제는 아직 자리에 남은 선호석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할 말이 있는가?”

“예, 있습니다.”

대통령은 잠깐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앉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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